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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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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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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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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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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DUMMY

특무별동대의 창단을 기념하는 파티가 있던 날 밤, 제리온은 여전히 금서관리고를 뒤지고 있었다. 꼭 참석하라는 레미나의 당부를 부상 탓으로 가볍게 묵살하고서, 그는 신의 아이, 특히 예토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부지런하게 책을 헤집어댔다. 학생 시절에도 이렇게 책을 많이 읽던 시절이 있었던가. 국왕복원이 일단락된 뒤로 그의 발자취는 왕실도서관과 숙소를 오락가락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최근에는 도서관 내 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딱히 결과물을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의 아이의 정보가 현 로샤단에게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리온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는 시간을 아껴가면서 자료수집에 몰두했다. 이제 곧 겨울. 제스터에게 당한 부상도 거의 완치되었다. 특무별동대라는 왕의 후광까지 업은 지금, 언제 당장 카잘산맥으로 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때였다.

그렇기에 제리온은 수도를 떠나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아놓고 싶었다. 가슴 한편에 밟히는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그 끝에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키워드는 압축해놓았다. 리카르고 샤르커드, 에리안델 크류네, 세르딕 로샤단, 람카디스 클로람, 그리고 에스터페른의 아이 예토.


“...빌어쳐먹을, 눈 아파서 더 못 읽겠네.”


늦은 시각까지 램프불빛에 의지했던 탓일까, 눈꺼풀이 따가워져 제리온은 잠시 뒤로 물러났다. 예토의 기록을 찾아 건국초기의 사서란 사서는 전부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그것도 모자라 출입객의 이름을 기록해놓은 행정장부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이건 이거대로 글씨가 너무 깨알 같아 쉽게 피로가 밀려왔다.

성과 없는 노력은 지치기 마련이다. 제리온은 잠시 한숨 돌릴 겸 파티에서 빼돌린 와인병을 쭉 들이켰다.


“후, 이건 좀 아닌가...차라리 그람을 만나 물어보는 게 더 빠를지도.”


“죽지 못하는 그람 말인가? 아무리 나라도 그 괴물과 마주하는 건 좀 곤란한데.”


“그 해골은 예토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이렇게 하루 종일 책장이나 뒤집는 것보단 훨씬 시간절약이지. 어, 생각해보니 케리아돌이랑 타이달루크도 있네. 빌어먹을 작자들, 알고 있는 건 재깍재깍 얘기해주지 않고 사람을 고생하게 만드네.”


“...그 타이달루크가 그 타이달루크는 아니겠지?”


란돌이 책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제리온이 그의 질문에 피식 조소하고는 병째로 술을 넘겼다.


“허황된 얘기를 잘도 믿네. 보통은 구라치지 말라고 의심하는 게 먼저라고.”


“얼마 전에 악마 시체까지 본 참인데, 뭘 못 믿겠어?”


“킥킥킥...기사답지 않게 사고가 트여 있구만.”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첫 대면이 있었던 후로 란돌은 계속해서 도서관을 찾았다. 대개 그를 상대하는 건 루도와 마리네였는데, 둘이 여행준비로 바빠지면서 제리온이 그와 말상대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매사에 경계심이 많은 그였지만, 일단 마음을 열면 급속도로 친해지는 특징도 있어서 통성명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란돌은 이놈저놈 칭할 정도까지 막역해졌다.

일단 말이 트이자 제리온은 적극적으로 란돌을 부려먹기 시작했다. 한낮 레인저가 고위기사를 부린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란돌은 군소리 없이 따라왔다. 그는 지식이 필요했고, 제리온이 시키는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신의 아이’의 실체에 도달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보의 통제는 필요했고, 제리온 역시 그 필요성을 주지했다. 란돌은 이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야 물론이지. 하물며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라면야. 난 그저 알아도 상관없는 정보면 돼. 그리고 그런 하찮은 정보라도 쉽사리 발설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말 한 번 잘하네. 그 잘나게 뚫린 입을 퍽이나 믿겠어.”


“으음...넌 참 염세적이군. 그냥 믿어주면 안 되는 건가?”


“네놈도 참 지랄맞게 긍정적이다. 기사라는 작자들은 다 그렇게 순진하냐?”


둘은 이런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누며 지루함을 달랬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금서관리고 안에서도 들리던 파티의 열기가 점차 수그러들어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음악단의 연주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추어 란돌이 한 문서꾸러미를 책상 앞에 올려놓았다. 제리온의 지시로 가져온 금서관리고의 출입대장이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이곳을 드나든 사람들의 내역이다. 더불어 그 사람들이 뭘 열람했는지도 나와 있지.”


