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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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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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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DUMMY

디리터의 발언은 명백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방금 전과 완벽히 대조되는 그의 태도에 기사들의 표정이 금세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여기까지 왔으니 언제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혈질인 기사 하나가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뒤에 있던 이칼롯이 낮지만 또렷한 어조로 그를 협박했다.


“뽑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오.”


그 말에 기사의 손이 못에 박힌 것 마냥 우뚝 멈춰 섰다. 그도 자신의 발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규율상 사심에 휩싸여 인명을 살상한 병사는 최소 영창 및 최고 사형까지 처해질 정도의 중형이 내려진다. 기사로서의 직위가 해제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이칼롯은 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물러나라고 그를 타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로샤단 쪽은? 일행의 행동명분은 명료했다. 길드가 모욕당한 시점에서 그들은 전술한 모든 처벌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너 이 자식...”


불편한 공기. 그러나 이제 와서는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감각이기도 했다. 디리터는 기사들의 손놀림을 예의주시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검을 뽑으려는 조짐이 보인다면 즉각 턱주가리를 날려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두 진영 사이에 형성된 대립구도는 기사단 단장인 케이달이 나타나며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는 막 싸움이 일어날 것 같다는 정원사의 보고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참이었다.


“그만! 지금 뭣들 하는 짓인가!”


“다...단장님...”


그의 호통에 기사들은 즉각 움츠러들었다. 케이달은 디리터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뒤, 보란 듯이 양 진영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는 즉각 기사들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대체 뭐하는 족속들이냐! 근신처분이 사라진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싸움질이란 말이냐. 기사라는 이름이 아깝구나.”


“단장님...그게 사실...”


“그래. 너희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더군. 뭔가 변명할 거리가 있으면 지금 하도록 해라. 1분 주겠다.”


반박할 염치가 있을 리 없었다. 기사들은 똥 씹은 낯빛이 되어 푹 고개를 숙였다. 그저 가볍게 장난이나 치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져 버렸으니 그들로서도 황당한 노릇이었다.

한편 이칼롯은 늦게나마 케이달이 와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칼부림은 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 디리터는 여전히 마뜩잖은 얼굴이긴 했지만.

케이달은 실망했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만. 꼴도 보기 싫다. 다들 사흘간 정직이다. 그때까지 기사단 본관에 기웃거리는 녀석이 있으면 내 가만 안 둘 줄 알아라.”


케이달은 소동을 피운 기사들을 단죄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한 기사가 그의 결정에 발끈하고 나섰다. 조금 전 람카디스를 모욕했던 그 기사였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한 걸음 내딛자 케이달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뭐냐? 거니슨.”


“단장님, 그건 좀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말다툼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거 가지고 정직이라니요.”


“뭐가 어쩌고 어째?”


“솔직히 조금 섭섭합니다. 전후사정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저희만 매도하시다니요. 물론 저희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만...”


케이달은 고함을 치려던 것을 꿀꺽 삼켜 참았다. 그는 곧 모난 심보를 가진 게 비단 거니슨 한 명만은 아님을 알아차렸다. 기사들은 거니슨만큼은 아니지만 각각 나름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입을 비죽이 내민 채 알 수 없는 욕을 되뇌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삐딱하게 짝다리로 선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아마 기사들의 보기엔 케이달이 로샤단에 넘어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것처럼 여겨진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는 최근 며칠간 이칼롯과 붙어 다니다시피 했고, 틈틈이 루도나 제리온을 찾아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그가 로샤단을 특별히 아끼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맺어진 람카디스와의 인연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개 기사들이 그의 과거를 알 리가 없으니, 단장이 갑자기 나타난 뜨내기들에게 홀려 정도(正道)를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거니슨이 뜻을 굽히지 않자 다른 기사들도 하나 둘 그에게 동조하고 나섰다.


“단장님, 저희도 거니슨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자들이 훌륭한 무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이 정도로 추켜세울 만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냥 어쩌다 괴물 한둘 잡은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근위대의 지원을 받은 거고. 말이 나와서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희 기사단 중 누구라도 그 정도 무공은 세웠을 겁니다.”


케이달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말하자면 실력도 없는 놈들이 영웅대접 받고 있으니 아니꼽다는 소리였다. 자못 심각한 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사들의 이런 유치한 태도가 오히려 사태해결의 돌파구로 다가왔다. 무공 얘기가 나오자 케이달은 대뜸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결국 로샤단이 거품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는 말이로군. 거니슨, 내 말이 틀렸나?”


