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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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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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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23쪽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DUMMY

믿을 수가 없었다. 문서의 내용대로라면, 왕은 이 마을 사람들을 리크나이츠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말도 안 돼. 범죄자가 며칠 머물렀다 간 마을이라서? 고작 그런 이유로?”


아나이스는 울먹이며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어. 어떤 사람은 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해볼 테면 해보라고 버티더라고. 그런데 그런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어. 마을에 있는 경비병이 전부 철수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둘씩 죽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제야 일행은 ‘권한의 박탈’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생명권의 상실. 이는 더 이상 군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전염병이 퍼져도, 혹은 맹수가 침입해도 영주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나이스가 말했다.


“그때서야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야. 사람이 죽어도 어디 호소할 데가 없었거든. 산적 떼가 쳐들어와도 관청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젊은 남자들이 모여서 자경단을 구성했어. 하지만 평생 쟁기만 쥐어본 사람들이 뭘 알겠어? 살인범을 잡기는커녕 당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그러다가...그 사람들이 왔어.”


루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사람들?”


“...현상금 사냥꾼들. 처음에는 로샤단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고 온 거였는데, 며칠 지내더니 마을 현황을 싹 다 파악했더라고. 그러고는 자기들이 마을을 보호해줄 테니 앞으로 상납금을 바치라고 했어. 한 사람당 4골드씩, 한 달에 한 번.”


“4...4골드?!”


1인당 4골드라면, 4인가족의 경우 16골드를 부담해야 한다. 레인저 시절 루도의 월급이 17골드였으니, 모은 돈 대부분을 상납금으로 바친다는 말이 된다. 하물며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그런 거금이 나올 리가 없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느꼈던 삭막함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반발했어. 하지만...그건 거래가 아니라 협박이었어. 이 마을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은 수지가 안 맞으면 언제든지 강도로 돌변해. 결국...우리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어.”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승낙했단 말이야?”


“물론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힘으로 당해내겠어? 남자들 몇 명이 가혹한 금액을 따지러 갔다가 시체가 되어 돌아오더라...”


커튼을 살짝 걷어 창밖을 보니 사냥꾼들이 어슬렁거리며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까 의자에 앉아 있던 남녀는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칼롯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그럼 차라리 마을을 떠나는 게 나았을 거 같은데.”


그러자 아나이스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체념하다 못해 달관한 듯한 그녀의 얼굴에서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잿빛으로 얼룩진 나날이 어느새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요? 여기 사람들은 본래 집 한 채 없던 가난한 소작농이었어요. 그러다 왕실 정책에 따라 이 마을에 모여 살게 된 거죠. 그렇게 얻은 땅인데...가면 어디로 갈까요? 연고지 하나 없는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집착하면 더 힘들어지는 법이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의 뜻을 비치다가, 또 한편으로는 세차게 가로저었다. 눈물을 닦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떠날 사람은 떠났어요. 하지만 떠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몸져누우셔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상납금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앉은 경우죠.”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주인장내외가 보이지 않았다. 아나이스의 아버지는 고문당해 숨을 거두었다고 해도,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것에 대해 묻자 그녀는 입을 앙다문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쭉 몸이 안 좋으셨거든요.”


그걸로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었다. 일행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침묵을 지켰다. 감히 무슨 말을 꺼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진위가 어찌 됐든, 로샤단이란 존재가 이 마을에 파멸을 몰고 온 것만은 확실하다. 로샤단이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마을은 풍비박산이 났고, 아나이스는 부모님을 잃었다. 마주앉은 마리네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생각 같아서는 끌어안아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그녀에게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뭔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또한 일행에겐 무슨 죄가 있는가?

그렇게 무거운 정적이 계속될 때였다. 돌연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방문 손잡이를 붙잡고 세차게 열어젖혔다.


“아나이스 누나, 여기 있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 막 열 살을 넘겼을 듯이 보이는 작은 남자아이였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아 앵앵대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그 소년은, 한 손에는 꽃삽을 다른 한 손에는 흙이 잔뜩 묻은 씨감자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적이 아니란 걸 알자 이칼롯은 한숨을 쉬며 칼집에서 손을 뗐다. 흘긋 눈동자를 굴려보니 아나이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오린!”


