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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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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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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0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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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DUMMY

믿을 수 없는 정보였다. 이칼롯은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자세히 말해라! 위그라프 후작이라니? 누가 그런 일을 시킨 거지?”


“히익! 얼마 전 한 남자가 알선소로 찾아왔습니다. 이...이곳이 후작 일당의 도피처이며, 그놈들을 소탕하기 위해 용병을 모집한다고...도...돈도 되는 데다 반란군 소탕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그만...제...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남자가 누구지? 이름은?”


남자는 이미 공포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살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뺨을 몇 번 맞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모릅...모릅니다. 선뜻 선금을 주기에 그다지 캐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주...죽은 동료 중에 이름을 들은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칼롯을 비롯해 주위에 있던 기사들은 일시에 벙찐 표정이 되었다. 지금껏 싸운 상대가 용병이라니, 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단 말인가! 주변의 병사들은 여전히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누군가가 꾸민 계략이라면, 그들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범인은 산적의 진지가 이곳에 있다는 걸 일찍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또한 크렘벨 군이 오늘 이곳을 급습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용병을 고용해 크렘벨 군을 공격한 것인가.

기사 중 하나가 말했다.


“그럼...산적들은 어디로 간 거지? 코간 산적단 놈들은.”


정신이 번쩍 뜨이는 지적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코간 산적단은 건재하다. 그들은 적어도 크렘벨 군이 이곳에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에 맞춰 시기적절하게 철수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은 아마 정규군의 공격을 피해 멀리 달아났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범인이 노린 게 단지 코간 산적단의 유지일까?

이칼롯이 남자의 멱살을 흔들며 물었다.


“말해라! 너희들이 이곳에 오기 전 먼저 주둔하던 단체가 있었을 것이다. 그놈들은 어디로 갔지?”


“어...없었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도착한 건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는데...그땐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레인저와 접선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녀석들은 철수했다. 레인저들이 배신한 게 아니라면, 역시 성 안에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점점 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대체 그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외곽에 있던 병사 하나가 급히 뛰어왔다. 그는 사색이 되어 말했다.


“소백작님! 도시에서 봉화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그게 적의 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뭣이?!”


기사들은 앞다투어 진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칼롯은 덤불을 헤치며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적습을 의미하는 두 개의 봉화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니, 대체 누구의 습격을 받았다는 말이지? 설마 아스트리카가 이곳까지 들어왔을 리는 없고...”


“코간 산적단!”


일동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렘벨 군을 골짜기로 유인하고 이를 먼저 고용한 용병들로 막게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산적단은 도시로 침입하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아무리 주력이 빠졌다 해도 도시에는 수비대가 남아있다. 60명 정도로 어찌해볼 수준이 아니다.

그럼 어째서 도시를 공격한 걸까? 적의 목적은 단순한 약탈인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판을 너무 크게 벌려놓았다. 용병들에게 지급한 대금을 생각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그렇다면...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생각났을 때, 이칼롯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몸을 비틀거렸다.


“내통자가 성문을 열어줬다고 한다면...성 안의 방비는...”


전무하다. 현재 글라우드는 개인 사병까지 전부 도시 치안으로 돌린 상태다. 그를 호위할 병력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코간 산적단은 중대급은 되어도 대대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몇 명씩 잘게 쪼개 민간인으로 분장한다면 도시 안으로 진입하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결국, 도시를 가로질러 성으로 진입하기까지 그들을 막을 수단이 없다는 말이 된다.

봉화의 연기는 서서히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하늘에 수놓이고 있었다. 병사들이 땔감을 어지간히 많이 던진 모양이다.


“도련님! 도련님!!”


기사 하나가 그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이칼롯이 당황한 나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다급하게 말했다.


“도련님, 봉화입니다. 어서 영지로 귀환하시죠.”


“...아...아아...어서 병사들을 모아주시오.”


이칼롯은 평상심을 유지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 요동치는 맥박이 그의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칼집을 쥔 손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버지는? 어머니는? 산적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백작 내외를 인질로 잡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여동생...유디는? 이칼롯은 봉화가 피어오른 시점에서 이미 반쯤 이성을 잃고 있었다. 산적들의 더러운 손이 가족에게 미친다고 생각하자 눈이 뒤집혔다.

이칼롯은 병사들이 태세를 정비할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이성적이고, 지적이고, 유능한 지휘관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족의 생명이 위협당하자 이것들은 전부 처참한 허세였음이 드러났다. 그는 만류하는 기사들도 뿌리치고 홀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몇 명이 그를 뒤쫓았지만, 공포와 분노로 이성을 잃은 그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


"도련님!! 기다려 주십시오!!“



이칼롯은 성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달렸다. 산을 내려가는 건지 굴러가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는 갑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달렸다. 그 결과 그는 반나절 만에 다다른 거리를 그 절반도 안 되어 주파했다.