“그야...뭐...”


“좋아. 몸으로 부딪혀보는 것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지. 그럼 지금부터 로샤단과 검술대련을 해보도록 하자.”


잠자코 관망하던 일행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잘 나가다 갑자기 대련이라니, 오후 일과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일행은 굳이 케이달의 독단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마침 이쪽도 몸이 불끈 달아오른 상황이라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또한 디리터로서는 건방진 기사들에게 합법적인 구타를 행할 기회를 얻은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도 없었다.


“그렇게 되었는데, 자네들 잠깐 시간 좀 내어주면 안 되겠나?”


“예 뭐, 괜찮습니다.”


일행은 케이달의 안내를 받아 본관 뒤뜰에 있는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기사단 연병장이라고 딱히 고풍스럽다든지 우아한 것은 아니었다. 군인들이 사는 곳이 으레 그렇듯, 모래 깔린 땅바닥 위로 병장기며 화살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기사들은 그것들을 대충 치워 가로세로 5m²의 공터를 만들었다.

공터 정중앙에 선 케이달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3명의 레인저가, 다른 한쪽에는 16명의 기사가 도열한 요상한 구도가 완성되었다.


“대련방식은 다들 알고 있겠지? 얼굴이랑 목은 공격하지 말고, 가급적 보호장구를 골라 때리도록. 목검이라도 잘못하면 뼈 부러지니까.”


케이달은 연습용 목검을 각각의 진영에 나누어주었다. 디리터는 받은 목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그립감을 확인해보았다. 검은 박달나무를 깎아 롱소드 형태로 만든 것인데, 강도가 제법 튼튼하여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살상무기가 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케이달의 말마따나 얇은 브레스트플레이트를 착용했기 때문에 적어도 대련 중에 불상사가 일어날 염려는 없어 보였다.

기사들은 대련의 열기에 한껏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엉거주춤하게 선 일행을 얕잡아보는 한편, 한데 모여 누가 먼저 나갈지를 고르느라 분주했다. 반면 로샤단 쪽은 처음부터 나갈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마리네는 브레스트플레이트를 착용하고 대련장 중앙으로 나섰다. 익숙지 않은 판금갑옷에 처음에는 거동이 불편했으나, 이내 적응이 끝나자 관절을 움직이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마리네가 선봉으로 나서자 기사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조소했다.


“뭐야, 시동은 흥미 없는데.”


그들이 보기에 마리네는 소심한 10대 소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나 그는 곱상한 외모에 비교적 가냘픈 체구를 한 만큼 우락부락한 기사들이 얕잡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곧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린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그 기사는 마리네와 눈이 마주치자 의기양양하게 코웃음을 쳤다. 케이달은 이제 무례함을 지적해주기도 지쳤는지 연방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사샤 그랜트, 왕실기사단 서열 49위. 잘 부탁한다.”


기사가 목검을 일자로 세우며 말했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직급을 밝히는 게 기사들의 관례였다. 마리네도 이를 알아채고는 서둘러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아...마리네 캄블러, 로샤단의 음...회계 담당입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뭐어~? 회계? 푸하하!”


회계라는 단어에 기사들 쪽에서 폭소가 터졌다. 오로지 전투기술만 갈고닦는 그들로서는 여러 행정업무를 병행하는 로샤단의 편재가 가소롭게 보인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비전문적인 무리일수록 오합지졸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조롱은 그런 점을 고려해도 확실히 지나친 면이 있었다. 회계라는 말에도 이리 과한 반응이니, 요리 및 침낭정리 담당인 루도가 이 자리에 불참한 것은 실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리네 역시 빈정이 상했지만 별말 없이 자세를 잡았다. 이 자리는 허세로 승부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기사들의 비웃음도 잠시라는 생각에 그는 묘한 희열까지 느꼈다.

그러나 사샤라는 이름의 기사는 마리네의 등 뒤로 피어오르는 투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끝까지 자만심에 사로잡힌 채 두서없는 종베기로 공격해 들어왔다. 자세가 크게 벌어진 그의 일격은 두어 번 눈을 깜박인 뒤에 대응해도 늦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퍼억.


“헉...!”


