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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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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7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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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DUMMY

그녀를 떠나보내고 나서 디리터, 이칼롯, 알룬도는 왕이 있는 편전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로지르는 대전의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간혹 마주치는 궁녀들은 전부 겁에 질려 있었고, 몇몇은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루도와 레미나가 벌인 헤프닝만으로 치부하기엔 그들의 표정에 깃든 공포가 보통이 아니었다. 죽음을 경험한 것 같달까? 아니면 봐서는 안 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 같은-.

일단 셋은 그들을 무시하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이윽고 편전으로 통하는 중앙회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궁녀들이 목격한 공포의 근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에...루도가 한 건 아니겠지...이거?”


“말도 안 되는 농담은 그만둬.”


알룬도가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러 전장을 돌아다녀 본 그였지만, 이렇게 역겨운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디리터는 숨을 참고 말았다. 복도는 이미 내장이며 살점으로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도축장의 풍경도 이보다 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10명, 아니 15명쯤 될까? 시신이 너무 엉망으로 뭉개져 있어 인원수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살점 사이로 어렴풋이 반짝이고 있는 갑옷 조각이 유해의 주인이 근위대였음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디리터가 머리가 완전히 날아간 시신을 보며 말했다.


“엄청나게 큰 둔기로 맞은 모양인데. 고르딘이 아직 남아있었나?”


“...지저분한 걸로 치면 고르딘보다 위인데. 이것 봐라, 여기 형씨는 이빨 같은 걸로 목을 물어 뜯겼군.”


“아 제발...그 슬러터니 뭐니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늘 정통으로 들어맞는 모양이다. 이칼롯이 안경으로 악마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말했다.


“악마 맞아. 하나는 편전에 있고, 하나는 여기서 9시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야. 전자가 나이트셰이드, 후자가 아머드원이로군.”


어느 쪽이든 슬러터와 맞붙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 이칼롯이 서쪽을 가리킬 때 즈음, 마침 그 방향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귓가에 와 닿았다. 이와 맞물려 무언가를 부수는 듯한 파열음도 들려왔다. 아마 아머드원이라는 악마가 뭔가 일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악마를 내버려둔다는 게 꺼림칙하긴 했지만, 일단은 루도와 레미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막 시체 밭을 지나쳐갈 즈음, 문득 이칼롯의 뇌리를 스치고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덫에 걸린 사람처럼 우뚝 멈춰선 채로 아머드원이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그가 말했다.


“잠깐, 저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지?”


“왜? 루도가 저기 있을까 봐?”


“알룬도, 지도 좀 꺼내보시오.”


알룬도가 주춤거리며 궁전의 평면도를 꺼내 들었다. 워낙 손이 지저분한 탓인지 그가 지도를 펼칠 때마다 피며 진흙이 양피지 가장자리를 잔뜩 더럽혔다. 그는 일행이 서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서쪽 방향으로 손가락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좀 더 가면 연회장이 나오고, 친위대 숙소랑 지하감옥, 그리고 무기고가 있군.”


“...지하감옥?”


디리터의 안색이 대번에 새하얗게 질렸다. 어째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인지! 알룬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빌어먹을, 아망초양이 있는 곳이야.”


“디리터, 알룬도과 함께 데루루피아를 구해. 루도 쪽은 나 혼자 가볼 테니까.”


이칼롯의 판단은 즉각적이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재빨리 인원을 분산시켰다. 디리터는 그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하여 물었다.


“괜찮겠어? 혼자 가도.”


“왕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면 근위대도 우리를 도울 거야. 그럼, 행운을 빈다.”


이칼롯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건투를 기원하고는, 편전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디리터와 알룬도도 즉각 지하감옥 쪽으로 몸을 틀었다. 갑작스런 임무분담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세 사람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노련하게 대처했다.

아머드원을 찾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녀석이 난장판을 부리고 지나간 자리엔 으레 핏자국과 살점이 가득 흩뿌려져 있었다. 디리터는 그 살풍경을 이정표 삼아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막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는 낯설면서도 또 익숙한 광경에 몸서리를 쳤다.


“후퇴, 후퇴하라! 기본 무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쟈콤! 부상자 추려서 후방으로 빠져. 누가 가서 장창 좀 가져와!”


“소대장님 화살이 다 떨어졌습니다!”


