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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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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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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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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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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9쪽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DUMMY

뜬금없는 허세에 남자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제리온의 머릿속은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재빠르게 물색하고 있었다.

남자와의 거리는 10미터 정도, 자신은 왼팔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아무리 기민하게 움직여본들 자신이 일류 자객의 공격을 피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괜히 도망쳐 시간을 벌려는 행동은 도리어 죽음을 자초한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캐스팅을 해야 한다는 소린데, 아무리 빠르게 캐스팅을 한들 남자가 도착하기 전에 주문을 완성할 자신이 없었다. 캐스팅을 인지한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 테니 말이다.

유일한 방법은 상대가 알아채기 전에 캐스팅을 완료하는 것.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는 무영창(無詠唱)뿐이었다.


‘제기랄, 내가 무영창을 할 수 있을까? 고수들도 버거워하는 건데...’


처음 시도해보는 무영창이었지만 제리온은 재빠르게 사심을 버렸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자신에게는 그 패 말고는 다른 카드가 없었다. 무영창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판단은 적절했다.


“잠깐, 기다려!! 할 말이 있다!”


제리온은 다가오려는 적에게 다급히 외쳤다. 남자는 그가 목숨을 구걸하려는 거라 생각했는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어이, 꼬마야~. 미안하지만 살려주는 건 없어. 뭐 죽기 전에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다면 들어는 주겠다만. 와하하!”


다행스럽게도 남자는 승리감에 도취된 탓인지 그의 발언에 관심을 보였다. 제리온은 그 틈을 타 재빨리 무영창에 들어갔다.

만약 공포로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렸다면 주문은 필시 무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데미 때부터 실전을 지향했던 그의 노력이, 갖가지 상황 속에서 - 소음, 충격, 심지어 감기에 걸려 앓아누운 상황까지 가정하며 - 캐스팅을 시도했던 경험이 성공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제리온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남자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 말해봐라. 할 말이 뭐지?”


그러자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연녹색 빛을 띤 두 개의 구체가 남자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남자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검을 들어 몸을 보호했다. 구체 하나는 칼등에 부딪혀 사라졌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정확히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쇠몽둥이로 사정없이 배를 두들겨 맞은 기분일 것이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제리온은 그 모습을 보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하! 꼴좋다, 이 짜샤!!”


하지만 매직미사일 정도로는 결정타가 될 수 없다는 걸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캐스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만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소리 내어 주문을 외웠다. 그때, 쓰러졌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남자의 움직임으로 인한 흥분이, 그리고 익숙하지 못한 계열의 마법을 시전한다는 불안감이 캐스팅을 끊기게 만들었다. 기껏 모았던 마나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윽...젠장!”


제리온은 다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차근차근 천천히, 제발! 남자의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요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림 없는 마음. 그전에 완성할 수 있다! 녀석의 검이 내 심장을 꿰뚫기 전에.


“미러 이미지(Mirror Image)."


번쩍, 하는 일련의 섬광과 함께 제리온이 삽시간에 네 명으로 불어났다. 새롭게 나타난 세 명의 제리온은 움직임, 크기, 형태까지 모두 본인과 똑같았으며 심지어 말하는 목소리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놀라운 광경에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미러 이미지는 그저 본체를 보호할 방어수단에 불과했음을. 제리온이 다시 캐스팅에 들어갈 무렵에야 그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익...! 이 건방진 꼬맹이가!!”


그는 진노하여 가장 앞에 있던 제리온을 베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 검을 받은 제리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당황하여 남은 셋의 제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제리온의 캐스팅은 계속되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다른 제리온을 공격했다. 이 또한 가짜. 남자는 점점 혼란에 빠졌다. 혹시 자신은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본체는 이미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고 한다면...!

하지만 제리온은 그곳에 오롯이 서 있었다. 두 명의 제리온이 동시에 남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남자는 경악하여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 분신이 사라지는 순간, 제리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아드레노프의 작렬(Adrenoff's Burst)."


