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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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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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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DUMMY

그러나 제리온의 입장에서 보자면 란돌은 그저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특히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서글서글한 태도는 제스터의 그것과 사뭇 닮아있었다. 혹시 후드를 입히고 광대가면을 박아 넣으면 제스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진지한 망상과 함께 그가 말했다.


“뭐 좀 핥는다고 나오는 거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쇼. 차라리 레미나 공주한테 가보든가.”


“으음, 정말 아무것도 안 나옵니까? 사실, 신의 아이에 대해 좀 자문을 구할까 했습니다만.”


술병을 기울이던 그의 손목이 우뚝 멈춰 섰다. 제리온뿐 아니라 루도도 잔뜩 경계심 섞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급변한 공기에 란돌은 난처하다는 듯이 턱을 긁적였다.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줄이야, 확실히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었다.

그는 들고 있던 책을 제리온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저는 미스터리에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고위귀족들이 알면서도 숨기는 몇몇 기밀에 대해서 말이죠. 주위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말리곤 하지만, 뭐 나쁠 거 없지 않습니까? 인간이라면 호기심을 갖는 게 당연한 법인데.”


“뭔 미스터리.”


“많지요. 신의 아이라든지, 아루의 수정이라든지, 나타니엘과 타이달루크, 혹은 세르딕 로샤단이나 람카디스 클로람이라든지.”


“어...잠깐.”


제리온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신의 아이나 이단자에 관한 정보가 기밀로서 취급되는 이유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람카디스가 이 자리에서 언급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 있단 말인가?


“람 대장이 거기서 왜 나오는데?”


“에...람카디스 클로람에 대해선 당신들이 더 잘 아는 것 아닙니까? 그가 남긴 수많은 전설들 말입니다.”


이제 제리온과 루도는 의자를 끌어와 란돌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루도는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억지로 앉히고서 물었다.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었다.


“계속해봐요. 람카디스 클로람이 뭘 어쨌는지.”


“...어째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네요. 자문을 구하러 온 건 제 쪽인데.”


“알았으니까 뜸 좀 그만 들이고!”


람카디스의 과거에 대해서 물으면 루도는 언제나 꽁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무리 젊은 시절에 대해 물어봐도 람카디스 본인이 웃으며 말을 얼버무린 탓이다. 그가 아는 람카디스는 레인저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기사단 시절의 람카디스는? 신의 아이와 연관된 람카디스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죽었고, 유일한 유품인 일지도 불에 타버린 까닭이다.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정보라면 미끼라도 덥석 물 수밖에 없는 게 일행의 현실이었다.

태양이 점차 서쪽으로 향해감에 따라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도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마침 빛이 제리온이 가져온 와인병 위로 부서졌는데, 연붉은 와인 위로 황금빛 햇살이 어우러지는 광경은 차라리 영롱하기까지 했다. 란돌은 술병 안의 찰랑거림을 잠시 응시하다가 말했다.


“뭐가 그리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람카디스 클로람은 그 자체로 왕실기사단의 전설이 된 인물입니다. 평민신분으로 국왕알현 하루 만에 특채 선발되었고, 일주일 만에 모든 기사단원과의 대련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죠. '옭아매는 밧줄의 샤르커드'라는 건 그때 붙여진 별명입니다.”


“아, 그건 나도 들어본 적 있어요. 근데 그게 무슨 뜻인데요?”


“샤르커드식 검술은 아실 테고, 그 사람과 붙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방어만 하다 쓰러지는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여하튼 평민출신의, 그것도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 기사단장을 쓰러뜨렸으니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죠. 뭐, 얼마 뒤 공채로 들어온 신출내기 기사에게 패배하긴 하지만요. 아, 그 사람이 지금 천정기사단 단장으로 있는 가이잘모 아델하트경입니다.”


“잘 나가는 인간이었네, 람 대장. 그래서 그다음엔?”


“그다음은 더 기절초풍이죠. 차기 단장후보니 뭐니 하며 출셋길이 보장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르딕이라는 늙은 레인저를 따라가겠다며 기사단 탈퇴서를 제출했죠. 그 소식을 듣고 란도스 폐하가 잠옷 바람으로 말리러 왔던 일화는 유명하지요. 하하하, 제가 봐도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인물입니다.”


