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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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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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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4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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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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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DUMMY

<처음 조사를 맡았던 자들은 코간 산적단이 여관에 고립되었고, 불길로 탈출구가 막혀 전멸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이 꺼진 뒤 그들 사체에 난 예리한 검상을 확인하자 그들은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들 60여 명의 죽음과 화재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


그녀의 몸이 스르륵 허물어졌다.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는 가운데, 이칼롯은 이자벨라의 목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그를 제지하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가오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이제 바지는 배어 나온 피로 인해 젖은 수건마냥 질척하게 느껴졌다.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눈앞은 침침하여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칼롯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요슈아 폴크가 있는 곳으로.

철컥, 쾅. 철컥, 쾅. 집무실이며 서재 문을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니 길 수차례, 마침내 이칼롯의 발걸음이 한곳에 모아졌다. 귀여운 토끼 인형이 문고리에 걸린, 요슈아의 딸의 침실이었다. 달각달각. 예상했던 대로 문은 안에서부터 잠겨 있었다.

이칼롯은 가볍게 경첩을 부수고는 문을 열었다. 잔뜩 움츠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요슈아를 발견했을 때 그는 묘한 희열까지 느꼈다.


“너...대체 어떻게...”


요슈아는 겁먹은 어조로 말했다. 코간 산적단의 포위망을 빠져나온 것도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그의 눈에 이칼롯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마법사가 사령술로 시체를 일으켜 조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칼롯은 한숨을 푸욱 쉬고는 말했다.


“...드디어 만났군...요슈아...”


그때 앙칼진 울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이칼롯은 요슈아의 어린 딸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으아아앙! 엄마!!”


그제서야 요슈아도 이칼롯의 왼손에 들린 게 이자벨라의 목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가 너무나도 공포스런 몰골을 하고 있는 까닭에 미처 시선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칼롯의 오른손이 서서히 허리춤으로 이동했다. 요슈아가 경악하여 딸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쿠욱. 어린 아기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요슈아가 유디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는 등 한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길게 찔렀다. 피가 말라붙은 뺨에 다시 새로운 피가 튀었다.


“.....!”


요슈아의 얼굴이 공포와 분노로 기이하게 뒤틀렸다. 축 늘어진 딸의 사체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아내의 목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유디가 죽는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이칼롯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이칼롯이 의도한 바였다.


“으으...윽...이칼롯...제르비안...!”


텔슈피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요슈아는 잠시 후 자신의 목을 날릴 그 연노란 검신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어떻게 발버둥을 쳐볼까, 아니면 목숨을 구걸해볼까 궁리하다가 이내 체념했다. 가라앉은 이칼롯의 눈동자가 그 어떠한 타협도 없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침묵, 그리고 침묵. 진저리나는 정적이었다.

가슴에 칼이 들어오기 직전 요슈아는 덧없는 조소를 띄웠다. 대체 어떻게 그가 이곳까지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

푸욱. 그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푸욱. 둑이 무너진 것처럼 피가 흘러넘쳤다. 푸욱. 심장은 이미 정지했건만, 텔슈피드는 쉬지 않고 요슈아의 몸을 찔렀다.

푹, 푹, 촤악, 서걱, 서걱.

이칼롯을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감정이 폭발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피, 내장, 살점이 한데 어우러져 침대 위를 수놓았다.


“윽...우윽...”


피범벅이 된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힘에 부쳐 그만 멈추려 하다가도, 죽은 여동생과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시체를 난도질했다. 그렇게 백여 번을 내리쳤을까, 요슈아의 사체는 거의 다졌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땡그랑. 텔슈피드가 맑은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심판이 끝나자 지금껏 이칼롯을 이끌었던 힘이 눈 녹듯 사라져갔다. 무릎이 푹 꺾이고, 눈앞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낸 그에게 기다리는 것은 고요한 죽음뿐이었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이칼롯은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쏟아지는 저녁노을 빛을 응시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단 말인가. 정말 지독하게 긴 하루였다. 밖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부산했지만 그에겐 꿈속의 환청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


“용태는 어떻소?”


석조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가이잘모는 간수를 재촉했다. 어둡고 습기로 가득 찬 지하 감옥이다 보니 횃불을 쬐고 있어도 몸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간수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게....의식은 돌아왔습니다만 통 아무 말도 안 해서...아델하트 경이 없었다면 재심할 필요도 없이 처형됐을 겁니다. 항변을 하라 해도 입만 꾹 다물고 있으니 원...”


“...충격이 컸던 거겠지.”


