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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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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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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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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6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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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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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DUMMY

둘은 어린 시절 보았던 아카니스의 기품 있는 태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당한 풍채에 늘 자신감 있게 행동했고, 비록 호위병은 하나뿐이었지만 천군만마를 부리는 듯한 여유가 함께 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어딘가의 귀족이겠거니 생각했을 뿐 그가 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람카디스에게 물어봐도 그저 지방에서 사업하는 사람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 사람 좋은 아저씨가 실은 왕자였고, 지금 와선 국왕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시에 그런 사람과 막역하게 지내던 람카디스도.

그러나 뒤늦은 진실에 황당해할 틈도 없이 둘은 아카니스, 아니 란도스에게서 부정할 수 없는 위화감을 발견했다.


“폐하, 평의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보고드리겠사옵니다.”


“킷킷킷...”


그는 지스카르의 말은 들은 체도 않은 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입을 다물고 입술만을 움직여 내뱉는 그 웃음은 마치 쥐가 우는소리 같았다. 루도는 그가 이렇게 간사하게 웃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웃을 때 완전히 입을 벌려 호방하게 웃는, 그래서 마주한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익살을 가진 남자였다.


“제리온, 뭔가 이상하지 않아? 폐하의 얼굴이...”


제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차 재촉하려 고개를 돌린 루도는 그제야 그와 레미나의 표정이 놀랄 정도로 창백해져 있음을 눈치챘다. 둘은 새하얗게 질린 채 땡볕 아래 서 있는 것처럼 땀을 뻘뻘 흘렸다. 앙다문 입은 말을 자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침묵이 강제된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무슨...”


루도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왕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패밀리어를 바라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재사앙, 보고는 나중에 하시고...킷킷.”


패밀리어는 편전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붙어 이동했다. 왕과의 거리는 꽤 떨어져 있었고, 몸을 숨길 지형도 많아 발각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왕은 발견했다. 지스카르가 들어올 때까지고 딴청만 부리고 있던 그가, 패밀리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손을 들어 패밀리어를 가리킨 순간 일행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킥, 저 날벌레는 대체 어디서 들어온 거지?”


“안트로서!!”


안트로서는 신속하게 반응했다. 그가 명령하자 패밀리어는 즉시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아직 닫히지 않은 편전 문을 쏜살같이 가로질렀다. 문 앞에 서 있던 기사 하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위험해!”


후웅. 다행히도 기사의 검은 헛되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구슬 속 영상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죽박죽이었다. 좁은 건물 안을 날아서 도망치려니 패밀리어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뒤늦게 왕의 명령을 받은 경비병들이 패밀리어를 잡기 위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젠장! 영감, 빨리 도망쳐! 확실히 봤으니까.”


어느새 마법을 푼 제리온이 숨을 씩씩 몰아쉬며 말했다.

패밀리어는 이제 편전 앞을 지나 중앙의 회랑을 날고 있었다. 중간중간 경비병들이 올가미를 가져와 던지긴 했지만 녀석은 재빠르게 피했다. 아무리 건물 안이라고 해도 사람이 제비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위험은 아직 남아있었다. 경비대는 각 출구의 문을 닫아 패밀리어가 도망칠 곳을 원천봉쇄하려 했다. 막 앞에 보이던 문이 닫히자 레미나가 말했다.


“거기서 왼쪽. 계단 위로 올라가요! 2층에 열려 있는 창문이 있을 테니.”


패미리어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녀석을 쫓는 경비병의 고함, 궁녀들의 비명이 구슬 너머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미 궁에 잠입한 ‘제비’의 존재는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었다.


“앗, 저기!!”


2층 복도를 휘젓고 있자니 끝자락에 빼꼼 열린 창문이 보였다. 저것만 통과하면 곧장 외부가 나올 테고, 그 후에는 하늘을 방패삼아 도망치면 되는 일이었다.

뒤에서 병사들의 기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녀석을 잡기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패밀리어는 주저하지 않고 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투웅!

그러나 비로소 다다라야 할 창공은 온데간데없이, 녀석은 갑자기 닫힌 창문에 부딪혀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기에 갑자기 패밀리어의 시야가 바닥을 향했을 땐 다들 어리둥절해했다. 패밀리어가 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는 손바닥으로 강하게 유리를 칠 때의 그것만큼이나 컸다.


“뭐...뭐야?!”


패밀리어는 뇌진탕을 일으켰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일행은 완전히 정지한 녀석의 시야를 보며 망연자실해했다. 분명 창가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문은 패밀리어가 통과하기 직전, 일부러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닫혔다. 대체 누가? 여전히 구슬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버지!”