전장을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고, 비릿한 피 냄새가 이미 마비된 후각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디리터는 반쯤 입을 벌린 채 연회장의 정 가운데 선 악마를 바라보았다.


“우와...저거 진짜...”


두 번째로 만난 악마는 신장만 해도 2미터가 훌쩍 넘는 거구의 소유자였다. 비단 키만 큰 게 아니라, 체구도 엄청나 팔뚝의 지름만 1미터가 넘어갈 지경이었다. 놈이 휘두르는 주먹은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것에 맞은 병사는 갑옷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삽시간에 짜부라졌다. 대전에서 본 광경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체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담청색의 갑옷. 온몸을 빈틈없이 두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피부라고 봐야 하겠지만, 병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는 철벽의 갑옷이었다. 화살을 물론이요, 전력으로 휘두른 창과 도끼도 놈의 갑옷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아머드원은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신나게 병사들을 찢어발기는 중이었다. 놈의 갑주 앞에 근위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젠장...고르딘에 트롤에...난 왜 이딴 놈들만 걸리는 거야.”


디리터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쓰윽 훑었다. 가뜩이나 무기상태도 좋지 않은데, 저런 것을 공격했다간 칼이 한순간에 두 동강 날지도 몰랐다.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빠져있던 병사 하나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당신들은 누구요?! 괜히 구경하다 목숨 잃지 말고 어서 도망가시오!”


“아, 도우러 왔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죠?”


“...도우러 와? 당신들 용병이오?”


“뭐 그렇게 봐도 되고...”


워낙 주위가 난장판인지라, 병사들은 경황이 없어 디리터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디리터 또한 근위대의 조력을 받아 나쁠 것 없으니, 일단 여기서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쟈콤이라고 이름을 밝힌 병사는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허벅지에는 방패 조각으로 보이는 날붙이가 두어 개 박혀 있었는데, 지혈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피가 배어나왔다.


“우리는 근위대 제2소대 소속 병사들이오. 레미나 공주님의 명령으로 병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저 괴물에게 습격당했소. 혹시나 묻는 건데, 당신들은 저 빌어먹을 생물이 뭔지 아시오?”


“나도 저런 건 처음 봐서 뭐라 설명하긴 힘든데...일단 악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악마?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젠장 세상에나, 악마라니.”


쟈콤은 기가 막혀 길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즈음 아머드원의 공격을 피해 뒷걸음질치던 병사 하나가 디리터와 등을 부딪쳤다. 근위대는 이미 물리공격으로는 녀석에게 타격을 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원형으로 넓게 포위한 채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알룬도가 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악마의 특징이 뭡니까? 싸워봤으니 뭔가 알 거 아닙니까.”


그러자 쟈콤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특징이고 뭐고, 저 갑옷 때문에 아무런 공격도 먹히질 않소!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금속인지, 벌써 우리 소대 태반이 당했다오. 또 완력은 말도 안 되게 세서...”


“녀석이 뭘 노리는 건지 아십니까?”


“썩을, 말도 안 통하는 놈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다니는데 뭘 알아낸단 말이오! 중앙 회랑부터 여기까지 쫓겨 오다시피 싸우고 있을 뿐이오. 대체 지원 병력은 언제 도착하는 건지...!”


‘서쪽으로 이동...역시 아망초양을 노리는 건가?’


디리터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근위대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십여 명의 병사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 병력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이들이 아머드원을 막아준 덕에 데루루피아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일 테니, 스러져간 병사들에게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위로를 건네야 할지 얄궂은 입장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머드원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병사들이 전의를 잃자, 직접 공세에 나서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쟈콤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가 달아난다 해도 주위에 전투불능의 병사들이 많아 피해가 삽시간에 불어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디리터는 쟈콤을 후방으로 밀침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알룬도 또한 그와 박자를 맞추어 콤비를 이루었다. 저런 괴물과 또 싸우게 되다니, 차라리 곰이나 늑대에 쫓기던 산중생활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디리터가 말했다.


“고르딘이랑 비슷한 타입이겠지? 제스터처럼 뭐 숨겨둔 무기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길 빌어야지. 온다!”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머드원이 그 거대한 팔을 추어올린 것이다. 역시 구경만 하는 것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직경 1미터의 바위가 자신을 노린다고 깨달은 순간, 디리터는 하마터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으아아아?!”