“뭐야, 바빠 죽겠는데 손님이랑 노닥거리고 있긴. 빨리 나 흙 덮는 것 좀 도와줘.”


오린이라 불린 소년은 일행에게 별 흥미를 못 느낀 듯, 곧장 아나이스의 손목을 붙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의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슬쩍 고개를 들고 일행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루도와 마리네, 이칼롯은 변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루도와 이칼롯은 투구를 벗어놓은 상태였고, 마리네는 아나이스를 대하기 멋쩍어서 가발과 속눈썹을 벗어놓았다. 수배서의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행의 모습에 오린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누나...이 사람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소년은 손에 든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조막만 한 씨감자가 루도의 발치까지 데굴데굴 굴러 왔다.


“오, 오린. 내 말 좀 들어보렴. 이 사람들은...”


“로샤단...”


아나이스가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달아나는 오린의 속도가 더 빨랐다. 그는 붙잡은 손목을 뒤로 빼고는 그대로 1층으로 달음박질쳤다. 달아나는 소년을 보며 유미르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저거, 조금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러자 아나이스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린은 그런 애가 아니에요. 로샤단에 죄가 있는 게 아니라고 귀에 박히도록 이야기했으니 여러분을 신고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단지 너무 놀라서 그런 것뿐이니까...”


그렇게 설명하고서 아나이스는 오린을 따라가려고 방문을 나섰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루도가 그녀의 뒤통수에다 대고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를 고발하지 않는 거야?”


그 몇 마디에 아나이스의 하반신이 거짓말처럼 얼어붙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로, 아주, 아주 천천히 등을 돌렸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간 그렁그렁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흩뿌려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삼키며 말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내가 로샤단을 고발해?”


“왜냐니...너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말을 꺼낸 루도도 더할 나위 없이 착잡한 심정이었다. 자신 때문에 타인이 고통받다니, 이렇게 허무해지는 순간도 없었다. 복수를 부르짖으며 반년을 달려왔건만, 여전히 승리는 요원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나이스는 슬프게 웃었다. 그리곤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재빨리 얼굴을 훔치고서 말했다.


“말도 안 돼. 너희들은 죄가 없잖아?”


“...그래. 죄가 없지.”


“죄가 없는 사람한테...어떻게 벌을 주니? 난 그런 비위 좋은 년이 아니야.”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자 일행은 맥이 탁 풀려 어깨를 늘어뜨렸다. 제리온은 침대에 대(大)자로 드러눕더니 옆에 있던 레미나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당연히 그녀는 대경실색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꺄악! 너 뭐하는 거야?!”


“에효...누님, 사는 게 정말 좆같수.”


“좆? 그게 뭔데?”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


마리네는 방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아나이스가 떠나간 자리를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었다. 이칼롯이 다가와 어깨를 붙잡아도 그는 허탈하게 한숨만 내쉬었다. 이칼롯이 이만 움직여야 한다며 일으켜 세우자 그는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참하다 정말...”


마리네는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무리도 아니다. 바로 며칠 전에 에레이시아가 죽은 데다, 이곳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멀쩡한 게 이상했다. 마리네와 디리터는 넋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둘만큼은 아니었지만 루도와 레미나, 이칼롯은 평소보다 훨씬 엄숙하게 행동했다. 반면 제리온과 유미르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어 일행은 1층 홀로 내려와 앉았다. 그동안 남녀가 번갈아가며 목욕을 마치고, 더러워진 옷은 전부 양잿물로 빨았다. 간만에 갑옷을 벗어 몸은 홀가분했지만, 반대로 마음은 감옥에라도 끌려가는 것처럼 천근만근이었다.

아나이스는 오린을 겨우 설득해가지곤 테이블 앞에 앉혔다. 오린은 마을 밖에서 버섯재배를 하던 농부의 아들로, 로샤단 사건 이후로 부모님이 야반도주해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였다. 아나이스는 불쌍하기도 하고, 자신 또한 아버지를 잃어 동병상련의 처지였기 때문에 그를 데려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해, 이제는 친남매처럼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오린은 의자에 앉자마자 일행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마치 새끼고양이가 털을 곧추세운 것만 같아 일행은 그를 마주보기가 영 껄끄러웠다. 그는 특히 제리온을 중점적으로 쏘아보았는데 -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루도와 마리네는 그다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디리터는 너무 불쌍하게 늘어져 있는 데다 이칼롯은 마주보기엔 인상이 너무 강렬했다. 또한 레미나, 유미르네 같은 미녀와 눈싸움을 하기에 그는 너무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 그쪽도 오린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한판 해보자는 거냐?”