퍼어엉!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불기둥이 삽시간에 남자를 휘감았다. 그 최초의 충격으로 남자가 몇 미터 뒤로 날아갔고, 제리온 또한 반작용으로 반대편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뒤이어 남자의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남자는 절규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그를 감싼 화염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나갈 뿐이었다. 제리온은 땅바닥을 뒹구는 사내를 보며 씨익 웃었다.


“헤...내가 말했지...태워버리겠다고...”


제리온은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짧은 순간에 연달아 세 번의 마법을 구사한 탓에 몸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피로에 눈앞이 침침했고, 가슴은 마라톤이라도 뛴 것 마냥 터질 듯 죄어왔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저앉은 채 남자의 불꽃을 지켜봤다.


“으아, 으아아아! 살려줘, 살려줘어어!”


“너 같으면 살려주겠냐? 이 새끼야!”


남자는 얼마 뒤 잠잠해졌다. 그러나 화염은 그의 시체를 제물 삼아 오래도록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리온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쑤시고 전신은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맘 편히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레미나와 로시오의 신변이 걱정이었다. 그들은 아직 무사할까? 궁전 안에서 들려오던 고함도 어느새 잠잠해진 상태였다. 그 고요가 제리온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는 남자의 시체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궁전 지붕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제리온이 이상한 소음을 느꼈을 땐 이미 오른 가슴에 화살이 꽂힌 뒤였다.


“커..으아악!!”


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왼팔은 아예 못 쓰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큰 고통이 나타나자 거짓말처럼 움직여 화살대를 움켜쥐었다.


“마법사라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관전하길 잘했어.”


한 남자가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옷차림은 아까 제리온을 공격한 사내와 굉장히 흡사했다. 제리온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무미건조한 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이다!


“잘 가라.”


그가 제리온의 이마에 대고 활시위를 겨눴다. 제리온은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돌연 한 줄기 섬광이 날아와 남자에게 직격했다.

큐우웅-. 괴이한 충격음과 함께 남자의 신체가 그대로 공중에 솟구쳤다. 그는 엄청난 충격으로 혜성처럼 날아갔고, 예의 결계에 부딪히고는 여지없이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제리온은 명치 부분이 완전히 으깨진 그의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냐? 제리온!”


그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로시오였다. 제리온은 목숨을 건진 것에 안도하면서도, 아직 무사한 아버지의 모습에 환성을 질렀다.


“아..아버지! 무사하셨네요!”


제리온은 비척이며 몸을 추스르려 했다. 그러나 성큼성큼 다가온 로시오가 그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기에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로시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 자식! 어째서 여기에 들어온 게야!!”


“윽...! 아버지에게 먹을거리 좀 전해주려고...때릴 것까진 없잖아요!!”


본의 아니게 위험에 처한 건 맞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제리온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뒈질 뻔 하고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한발만 늦었으면 넌 벌써 저세상 갔어!”


“살았으면 됐지 뭔 말이 그리 많아요! 빨리 화살이나 뽑아줘요.”


로시오는 뭔가 말하려다가 울화통이 터지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이런 화상을 어떻게 16년이나 키웠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참 홀로 분을 삭이던 그는 제리온의 가슴팍을 밟고는 꽂힌 화살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참아라.”


“으아악~! 씨발, 씨바알, 왁!”


화살을 뽑고 나서 로시오는 아들의 상처를 정성스레 치료하기 시작했다. 제리온은 아버지가 자신의 팔꿈치에 붕대를 묶어주는 걸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다 뭔 일이에요? 저 빌어먹을 새끼들은 다 뭐고, 나자빠진 병사들은 또 웬...”


