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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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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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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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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0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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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DUMMY

창을 모두 막아놔서인지 여관 안은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이칼롯은 문가에 선 채 잠시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 산적들은 홀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실루엣만으로도 그 숫자가 수십에 달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 진짜 왔어. 진짜 왔다고! 이거 대단한데.”


‘....?’


산적 중 하나가 낄낄대며 다가왔다. 방금 전의 상황도 있었던 만큼 이칼롯은 재빨리 칼을 겨누었다. 산적은 휘파람을 불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오우, 안 되지. 협상을 하러 온 거 아니었나?”


“조무래기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코간이 누구냐?”


산적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 남자를 향했다. 이칼롯은 계단 중간에 걸터앉은 대머리 남자를 노려보았다. 놈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급사로 보이는 듯한 여자를 강제로 봉사시키고 있었다. 그 저열한 광경을 보자 치가 떨려왔다.


“네놈이...내 부모님을...!!”


당장이라도 치고나가 놈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칼롯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추슬렀다. 아직 때가 아니다. 모든 것은 유디를 돌려받고 난 후에.

코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하려 온 게 아닐 텐데.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온 게 아닌가?”


“...여동생을 풀어줘라. 추격대를 뿌리치기 위해 인질로 잡은 게 아니더냐. 여동생만 양도해주면 내 절대 너희를 쫓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그러자 코간을 비롯한 산적 대다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칼롯은 왕좌에라도 올라간 듯 거드름을 피우는 놈들의 시선이 견딜 수가 없었다. 개만도 못한 쓰레기들.


“그걸 어떻게 믿지? 여동생을 돌려받은 뒤에 입 싹 씻고 군사를 투입할 수도 있는 거잖아? 킬킬킬.”


“날 너희 같은 비열한 잡배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난 제르비안 백작 가(家)의 장자다.”


“그래? 헌데 말이지, 그냥 그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쳐도 병사들을 뿌리치는 데엔 지장이 없거든. 네놈 제안에 응해서 우리가 얻는 게 없다는 말이야.”


텔슈피드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올라왔다. 여동생만 돌려받으면, 여동생만 돌려받으면!


“돈을 원한다면 주겠다. 너희들이 성에서 털어간 양의 세 배를 주마. 그리고 국경을 넘을 때까지 사용할 가짜 신분증도 만들어주겠다. 이래도 모자란가?”


“음...그것도 좀 모자란데...”


“크...네놈...!”


코간은 한 손으로 겁에 질린 여급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도낏자루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자신이 협상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칼롯은 점점 조바심이 났다. 이 정도 조건이면 응할 만도 한데, 녀석들은 헤실 거리기만 할 뿐 반응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홀을 가득 메운 인파 중 유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안달 나게 만들었다. 2층에 있는 걸까? 아니면 주방에?

그즈음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칼롯은 혹시 원정대가 도우러 온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숫자가 고작 말 한 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다. 지나가던 여행자이거나, 아니면 산적 중 하나겠지.

코간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이, 귀족 도련님. 내가 아주 맘에 드는 조건이 생각났거든. 한 번 들어보겠어?”


“...말해라.”


“여동생을 돌려주는 대가로 네 목을 가져가는 건 어떨까?”


이칼롯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무슨 뜻이냐.”


“아니, 보화도 좋지만 네 목보다 비싸진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약속도 했고. 어때?”


“그래서 네놈들이 얻는 게 뭐지? 그랬다간 결코 추격대를 뿌리치지 못할 거다.”


“말했잖아? 네 목이 아주아주 비싸다고. 거액에 사준다는 사람이 있다니까?”


코간의 말은 거의 빈정거림에 가까웠다.

이칼롯은 슬슬 대화를 포기하고 놈들을 덮칠 타이밍을 쟀다. 유디의 신변이 걱정되긴 하지만 협상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게 마지막 남은 수단이었다. 따라온 병사들은 지금쯤 건물 외곽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돌입해 혼란을 유발하고, 그 틈을 타 코간을 생포한다면 놈들을 제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칼롯은 조금 전보다 훨씬 적의를 담아 말했다. 만약 여기서도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바로 공격명령을 내릴 심산이었다.