“아, 좀 참어 이 인간아. 꼬마를 상대로 뭐 하는 거야.”


그러자 오린은 오히려 말리는 루도를 향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누가 꼬마라는 거야!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 난 당신들 같은 사람 백 명이 와도 안 무서워!”


“어...뭐?”


“너희들이 우리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었잖아! 아나이스 누나가 용서해도, 나는 절대 용서 못 해!”


홀에 모인 대다수가 무기를 차고 있었는데도, 오린은 대담하게 일행을 도발했다. 물론 어린아이의 치기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의 배짱만큼은 알아줄만 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대다수는 오린의 행동을 ‘어린애의 도발’로 받아들였지만, 어느 누구는 앞의 수식어를 쏙 빼먹고 이해했다. 그 어느 누구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이 꼬꼬마가 뚫린 입이라고 나불대네. 오냐, 너 오늘 연륜의 맛을...어이쿠!”


루도와 마리네가 그를 강제로 의자에 앉히는 동안, 레미나가 오린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와 옆에 붙이고는, 부드럽게 오린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오린도 예쁜 누나가 잠옷차림으로 다가오자 당황했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레미나가 말했다.


“오린이라고 했지? 누나가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우리를 그렇게 싫어한다면, 왜 아까 사냥꾼들에게 알리지 않은 거야?”


“그거야...아나이스 누나가 싫어할 테니까...”


“아하~네 나름대로 누나를 배려해준 거구나. 오린은 참 마음씨가 곱네. 나도 이런 동생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잠이 오는 나른한 목소리였다. 그 몽환적인 목소리에 이끌려, 오린은 어느새 레미나에게 반쯤 기댄 자세가 되었다. 그녀의 어깨에 반쯤 얼굴을 파묻은 채, 귓가에 떨어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굳어있던 근육이 순식간에 이완되는 기분이었다. 분노를 완전히 누그러뜨릴 수는 없겠지만, 레미나의 수완 덕에 오린의 표정은 처음보다 훨씬 어린애답게 변했다. 그는 살짝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나도...알아요. 당신들도 누명을 쓴 것뿐이라는 거...하지만, 그래도...”


고사리 같은 손을 꼭 모아 쥔 채로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감정을 통제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레미나는 이번에는 왼팔로 오린의 어깨를 감싸고, 오른손으로는 그의 손목을 조용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규칙적인 동작에 어린 소년의 울분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래. 네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가. 하지만 오린, 사실 너나 나나 죄가 없잖니? 그럼 화를 내기에 앞서 잘못을 바로잡는 게 먼저 아닐까?”


“잘못을...바로...?”


“그렇지.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고, 이 마을에 고통을 준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벌주기 위해 여행하고 있단다.”


오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 물론 가장 중요한 과제이긴 하다.

한편 맞은편의 일행은 레미나가 보여주는 놀라운 말솜씨에 입을 딱 벌렸다. 그녀가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가? 늘 촐싹대며 호들갑을 떨고 다니던 그녀였기에 이런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니, 평소의 그녀와 얼마 전 군인을 기죽이던 때의 그녀, 그리고 지금. 어느 것이 그녀의 본모습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루도는 지금 레미나가 풍기는 분위기가 딱 말도 못하고 침상에 누워 있을 때의 그것과 흡사해졌음을 느꼈다.

반면 그녀의 자애로운 일면에 태클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제리온은 모포말이를 당하는 와중에도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저거 봐, 저거 봐. 니들 다 감쪽같이 속고 있는 거다. 귀족들 협박하는 모습을 봐야 정신 차리지. 완전 웃는 얼굴로 사람 죽인다니까?”