이칼롯이 수용된 감옥은 귀족 전용으로 설계된 거라 햇빛도 들어오고 평수도 넉넉했으나 그렇다고 사람 살기에 적합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곳곳에 쥐며 벌레들이 돌아다녔고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곰팡이가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칼롯은 감옥 구석에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간수가 바로 앞에 불을 가져갈 때에도 푹 숙인 고개는 요지부동이었다.


“제르비안 경, 손님이 오셨습니다.”


예상대로 반응은 없었다. 간수는 혀를 끌끌 차며 앙상하게 야윈 그의 몸을 훑었다. 촉망받던 기사의 말로는 너무나 비참했다.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가이잘모가 나섰다.


“이칼롯, 날세. 가이잘모.”


‘가이잘모’라는 이름에 목석처럼 굳어 있던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전방을 응시했을 때, 간수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기분에 꿀꺽 침을 삼켜야 했다. 죽은 시체마냥 공허한 눈동자.


“...부단장님.”


“좋아보이진...않는군. 몸 상태는 어떤가?”


“.....”


가이잘모는 짧게 콧김을 내쉬었다. 얼마 전까지 기사단 본부에서 찻잔을 기울이던 사이인데, 이렇게 철창을 사이에 두고 대면할 거라 누가 예상인들 했겠는가. 이칼롯이 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이자 그는 철창을 등받이 삼아 기대어 섰다. 굳이 돌아오는 대답이 없으면 혼잣말이라도 할 심산이었다.


“단 하루 동안 총 87명의 인명을 살상. 그중에는 귀족 다수와 기사, 무고한 일반인도 포함. 특히 폴크가의 남작 요슈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자당함. 피의자는 이토록 흉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재판 시 일언반구의 참회도 하지 않음. 이 극악한 죄질을 고려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거나 사형시키는 게 마땅하다고 사료됨. 처음 재판 때 심판관이 기록한 자네의 보고서라네. 마음에 드나?”


“...면목...없..”


“이칼롯, 난 자네를 문책하러 온 게 아닐세. 어째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건가? 요슈아가 이번 사건의 주모자라는 것을.”


“.....”


“자네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직접 현장을 조사했지. 요슈아의 집무실 서랍에 그가 코간 산적단과 결탁했음을 증명하는 편지가 있었네. 그가 뜨내기 용병들을 반란군으로 위장시킨 사실도 확인했지. 다만...코간 산적단의 잔당이 하나라도 살아있었다면 더 일이 편했을 거야. 자네가 아주 깔끔하게 몰살시키는 바람에.”


“.....”


“...대답하기 싫다면 자네가 왜 그토록 침묵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겠네. 어쨌든 조사보고서를 심판관에게 제출한 상태니 곧 재심이 이루어질 거야. 그래도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경위가 어찌 됐든 자네가 죽인 사람 중엔 무고한 일반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어. 이 죄를 피해가긴 어렵겠지.”


이칼롯은 길게 눈을 감았다 뗐다. 형량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그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가이잘모가 직접 나서 자신을 변호해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던 건 살아야 할 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병실 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지독한 상실감을 맛보았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죽여야 할 원수도 사라져버렸다. 감옥에 이송된 후에도 죽은 유디를 떠올리며 몇 번이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는 살아있어야 할 목적을 잃어버렸다.


“죄송합니다.”


무미건조한 사과였다. 가이잘모는 등을 돌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칼롯은 굳이 시선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용서는 피해자들의 영정 앞에 빌게. 그게 자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야.”


“....웃기지 마십시오.”


가이잘모의 눈썹이 씰룩였다. 이칼롯이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형형한 살기를 내뿜은 것이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단지 눈만 치켜뜬 것인데도 옆에 있던 간수는 사람을 불러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이칼롯이 어금니를 빠득 깨물며 말했다.


“죄송한 건 부단장님께 심려를 끼친 것, 그리고 기사단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것입니다. 후회는 하지만 그건 제가 죽인 자들에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그때도 저는 거리낌 없이 요슈아와 그의 가족을 죽일 겁니다.”


“이칼롯...자네!”


“부단장님이 뭘 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저는 눈앞에서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해당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가이잘모는 뭔가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칼롯과 같은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들은 상처 입은 동물과도 같아서, 타인이 다가서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젊은 기사에게 어떠한 말도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는 깊이 탄식했다.


“그래...그래도 기운은 펄펄한 것 같아 다행이군.”


“....”


“재심은 나흘 뒤에 열릴 거야. 결과가 꼭 좋지만은 않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게. 힘들어도 식사는 꼭 챙겨 먹고.”