루도는 턱을 괸 채 그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기사직을 버린 이유는 본격적으로 신의 아이를 찾아 나서기 위함일 테고, 여기에는 세르딕 로샤단이라는 인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원체 정의감이 불타는 사람이니 발 벗고 세르딕을 따라나선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는 것 자체가 의문으로 다가왔다.

마침 제리온이 란돌의 이야기에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 거 대단한 무용담이긴 한데, 딱히 미스터리라고 할 건 없잖아? 뛰어난 기사 정도야 시대를 불문하고 있었던 거고.”


란돌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물론입니다. 전설이란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출신 때문입니다.”


“출신? 평민이라며.”


“그게 좀 애매합니다. 평민이라고 한 건 귀족 중에 그러한 성을 쓰는 가문이 없기 때문에 그리 추측한 것뿐이고, 엄밀히 말하면 ‘클로람’이라는 성은 리크나이츠 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민 중에는 성이 없는 사람도 있고, 구색을 갖추려 적당히 만들어 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란돌이 말하는 저의가 적어도 그런 일반적인 사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클로람이라는 성은 없다. 루도는 생전 람카디스의 행적에 대해 회고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그에게 형제나 부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경이적인 업적 때문에 그의 뒤를 캐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지요. 하지만 적어도 란테리크 선왕을 알현하기 전까지 람카디스라는 이름이 세상에 언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뭐 여기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정말 쥐 죽은 듯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스트리카나 텔아단 출신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죠.”


“아스트리카? 설마.”


“하하, 하긴 그렇죠. 아차, 퀴넨 공화국도 있군요. 여하튼 그쪽 나라들을 찾아보면 클로람이라는 성이 나올지도 모르죠. 그가 기사단을 떠난 시점에서 이러한 논의들은 전부 흐지부지되었지만요.”


란돌이 알고 있는 ‘람카디스 클로람’은 여기까지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열람실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책더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곰팡내가 사람을 이지적으로 만드는 것인지, 루도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이 말이 없자 오히려 란돌 쪽에서 겸연쩍게 입을 열었다.


“흠!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오히려 제가 더 호기심이 돋는군요. 레인저 시절의 그는 어땠습니까?”


“...별 거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레인저였죠.”


“그런가요? 그는 신의 아이를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당신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군요.”


란돌의 혼잣말은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가슴 속을 후벼 팠다. 무언가 복잡한 심경이 되어 제리온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이제 와 죽은 자를 추억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즈음 멀리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퍼뜩 놀란 란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직업이 직업인지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거, 어째 오늘은 저 혼자만 떠는 것 같군요.”


루도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나름 비밀조직인 지라...중요한 정보는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 크로이체르 경.”


“에이 그런 소리 마십시오. 제가 이래봬도 기사단 내에서 꽤 서열이 높은 편입니다. 위릭 단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의 아이나 류이너스 교단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협력해주시는 것으로 알고, 나중에 다시 찾아뵙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클로람씨. 아, 멜피드씨도.”


제리온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손가락을 까딱하여 최소한의 반응은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란돌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었다. 문을 나서기 전 그는 막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한 가지 잊은 게 있군요. 당신들, 금서를 조사하는 모양인데, 금서관리고는 모두 두 곳입니다.”


“에...뭐요?”


“여기는 일반 귀족들을 위한 공간이고, 왕족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니, 금서관리고가 두 곳이라니? 뒤이어 제리온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 말은 즉, 여기는 적당히 구실 좋게 만든 책만 있을 뿐이고, 진짜배기는 전부 왕족전용 금서관리고에 묵혀놓았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더라니, 지금까지 헛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분에 못 이겨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지, 젠장! 빌어먹을 국왕!”


“아니, 보통 금서관리고라면 여길 말하는 거니까 폐하를 욕하셔본들...그리고 지금 그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데요....뭐, 상관없나? 여튼, 부탁합니다.”


란돌을 꾸벅 목례를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나갔다. 그가 말한 ‘부탁’이라는 게 왕족전용 금서관리고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도 슬쩍 끼워달라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업었다. 오히려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다 보니 친근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기사보다는 학자가 어울리는 사람이랄까?