윈프레드가 다급하게 안트로서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나 패밀리어와 깊숙이 연결된 탓에 그는 기이한 신음만 흘릴 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구슬 너머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끄이...으이으!!”


안트로서가 쥐어짜내듯 일갈을 토해내자 구슬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밀리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작은 새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부상이었다. 녀석은 날갯짓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바닥에 뒹굴었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은 기력이 다한 듯, 천장을 향해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윽?!”


루도는 일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패밀리어의 시야가 위를 향하는 순간, 기이한 가면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든 그 가면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쓰러진 패밀리어를 보며 정말로 웃고 있었다. 억지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듯 미세하게 떨고 있는 그 가면은 차라리 진짜 사람의 목을 보는 게 나을 정도로 음습하고 불쾌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천장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패밀리어를 향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으...저, 저거 뭐야!”


“유령? 아니, 마법?! 가면이 저절로 움직이다니.”


아마 과거의 로샤단이었다면 귀신같은 초자연현상으로 치부하거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행은 얼마 전 알룬도를 만났고, 그에게서 안개송곳니 단원의 신상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때 알룬도는 특히 둘을 조심하라고 했었다. 하나는 9클래스 마법사인 안다바리엘 뷘더, 다른 하나는 늘 기분 나쁜 가면을 쓰고 다니는 남자...


“제스터!”


그의 정체를 확인함과 동시에 구슬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패밀리어를 밟아 터뜨려버린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안트로서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으아아아!!”


“아...아버지!”


안트로서는 바닥에 뻗은 채 경련을 일으켰다. 눈은 초점을 잡지 못했고 코며 귀에서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왜...왜 저래?”


칼잡이들은 ‘패밀리어가 죽었을 때 주인이 받는 충격’에 대해 알 리 없었다. 그것은 자칫 쇼크사를 일으킬 정도로 위험한 데다, 설령 회복된다 하더라도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 정도로 마법사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에레이시아가 응급처치를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구석으로 자리를 비켰다. 루도는 박살 난 구슬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문득 떠올라 제리온에게 물었다.


“왕은 어땠어?”


제리온은 대답하기에 앞서 소매로 이마에 묻은 땀을 훔쳤다. 그는 마법을 행한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평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정신계야...그 메커니즘은 정신계 학파가 분명해. 영감이 말한 대로 정신계 마법이 왕을 구속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데 뭐?”


제리온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말을 얼버무렸다. 레미나가 그를 대신해 말했다.


“정신계뿐만이 아니었어요. 소환계랑 원소계...변화계도...”


당연히 루도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명쾌한 설명을 원했으나 레미나도 확신이 서지 않는지 손가락으로 벽에 알 수 없는 도형만 그려댔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발동한 건 정신계...아직 작용하고 있는 것도 정신계...그리고 발동하지 않은 것은 원소계, 소환계...무엇을 위한?? 소환한다면 무엇을? 이 마법사, 너무 위험해요. 동시에 4개의 마법을 걸다니...하나는 본 목적을 위해, 나머지 셋은 트러블이 생겼을 경우를 위한 대비책? 그렇다면 아마도, 나머지 세 개는 매직트랩(Magic trap)이겠군요.”


여전히 알쏭달쏭한 단어뿐이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왕이 엄청나게 위험한 상태라는 것.


“어쨌든 지금 왕이 조종당하고 있는 게 맞지? 그리고 루루 누님은 아직 살아있는 거고.”


디리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단순명료한 발언이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가장 바라던 발언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모두의 가슴에 한 줄기 불꽃을 심어놓았다.

로샤단 멤버 다섯은, 그때 이미 섬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안트로서는 이틀이 지나도록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아르유와 에레이시아가 밤을 새워가며 간호하긴 했지만 딱히 상태가 호전되진 않았다. 외상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큰 탓이다. 하지만 반대로 더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점은 그나마 안심이었다.

그날 이후로 이틀, 루도 일행은 윈프레드를 찾아갔다. 그는 안트로서의 일로 지쳐 있었지만 일행이 오자 애써 미소 지으며 맞이했다. 그의 눈가에 진 주름이 요 며칠 새 그가 느꼈을 고충을 증명해주었다. 고령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어찌 아들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는 피로를 애써 씻으려는 듯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어서들 오게.”


“안트로서의 상태는 어때요? 아직도 의식이 없어요?”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이젠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자네들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마음 쓰지 말게. 이런 일로 나자빠질 분이 아니니까.”


간단한 안부가 오고 가고, 일행은 아르유가 내온 다과를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짧고도 긴 정적이 흐르고, 윈프레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닌가? 말해보게.”


“그게...”