사샤는 허점을 파고든 마리네에게 옆구리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장구를 착용했다곤 해도 그 충격이 완전히 흡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는 한참 동안 그자세로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구경하던 기사들이 입을 딱 벌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음, 슬래쉬(Slash)! 실전이었으면 즉사할 정도의 일격이었다.”


케이달이 떠듬거리며 마리네의 승리를 알렸다. 그도 마리네가 이 정도로 잘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다소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기사단 진영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마리네가 의도한 대로, 그들의 비아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샤가 옆구리를 부여 쥐며 돌아오자 한 기사가 그를 다그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사샤. 왕실기사단의 이름이 부끄럽다.”


“그게...그...조금 방심했을 뿐입니다. 다시 싸운다면 이렇게는...”


“..그렇지? 아무리 말단이지만 네가 이렇게 쉽게 당할 리 없지.”


그들의 한심한 대화는 일행의 귀에 그대로 전해졌다. 마리네는 웃지도, 화내지도 못하는 요상한 얼굴이 되어 황급히 헛기침을 날렸다. 어쩜 저리도 천진(?)한지. 이게 실전이었다면 그들은 벌써 시체 한 구를 치웠을 텐데 말이다.

일단 정신승리에 들어가자 기사들은 다시금 자신만만해졌다. 이어 유독 키가 큰 기사 하나가 목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섰다.


“빅토르 로젠하임, 왕실기사단 서열 46위. 다음은 누구냐?”


빅토르가 너무 대놓고 디리터를 주시하며 말했기 때문에 디리터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왜?

케이달도 곧 그의 저의를 알아채고는 말했다.


“마리네, 한 판 더 가능하겠냐?”


“예? 뭐, 상관없습니다.”


“좋아. 빅토르, 네 상대는 마리네 캄블러다. 있는 힘껏 싸우도록.”


그러자 빅토르는 미간을 한군데로 모으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미 한 번 대련을 거친 자와 겨룬다는 것은 체력이 빠진 적을 상대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공평성을 중시하는 기사들에겐 모욕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단장님, 어찌 한 번 대련을 거친 자를 상대로...”


그러나 케이달의 뜻은 명확했다.


“허어? 일합(一合)만에 승부가 난 걸 보고도 체력 운운하는 게냐? 남 걱정할 시간 있으면 자세나 한 번 더 가다듬어라. 내 보기에 넌 아직도 한참 멀었으니까.”


단장의 일침에 빅토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마리네를 쏘아보았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눈을 부라리자 마리네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숫기와 검술실력은 전해 별개의 문제였다. 호기롭게 달려든 빅토르 역시 마리네를 당해내지 못하고 2합 만에 슬래쉬를 당했다. 빅토르까지 패배하자 기사들은 마리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뒤로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련을 신청했다.

그렇게 마리네는 장장 일곱 명을 상대하고 나서야 어깨를 맞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실력이 모자랐다기보다는 연이은 대련으로 체력이 소모된 탓이 더 컸다.


“으윽...대련 감사합니다.”


마리네는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어깨 통증으로 오만상을 찌푸린 그를 디리터는 머리를 쓰다듬어 위로해주었다. 마리네도 멋쩍게 콧잔등을 긁적여 만족감을 표시했다.

대련, 그러니까 왕실기사단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겠다는 당초의 목표는 마리네 선에서 대부분 충족되었다. 혼자서 일곱 명을 두들겨대는 와중에 분노도 많이 사그라졌고, 나중에는 슬슬 져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측은지심마저 들 정도였다. 본연의 목표를 달성한 만큼 디리터와 이칼롯은 굳이 대련에 나설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은 적당한 선에서 경합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런데 유독 한 기사가 아직도 날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다음 나와!”


그는 거니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였다. 디리터는 그가 람카디스를 모욕하고 케이달에게 하극상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악인이라기보다는 너무 다혈질이라 성미를 이기지 못해 사고를 저지르는 부류다. 그리고 이런 부류일수록 단순하게 다뤄야 말이 통한다는 것을 디리터는 잘 알고 있었다.


“꼭 더 해야겠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하, 이제 와 도망치는 거냐? 레인저는 자존심도 없나?”


“뭐 그건 아니고...그럼 장구 착용하십쇼.”


디리터는 심드렁한 얼굴로 주섬주섬 브레스트플레이트를 끼워 맞췄다. 반면 거니슨은 얇은 체인메일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그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디리터는 한 번 더 소리 높여 말했다.