“그게 네놈의 대답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일 정도로 내가 우스운가?!”


“아니, 아니야. 진짜라니까? 킬킬킬. 아, 지금 그 구매자께서 들어오시네.”


여관 뒷문이 열리더니, 산적 십여 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네들에게 모습이 가려 있었기 때문에 이칼롯은 처음에는 그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인파를 헤치고 나와 산적들이 가져다준 의자에 걸터앉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칼롯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말을 잃고 말았다.


“뭐, 그런 거야. 이칼롯. 조금 놀랐나?”


“요...슈아...?”


그, 요슈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칼롯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품에서 보석을 하나 꺼내 던져주자 코간은 냉큼 이를 받았다. 요슈아가 말했다.


“널 따라온 병사들은 이미 처리했지. 협상을 하러 왔다면서 이런 잔꾀를 부리면 쓰나?”


그와 함께 들어온 산적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들의 옷자락이며 칼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곤한 하루군. 멍청한 용병 놈들, 지휘관을 노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하지만 뭐, 네가 살아 돌아올 거라는 걸 예상 못 한 건 아니야. 다만 혼자 혼비백산 뛰어오던 건 의외였지만. 덕분에 이렇게 유익한 자리를 만들 수 있었지.”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 치밀지도 않았다. 다만 충격으로 인한 상실감만이 몰려올 뿐이었다.


“...다 네가...꾸민 거냐? 용병을 고용하고, 아버지를 죽인 게...”


“맞아. 내가 꾸몄어. 아, 증원군은 오지 않을 테니 기대하지 마. 이미 손을 써놨으니까.”


“어째서냐...”


“어째서냐고?! 이유야 간단해. 네가 이칼롯 제르비안이기 때문이지!”


산적들 한가운데 요슈아가 군림하고 있었다. 용병을 고용해 크렘벨 군과 싸우게 하고, 코간에게 지시해 성을 약탈하게 하고, 제르비안 백작 내외를 살해하게 하고...그리고 유디를 납치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그러나 이칼롯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꾸몄단 말인가!


“요슈아...나...난 너를 형제처럼 생각했다. 지금껏 원한 살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았는데...왜냐...어째서냐!”


그러자 요슈아는 코웃음을 쳤다.


“맞아. 나도 널 좋아해.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니까? 단지, 네가 제르비안이기 때문이지.”


“...뭐라고?”


“들어봐, 이칼롯. 난 폴크 남작가(家)를 이끄는 수장이야. 노모가 있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도 있지. 중요한 게 뭐냐면, 빌어먹게도 영지 하나 갖고 있지 않은 반쪽짜리 귀족이란 거야.”


그는 탁자를 쾅 내리쳤다. 아마 그 소리에 놀란 여급이 코간의 성기를 살짝 깨문 모양이었다. 코간은 욕설을 하며 여급의 목을 땄다. 요슈아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리크나이츠에 귀족은 넘칠 만큼 많아. 대통합내전 이후 신분이 상승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지. 그런데 늘어난 귀족에게 지급할 땅이 모자라다는 게 문제야. 때문에 나 같은 연줄도 없고 돈도 없는 귀족은 백날을 기다려봐야 마을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지.”


“고작...”


“너처럼 귀하게 태어나 귀하게 자란 도련님은 몰라. 땅도 없이 살다 차츰 몰락해가는 귀족의 설움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야. 귀족 하나가 몰락하면 땅이 하나 비지. 마침 제르비안 가문은 신흥귀족이라 친지가 없잖아? 백작 내외랑, 그 자식들만 사라지면 그들이 다스리던 영지며 성은 모두 공백이 돼. 그럼 왕실에선 새로 크렘벨을 다스릴 귀족을 선정해줘야 하는데...누가 좋을까? 아하, 마침 오랫동안 크렘벨의 가신으로 활동했고 남작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어. 요슈아 폴크라고.”


“고작 그따위 이유로 내 부모님을 죽인 거냐!!!”