콰드득! 대리석 바닥이 여지없이 뭉개졌다. 찰나의 순간 디리터는 땅바닥에 패인 커다란 구멍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과장 좀 보태어 주먹 하나가 제리온의 마법 한발과 엇비슷한 위력이었다.

녀석의 자세가 벌어진 틈을 타 알룬도가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녀석의 겨드랑이를 노리고 그대로 시미터를 찔러 넣었다.

하지만 시미터는 까앙, 하는 정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튕겨 나왔다. 그야말로 바위를 후려치는 감각에 그는 입을 떡 벌렸다.


“이건 고르딘보다 더 하잖아!”


뒤이어 디리터가 놈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사람이었으면 동맥이 끊길 정도의 일격이었지만, 녀석의 목에선 쿠르륵, 하는 칼 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디리터는 날이 서너 개 빠진 투핸드소드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미치겠구만...”


일단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자 두 사람은 얼른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재차 들어온 아머드원의 주먹이 연회장의 외벽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고, 텁텁한 빗방울이 건물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크르륵...”


악마의 입에서 묘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손쉬운 먹잇감을 색출하려는 듯 아머드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흡사 짐승과도 같은 작태. 같은 슬러터라도 급이 있는 것인지, 뛰어난 지능을 보유하던 제스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저걸 어떻게 잡나.”


“...제리온이 있으면 좀 수가 생길 것도 같은데.”


“이미 기절한 놈을 무슨 수로 데려와?”


둘은 녀석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시간을 벌었다. 마침 넓은 연회장이 교전장소인지라 몸을 피할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사이 근위대는 부상자를 추려 후방으로 이송했다. 전부 정리해놓고 보니 남은 숫자는 디리터, 알룬도를 합쳐 모두 14명이었다.

알룬도가 재합류한 인원수를 헤아리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는 턱도 없을 거 같은데. 아니, 애초에 뭐 공격이 들어가야...”


그즈음 디리터는 엉뚱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무너진 벽 너머, 어스름 짙은 궁전 외부를 향한 채였다. 휘몰아치는 빗줄기 사이로 궁성 외곽의 첨탑이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디리터의 눈동자가 묘안으로 반짝였다.

그는 다짜고짜 근처의 병사 하나를 잡아다 물었다.


“이봐요, 여기 첨탑에 발리스타(Ballista)있죠? 그거 지금 가져올 수 있습니까?”


“예? 있긴 있습니다만...그건 고정식이라 운반하기가.”


“윽...이런.”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다른 병사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첨탑 것은 고정식이 맞지만, 무기고에 바퀴 달린 운반식이 몇 개 있소. 거리상으로도 무기고가 더 가깝고.”


디리터 뿐 아니라 주위의 병사들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발리스타를 뭐에 쓰려고 하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칼이 안 박히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철갑도 가볍게 꿰뚫어버리는 발리스타의 위력이라면 -

쟈콤은 즉각 분대를 나누어 무기고 쪽으로 보냈다. 그 덕에 아머드원을 상대하는 인원은 훨씬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무력하게 손만 빨던 때보단 병사들의 낯빛이 한결 희색을 띠었다.

또한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악마가 생각보다 데루루피아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황상으로 볼 때 지하감옥을 목적지로 움직인 것은 맞지만, 지금 녀석은 근위대를 상대하는 데 모든 흥미를 쏟아 붙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발리스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도 꼭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알룬도가 시미터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이 난장판에서 용케 그런 생각을 해냈군. 난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었는데.”


디리터는 멋쩍게 웃었다. 그동안 워낙 상식을 초월한 인물들과 맞닥뜨리다 보니 자연스레 전투감각이 단련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파훼법이지만, 실전에서는 그걸 얼마나 빨리 추론해내느냐가 생사를 판가름하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디리터는 한 걸음 더 성장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말했다.


“자, 그럼 발리스타가 올 때까지 한 번 버텨보자고. 이것마저 안 먹히면 정말 답이 안 나오겠지만 말이야.”


그의 호기에 반응한 것인지 아머드원이 주먹을 휘두르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섬뜩한 외침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지만, 이제 와 물러서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죽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였다.


***


카카칵. 어두운 석실 사이로 은빛의 궤적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리네는 화상의 통증도 잊은 채 정신없이 무희의 공격을 방어했다. 원체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스텝 하나를 밟는 일도 간단치가 않았다.