“뭐합니까? 그런 사슬로는 안 됩니다. 제대로 판금갑옷으로 입으십쇼.”


“꼴에 형식은. 난 이거면 충분해.”


“아니, 안 입으면 대련 안 합니다. 빨리 제대로 입어요.”


“.....”


그가 워낙 강경한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거니슨은 별수 없이 갑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동안 디리터는 목검을 지팡이삼아 선 채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로샤단의 실력이 진짜라는 게 밝혀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사들 중에 거니슨의 패배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니슨은 다른 경험부족으로 탈락한 하급기사와 달리 케이달을 두둔하다 항명죄로 좌천된 경우였다. 그는 왕실기사단 서열 9위의 고위기사로, 기사단 내에서도 적수가 몇 없는 실력가였다. 그가 마리네에게 승리했을 때에도 기사들은 응당 나왔어야 할 결과라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때문에 그들은 ‘의외로 선전하는 디리터를 거니슨이 격파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윽고 디리터와 거니슨이 서로를 마주하고 섰다. 대련장 중심에 선 케이달은 둘 사이로 감도는 묘한 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재차 주의사항을 설파한 후 팔을 수직으로 올려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


시작과 동시에 디리터는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디딘 왼발에는 발바닥이 바스러져라 무게를 실었고, 이를 축으로 삼아 우측으로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오른팔을 크게 젖혀 원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뒤에 서 있던 마리네는 그의 상박이 채찍처럼 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엄청난 박력에 거니슨은 반사적으로 목검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이는 악수였다. 디리터의 일격은 이미 막아서 방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우지직!!

목검 부러지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공격자세 그대로 멈춰 선 디리터와 1m가량을 날아가 쓰러진 거니슨, 그리고 썩은 가지처럼 부러진 두 자루의 목검을 바라보았다.

거니슨의 목검은 최초의 경합 때 디리터의 일격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났다. 뒤이어 디리터의 목검은 거니슨의 옆구리를 강타할 때 반작용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기사들은 거니슨의 장구가 우그러져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판금갑옷인데!

거니슨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기절한 것은 아니지만 충격으로 숨이 턱 막혀 손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 압도적인 실력 차에 케이달마저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스...슬래쉬.”


디리터의 승리는 마리네의 그것과는 시사하는 바가 달랐다. 일행이 처음 안개송곳니를 만났을 때 느꼈던 공포랄까? 워낙 경이적인 실력이었기 때문에 기사들은 기가 질려 거니슨을 부축하러 갈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디리터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


동료에게 이끌려 돌아온 뒤에도 거니슨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이상 디리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봐야 했다.

케이달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있던 이칼롯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아직 인원은 많이 남아 있네만.”


‘이칼롯’이라는 이름에 기사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크렘벨의 어밴저, 한동안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충격의 인물이다. 부하들만 해도 이 정도인데, 대장의 실력이 어떠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꼬리를 말고 케이달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칼롯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따로 할 일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흠...알았네. 뭐, 대련은 로샤단의 압도적인 승리로군. 쯧쯧, 단장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어. 어디, 로샤단 대표로서 한 마디 해주지 않겠나?”


부하들이 무참히 패배했지만 케이달은 어쩐지 즐거운 듯한 얼굴이었다. 이건 대련을 주선한 그의 의도와도 연관이 있는데, 사실 그는 처음부터 로샤단의 승리를 점쳐두고 있었다. 생각보다 디리터와 마리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어찌 됐든 그 덕에 부하들의 자만심을 누르고 양 진영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정당하게 실력으로 패배한 만큼, 그는 왕실기사단이 더 이상 로샤단에게 껄떡대지 못하리라 자신했다. 뭐, 그만큼 실추된 명예는 단장인 자신이 감수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칼롯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대련 감사합니다 기사단 여러분. 언짢은 일이 있긴 했지만 이걸로 서로간의 앙금이 풀렸으면 합니다. 경들만 괜찮다면 앞으로도 친목을 다졌으면 좋겠군요.”


“...너무 무리하지 말게 이칼롯. 이놈들은 욕을 한 바가지 먹어도 할 말이 없어.”


“하하, 천만에요. 저는 이런 우직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진짜 경계해야 할 건 본심을 숨기고 가식 떨며 다가오는 이들이죠.”