현실을 직시하자 흩어졌던 분노가 한 점으로 모였다. 이칼롯은 참지 못하고 일갈을 터뜨렸다. 작위가 뭐기에, 영지가 뭐기에 형제처럼 지낸 친구를 배신하고 모시던 영주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요슈아는 그의 살기에도 태연했다.


“고작이 아니야. 우리 집안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 크렘벨 원정군이 위그라프 후작의 잔당과 교전, 그 사이 자신을 토벌하려는 백작에게 앙심을 품은 코간 산적단이 성에 잠입해 백작 내외를 살해하다. 아들 이칼롯이 복수를 위해 단독으로 움직이다 도리어 역습을 당해 사망, 제르비안 가문은 역사의 뒤안길로. 가신 요슈아 폴크, 글라우드 백작의 유지를 이어 크렘벨의 영주가 되다. 코간 산적단은 보화를 털어 텔아단으로 도주. 기사들이 토벌을 부르짖으나 요슈아 영주는 영지의 안정을 이유 삼아 묵살. 매끄럽진 않지만 납득할 만하지?”


“이 노오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다리가 앞으로 나갔다. 철천지원수를 죽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이칼롯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러자 요슈아는 손을 들어 그가 망각했던 요소를 확인시켜주었다.


“아아, 좀 봐달라고. 일을 확실하게 하려고 일부러 자해까지 했단 말이야. 지금 네 검을 받았다간 뼈도 못 추릴 거야. 그럼 이쯤에서 내 방패를 꺼내볼까?”


그가 지시하자 산적 둘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유디를 끌고 왔을 때, 이칼롯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유디...!”


넋을 잃고 있던 유디가 이칼롯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라버니...”


그녀는 저항하다 얼굴을 맞았는지 한쪽 뺨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게다가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가슴이 훤히 드러난, 반라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이미 치욕을 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빛바랜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이칼롯은 신을 저주했다. 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내린단 말인가!


“유디...유디...”


차마 괜찮냐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본 순간 아침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그 말을 들었더라면, 그녀 옆에 있었더라면. 이칼롯은 울부짖다시피 말했다.


“이 썩을 놈들아! 대체 얼마나 나를 괴롭혀야 만족할 거냐!!”


요슈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가 지시하자 산적 몇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유디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유디는 널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어. 뭐, 그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지. 여자로서의 역할도 그랬지만. 자, 이칼롯. 내가 원하는 건 네 목숨이다. 순순히 칼을 받고 죽는다면 그녀를 살려주지 못할 것도 없어. 다만 제르비안의 사람이 남아있으면 곤란하니 텔아단이나 퀴넨 즈음에서 풀어주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어때?”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어 피라 흘러나왔다. 유디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구슬프게 흐느꼈다.


“...네놈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 어떻게 믿지? 너 같은 인간도 못한 쓰레기를!”


“어이, 이봐. 저울을 들고 있는 건 나야. 넌 그냥 내 조건에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럼 이대로 유디를 죽게 할 셈인가?”


이성은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느니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훨씬 편하다. 요슈아는 지금 이칼롯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어떻게?

그대로 그녀를 죽게 놔둘까? 이성적으로 그녀를 포기하고 달아나 군대를 이끌고 올까? 그럴 수는 없다. 유디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작위도, 영지도, 재산도 필요 없었다. 그녀가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그래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다시금 볼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 그것도 이런 비열한 무리에게. 기사로서 살아왔지만 이렇게 치욕스럽게 죽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죽고 싶지 않다. 유디를 구하고 싶다. 요슈아를 죽이고 싶다. 다양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뜸들이게 하는군. 가뜩이나 상처가 쓰라려 죽겠는데. 어이, 그년 데리고 놀 거면 좀 더 화끈하게 하라고.”


요슈아가 지시하자 산적 하나가 유디를 뒤에서부터 거칠게 범하기 시작했다. 그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치욕스런 장면이었다.


“아악! 아으윽...! 아아!”