건물이 불타거나, 시체가 뒹구는 광경 따윈 없었다. 크렘벨은 여전히 평온했다.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평민에게 손을 대진 않았겠지. 원하는 건 그들이 아니니까.

경비병 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엉거주춤하게 경례를 했다. 병사의 표정에 떠오른 것은 당혹스러움, 그리고 절망. 이칼롯은 굳이 병사에게 정황을 묻진 않았다. 대신 그는 더욱 스피드를 올려 성으로 질주했다. 성문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울림도 커졌다.

글라우드는 오늘 작전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산적소탕을 위해 구멍이 난 100명의 자리를 어떻게 메우냐는 것이었다. 맞교대로도 근무가 여의치 않자 그는 성의 호위를 치안경비에 투입했다. 그 결과 남은 병사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록 백작의 거처가 무방비상태에 놓이긴 했지만.

성문 앞에 경비대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창백한 낯빛은 새벽녘에 출정하던 원정대의 그것과 뚜렷이 대조됐다. 이칼롯이 나타나자 그들의 표정은 더욱 썩어 들어갔다.


“도...도련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그것이...”


병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차마, 크렘벨에 고용된 군인으로서 그 말을 입에 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칼롯은 그를 밀치고 들어갔다. 대답하지 않으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

성의 회랑에서 그는 요슈아와 마주쳤다. 요슈아는 오른팔에 붕대를 둘둘 말고 있었는데, 배어 나온 피가 셔츠 앞섶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그는 이칼롯을 보곤 오열하며 그 자리에 무릎 꿇었다.


“으...큭...도련님!!”


“요슈아, 무슨 일이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백작님이...백작님이...”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칼롯은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실 한쪽에 피웅덩이가 만들어져있고, 그 중앙에 그가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도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양친의 죽음을 확인하자 무릎이 푹 꺾였다. 납득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를 나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차디찬 시체가 되어버린 걸까. 무엇이 잘못됐을까.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어째서 막지 못했을까.

부친의 시신을 끌어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이칼롯에겐 통곡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요슈아가 그의 뒤에 선 채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이 떠나고 나서 괴한들이 성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남은 병사들은 대부분 외곽 방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도련님. 녀석들은 서너 명씩 상인으로 분장한 뒤 집결했기 때문에 성문에 다다를 때까지도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녀석들은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아가씨를 인질로...”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칼롯은 멱살을 잡다시피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유디가...유디가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


“...인질의 가치가 있으니 아직 죽이진 않았겠지요. 아가씨 때문에 놈들이 성의 보화를 털어갈 때도 경비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구원의 빛이 내려오진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락에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한 기회였다.

이칼롯은 재빨리 눈시울을 훔치고 태세를 가다듬었다. 몇 시간을 내달려 온몸이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쉴 시간도 모자랐다. 산적들은 아마 유디를 인질 삼아 영지 밖으로 달아날 계획일 것이다. 그때까진 그녀의 신변이 보장되겠지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목을 벨 게 분명했다.


“녀석들은 어디로 갔지? 떠나는 걸 봤을 거 아냐!”


“나..남문을 통해 엔스루리아 방면으로...도련님, 설마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요슈아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으나 굳이 만류하진 않았다. 무모하다고 한들 그것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는 까닭이다. 함께 떠났던 병사들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이칼롯은 주전자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게 그가 취한 마지막 휴식이었다.


“남쪽이면 텔아단으로 갈 생각이군. 그 전에 놈들을 붙잡아야 해. 요슈아! 난 먼저 떠날 테니 경비대 병사들을 모아 따라오라고 해줘. 그리고 원정대가 돌아오면 기병대를 편성해 증원해주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원정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함께 가시는 게...”


“그럴 시간 없어! 언제 유디의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고!”


이칼롯은 전력으로 달려 성문을 나섰다. 부모의 유해를 수습할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에 그는 모든 일을 요슈아에게 위임했다. 코간 산적단이 떠난 지 아직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전력으로 말을 몰면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말을 몰았다. 급하게 편성된 기병 십여 기가 그의 뒤를 따랐다.

아마도 산에서 내려오는 원정대와 마주치길 꺼려해서 그런 것일 테지만, 산적들이 남쪽으로 달아난 건 의외의 호재였다. 남쪽 엔스루리아 방면은 고개 몇 개만 넘어가면 평야가 길게 펼쳐진다. 거기서부턴 몸을 숨길 곳이 없기 때문에 말만 달리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칼롯은 말을 몰며 어떻게 유디를 구출해낼지 작전을 구상했다. 평야가 나타난다는 건 추격대 또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문제가 있다. 이미 소탕이 불가능해진 이상, 협상으로 그녀를 돌려받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할까? 절대 따라오지 않겠다는 조건? 아니면 더 많은 금품? 어느 것도 그럴 듯한 제안이지만, 또 그래서 불안했다. 놈들은 단순한 산적이 아니다. 백작령에 난입해 영주를 살해하고 달아날 만큼 비범한 자들이다. 그들이 과연 이러한 상투적인 조건에 응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이칼롯의 이러한 고민은 곧 쓸데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아니? 도련님, 저 앞을 보시죠.”