제리온은 군말 않고 즉시 출입대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가 이 자료를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보다 먼저 신의 아이를 조사했던 사람들, 즉 세르딕과 람카디스의 행적을 좇기 위함이었다. 두서없이 책을 뒤지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니, 두 사람이 읽었던 자료를 찾아 그것부터 조사해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세르딕과 람카디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대장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제리온은 양피지를 꺼내어 그들이 열람했던 책의 제목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신정론(神政論)은 읽었고. 「은빛기사단의 진실」과 「그곳에 인간은 없었다」인가...한 번 찾아봐야겠구만. 어랍쇼, 세르딕 이 작자는 뭐야? 「성녀 에리안델의 나신」? 이걸 책이라고 쓴 작자도 어이없지만 읽은 인간도 참...”


“확실히 그건 금서로 지정될 만하네.”


“무슨 소리야? 양서지 이 머저리야.”


세르딕과 람카디스가 조사한 책자는 꽤 많았다. 그중에는 제리온이 이미 읽은 것도 있었고,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었다. 제리온은 일단 적어둘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양피지 한 면이 다 채워질 정도로 펜을 놀렸다.

그러나 그때 무언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제리온은 부자연스러운 대장의 기록에 눈썹을 치켜들고는,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말했다.


“어이 란돌, 람 대장이 기사단을 떠난 건 세르딕을 만나고 난 다음이지?”


“그렇지. 그의 기사단 탈퇴 사건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니.”


“그게 언제지?”


“아마 501년이었나? 지금으로 따지면 16년 전이로군.”


란돌은 옛 무인들이 남긴 에피소드에 젖어 정신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홀연히 나타나 국왕을 알현한 세르딕, 차기단장 자리까지 걷어차고 그를 따라간 람카디스, 그 모든 걸 윤허한 란테리크. 하나같이 상식을 초월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제리온은 그들이 보여준 낭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란돌의 답변을 들은 직후부터 그의 관자놀이가 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501년이라고? 이건 뭔가 이상한데...”


“응? 뭔데 그러지?”


제리온은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없이 출입대장의 한쪽을 펴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갑작스런 문자의 향연에 란돌은 당황했지만 곧 찬찬히 문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장에서 특별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람카디스가 읽은 책도, 세르딕이 읽은 책도 전부 특출난 것은 없었으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혹시 세르딕이 열람한 「이그나티어스의 밤」을 말하는 건...”


“멍청하긴, 그딴 거 말고 연도를 보란 말이다.”


그는 콧잔등을 긁적이며 이름 왼편에 기입된 출입년도를 살펴보았다. 이윽고 제리온이 발견한 것과 같은 이질감과 마주하자 그의 눈 역시 의혹으로 크게 떠졌다.


“어...라?”


제리온은 빼앗듯이 출입대장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자신이 본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 문서의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가 주목하는 부분의 내용은 이러했다.



<>

498년 10월, 람카디스 클로람, 「리크나이츠 건국의 그림자」

.

.

.

499년 2월, 람카디스 클로람, 「은빛기사단의 진실」

499년 5월, 람카디스 클로람, 「신정론」

.

.

501년 1월, 세르딕 로샤단, 「수정, 그리고 에센스」

.

.

.

<>




"정말 죽어서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니까 이 인간은...“


람카디스가 왕실기사단을 탈퇴한 것은 501년. 세르딕의 사상에 감화된 그가 함께 신의 아이를 찾아 나선 것이라는 게 지인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건 억측해 불과하다는 증거를, 지금 제리온이 찾아낸 것이다.

람카디스는 세르딕과 만나기 전부터 신의 아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왕실기사단에 임관한 초창기부터.



****



계절은 어느새 겨울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달력이 12월로 바뀌자 그에 편승하듯 아침바람도 한층 쌀쌀해졌다. 사람들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오든지 그리 큰 볼일이 아니면 아예 집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한적한 풍경이기 때문인지 라키시아 중앙을 가로지르는 전령의 말발굽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아리가 되어 도시 가득 울려 퍼졌다.

일행은 기나긴 휴식을 끝마치고 드디어 카잘산맥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루도의 발목골절도 완치되었고, 일행을 괴롭히던 여로의 문제도 특무별동대의 창설로 말끔히 해결되었다. 로샤단의 현상수배서는 모두 회수되고, 대신 아케니온을 척살하라는 포고령이 곳곳에 뿌려졌다. 아직 안개송곳니의 위협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얼마 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그들이 쉽사리 일행을 급습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걸림돌 하나 없는 출정식이 되어야 할 터였다.

일행은 여행채비를 끝마치고는 떠나기 전 국왕을 알현하기 위해 궁전에 들렀다. 그런데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두런거리면서, 하지만 그 내용을 숨기려는 듯 부산하게 사위를 살펴보는 모양새가 일행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좋은 일이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일이 터진 모양인데.”


“아까 그 말발굽 소리랑 연관이 있는 거겠지. 전황이 불리해졌다거나.”


