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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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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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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1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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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DUMMY

도적들의 숫자는 20여 명, 호위병의 2배였지만 제리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난 몇 개월간의 경험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는 마법 성공률의 비약적인 향상을 가져왔다. 제리온은 이제 코앞에서 화살이 날아다녀도 캐스팅에 실패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얘들아! 전부 죽여라!”


퍼엉. 그 말을 마치자마자 도적들의 우두머리가 폭발했다. 근처에 있던 용병들도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였으니 도적들이 느낀 혼란은 가히 짐작할 만했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두목의 살점을 보며 그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으아악? 뭐지?!”


“두모옥!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갑자기 땅속에서 불길이 솟구쳤으니, 죽은 당사자나 지켜본 동료나 영문을 모를 만했다. 제리온은 도적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히죽 웃었다.


“내가 했다 이 새끼들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상단 행렬 맨 뒤쪽에 선 소년에게 고정됐다. 도적들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제리온의 머리 위로 연녹색 구체가 떠오르자 혼비백산하여 달려들었다.


“마법사, 마법사다!”


“공격! 공격! 저 꼬마부터 죽여야 한다!”


곧이어 치열한 칼부림이 벌어졌다. 예상외로 도적들은 두목을 잃었음에도 도망치지 않았고, 오히려 일행을 제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아마 두목을 별로 신용하지 않았던 모양이거나, 혹은 숫자의 우위를 믿고 승리를 자신한 걸지도 몰랐다.

막상 교전이 일어나자 대충 모인 용병들의 한계가 드러났다. 생면부지인 사람들끼리 분대를 편성해서 그런지 용병들은 협력할 생각도 않은 채 제각각 싸웠다. 위험에 빠진 동료는 내버려두기가 일쑤였고, 두어 명은 불리해지자 도망가려다 등에 칼이 꽂히기도 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쳇...”


이런 자들이니 기본적인 전술개념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선두의 용병들은 쉽게 공간을 내주었고, 그 틈으로 도적들이 뚫고 들어왔다. 목표는 당연히 제리온이었다.


“매직 미사일!”


그라고 용병들을 믿은 건 아니었기에 즉시 행동에 나섰다. 제리온은 세 발의 매직미사일을 쏴 도적들을 공격하는 한편, 마차 위로 올라가 농성할 준비를 했다. 단검을 꺼내 혹시 모를 근접전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억!”

“꾸웩!”

“우아악!”


한 발당 한 명씩, 도적들은 날아온 매직미사일에 맞아 제각기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셋을 쓰러뜨리자 이번에는 다섯이 달려왔다. 전열은 이미 붕괴되어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제리온은 1:1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용병들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병신들이! 처먹은 돈값은 해야 할 거 아냐!!”


그 순간, 흑발 청년이 제리온과 도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의 망토가 바람을 받아 나풀거렸다.

제리온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청년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날렵했다. 제리온은 그저 노란 궤적이 번개같은 속도로 도적들을 훑고 지나갔다는 것 정도만 파악했을 뿐이었다. 궤적이 사라졌을 땐 도적 다섯 명이 전부 땅에 널브러진 후였다.

목, 심장, 명치. 청년의 공격은 군더더기 없이 급소만을 노렸다. 그에게 당한 도적들은 전부 절명했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제리온은 그 ‘깔끔한’ 시체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의 모토가 상대를 겁주는 화려한 불꽃이라면, 청년은 ‘침묵’으로 모든 걸 설명했다. 자신에게 덤빈 자들을 예외 없는 죽음으로 - 그 자비심 없는 냉철함은 아군조차 등골이 시릴 정도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제리온은 흠칫 놀라 물러섰다. 청년이 말했다.


“괜찮나?”


“뭐...뭐야. 누가 도와달라고 그랬어? 칼 좀 쓴다고 위세 떨지 말라고.”


그러자 청년은 어깨너머로 엄지를 척 세웠다.


“쌩쌩해 보이는군. 내 뒤로 와라.”


“뭔 개소리야?”


“우리 둘 빼곤 전부 당했어.”