그러자 로시오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그라프다. 북위파의 위그라프 후작이 반란을 일으켰어. 병력은 얼마 안 되지만...너도 봐서 알겠지? 결계 때문에 밖에서는 안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조나단 위그라프? 대체 뭐 때문에...아니, 그보다 왕실 기사단은 어디 갔는데요!”


“기사단은 수도 외곽에서 각국 사절단을 경호하고 있다. 지금 궁전 안에는 소수의 근위병과 마법 친위대뿐이야.”


제리온은 기가 막혔다. 왕국의 중추라는 곳이 이토록 방비가 허술할 수 있단 말인가. 여왕이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른 채 다른 나라 사신들을 경호하고 있을 기사단을 생각하니 울분이 터졌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이따위로 경비를 서요? 여기 수도 맞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 이유도, 명분도, 목적도 모른다! 위그라프가 어째서 반란을 일으킨 건지!”


“그럼 누님은, 레미나 누님은 어떻게 된 건데!”


“여왕님은 현재 피신 중이시다. 근위병들이 지키고는 있지만, 자객들의 실력으로 보아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로이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제리온은 붕대가 다 감아지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자구요. 누님을 구하러.”


그러자 로시오가 제리온의 발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그때 제리온은 아버지가 자신을 도망치게 하려 한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그가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시간 없어.”


“네가 뭘 한다는 거냐? 이미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이거 사람 무시하시네? 이래봬도 혼자 자객 하나를 처리했다고요! 아버지랑 힘을 합치면 그따위 반란군들은...어?”


한 걸음 내딛으려던 그는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져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 진동이 오자 다시 가슴의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끄윽....제기랄!”


병원에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에, 지나친 마법 연사로 인해 몸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몸을 끌고 전진해본들 전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는 차가워도 가슴은 그렇지 못하다. 레미나가,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 모습을 보자 로시오의 얼굴에 깊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비장하게 말했다.


“제리온, 도망쳐라.”


“...뭐라고요?”


“일시적이지만 내 마법으로 결계의 일부를 돌파할 수 있다. 넌 그 틈으로 달아나거라.”


제리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볍게 웃어넘기고 싶은데, 아버지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 그럴 수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흔들림 없는 눈동자.


“농담이죠?”


“지금까지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여기서 개죽음 당하느니, 살아서 미래를 기약해라.”


“개 같은 소리 집어 치워요! 나더러 지금, 아버지랑 누님을 놔두고 혼자 도망치라고?! 내가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아?!!”


철썩.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맞은 제리온의 얼굴이 90도로 돌아갔다. 때린 아버지도, 맞은 아들도 그 상태로 움직임이 없었다. 몇 초가 지나자 제리온의 뺨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화끈거림이 가슴에 불을 지폈는지, 제리온은 발끈하여 아버지에게 대들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울고 있었다. 항상 거대한 산처럼 흔들림 없던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제리온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런 건, 겁쟁이들이나 흘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나더러, 아들이 눈앞에서 죽는 꼴을 지켜보라는 거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로시오의 외침은 그 성량만큼이나 강렬한 진심이 담겨 있어, 제리온도 뭐라 대꾸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어야 했다.


“넌 내 아들이야. 내 모든 것이다! 네가 죽으면...나는 어쩌라는 거냐...제발 도망가다오...이 아비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마!”


발목을 붙잡은 로시오의 손에 가냘픈 핏줄이 곤두섰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간절한 요청. 제리온은 그가 그렇게 절박하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악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로시오는 잡은 발목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제리온 또한 아버지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도...그럼...누님은 어떻게...”


“여왕님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낼 테니까. 그러니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살아라.”


제리온은 억지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이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발이 떨어질 거 같지 않았기 때문에.


“알았어요...그럼 내가 결계 밖으로 나가서 왕실기사단을 불러올게요. 그때까지 조금만 버텨 봐요.”


그러나 로시오는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왕실기사단도 믿을 수 없어!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 그냥 도망치기만 하면 돼!”