루도와 마리네는 다시금 그를 결박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그런데 그때 오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맞잡은 레미나의 손을 홱 뿌리쳤다. 그는 당황한 그녀의 면전에 대고 소리쳤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요. 바로잡긴 뭘 바로잡아? 당신들이 무슨 영웅이라도 돼요? 같잖은 소리하지 마!”


레미나는 자기 방으로 냅다 달려가는 그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아나이스도 지쳤는지 이번에는 따라가지 않았다. 오린이 사라지고 나자 한동안 불편한 정적이 이어졌다. 사태의 책임소재는 물론, 제리온에게 쏠렸다. 그는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떳떳하게 말했다.


“뭐? 왜 날 쳐다봐? 루도, 이 모포 빨리 안 푸냐?”


오린과 제리온이 빠진 덕에 홀은 한층 고즈넉한 분위기가 되었다. 술을 마실 사람은 술을 마시고, 그게 싫은 사람은 아나이스가 준비한 생강차를 홀짝였다. 레미나는 금방 우려내 뜨거운 생강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아나이스는 모포를 등에 두른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이젠 어떻게 할 거예요?”


이칼롯이 말했다.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군. 너희 둘은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어쩌냐니...어떻게든 버텨봐야죠. 저랑 오린은 의지할 친척도 없어요.”


“그럼 우리가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줄 테니 떠나는 게 어때? 이 마을엔 더 이상 미련 갖지 않는 게 좋아.”


아나이스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일행이 도움을 줄 것이라곤 기대조차 안 한 것인지, 그녀의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체념하곤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녀가 말했다.


“괜한 기대 갖게 하지 마세요. 어차피 우린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으니까.”


“어째서지?”


“...아까 말했잖아요. 쌓인 빚이 어마어마하다고. 이젠 이자만 갚는 것도 힘에 부칠 지경이에요.”


마리네는 그녀이 손목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 그가 말했다.


“빚은 우리가 갚아줄게. 알았지? 우리 말대로 하자.”


아나이스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무슨...빚이 한두 푼인 줄 아니? 집이라도 팔아야 할 판인데...”


그러자 마당으로 쫓겨났던 제리온이 모포에 말린 채로 몸을 돌돌 굴려 들어왔다. 그는 레미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다 슬리퍼에 옆구리를 세게 밟히고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우리 돈 많으니까 그딴 걱정은 안 해도 돼. 정 안 되면 루도라도 팔아치우지 뭐.”


“뭐? 난 또 왜?”


“네가 걸어 다니는 다이아몬드라는 걸 벌써 잊은 거냐?”


아나이스는 모포를 꼬옥 모아 쥔 채 몸을 움츠렸다. 무릎을 모아 그 위에 턱을 괴고서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거짓말 같아...”


그런 그녀를 보며 마리네는 담담히 미소 지었다.


“내일 당장 짐을 싸. 그리고 준비가 되는 대로 오린이랑 함께 레인스터로 떠나. 그곳에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때가 되면 데리러 올 테니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 알았지?”


아나이스는 눈물이 핑 돌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무르팍에 이마를 묻고는, 마리네의 팔뚝을 사정없이 꼬집었다.


“바보...정말...빨리 좀 오지...흑.”


“아얏! 아야야...아프다 야.”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 지어졌다. 이튿날이 되면 아나이스와 오린은 레인스터로, 일행은 수도로 떠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아나이스와 오린의 빚은, 남은 여비를 바리바리 긁어모으니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윈프레드에게 받은 보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유미르네는 그런 일행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자선사업도 이 정도면 중증이네. 그 보석은 어디 땅 파서 나온 거니?”


확실히 여비를 몽땅 탕진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문제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후 일행은 각자 배정된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여관은 일행을 제외하곤 손님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2인 1실로 써도 방이 남을 정도였다. 루도는 무뎌진 칼을 수리하고 난 뒤 자정이 가까워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우니 그 자체로도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막 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디리터가 깨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는 눈을 떴다. 아무런 소리도, 미동도 없었지만 루도는 알 수 있었다. 디리터가 망연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음을.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는 단념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연인을 잃은 아픔을 자신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오직 스스로 극복해야 할 따름이다. 죽은 에레이시아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자니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결말을 떠올리면서, 루도는 잠에 빠졌다.