제리온이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떤 거 같냐?”


“흐음, 호기심 대장이네. 뭐, 왕실기사단이라니 굳이 의심할 건 없지 않을까?”


“류이너스 교단에도 첩자가 있는 마당이야. 거리는 확실히 둬야지.”


“그야 당연한 거고.”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쿠키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심란한 마음을 숨기기 위한 모양새일 뿐, 책장을 넘겨본들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결국 제리온은 짜증 섞인 고함과 함께 책을 덮어버렸다. 또 다른 금서관리고의 존재가 확인된 지금, 괜히 시간낭비 해봐야 무엇하냐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그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대뜸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루도, 아까 그 한량이 했던 말 말인데...람 대장은 신의 아이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었을까.”


“글쎄. 일지가 타버렸으니 알 방법이 있나. 뭐 에메랄드 섬까지 간 걸 보면, 성언전쟁이나 에스터페른의 아이 정도는 알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말이야...람 대장은 최소한 너랑 카이안의 정체까진 알고 있었다는 건데...혹시 베릴의 아이나 에스터페른의 아이의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겠냐?”


“음...”


루도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람카디스의 과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굳이 현재 일행이 처한 문제와 결부시키고 싶진 않았다. 이제 와 가설을 세워본들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닌가.

그가 책갈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거야 어찌 됐든 좋은 거 아닐까? 뭐 지금 우리가 다른 신의 아이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은 아니니까.”


루도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제리온의 태도는 진지했다. 그는 술잔 끝에 맺힌 와인 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어쩌면 말이다, 나머지 신의 아이가 의외로 중요한 변수가 될지도 몰라.”


“음...?”


“뭐 그렇다는 거다. 지금이야 내 코가 석 자니 그냥 오지랖에 불과하겠지만.”


그 말을 끝으로 제리온은 소파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생각도 정리할 겸, 술기운을 빌어 낮잠이나 청하려는 것이었다. 루도는 금세 코를 고는 그를 보며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그를 따라 잠이나 잘까 했지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한낮의 광휘가 그를 붙들었다. 이리 쾌청한 날에 몇 시간째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자니 온몸에 녹이 스는 기분이었다. 결국 책을 읽으려 해도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아, 루도는 잠든 제리온을 뒤로 하고 잠시 산책을 나섰다.



****


늦가을의 거리는 쾌청한 하늘이 무색하게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전쟁의 영향은 이미 수도에까지 미쳐, 상점가의 풍경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한눈에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정적이었다. 긴장된 얼굴로 물건을 매매하는 상인, 어깨를 오므린 채 부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처녀, 어디서 소식을 주워들었는지 일찌감치 피난을 준비하는 귀족까지.

그나마 여전히 북적대는 인파가 어느 정도의 활기를 남겨 놓았지만, 이도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마주한 앞사람의 거짓미소를 보며 괜찮을 거라고, 여기까지 적군이 들이닥치진 않을 거라고 자위할 뿐.

그러나 이러한 경직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미르네는 경쾌한 걸음으로 거리를 가로질렀다. 늘씬한 다리가 성큼성큼 교차하더니 상점가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대장간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장장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에스터크를 건네며 말했다.


“주문한 대로 완성했소. 길이 60cm짜리 강철 에스터크. 텔아단에서 직접 공수해온 형틀로 만든 거니 문제는 없겠지만, 한 번 확인해 보시구려.”


유미르네는 검을 받아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금방 제작을 마친 거라 손잡이 부분의 그립감이 거슬렸지만, 그럭저럭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생긋 미소 짓고는 금화가 든 돈주머니를 대장장이에게 건넸다.


“여기 약속한 대금. 그럼 수고하셔요~.”


능숙하게 에스터크를 칼집에 집어넣고서, 유미르네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날 전투 이후로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녀는 원래의 무장을 되찾았다. 블레이드 댄서에게 던진 에스터크가 끝끝내 발견되지 않은 데다, 레미나가 마련해준 세검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결국 자비를 털어 새 무기를 주문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네거티브 요소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 유미르네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작전이 성공하여 레미나로부터 두둑한 보수도 받았고, 덩달아 영웅으로 치켜세워진 것도 썩 만족스러웠다. 로샤단을 만난 이래로 현재까지는, 모든 게 탄탄대로라고 표현할 만했다. 돈과 명예, 두 가지를 동시에 손에 넣는 일은 정말 드무니까.