내찌르는 공격을 몸을 틀어 피하고, 몸통을 노린 휘두르기를 쳐내길 몇 차례. 마리네는 기회를 노려 재빨리 무희와 거리를 벌렸다. 십여 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몇십 합이나 맞부딪힌 건지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그는 일단 몸 구석구석을 만져 베인 상처가 없나 확인했다. 투기(鬪氣)에 휩싸여 통증을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목숨을 갉아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생채기만 몇 군데 났을 뿐 치명상이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희 쪽이 예상외의 분전에 놀란 모양이었다.


“어라 이상하네. 보통 이 정도 하면 쓰러지던데. 당신, 군인이로군요? 난 근육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무희는 생긋 눈웃음 지으며 빙그르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 묘한 곡예동작을 마리네는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무희가 악마라고 확신한 순간부터 그의 눈은 빈틈없이 그녀의 몸을 훑고 있었다. 악마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그 생김새나 호전성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전투방식. 마리네는 제스터와 붙었을 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놈의 전투방식 - 신체의 촉수를 사용하는 -을 미리 주지하고 있었더라면 로샤단의 피해는 최소화됐을지도, 어쩌면 에레이시아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리네는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더욱 무희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탐색하는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무희는 한층 날을 새워 공격해왔다.


“아, 정말, 난 먹을 것을 찾았지 싸울 상대를 찾은 게 아니라고. 그 소환사도 말이지, 다짜고짜 불러놓고는 파랑 머리 여자를 죽이러 가라니, 어이가 없어 정말. 그깟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에센스로 계약한 주제에.”


까앙, 까앙. 무희는 혼자 분해가지곤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중얼거리며 마리네를 압박했다. 몇 차례 연격을 막아내고서 마리네는 뒤로 물러났다.

무언가 이상하다.

무희의 검술은 날카롭긴 해도 상대를 압도하는 파괴력이 실려 있진 않았다. 또한 제스터처럼 보조무기를 활용해 압박하는 것도 아니라 방어에 집중한다면 마리네 정도의 실력이면 무리 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워도 공격타이밍을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검을 휘두른다는 행위에는 많은 신체기관의 연동이 필요하다. 호흡은 들이마셔야 하고, 어깨의 근육이 움직여야 하고, 무게를 실을 수 있게 보폭도 크게 잡아야 한다. 이러한 사전 동작을 감지해 상대의 공격방향을 예측하는 게 싸움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희에겐 사전 동작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돌연 공격해 오는가 하면, 방향을 전환할 수 없는 공중에서도 기괴한 방식으로 몸을 틀어 검을 내찔렀다. 심지어 검을 내찌르는 순간에도 쇄골이나 삼두근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손보다 검이 먼저 움직인 것처럼.

여기서 마리네는 한 가지 가설에 접근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악마의 특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에. 그는 무희의 자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 복부를 세게 걷어찼다.


“어멋?!”


무희는 1미터 가량을 밀려난 뒤 자세를 가다듬었다. 마리네는 우선 발바닥의 감촉부터 확인했다. 탄력이 느껴지는 피부. 그게 가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한편 의외의 일격에 당해 흥분했는지 무희가 사납게 돌진해 왔다. 그녀는 ‘물어볼 게 있다’던 본래의 목적도 망각하곤 본격적으로 급소를 노리기 시작했다. 목과 명치, 그리고 사타구니. 한층 예리해진 공격에 마리네의 손도 바빠졌다.


“뭐 좋아! 일단 잡아먹고 다른 인간을 찾으면 되지. 그만 버티고 슬슬 죽어달라고!”


“으읏...”


이대로는 몇 초나 버틸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악마의 정체는 고사하고 눈앞의 연격도 막기 힘든 지경이 되자 마리네의 신경은 자연스레 무희를 쓰러뜨리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일단 고루한 가설을 집어던지자 그의 눈동자가 일순 반전했다.

무희의 불규칙한 움직임은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다. 그녀의 몸은 검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렸고, 그때마다 가슴이며 옆구리 같은 신체부위가 무분별하게 노출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리네의 반격으로 그녀의 검이 튕겨 나가고 상체가 크게 젖혀졌다. 그대로 절명시킬 수도 있는 상황. 마리네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무희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푸욱, 하는 감촉과 함께 검은 그녀의 가슴을 여지없이 관통했다.


“앗...!”