다음날 제리온은 이른 시각부터 홀에 나와 있었다. 더 누워 있어 봤자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 바람이나 쐴 겸 방문을 나선 것이다. 그는 테이블 한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차를 마시다가, 영 맨송맨송했는지 와인을 글라스에 가득 따랐다. 막 짐을 꾸리고 있던 아나이스가 그 장면을 보곤 혀를 내밀었다.


“아침부터 술이에요? 그러다 속 버릴 텐데.”


“냅두셔.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마시겠냐. 이게 마지막 잔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술 같은 건 다 가져갈 수도 없었기에 아나이스는 그러려니, 하고 안주까지 가져다주었다. 제리온은 말린 돼지 껍데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냈다. 중간에 오린이 경멸하는 시선을 보냈으나 그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렇게 막 7시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와인 두 잔을 마셔 살짝 취기가 오르려는 참에, 여관문이 열리며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다짜고짜 가까이 있는 의자를 걷어차며 말했다.


“여어-아나이스! 빚 받으러 왔다. 아나이스!!”


남자가 찬 의자가 데굴데굴 굴러 제리온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쳤다. 그 덕에 글라스가 흔들려 와인이 반쯤 쏟아져 흘렀다. 제리온은 손가락에 묻은 와인방울을 보며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한편 아나이스는 큼지막한 짐 보따리를 이고 오다 남자들과 눈을 마주쳤다. 남자들의 눈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호오, 이게 무슨 꼴이지?”


“아나이스...그건 무슨 짐이냐? 꽤나 푸짐해 보인다.”


그들의 시점에서 볼 때 아나이스는 딱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가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남자들이 험상궂은 표정을 짓자 아나이스는 당황하여 말했다.


“아, 아니에요. 빚은 제대로 갚을 테니까...”


“그래, 갚아야지. 그런데 지금 어딜 가려는 거지? 도망이라도 치겠다는 거냐?”


“당치도 않아요! 돈은 확실히 갚을 테니 일단 나가주세요.”


“나가긴 뭘 나가 이 년아!”


짜악! 남자 하나가 온 힘을 다해 뺨을 때렸다. 아나이스는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오른쪽 뺨이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우리가 말로 해주니까 호구로 보이냐? 부모도 없이 힘들게 살기에 봐줬더니만...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으란 말이야!”


퍼억, 퍽. 남자는 쓰러진 아나이스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날렸다. 주방에 있던 오린이 이를 보고 달려와 아나이스의 등을 가렸다.


“나쁜 놈들아! 우리 누나 때리지 마!!”


“얼씨구? 이건 또 어디서 나온 쥐방울이야?”


그자들은 어린애라도 가차없었다. 남자가 발길질을 해댈 때마다 오린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군홧발에 살이 까져 피가 나는데도, 오린은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아나이스를 보호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는 척추를 부러뜨릴 생각으로 발을 힘껏 치켜들었다.


“잘 들어둬! 이 마을은 이제 리크나이츠 영토도 뭣도 아니야. 알아들어? 니들이 울며 사정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단 말이다! 똑똑히 기억해둬. 여기서는, 주먹이 곧 법이야!”


쨍그랑! 글라스 잔이 정통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유리파편이 박혔는지 남자의 목덜미로 금세 피가 흘러내렸다. 제리온은 테이블에 다리를 얹은 채로 히죽 웃었다.


“그만 짖어라, 똥개새끼들아. 아침부터 시끄럽게, 뒤질라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벙찐 얼굴이었다. 무기도 차지 않은 녀석이 겁도 없이 도발을 해대니, 그들로서는 당황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글라스에 맞은 남자가 가래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넌 또 뭐냐?”


“어, 나? 음...”


제리온은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정체가 드러날 각오까지 하고 잔을 던진 것인데,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런 경우 답은 두 가지다. 그들이 사냥꾼이 아니거나, 아니면 기억력이 나쁜 머저리들이거나.

어쨌든 자신을 몰라봐 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고마운 일이다. 제리온은 관자놀이를 몇 번 긁적이다가, 주먹을 척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내가 그 유명한 법이다. 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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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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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4) +3 15.05.12 891 25 26쪽
246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3) +3 15.05.12 852 23 20쪽
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62 26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49 23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67 24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79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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