제리온은 그제야 전방에서 싸우던 용병들이 전부 당했으며, 도적들이 자신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함께 맞서던 상인들도 대부분 싸늘한 주검이 된 채였고, 일부는 말을 타고 줄행랑을 놓은 모양이었다. 제리온은 속절없이 당한 그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미치겠네. 싸움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새끼들이 이딴 도적들한테 다 당하면 어쩌라는 거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전부 해치우던가 아니면 항복해야 했다. 그런데 이미 도적 몇 명을 화려하게 보낸 상황이라 항복한다고 곱게 살려줄 거 같진 않았다. 청년이 등을 보이며 물었다.


“마법, 좀 더 쓸 수 있겠지?”


그러자 제리온은 즉각 손에서 불꽃을 만들어 보였다.


“댁 걱정이나 하시지. 같이 타 죽기 싫으면.”


이후 제리온은 두 발의 마법을 연사하여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청년 또한 현란한 검술로 적을 농락했는데, 어찌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도적들이 그의 옷깃 하나 베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제리온은 자신이 없었더라도 그 혼자 남은 도적들을 전부 상대했을 거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도적들은 도합 아홉이나 당하고 난 뒤에야 뿔뿔이 흩어졌다. 제리온이 두목을 날려버린 것과 청년이 다섯을 상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둘이서 도적떼를 격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제리온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청년을 의식해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한 게 몸에 부담을 준 것이었다. 흑발 청년이 다가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리온은 인상을 구기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형씨 꽤 하는데?”


“그쪽도. 마법사와 함께 싸우긴 처음이군.”


“그건 그렇고-. 의뢰인이 다 뒈져버렸네? 이를 어쩐다.”


의뢰인이 죽었기 때문에 둘이 맡은 임무도 자연히 실패로 돌아갔다. 호위 임무는 대개 후불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땡전 한 푼 건질 수가 없었다. 제리온이 시체를 뒤적거려 보았지만, 짐칸에 실린 화물 외엔 돈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차를 끌던 당나귀도 전부 죽어버려 화물을 들고 갈 수도 없었다.

청년은 이미 다음 행로를 정했는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알선소로 돌아가야겠군. 의뢰인이 죽은 이상 우리가 할 일은 끝났어.”


“음...할 일이라...”


제리온은 지도를 펼쳐 근방의 도시를 물색했다. 그런데 당초 목적지이던 레인스터를 찾고 있자니 낯익은 도시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델키아?’


델키아. 그 명칭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다.


“분명히...델키아의 카토르를 찾아가랬지.”


처음 두 달은 몸을 회복하느라, 그 뒤론 용병 일을 하느라 아버지의 유언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실 반란군이 진압된 이상 굳이 카토르를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였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부추겼다.

결국 제리온은 델키아에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여행길이란 게 그리 녹록하지 않은 데다, 처음 밟는 땅은 더더욱 그러하다. 앞서 상인들은 무리지어 움직였음에도 도적떼를 만나 전멸했다. 경호원을 고용해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홀로 움직이는 여행자라면 도적들에겐 거저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레 그의 눈길이 청년을 향했다. 검술 실력이 굉장한 데다 그다지 돈도 안 들어 보이는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이봐, 형씨. 일 찾으러 가는 거면, 내가 고용하면 안 될까?”


“...네가?”


청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용병이었던 소년이 갑자기 고용주로 돌변한 것이다.


“나, 델키아로 갈 생각이거든. 그런데 아직 북부 지방은 가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내 실력이면 산적 대여섯쯤은 우습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깐. 어때?”


“델키아라...보수는?”


“하루 3골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청년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제리온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보수보다는 그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이내 청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웃는 얼굴로 남을 속이는 사람은 있어도, 저런 잔뜩 찌푸린 얼굴로 사기를 치는 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이칼롯 제르비안이다.”


“응? 아아, 난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제리온이라고 불러.”


제리온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그는 몇 번 대화를 나누고 보니 이칼롯이 보기보다 정중하고 예의바른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다 대단한 실력자이니만큼, 델키아까지 몸 사릴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에게 줄 돈은 없었지만 말이다.