서로 마주보며 눈치를 살펴보다 결국 말을 꺼낼 사람은 두 명으로 좁혀졌다. 루도와 이칼롯. 루도는 이곳에 오게 된 원인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이칼롯은 로샤단의 대표로서 모두가 합의한 사안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었다. 루도가 안 하면 이칼롯이 할 것이고, 이칼롯이 입을 다물면 루도가 대신 말할 것이다. 둘은 짧은 시간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결과 루도가 모두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섬을 떠나겠습니다. 떠나서, 루루 아줌마를 구하고 왕을 원래대로 돌려놓겠어요.”


윈프레드는 놀라지 않았다. 그도 일행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왕에게 걸린 마법과 마지막에 보였던 제스터의 가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일에는 안개송곳니가 관여하고 있었다. 때문에 놈들의 계획을 간파한 이상 서둘러 수도로 돌아가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었다. 일행이 에메랄드 섬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안개송곳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변변한 전투도 못해보고 도망쳐 올 정도로 두 집단의 전력차이는 확연하다. 그 차이는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터, 수도로 가본들 그들을 막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자네들이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개죽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건 안 해보면 모르는 거죠. 게다가 루루 아줌마의 목숨이 위험하다고요. 윈프레드, 당신의 딸이잖아요?”


루도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날을 새워가며 토론했고, 또 더 이상 하자가 없을 정도의 결론을 도출해낸 까닭이다. 그러나 윈프레드는 아직 회의적이었다.


“루루는 목숨을 걸어가며 자네들을 이리로 보냈네. 그런데 제 발로 나가겠다는 건가?”


“그러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그녀를 구할 차례입니다.”


마리네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일행에게 데루루피아는 단순한 은인 이상의 존재였다. 로샤단 길드원들이 모두 죽은 지금 그녀는 같은 추억을 지닌 친구이자, 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안 될 거 같다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루도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여기 와서 입은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허락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에요. 이미 저희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루루 아줌마를 구하러 갈 거예요.”


“그리고 안개송곳니 놈들한테 한 방 먹이러.”


제리온이 추가로 덧붙이며 말했다. 윈프레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토록 결의에 차있는데, 자신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군. 그런데 말이야...”


그러나 그때, 방문을 걷어차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 돼, 안 된다 이놈들!!”


언제 깨어났는지 안트로서가 콧바람을 씩씩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그는 몇 걸음도 못 가 바닥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는 부축하려는 아르유를 뿌리치며 말했다.


“루도 클로람! 넌 아직 펠아람의 저주가 아니라고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떠나겠다는 거냐? 기어코 대륙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거냐?!”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까지 혼수상태였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나 루도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안트로서. 하지만 그 얘기라면, 역시 전 가야만 해요.”


“뭐, 뭐라고?”


“나타니엘이 만든 마법이 있어요. 그걸 찾아서, 내 안에 있는 펠아람과 대화할 거예요. 녀석이 미쳤는지, 아니면 정상인지.”


“...케리아돌이 그렇게 말했느냐?”


안트로서는 힘에 부치는지 연방 기침을 토했다. 그때마다 그는 심하게 가래를 끓으며 괴로워했다. 사실 그는 제대로 일어서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루도를 붙잡는 그의 행동은 집요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건 대답이 되지 않아! 그래서, 네놈이 ‘저주’면 어쩔 건데? 나타니엘의 마법은 강제각성이라는 부차효과도 가지고 있다. 네 녀석이 저주라면, 그 자리에서 최악의 악마가 탄생하는 거야!”


“보내주어라.”


하지만 그의 쩌렁쩌렁한 고함은 신기하게도 현관에서 들려온 점잖은 한 마디에 순식간에 일축되고 말았다. 일행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방문객을 보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외출용 포플린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굽 높은 크리스탈 구두를 신은 채, 한 손에는 양산을 도도하게 들고 있었다.


“케, 케리아돌?!”


-이야, 이거 재회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희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온 모양이군요.


이번에는 메디치가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들이밀며 말했다. 그는 전과 다름없는 - 생텀가드니 당연하겠지만 - 차림이었으나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받아서인지 몸에서 광이 번쩍번쩍 났다.

그들이 나타나자 시끌벅적하던 거실 안은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두 ‘전설’을 보고 촐싹거릴 정신병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에레이시아와 아르유는 처음 보는 드래곤의 기백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안트로서는 잠시 말을 멈춘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청객 때문인지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표했다.


“케리아돌...타이달루크 메디치...직접 찾아갔을 때는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만.”


“흐응, 그런 개인적인 투정을 말할 때이더냐? 난 지금 루도 클로람을 두둔하려 여기까지 행차한 것이니라.”


그와 케리아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왠지 그 기류 안에 들어갔다간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쪽 구석으로 좍 갈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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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4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9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1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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