하지만 이겼다는 기쁨도 잠시, 강렬한 위화감이 마리네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분명히 심장을 찔렀건만, 무희는 서슬 퍼런 미소를 띤 채 멀쩡히 서 있었다. 다시 확인하니 찔린 상처에서는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죽은 시체를 찌른 것인지, 아니면 인형을 찌른 것인지.

마리네는 서둘러 검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무희의 가슴 속 무언가가 칼날을 붙들고 있어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아차 하는 순간 희어멀건한 것이 명치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서거걱.


“으....아윽!”


마리네는 어금니가 부서져라 깨물어 통증을 참았다. 무희의 검이 명치를 관통하기 전, 양손으로 칼날을 움켜쥐어 막은 것이다. 덕분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깊게 베여 피가 흘러나왔지만, 가슴이 꿰뚫리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검은 마리네의 급소를 1cm가량 남긴 채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바르르 떨리는 무기를 사이에 두고 그와 무희의 눈이 마주쳤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마리네와 달리 무희의 눈은 희열로 들끓고 있었다.

마리네가 말했다.


“뭔가...이상하다 싶었지...악마가 왜 이렇게 평범하게 싸우는지.”


“어라?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어디, 좀 더 말해 봐요.”


“당신...칼이 본체지?”


“캬하하하!!”


날카로운 고음의 웃음소리가 석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 더는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악마는 무희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리네는 놈의 폼멜 부분이 갈라지며 수십 개의 이빨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확인했다. 놈은 블레이드를 타고 흐른 피를 맛나다는 듯이 꿀꺽꿀꺽 삼켰다.


“대단해! 설마 이 짧은 시간 동안 그 정도까지 캐낼 줄이야. 이거 인간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군. 킷킷킷. 하지만 어쩐다? 이미 너는 끝장난 목숨인데.”


악마의 말대로였다. 억지로 칼을 붙들고 있긴 하지만, 그게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것은 마리네도 잘 알고 있었다. 고통에 못 이겨 손을 놓거나 아니면 블레이드에 손가락이 모두 잘리거나. 어느 쪽이든 다음 순간 그의 가슴이 꿰뚫릴 게 자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악마에겐 아직 무기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로 마리네의 롱소드였다. 악마의 인형(무희)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에서 검을 뽑아내는 것을 보며 마리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이 자식...”


“뭐 자기 무기에 죽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지. 하지만 걱정 말라고. 네놈의 살점을 써는 작업은 친히 이 몸이 직접 해주실 테니까.”


무희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로샤단의 인장이 새겨진 롱소드가 지금, 마리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마리네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피해야 하는데, 피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몸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후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한 순간에 마리네의 검을 쳐내고는 악마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검격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에 악마도 어쩔 수 없이 검을 되물릴 수밖에 없었다.

손이 자유로워지자 마리네는 즉각 뒤로 물러났다. 좁은 길목에서 아등바등하느니, 아예 후방으로 빠져 난입자가 활개칠 수 있게 해주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난입자를 향해 외쳤다.


“유미르네, 칼이 본체야!”


얼핏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어구였지만 유미르네는 위화감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무희의 목을 자르려던 그녀는 돌연 방향을 틀어 칼을 노렸다.

마리네를 상대로도 고전하던 악마가 유미르네를 이길 승산은 처음부터 없었다. 놈은 다급하게 검을 움직였지만 그녀의 숏소드에 순식간에 가로막혔다. 유미르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에스터크를 숏소드와 X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그대로 검을 찍어 눌렀다. 여기에 발을 놀려 무희의 손목을 걷어차니 검은 여지없이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수고수고 마리네. 블레이드 댄서라고 했나? 슬러터치곤 너무 약한데.”


“!!...네년, 나를 알고 있는 거냐?”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고. 자 이제 어쩐다? 망치 같은 걸로 부러뜨리면 되나?”


유미르네는 악마가 움직이지 못하게 칼등을 단단히 찍어 눌렀다. 블레이드 댄서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버둥댔지만, 그녀가 칼끝부터 손잡이까지 빈틈없이 누르고 있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리네는 단 몇 초 만에 악마를 제압하는 그녀를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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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2) +5 15.05.11 961 26 21쪽
244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 +4 15.05.11 949 23 18쪽
243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完) +2 15.05.11 1,067 24 20쪽
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7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7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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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1 2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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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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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8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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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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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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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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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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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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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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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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