그녀의 비명 한 마디마디마다 이칼롯의 이성이 무너져 내렸다. 충혈된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동생의 체념한 얼굴을 본 순간 세상이 와르르 부서졌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만! 그만 해!! 제발 그만 하라고!!”


“호오...이제야 결심이 섰나? 빨리 결정했으면 아가씨가 힘들어하지 않아도 됐잖아.”


“...오라버니...”


이칼롯은 처음엔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워낙 작았던 탓도 있지만, 공포와 분노로 귀가 먼 까닭이었다.


“요슈아 폴크. 네게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길 바란다. 약속은 반드시...지켜라!”


“그래, 그럴 거야. 순순히 죽어준다면.”


“오라버니...”


이칼롯은 힘없이 검을 떨어뜨렸다. 땡그랑! 텔슈피드의 맑은 쇳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유디가 믿을 수 없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오라버니이!!”


그 귀를 찢는 날카로운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칼롯은 놀라 그녀에게 눈을 돌렸다. 유디는 산적들이 몸을 더럽히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그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결의로 타올랐다. 그녀가 말했다.


“검을 들어요.”


이칼롯을 포함해 홀 안에 있던 모두가 흠칫 놀랐다. 그녀의 발언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칼롯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검을 줍는다는 건 협상의 결렬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랬다간 여동생이 꼼짝없이 살해당한다.


“유디...넌 살아야 해. 내 몫까지 있는 힘껏...”


“난 검을 들라고 말했다고요!!”


다시 그녀의 패악스러운 고함이 울려 퍼졌다. 이미 기력이 쇠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막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량이었다. 유디는 몸을 떨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


“내...내가 기뻐할 줄 알았나요? 오라버니가 내 대신 죽으면? 나...괜찮으니까 어서 검을 들어요...검을 들고 싸우던지, 아니면 도망가요. 어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인간쓰레기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칼롯은 여전히 망설였다. 그는 여동생의 목숨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걸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도...내가 어떻게 너를 죽게 할 수 있단 말이냐...유디야..제발...”


“나...나는 괜찮아요. 이런 건...이런 건...윽...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것보다 나를 치욕스럽게 하는 게 뭔지 알아요?”


그 순간 홀 안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신기하게도, 다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산적들도, 이칼롯도, 그리고 유디도. 그걸 알기 때문인지 유디의 입가에 덧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말했다.


“나...나 때문에 오라버니가 검을 버렸다는 거예요.”


요슈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를 박찼다. 그는 근처에 있던 산적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그대로 유디의 등에 꽂았다.


“아...!”


“그만, 시시껄렁한 대화는 이제 됐어.”


그녀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녀를 범하고 있던 산적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유디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지만, 관통한 칼이 지지대가 되어 상체가 엉거주춤하게 멈췄다.

이칼롯의 눈동자는 그 모든 광경을 똑똑히 뇌리에 각인시켰다.


“유...디?”


“좀 가지고 놀다 죽일 생각이었는데 명을 재촉하는군, 멍청한 년. 코간, 이칼롯을 처리해라. 그 후엔 네 맘대로 해. 크렘벨에선 쫓지 않겠지만 그 이상은 내 소관이 아니니까.”


“예. 킬킬킬.”


요슈아는 유디의 엉덩이를 걷어차 이칼롯에게 밀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뒷문으로 사라졌다.

이칼롯이 쓰러지는 그녀를 부둥켜안은 사이 양면에서 산적들이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동생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점점 퇴색해가는 눈동자가 보일 뿐이었다.


“아...으아...유디야...”


그의 부름에 유디의 상체가 움찔 반응했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가고, 이윽고 그의 귓가에 멈췄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내뱉은 그녀의 두 마디는 이칼롯의 심장을 불태웠다.


“검을...들어요..”


투욱, 그녀의 고개가 떨어지고, 발치에 놓인 텔슈피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칼롯은 그대로 상체를 숙여 검을 집은 뒤 앞으로 몸을 날렸다. 산적들의 공격은 애꿎은 유디의 시체만 난자했다.

이칼롯은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는 검을 일자로 세우고는 자신을 포위한 60명의 산적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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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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