“그럼 동부전선이 붕괴된 건가? 크렘벨까지 무너지면 수도까지 직통인데.”


“또 모르지. 천정기사단이 북진하고 있다는 낭보일지도.”


정규군 출신답게 루도와 디리터는 궁전의 상황을 살피며 제멋대로 전황을 예측해댔다. 그들의 촐싹거림을 종식시킨 것은 제리온의 조소 섞인 한 마디였다.


“신경 끄셔. 니들이 떠든다고 뭐가 바뀌냐?”


일행은 국왕을 만나기 위해 먼저 궁전 입구의 경비병에게 알현신청을 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란도스와의 만남은 빨리 이루어졌다. 건물 밖으로 나오던 지스카르가 일행을 발견하고는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오, 자네들.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군. 나랑 같이 좀 가세.”


이칼롯이 말했다.


“찾다니...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자세한 건 국왕폐하께서 직접 설명해 주실 걸세. 자, 어서. 이제 정말 시간이 없네.”


일행은 지스카르의 재촉에 서둘러 편전으로 향했다. 란도스는 예의 응접실 식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는 케이달과 레미나도 있었는데, 이미 ‘설명’을 들은 것인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루도는 뭔가 큰일이 생겼음을 짐작했다.


“아, 자네들이로군. 어서 오게나.”


란도스는 애써 반갑게 일행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무리 거짓미소를 지어 봐도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여과 없이 공기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리에 앉은 일행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폐하께서 저희를 찾으신다고 재상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흐음, 그게 말일세...”


루도는 란도스의 왼손에 엉망으로 꾸겨진 편지지가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끄트머리에 찍혀진 인장으로 보아 고위귀족이 쓴 편지일 텐데, 그런 중요한 문서를 신경질적으로 구겨버린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동부전선이 붕괴되었다는군. 크렘벨은 함락된 모양이고.”


분위기가 일순 술렁였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던 지라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리크나이츠가 다시금 패배했다는 사실은 일행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중부지역의 요지인 크렘벨이 함락된 이상 이제 천정기사단이 다른 정규군과 합류하는 일은 요원해져 버렸다. 진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적의 점령지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칼롯이 말했다.


“아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왕실기사단이 요격을 나갔다고 들었는데.”


케이달이 국왕 대신 입을 열었다. 그는 언제라도 출진할 수 있게 중무장을 한 채였다.


“병력의 4할을 잃고 후퇴 중이네. 아직 주력이 남아 있으니 어찌어찌 일전은 가능하겠지만, 기사단 두 개를 상대로 버티는 건 자살행위지. 실전경험이 없는 부대치곤 지금까지 잘 버텨온 거야.”


“천정기사단은 아직입니까?”


“어제 전령이 왔네. 아스트리카는 아예 성(聖)마르세아 기사단을 보내 남부를 견제하는 모양이더군. 어지간히 천정기사단이 무서운 모양이지만...어쨌든 지금 당장은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야.”


백천기사단은 괴멸. 왕실기사단은 병력의 절반은 잃었고, 천정기사단은 적의 방어선에 가로막혔다. 반면에 아스트리카의 주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흑연기사단과 마르세아기사단, 훼창기사단. 흑연기사단이 다소의 손실을 입은 것만 제외하면 지금까지 연전연승을 이어온 셈이다. 이제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의 병력차이는 두 배가 넘게 나고 있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제리온이 손을 들었다.


“그게 저희를 부른 이유입니까?”


질문을 던지는 그의 어투가 워낙 퉁명스러웠기 때문에 일행은 조마조마하게 국왕의 반응을 관찰했다. 레미나가 재빨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리오온, 말투가 그게 뭐니? 왕족이 다 나 같은 건 아니라고. 하물며 국왕폐하 앞에서...”


“내 말투는 원래 이렇고, 딱히 빈정거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누님. 난 정말로 궁금하단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폐하, 전황이 불리하다는 건 알겠고, 리크나이츠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군의(軍議)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지 저희 같은 잡배에게 통보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곧 수도를 떠날 저희들에겐 별 상관도 없는, 아니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정보입니다.”


태도가 어지간히 건방지다는 점만 제외하면 제리온의 의견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케이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란도스가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일반인이 이런 패전보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자네들을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네.”


그가 손짓하자 케이달이 큼지막한 전황판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전황판은 리크나이츠 영토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케이달은 현재 상황에 맞추어 각 군대의 말을 배치했다.

전체적인 판도는 서진하는 아스트리카와 패주하는 왕실기사단, 그리고 남부에서 치고 올라오는 천정기시단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었다. 케이달은 우선 마르세아 기사단을 남부로 이동시켰다.