예상치 못한 호의에 기사들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케이달도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불온하게 시작된 대련은 이칼롯의 재치로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끝나가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막 로샤단과 왕실기사단이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을 즈음, 케이달이 갑자기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란돌은 어디 갔어?!”


거니슨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놈 직무유기가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근신명령 받았을 때도 자유시간이 생겼다며 좋아 날뛰던 인간인데...”



***



디리터 외 3명이 기사단본부에서 대련을 벌이는 동안 루도와 제리온은 금서 열람에 한창이었다. 도서관에 틀어박힌 지도 한세월, 그들이 획득한 정보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부진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케리아돌을 통해 과거를 관람한 탓인지 아니면 진짜 가치 있는 서적은 일찌감치 불타 없어진 것인지 금서관리고에서도 쓸 만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서에는 펠아람이니 루프리모니 하는 으레 아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을 뿐으로, 에센스의 활용법이나 수정에 관한 사안은 아주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뭐, 신의 아이가 직접 저술한 게 아닌 만큼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리온 또한 조사에 난항을 겪는 중이었다. 금서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건만 내용은 그저 사령계나 정신계를 찬양하는 문구 일색이었다. 진척이 없으니 자연스레 집중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루도가 슬그머니 씹을거리를 가져온 것을 시작하여 오늘 아침 제리온은 급기야 와인을 홀짝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열람을 돕던 마리네마저 시내로 나가자 두 사람은 완전히 퍼져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다.


"뭐 좀 찾은 거 있냐?"


"에리안델은 갈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아가씨였다네. 그런데 각성하고 난 다음에는 초록색으로 바뀌었대."


"그거 퍽이나 쓸모있는 정보고만."


"제리온은?"


"시팔같지. 사령계가 쓸만한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고. 왜 자꾸 타이달루크 똥꼬나 핥고 지랄들인지."


이런 식이면 결국 시간 때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루도는 커튼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빛줄기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차라리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빛에 비친 먼지바람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는 손을 휘휘 저어 먼지를 흩뿌려 보았으나, 이는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차라리 검술연습이나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곰실곰실 피어오를 즈음이었다. 도서관 문이 끼익 열리더니 웬 건장한 청년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은색 판금갑옷을 차려입고, 허리춤에는 폭이 넓은 브로드소드를 장착한 채였다. 대충 봐도 높은 직위의 기사이거나, 이에 준하는 귀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발견하곤 반색하며 다가왔다.


"이야, 당신들이 로샤단이로군요. 루도 클로람과 화폭(火爆)의 제리온! 당신이 만든 구덩이는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제리온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술이 절반쯤 들어가 평소보다 더 삐딱해진 제리온은 악수는 받을 생각도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그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데, 허우대 멀쩡한 놈치고 제대로 된 인간이 없었다.


"또 뭐야? 이건."


내민 오른손이 민망해지자 기사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그는 재차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왕실기사단 소속 란돌 크로이체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높으신 기사나리가 왜 우릴 찾으시나."


"글쎄, 당신들과 같은 이유일 거 같은데?"


제리온이 누운 채로 눈동자를 굴려 란돌을 훑었다. '이 새끼는 또 뭐하는 병신인가'하는 의도가 명백히 담긴 눈빛이었으나 란돌은 오히려 서글서글하게 이를 받았다.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타인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 마이페이스형 인물이었다. 막 제리온이 몸을 일으키자 란돌은 그가 보고 있던 책을 집어들며 말했다.


"오, 마법금기! 저도 관심이 있는 분야입니다. 뭐, 가진 지식은 전무하지만요."


"당신 뭐야? 알랑방귀 뀌지 말고 용건을 말하라고."


제리온은 한층 공격적인 말투로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란돌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루도는 그의 유쾌한 미소를 보며 나직이 탄성을 터뜨렸다. 넉살도 이 정도면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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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0 el*****
    작성일
    15.05.13 03:14
    No. 1

    호기 좋게 달려든→호기롭게 달려든
    게네스, 안개송곳니, 악마 같은 상대로는 영 죽쒔지만 마리네도 결코 약하지 않죠ㅎㅎ
    디리터야 뭐 안개송곳니 상대로도 밀렸을지언정 대 슬러터전 등에서 두각을 보였고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레인Rain
    작성일
    15.07.12 03:09
    No. 2

    건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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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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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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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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