***


루도의 검에 봉인되어 있던 게 그 유명한 레미나 리크나이츠라는 사실을 접하자 일행은 큰 충격에 빠졌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살아있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왜 루도의 검에 깃들어 있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지인인 제리온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몰라, 씨발! 그년은 대체 무슨 설레발을 치고 다닌 거야? 그람이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으면 봉인을 했겠냐고.”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리온은 틈날 때마다 그녀를 찾아가 간호했다.

제리온이 리크나이츠의 공주님과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점도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는 일행에게 레미나와 자신은 함께 마법을 배운 동기이며, 그녀가 멋대로 자신을 동생 삼은 거라고 설명했다. 디리터는 그 말을 듣고 그의 발치에 무릎 꿇으려다 뒤통수를 맞고 도로 일어났다.


“공주님의 동생이면 왕자님 아닌가?”


“이 새끼는 뭐라는 거야! 왕자면 내가 니들같은 머저리들하고 어울리고 있겠냐?”


레미나는 봉인에서 풀려난 뒤로 계속 잠든 채였다. 처음 나타났을 때 그녀는 미동은커녕 맥박조차 뛰지 않아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러나 안트로서는 기나긴 가사상태로 인해 몸이 약해진 탓이고, 숨은 정상적으로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제 깨어나느냐는 루도의 질문에 그는 찻잔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그는 자신도 모르는 질문을 받으면 굉장히 불쾌해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루도는 섬의 중심부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누워있는 레미나가 자못 신경 쓰였다.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그는 행여 깨어난 그녀가 검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어쩌나 싶어 전전긍긍했다.


‘이건 람에게 받은 선물이야. 누구한테도 못 줘.’


한편 마리네와 디리터는 헤실 거리며 어여쁜 공주님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둘은 틈만 나면 나무그늘에 자리 잡아 잡담을 나눴다.


“공주님 진짜 아름답지? 나 그렇게 예쁜 사람 처음 봤어.”


“그...그렇지. 예쁘긴 예쁘더라.”


디리터는 에레이시아의 눈치를 슬금슬금 봤지만 정작 그녀는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눈독 들여 본들 촌구석 레인저에겐 못 먹는 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질투하기조차 황송할 정도로 고귀한 신분이었다.

루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난 그보다는 제리온 쪽이 더 충격인데. 공주님이랑 누나 동생 하는 사이잖아.”


디리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대단한 놈이었다는 말이지. 델키아 영주 따위는 손짓 하나로 발라버릴 지도 몰라. 하늘같은 공주님보고 이년, 저년 하는 걸 봐도 그렇고.”


마리네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거 말인데,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제리온이 왕족인 건 아니잖아. 애초에 신분이 다른데, 그렇게 상스럽게 불러도 되는 건가?”


“음...보통은 안 되겠지. 왕실모독죄라는 게 엄연히 존재하고.”


안 되겠지. 아마도 안 될 것이다. 법에 대해선 무지했지만 셋은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루도가 말했다.


“부르면 안 되는데 제리온은 그렇게 부르고 있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사형이지.”


“어, 사형인가? 좀 센데?”


“아닌 거 같은 기분도 들지만 제리온이니까 사형시켜도 돼.”


루도와 마리네는 이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레미나가 눈을 뜬 건 그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갈 즈음이었다. 그녀를 간호하던 에레이시아가 혼비백산하여 뛰쳐나왔다.


“고...공주님이 깨어나셨어.”


일행은 물론이거니와 윈프레드와 아르유까지 즉각 그녀의 방 앞으로 집결했다. 방문이 열리자 디리터는 무릎을 꿇다 못해 기어가려고까지 했다. 루도와 마리네도 왕족을 대면하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찌할 줄 몰라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제리온은 그들 모두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서 있어, 촌놈들아.”


제리온을 선두로 공주를 알현하기 위한 행렬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레미나에게 다가간 그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어~, 누님. 오랜만이요. 나 기억하겠어요? 빌어먹을 제리온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레미나는 어찌 된 일인지 말을 걸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확실히 눈을 깜박이고 있긴 한데 그것 뿐, 하반신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는 천정을 향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대답이 없자 제리온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왜 이래? 이거 완전 맛이 갔는데?”