물론 제3자에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유미르네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외모였다. 그녀의 외모와 굴곡 있는 몸매, 그리고 흑색 위주의 독특한 차림새는 어딜 가든 시선을 모았다. 가슴이 전투에 방해되지 않게 일부러 꽉 달라붙게 디자인한 그녀의 블라우스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남자들의 본능을 자극했다.

그녀가 지나갈 때 남자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눈을 돌렸다. 남자들이 눈을 돌리면 여자와 아이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덩달아 그것을 따라갔다. 혼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카이안이 그녀를 발견한 것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그리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아, 안녕하세요.”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카이안은 일부러 다가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미르네는 깍듯이 허리를 굽히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몇 초 뒤 막 생각났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온실 도련님이잖아? 어디 가는 길?”


“기숙사에 먹을 게 다 떨어져서 잠깐...저기, 그...까마귀님은 어쩐 일로?”


카이안은 입속에서 ‘까마귀’라는 단어를 한참 겉돌린 뒤에야 말했다. 그녀의 본명이 유미르네라는 것은 진즉에 마리네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 쪽에서 스스로를 까마귀라 소개한 만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어가 단어인지라 말을 꺼낸 카이안 쪽이 더 무안해졌다. 반면 유미르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접때 칼을 잊어버려서 새로 사러 왔지 뭐. 그건 그렇고, 직접 먹을 걸 사러 나오다니, 꽤나 부지런하네.”


“예? 예에 뭐..이런 건 익숙하니까요.”


“오호호, 보통 그런 건 메이드가 처리해주지 않나? 그 왜, 아쟉스의 처제도 메이드라며.”


유미르네의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비아냥이 묻어났다. 카이안은 그녀의 편견어린 시선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애써 의연하게 답했다.


“귀족들의 전속메이드야 그런 일도 하는 모양이지만, 아카데미 쪽은 달라요. 맡은 업무 외에는 교수들도 함부로 심부름을 못 시키죠. 그분들도 어엿한 고용인이니까요.”


“그으래? 의외네. 밤에는 몸이라도 파는 줄 알았는데.”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유미르네는 얼굴을 붉히는 카이안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카이안은 점점 더 그녀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하필 가는 방향이 같은 지라 싫어도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제리온 같은 사람이었다면 당장에 각자 갈 길 갔겠지만, 이타적인 카이안에게 그런 무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1m정도 거리를 벌린 채로 불편한 동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건 카이안만의 입장이고, 유미르네는 그의 존재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북적거리던 시장을 지나자 한적한 주택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키시아의 거리는 오래된 대도시가 으레 그렇듯 무허가 건물이 군데군데 솟아 난잡한 느낌을 자아냈다. 중앙의 도로만 벗어나도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골목길은 차라리 미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예전 카이안이 알룬도를 몰래 구해낸 것도 이러한 복잡한 지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골목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전술한 것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 접근성이 나쁘다는 점은 각종 질 나쁜 무리가 모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세상이 뒤숭숭한 데다 왕실기사단 출정으로 인한 치안악화도 겹쳐 라키시아의 음지는 알게 모르게 폭력배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꺄앗...제, 제발 보내주세요...”


아련히 들려온 소녀의 비명이 카이안의 발목을 붙잡았다. 카이안은 즉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떨어진 골목 어귀에서 세 명의 남자가 한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제법 큰 곡도를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어설픈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소녀를 찌를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카이안은 즉각 유미르네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까마귀님. 저기 불량배가 있나 봐요. 어서 가서 도와주죠.”


그러자 유미르네는 고개를 돌리는 것도 귀찮은 듯, 곁눈질로 힐끔 골목을 흘기고서 말했다.


“흐응~. 그런 모양이네. 수도도 생각보다 별거 없구나.”


카이안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쩜 이리 심드렁할 수 있단 말인가! 팔짱을 낀 채 표표히 걸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불량배들은 소녀의 입을 틀어막은 채 신나게 옷을 찢는 중이었다.