기병 중 하나가 고갯길 아래 위치한 건물을 가리켰다. 아마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여관인 듯한데, 말이 무더기로 묶여 투레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산적들이 여관을 습격해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칼롯은 재빨리 말을 멈추고 길 가장자리로 몸을 숨겼다. 그는 멀리 보이는 여관 건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빨리 산적들을 따라잡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놈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만, 의구심 또한 남았다. 그들은 어째서 달아나지 않고 이런 데서 노닥거리고 있는 걸까? 설마 백작 영애를 납치했다고 추격대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인가. 일반적인 무뢰배라면 그런 판단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놈들은 오늘 하루 간 믿을 수 없는 기민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자들이 마지막에 와서 쾌락에 정신이 팔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죠? 아까 성을 떠날 땐 대략 5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었습니다. 일단 여기서 지원군이 오길 기다릴까요?”


병사 하나가 말했다. 그러나 이칼롯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유디의 신변이 걱정이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녀가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수풀을 우회해 접근했다. 입구에는 산적 둘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들 먼발치에 쓰러진 남자는 아마 여관 주인이겠지. 건물 안에선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멀리서도 들릴 정도였다.

서서히 건물에 접근하는 동안에도 이칼롯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산적들의 의중부터 동생을 구하는 방안까지,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들이 여기 멈춰 선 이유는 왜인지, 어째서 제르비안 가를 습격한 것인지.

기습을 감행해 유디를 구해내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수적으로 열세인데 놈들을 자극했다간 모두 다 몰살당할 염려가 있었다. 그렇다면 협상은 어떠한가? 산적들의 의중을 모르니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카드도 마땅치 않았다. 유디를 무사히 돌려받으려면 어떤 패를 내놓아야 할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침착하자, 훈련받은 대로...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적의 빈틈은 반드시 있다. 유디를 무사히 구출해낼 방안이...방안이...젠장, 대체 어떻게!!’


조급해지자 마음을 다잡으려는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남들이 그렇게 칭송하던 명석한 두뇌도 이 순간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답이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결국 이칼롯은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불리한 패에 몸을 맡겼다. 그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일제히 건물을 덮쳐라. 포위당했다고 느끼면 전의를 상실할 거야. 그 틈에 유디를 구출해낸다.”


“옙...헌데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교전은 최악의 상황이야. 일단 놈들을 설득해보겠다.”


병사들이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그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를 발견하자 보초 두 명이 흠칫 놀라 무기를 들었다. 이칼롯은 양팔을 들어 공격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난 제르비안 가문의 장자다! 너희들이 여동생을 인질로 잡았다는 걸 알고 있다. 협상, 협상을 하자!”


그러자 보초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협상이라...우리도 원하는 바지. 그래, 일단 말이나 한 번 들어볼까?”


그들은 칼을 땅바닥에 톡톡 두드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이칼롯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산적들이 살기등등한 건 단지 자신을 경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하자, 보초들은 주저 없이 칼을 휘둘렀다.

공격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솜씨는 성채에서 마주친 용병에도 훨씬 못 미쳤다. 하지만 공격당했다는 것만으로 이칼롯은 반 공황상태에 빠졌다. 분명 싸울 의사가 없다고 밝혔을 텐데, 어째서 자신을 공격한단 말인가!


“이봐, 잠깐 기다려! 협상을 하자고 말했잖아! 왜 갑자기 이렇...”


보초들은 그가 말을 맺을 틈도 없이 치고 들어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칼롯도 검을 뽑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둘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한 뒤 명치와 목젖을 각각 찔렀다. 급소를 당한 산적들은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크....제기랄...”


이칼롯은 보초의 시신을 보며 욕설을 뱉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의 예상대로 굴러가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모든 일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순 없었다. 그는 어쩌면 오래전에 일이 틀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걸, 산적들이 협상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 챘다. 그러나 머리는 알아도 가슴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개죽음당할 지도 모르니 유디는 포기하자고? 그냥 죽게 내버려두자고? 당연히 그럴 수 없다.

해결책도, 비장의 카드도 없었다. 이칼롯은 무작정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홀 안은 술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정체 모를 비릿한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이칼롯의 외침에는 절망과 공포가 뚝뚝 묻어났다.


“나는 이칼롯 제르비안이다! 여동생을 돌려받으러 왔노라! 우두머리는 어디 있나?”


곳곳에서 킬킬거리는 역겨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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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4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9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1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6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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