“우와악! 사형!”


마리네가 대경실색하여 그의 목덜미를 찍었다. 루도는 레미나의 가슴 위로 쓰러지려는 그를 재빨리 걷어차 튕겨냈고, 디리터와 이칼롯이 그를 들어 방문 밖으로 던졌다.

이칼롯이 그를 대신해 사과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공주님. 공주님의 옥체를 더럽힌 죄는 저희가 확실히 치르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북새통에도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목석처럼 누워서 그 큰 눈동자만 깜박거릴 뿐이었다. 그토록 굳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에레이시아도 공주의 용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아르유가 나서 안트로서를 끌고 왔다. 그는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했다며 30여 분간 난동을 부린 뒤에야 레미나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 팔다리를 주무르던 그는 피식 웃으며 진단을 내렸다.


“별거 아니네. 몸이 굳었어.”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5년간 작은 용기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잠만 잤던 애다. 뼈는 물론이고 근육이 경직돼서 움직일 수 없는 거야. 뭐 그렇다고 이대로 식물인간이 되는 건 아니고, 시간을 두고 간호하면 서서히 몸이 회복될 게다. 눈을 뜬 것도 근육이 이완되고 있다는 증거지. 아마 정신은 말짱할걸?”


그 말을 듣자 일행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공주가 불치병에 걸린 건지, 아니면 그람에게 해괴한 저주를 받은 건 아닌가 싶어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제리온이 그녀의 상태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요는 그거네. 옛날에 카이안 새끼가 우리한테 처먹인 마비버섯 같은 거. 의식은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잖아.”


“윽...생각만 해도 끔찍해.”


루도는 그 당시를 회상하곤 몸서리 쳤다. 전신이 감각이 사라지는 감각, 눈에 보이는 팔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흡사 썩은 인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건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섬뜩한 경험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파악하자 제리온은 즉각 의사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그는 레미나의 고개를 돌려 시선이 자신을 향하게 한 다음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자, 누님. 잘 봐요. 이제부터 질문을 할 건데, 맞으면 눈동자를 한 번, 틀리면 두 번 깜빡이는 겁니다. 질문의 답을 알고 있어도 한 번, 모르면 두 번. 알았죠?”


그러자 레미나는 눈을 한 번 꼬옥 감았다가 떴다. 제리온은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참 말 잘 듣네. 그럼 해보자고.”


제리온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녀 머리맡에 앉았다. 윈프레드와 아르유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로샤단 멤버들은 완벽히 굳어 제리온 뒤편에 열중쉬어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일행은 행여 공주의 심기를 건드리진 않을까 조심하는 한편, 그럴 확률이 가장 높은 제리온을 예의주시했다.

제리온이 말했다.


“그럼 먼저, 누님은 지금까지 검에 봉인되어 있었어요. 그것도 자그마치 5년간. 누가 그런 건지 알아요?”


깜빡.


“호. 그 사람이 혹시 죽지 못하는 그람이에요?”


깜빡.


“왜 누님을 봉인한 거예요? 협박당했어요?”


깜빡깜빡.


“음...그럼 뭐지. 아, 혹시 그람이 후작의 반란군에 속해 있었어요?”


깜빡깜빡.


“씨발, 그럼 왜 봉인당한 거야? 아, 이건 대답 못 하겠네. 넘어갑시다.”


제리온은 그 뒤로 몇 번 더 질문을 던졌지만 봉인된 경위에 대해서는 더 알아내기 힘들어 보였다. 그는 그 건에 대해서는 추후에 묻기로 하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화제를 바꿨다.


“누님, 숨기지 말고 대답해 줘요. 신의 아이가 실존한다는 거, 알고 있었죠?”