카이안은 참다못해 유미르네의 손목을 낚아챘다.


“기다려요! 당신, 저걸 보고도 그냥 갈 생각이에요?”


그녀가 짜증스럽게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뭐 문제라도?”


“무슨...당연히 저 여자를 도와줘야 하잖아요!”


“흐아? 내가 왜? 난 됐네요. 돈 안 되는 일에 휘말리는 건 질색이야.”


“그럴 수가...당신은 검객이잖아요!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겠다는 거예요?”


“어머나, 이제 보니 알량한 정의감에 심취한 도련님이었네. 이봐, 칼만 들었다고 다 정규군일 거라 착각하진 말아줘. 내가 저 여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이유 따위 어디에도 없어. 정 뭐하면 네가 가면 될 거 아니야? 온실 도련님.”


순간 카이안은 욕설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화를 억누르느라 거머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설마 이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교태 어린 눈빛도 이제는 가증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 붙잡은 손을 놓았다.


“믿을 수가 없네요. 당신, 정말 루도의 친구 맞아요?”


“.....”


유미르네는 쌩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분노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잠깐뿐으로, 그녀는 이내 본래의 평정을 되찾았다.


“정정해야겠네. 아주아주 불쾌한 도련님이야.”


그녀는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어쩔 수 없이 싫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카이안은 불량배들에게 밀려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뭐야 이 새끼는?!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냐?”


“야, 너 이게 뭔지 몰라? 칼이야 칼! 한번 썰려봐야 느낌이 올 거 같지?”


“그, 그쯤하고 이 여자 분을 보내주세요! 돈이라면 드릴 테니까...”


“돈? 도오온? 넌 지금 내가 바지 벗고 있는 게 그딴 푼돈 때문인 거 같냐!!”


불량배 중 하나가 카이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카이안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느꼈을 땐 이미 땅바닥에 시선이 맞닿아 있었다.


“아욱...으...?”


코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돌린 그는, 누군가가 발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후속타는 날아오지 않았다. 무언가 긴장된 공기에 눈을 뜬 그는 그제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까, 까마귀씨...”


하지만 차라리 불량배인 쪽이 더 나았을 정도로 유미르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마치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그 싸늘함에 카이안은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유미르네는 닳아 해진 손수건을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좋아 보이네. 설마 그거 한 대 맞았다고 못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으윽...그 정도로 나약하진 않다고요.”


“뭐, 엉엉 울지 않은 건 칭찬해줄게.”


카이안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수건으로 코를 훔쳤다. 그녀의 손수건에서는 진한 피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자신의 피가 묻은 탓인지, 아니면 이미 냄새가 배어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카이안은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적당히 지혈을 끝마쳤다.

한편 불량배들은 유미르네의 등장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용모에 놀라고, 그녀가 찬 두 자루의 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고 해도,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이, 아가씨는 또 뭐야? 경비대는 아닌 것 같은데, 볼일 없으면 그냥 지나가지?”


“...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온실 도련님.”


그녀는 짓궂게 턱을 까딱이며 카이안을 흘겨보았다. 카이안은 놀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발끈하여 답했다.


“뭐예요 정말. 갈 거면 빨리 꺼지라고요. 나도 당신 같은 사람 도움받긴 싫으니까.”


“아하하, 뭐 좋아, 이번에는 네 투정에 어울려줄게. 돈은 안 되지만, 마침 새 무기가 어떤지 시험하고 싶은 참이었거든.”


카이안은 처음에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에 가는 게 보이자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그는 경악하여 그녀를 말리려 손을 뻗었다.


“자, 잠깐만! 당신 지금 무슨...”


그러나 카이안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마주친 그녀의 눈빛이 조금 전 농담을 건네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방해했다간 그 칼끝이 자신에게 향할 것만 같아 그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뒤이어 그녀의 망토가 펄럭였고, 새하얀 궤적이 호를 그리며 지나갔다. 가까이 있던 남자의 목에서 피가 터져 나와 카이안의 뺨을 적셨다. 카이안은 피의 무게에 짓눌린 듯 스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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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61 26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49 23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67 24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79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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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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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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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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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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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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