가이잘모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그를 뒤로한 채 등을 돌렸다. 지금껏 못 볼 꼴을 수도 없이 봐온 그였지만, 이칼롯의 경우처럼 가혹하고 잔인한 경우도 없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평생 그를 짓누를 게 틀림없었다. 왜 저 가련한 청년이 그런 시련을 겪어야만 했는가. 가이잘모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그와 같은 길을 갈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가족의 일은...유감일세.”



재심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배심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사건의 경위며 이칼롯의 죄를 읽어나갔다. 늙은 관리들이 침을 튀기며 말하는 동안 그는 무심하게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 때문에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에 과격하게 행동한 피고의 행동은 이해가 간다. 요슈아 폴크를 죽인 것도 참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죄 없는 이자벨라와 에블린을 죽이고, 전후사정도 설명하지 않고 저택에 침입하여 이를 저지하려는 사병들과 집사를 살해한 죄는 무겁다. 기사이자,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귀족의 지위에 있던 것을 고려할 때, 피고의 분별력 없는 행동은 필시 후에 화를 초래할 여지가 있다. 때문에, 그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고 백작의 지위를 박탈할 것을 판결하노라.”


대충 흘려듣고 있던 그였으나 판결을 들을 때만큼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모든 재산 몰수, 귀족 지위 박탈. 그야말로 요슈아가 바라던 상황이 아닌가. 그가 이 나라에 귀족이 넘쳐남을 지적했던 것도 그제야 수긍이 갔다. 배심원들은 어떻게 귀족 하나를 몰락시키고 자신들이 잇속을 챙길까 궁리하였던 것이다.

이칼롯은 겸허하게 판결을 받아들였다. 돈이 있은들 어디다 쓸 것이며 귀족으로 남아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냥 굴러다니다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죽어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이잘모가 아직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도 적지 않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천정기사단 부단장, 가이잘모 아델하트, 이칼롯 제르비안의 변호인으로서 심판관님에게 발언을 허락받고자 합니다.”


“허락하오.”


“재산 몰수라 함은 토지를 비롯한 모든 사유재산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소. 현물을 포함하여 자택, 가구, 애완동물까지도.”


“그렇다면 몰수 대상에서 한 가지 물품을 제외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천둥추적자 텔슈피드입니다.”


객석에서 웅성거리며 소란이 일어났다. 배심원들도 당황한 듯 이리저리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오직 이칼롯만이 가이잘모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가이잘모는 당당하게 선 채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칼롯은 어째서인지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침울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판관이 말했다.


“이유를 듣고 싶구료.”


“죄를 벌하는 심판관님의 판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텔슈피드는 성왕 우드빌 폐하께서 제르비안 가문에 영구적으로 하사하신 검입니다. 때문에 텔슈피드마저 몰수함은 성왕의 뜻에 반하는 바, 이를 제외시켜주시길 청합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현 국왕이신 란도스 폐하의 허가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으음...”


심판관은 골치 아픈 문제를 만났는지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이잘모의 항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고, 무엇보다 천정기사단의 실권자를 적으로 돌렸다간 후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또 그렇다고 선뜻 허락하기엔 텔슈피드의 가치가 너무 높았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좋소. 텔슈피드의 소유권은 그대로 두는 걸 허락하노라.”


그렇게 재판이 끝나고, 이칼롯은 간수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간수장이 족쇄 열쇠를 허겁지겁 찾는 동안 그는 한 무리의 인부들이 동쪽으로 향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제르비안 가문의 재물을 회수하러 가는 거라는 설명을 듣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입고 있는 헌옷과 연노란 마법검뿐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이잘모가 그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그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교수형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칼롯은 그가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복잡한 감정 때문인지 그는 가이잘모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부단장님...”


가이잘모는 굳은 얼굴이었다. 그의 경직된 표정에서 이칼롯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를 대강 짐작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변호해준 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거였다면, 이제는 기사단 간부로서의 역할을 할 때였다. 그가 말했다.


“단본부에서도 자네에 대한 처분이 내려졌네. 자네는 오늘자로 기사작위를 박탈당했으며, 기사단에서도 영구적으로 제명당했네. 아마도...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테지.”


이칼롯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명당할 거라는 건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만사가 무기력해진 그에게 기사작위 따위 어떻게 되든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다만 그가 어째서 텔슈피드만은 빼앗기지 않게 도와주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진즉에 제명당하리라는 걸 알고 계셨으면서...어째서입니까? 제게 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가이잘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칼롯의 쳐진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자네는 이제 귀족이 아니야. 기사는 더더욱 아니고.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네. 기사가 아니어도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저는 별로...”