레미나의 눈동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뒤에 서 있던 루도는 그의 말에 숨을 죽였다. 확실히 그녀는 왕족 중에서도 최고 서열, 신의 아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왕실과 류이너스 교단, 왕실과 로샤단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걸 고려한다면, 그녀는 로샤단이 봉착한 문제의 실마리를 제시해줄 수도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 레미나는 눈동자를 한 번 감았다 떴다. 제리온이 그걸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궁전에서 못된 짓만 배운다는 게 사실이었구만. 그럼 상트룸 수도회와 류이너스 교단이 신의 아이 문제로 충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네요.”


깜빡.


“누님, 왜 이런 걸 묻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린 우리 나름대로 다급해요. 알고 들어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난 지금 로샤단 소속이거든요. 로샤단 알아요?”


그러자 그녀는 눈을 두 번 깜빡여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공주인 그녀조차 몰랐다는 건, 그만큼 로샤단의 활동이 극비리에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다시 제리온이 말했다.


“그럼 다음. 펠아람의 저주 알고 있어요? 신의 아이 중 하나는 반드시 폭주하는 그 뭐시기.”


레미나는 이번에는 긍정의 뜻을 보였다. 그러자 제리온은 가슴을 탕탕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썩을, 난 5년 전엔 찌질하게 마법서만 읽고 살았는데, 누님은 알게 모르게 이런 극비 사항들을 처리하고 다녔다는 거잖아. 내 앞에선 만날 헤벌쭉 쪼갰으면서...여우가 따로 없네.”


일행은 슬슬 제리온의 언동이 난폭해져 감을 눈치 챘다. 마리네와 디리터는 언제라도 그를 끌어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제리온은 한참 투덜대다가 갑자기 루도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누님. 얘 좀 봐봐요. 잘 생겼죠?”


“왓...뭐, 뭐하는 거야?!”


루도는 당황하여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자 제리온은 양손으로 그를 붙들고는 억지로 레미나의 앞으로 끌고 갔다. 루도는 버둥대며 말했다.


“왜 그래! 공주님 앞에서 무례하게....”


“무례? 임마, 넌 좀 니 처지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어. 넌 어떻게 보면 귀족이나 왕족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굉장한 씨발놈이라고.”


둘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레미나는 루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아르유만이,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는 걸 포착해냈다.

제리온이 루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그 신의 아이에요. 그것도 펠아람의 아이.”


“.....!”


레미나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만약 몸이 움직였다면 입을 가리며 감탄사를 터뜨렸을 게 분명했다.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신적인 힘을 갖고 있다니,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루도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쭈뼛거리며 허리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제리온이 다시 의자에 자리 잡으며 말했다.


“사정이 좀 복잡해요. 리크나이츠는 어떻게든 신의 아이를 숨기려는 모양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거든. 특히 브리토리스 왕국은 신의 아이를 병기화 하려는 한편, 방해되는 조직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있어요. 우리 길드도 거기 휘말려 풍비박산 났고, 이렇게 다섯만 남아 외딴 섬으로 도망쳐온 거예요. 그러니까 누님, 아는 정보가 있으면 전부 알려줘요. 혹시 예전에 안개송곳니라든지 아케니온이라는 명칭을 들은 적 있다면....”


그때 레미나가 다급하게 눈을 네댓 번 깜빡였다. 여러 번 깜빡이는 답안을 제시해준 적은 없기에 제리온은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뭐요? 모른다고?”


깜빡깜빡.


“모르는 걸 몰라? 그럼 알아요?”


깜빡깜빡.


“아오, 썅! 그럼 뭐라는 거야? 확실히 좀 하라고요!”


그때 뒤에서 잠자코 있던 에레이시아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그녀는 레미나의 촉촉이 젖은 눈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이번 건 그냥 눈이 따가워서 그러신 모양인데? 너 너무 많이 말했어.”


그러자 제리온은 성질을 내며 레미나의 볼을 꼬집기 시작했다.


“에라이! 애도 아니고, 그런 건 좀 참아야 할 거 아냐!”


그러자 레미나도 미친 듯이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자 일행은 지체 없이 제리온을 덮쳤다.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난동이야?”


“고...공주님,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사형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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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80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90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2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7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3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30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3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6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5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10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4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9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1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6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8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1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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