“그런 말도 안 되는...아버지가 그러고도 마법친위대장이에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아. 널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 제발 이번만은...아비의 뜻을 따라다오.”


제리온은 땅바닥에 대고 주먹을 내리쳤다. 살갗이 터져 피가 나왔지만 아픔보다는 자신의 무능함이 진저리나게 원망스러웠다.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도망쳐야만 하다니, 자신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로시오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제리온, 잘 들어라. 너에게 오기 전 자객들의 대화를 엿들었었다. 녀석들은 어쩐 일인지 마법사만을 골라 죽이고 있어. 마법친위대 대부분이 당했다. 만약 궁성이 함락된다면...마법협회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잘 기억해라. 델키아, 델키아로 가. 그곳에 내 친구가 있다. 카토르 르휘베트, 델키아로 가서 카토르 르휘베트를 찾아라. 그라면 널 보호해줄 거다. 알았지?”


“흑...제기랄...제기랄!!”


로시오가 캐스팅을 시작했다. 주문을 완성하자 그의 손이 푸르게 빛났는데, 그는 그걸로 결계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빛이 강타한 부분이 스르르 사라졌다. 딱 사람 하나가 빠져나갈 만한 크기였다. 로시오는 아직도 경황이 없는 아들을 집어던지다시피 밖으로 밀었다.


“가! 결계가 뚫린 걸 알면 곧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어서 성 밖으로 달아나!”


“아버지! 아버지이~!”


“미안하다.”


그 말을 끝으로 로시오는 등을 돌려 궁전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리온은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젠장, 마법사만 골라 죽인다며...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건데! 누님은 어떻게 되는 건데!! 으흐흑...”


제리온은 성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흩뿌려진 눈물이 바람을 타고 그가 지나간 자리를 점점이 적셨다. 내달리며 그는 하염없이 아버지와, 레미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질 뿐...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리온을 보내고 나서 로시오는 여왕을 찾기 위해 궁전을 들쑤시고 다녔다. 벌써 조우한 적만도 다섯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굉장한 반사 신경을 지니고 있어, 로시오 수준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이 떨어져나갔을 터였다.


“여왕님...제발 무사해 주십시오.”


사실 그는 조금 전 자신의 행동에 통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탐지 마법으로 레미나의 위치를 쫓던 그는, 아들이 궁전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곤 주저 없이 후문을 향했다. 마법친위대장이라는 그의 직분을 생각하면 사형에 처해져도 마땅할 행위였다. 그러나 그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설령 역사가 자신을 추악한 도망자로 기록한다 할지라도, 두 눈 뜬 채 아들을 죽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근위병과 몇 안 되는 마법사가 반란군을 상대하는 동안, 그는 제리온을 구하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비했다.

그 사이 궁전은 잠잠해져 있었다. 성난 고함도, 병장기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된 것일까? 그렇다면 승자는 어느 쪽...?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르지만, 로시오는 한 가닥 남은 희망을 안은 채 궁전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만약 공주가 무사하다면, 자신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면 백 번의 능지처참 형도 달게 받을 거라고 신에게 빌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 복도를 가로질러 여왕의 침실로 향했다. 곳곳에 쓰러져 있는 근위병의 주검을 보며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승자는 반란군 쪽인 모양이었다.

침실이 있는 층에 다다른 그는 복도를 떡 하니 가로막은 세 명의 남자를 보고 흠칫 멈춰 섰다.


“이야~. 이거 찾는 수고를 덜어주는군요, 단장.”


“로시오 멜피드...리크나이츠 마법친위대장이로군.”


“킷...킥킥킥. 저자는 반드시 죽여야 해! 탐지계 베너러블(Venerable)클래스라고.”


로시오는 재빨리 셋의 행색을 살폈다. 한 명은 담 회색 망토를 두른 수수한 외모의 청년이었고, 한 명은 광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괴상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나머지 한 명은, 로시오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위그라프 후작...!!”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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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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