이칼롯은 자신에게 미래 따위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노력해준 가이잘모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텔슈피드의 손잡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토록 미쳐 날뛰던 마법검은 이제 아무런 반응도 않는 평범한 쇠붙이가 되어 있었다.

가이잘모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느꼈겠지만, 작위니 재산이니 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살아있는 한 인연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네. 내가 아는 친구도 높은 지위를 버리고 평민의 삶을 택했거든. 미래가 없다고 느끼겠지만, 그건 좀 더 살아보면서 판단하게나.”


이칼롯은 그의 악수를 받으며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었다. 가이잘모는 말 위에 오르며 북쪽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다가 피식 실소를 머금더니, 이칼롯에게 노잣돈 한 뭉치를 던지며 말했다.


“만약 살아보다가 정말로 미래가 없다면, 내 지인 한 명을 찾아가보게. 델키아의 람카디스 클로람이라는 이름이지. 분명 자네에게 큰 도움을 줄 걸세.”


이칼롯은 마지막 기사의 예를 다해 깍듯이 경례했다. 그러나 람카디스란 이름은 몇 번 입 안에서 되뇌다 이내 흐릿해졌다. 그보단 먼저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가이잘모의 모습이 언덕너머로 사라질 즈음 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목적지는 크렘벨이었다.

그가 성문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들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의 주인이었던, 그리고 이제는 땡전 한 푼 없는 평민이 되어버린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개중에는 그날 그가 보여준 흉포한 모습을 잊지 못하고 창대를 고쳐 쥐는 이도 있었다.


“그...저, 크흠! 이곳은 국왕 직할령의 도시로, 지금은 지스카르 공작께서 임시로 통치직을 맡고 있습니다. 도련...아니, 귀...귀공께서는 어쩐 일로...”


이칼롯의 말없이 그 병사를 응시했다. 그는 경비병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아마도 상부에서는 자신이 옛 영화를 잊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와 텃세를 부릴 것을 대비해 철저히 지침을 내린 거겠지. 아니, 어쩌면 도시로 입성하는 것조차 금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로가 당황하여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경비대장이 인파를 헤치고 나왔다. 그는 이칼롯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여타 병사들보다는 훨씬 융통성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이리로 오시지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경비대장은 그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칼롯은 성 밖 인근 야산에 마련된 세 개의 봉분 앞에 섰다.


“도련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시신을 몇날 며칠이고 방치하는 것도 경우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유족이 아무도 없는 관계로...장례 진행은 천정기사단의 아델하트경께서 맡아주셨습니다.”


“고맙네.”


이칼롯은 부모님의, 그리고 여동생의 무덤에 차례로 절을 올렸다. 이곳에 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는데, 막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가슴 한 쪽이 못 견딜 정도로 시릴 뿐이었다. 무덤을 쓰다듬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디의 묘비 앞에 서자 이칼롯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혹시 토끼 자수가 놓인 스카프 못 봤나?”


“네? 보진 못했습니다만 아마도...집행부에서 온 사람들이 들고 갈 수 있는 건 모조리 가져갔으니까요.”


“그런가..”


그는 체념하듯 말했다. 하긴, 그게 남아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여동생을 사지로 몬 자신에게 그녀의 유품을 품을 자격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평정을 되찾자 이칼롯은 야산 너머 드넓게 펼쳐진 황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크렘벨에 용무는 없었다.


“그만 가야겠군. 잘 지내게.”


“에...벌써 가시는 겁니까? 도련님,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돌아오십시오. 제게 제르비안은 언제까지든 백작가로 기억될 겁니다.”


그의 결의에 찬 다짐에 이칼롯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충성심은 고맙지만, 그건 이제 덧없는 가치일 뿐이었다. 아마 자신이 크렘벨로 돌아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름으로 부르라고. 평민에게 도련님이란 칭호는 낯간지러워.”


이칼롯은 크렘벨의 성곽을 뒤로한 채 정처 없이 떠났다. 평생 해본 일이 없는 도보여행이었다. 산을 만나면 봉우리를 넘고, 강을 만나면 다리가 나올 때까지 강변 가를 따라 걸었다. 갈 곳도 돌아올 곳도, 머무는 곳도 없었다.

그렇게 중부지방을 전전하다 그는 용병 일을 시작했다. 계기는 단 하나뿐인 소지품이 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걸로 노잣돈을 벌고, 그러다 죽어 나자빠지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제리온을 만난 건 그 후로 두 달이 지난 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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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7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2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1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10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5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4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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