“우선 천정기사단이 치고 올라오려면 마르세아 기사단을 상대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자면 천정기사단이 우세합니다만, 상대의 목적은 시간벌기일 테니 어떻게 경로를 뚫느냐가 관건이겠죠. 여하튼 당분간 천정기사단의 지원은 바랄 수 없을 겁니다.”


이어 그는 왕실기사단과 훼창기사단의 말을 서쪽으로 이동시켰다.


“이게 현재 주력들의 상황입니다. 왕실기사단은 패주하고 있고, 훼창기사단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서진 중입니다. 중간에 전략적 요새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아군의 병력을 생각하면 역시 라키시아 부근에서 일전을 준비하는 게 낫겠지요.”


그러나 케이달은 흑연기사단의 말을 이동시키지는 않았다. 크렘벨에 멈춰 있는 검은색의 말. 디리터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했다.


“왜 흑연기사단은 따로 뺀 겁니까? 훼창과 함께 수도로 진격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게 지금부터 중요한 건데...”


케이달은 설명하기에 앞서 국왕의 눈치를 살폈다. 란도스는 살짝 눈썹을 찡그린 표정으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구겨진 편지가 들려 있었다.

케이달은 흑연기사단의 말을 든 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어찌나 뜸을 들이는지 지켜보는 일행이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레미나가 참지 못하고 긴 숨을 토해낼 즈음에야 그는 말을 움직였다.

북쪽으로.


“흑연기사단은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서쪽이 아닌 북쪽으로. 현재 그들은 단독으로 북상하는 중입니다.”


“어...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군략에 통달해 있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그런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흑연기사단의 선택은 황당무계했다.

바로 코앞에 리크나이츠의 수도가 있는데, 수도를 점령하면 상대에게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뿐더러 좀 더 나아가면 전쟁 자체를 끝내버릴 수도 있는데, 북진을 한다니?


“...거짓말이죠?”


아마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국왕과 재상, 왕실기사단의 단장이 아니었다면 사기 치지 말라며 뺨을 후려쳤을 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분위기로 보나 란도스의 경직된 표정으로 보나 농담을 던지는 것 같진 않았다.

디리터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나쁘지 않잖습니까? 적이 두 패로 나누어졌으니 수도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펼치면 되지요. 북부지방의 주민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그래도 라키시아가 점령당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게 일반적인 분석이지.”


란도스가 흑연기사단의 말을 집어 일행에게 가까운 탁자 쪽에 내려놓았다. 흑색으로 칠해진, 마름모 형태의 모형. 투박하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얼마 전 마주쳤던 칠흑의 군대가 생각나 루도는 숨을 죽였다.

란도스가 말했다.


“한 개인이라면 실성해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일 수 있지. 하지만 군대는 개인이 아니라네. 그것은 궁극적인 집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저히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그러니까...흑연기사단의 움직임에도 필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일세.”


“하지만, 현 상황에서 수도점령을 포기하면서까지 북진해야 할 까닭이 있습니까?”


“없지. 일반적인 전쟁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네. 그러니 이유를 찾는다면, 아마도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시작해야겠지. 그런 쪽이라면 아마도 나보다 자네들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은데.”


“신의 아이...말입니까?”


일행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지금껏 전쟁과는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적당한 답안이 나오지 않았다. 북부지역이 지니는 가치라고 해봤자 임업이나 축산업이 전부인데,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라키시아를 포기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또한 보급을 목적으로 약탈을 행하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소한 일로 기사단 본대를 움직일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흑연기사단의 저의는 어디에 있는가? 모두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 루도는 어렴풋이 흩어진 키워드의 조각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이 전쟁의 목적, 신의 아이, 안개송곳니의 패배, 레이시가 이 정도로 포기할 리는 없는데...그럼 그가 준비한 차선책은 무엇인가? 흑연기사단은 왜...

그때 지스카르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자네들은 스벤달 오빌리크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했지. 뭔가 특이한 점은 없었는가?”


스벤달 오빌리크!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붕 떠있던 단어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 남자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일까. 레이시와 스벤달. 두 이름을 연상시킨 것만으로도 북진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어...? 설마 이 새끼가!!”


루도는 기가 막혀 그만 자기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흑연기사단의 말을 집어 들었다.

란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루도 클로람, 무언가 알아냈는가?”


“아...예. 폐하는 군대가 집단이라고 하셨지만, 이번만큼은 다릅니다. 흑연기사단의 지휘관이 다름 아닌 그 스벤달 오빌리크거든요.”


“흠,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나?”


루도는 설명에 앞서 주먹을 불끈 쥐어 손 안에 든 말을 우그러뜨렸다. 스벤달과 접촉하려 한 레이시의 속내를 생각하자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흑연기사단의 북진에는 안개송곳니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노리는 건 「남하를 위한 북부의 요충지」일 거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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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6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1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4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3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7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69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2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0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6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7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89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6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5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39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7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8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4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1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2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29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2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3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8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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