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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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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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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28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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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6쪽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DUMMY

루도와 위첼이 뭍으로 나오고, 타고 있던 말도 폭발 속에서 무사했는지 첨벙거리며 밖으로 헤엄쳐왔다. 녀석은 혼비백산한 상황이었는데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는 루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스벤달은 그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일행의 얼굴을 꼼꼼하게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이글거리는 화염은 양쪽 지휘관의 얼굴에 뚜렷한 음영을 드리웠다. 그가 말했다.


“솜씨가 그리 나쁘지 않군.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어떤가? 대우는 정식 기사에 뒤지지 않게 해주지.”


이칼롯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루도의 상태를 살피고,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모를 투척 공격에 대비해 방어 태세를 취하도록 했다. 그 모든 과정에 끝난 뒤에야 그는 답했다.


“흥미 없다.”


“좋아. 그럼 너희들을 끝까지 쫓아가 짓이겨버리겠다, 로샤단. 어디로 도망가든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흑연기사단을 적으로 돌린 걸 후회하게 해주지.”


그 순간 일행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공통된 감정에 치를 떨었다. 맹렬한 분노. 민간인을 납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남자는 뻔뻔하리만치 떳떳했다. 조금이라도 자중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레미나는 그의 꼿꼿이 솟은 턱을 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칼롯의 이마가 살짝 씰룩거렸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장담컨대 너는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죽을 것이다. 우리의 손이든 다른 누군가의 손이든. 어쩌면 뒤에 서 있는 부하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르겠군.”


스벤달은 껄껄대며 웃었다. 루도는 그의 유쾌한 폭소가 진노를 감추기 위해 자아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 말이 들어맞나 한 번 지켜보자고. 자, 본영으로 돌아간다.”


스벤달은 망설임 없이 퇴각을 지시했다. 굳이 쫓아오려면 강을 우회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너무 본진에서 멀리까지 나왔다는 점과, 상대의 전력이 생각 외로 강력하다는 점이 그의 판단을 부추겼다. 마법사의 존재도 특히 위협적이었다. 연발 공격으로 탈진한 상태이기 망정이지, 정신이 멀쩡했다면 제리온은 곧장 스벤달을 향해 마법을 날렸을 것이다.

추격대는 그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사들은 근처에 쓰러진 사망자와 부상자를 빠르게 수습하였지만, 파이어볼을 맞은 네 명은 감히 시신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의 사체는 박살 난 다리처럼 갈기갈기 찢겼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기사 몇몇이 이를 갈며 제리온을 바라보자 그는 숨을 헐떡대면서도 중지를 척 올려 보답했다.

제랄드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부산한 주위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은 채 루도와 이칼롯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마치 메르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로. 눈이 마주치자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져서 루도는 눈을 돌렸다. 빨리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추격대는 사그라지는 화염을 뒤로 한 채 숲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기사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오자마자 고생길이 펑 뚫렸고만. 뭐 만날 칼부림이야.”


디리터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마리네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스르르 엉덩방아를 찧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 이 정도로 끝난 게 어디야.”


“끝나긴 뭐가 끝나?”


둘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제리온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진 것과 달리, 그의 얼굴은 여전히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위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식을 죽여야 진짜 끝나는 거지.”


느슨해지던 분위기는 그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환기되었다. 스벤달에게 정신이 팔려 안개송곳니가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잊고 있던 것이었다. 이칼롯도 제리온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그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텔슈피드의 검신이 불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위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두 남자의 눈에 나타난 살의는 명확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글레이브에 손을 가져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두세 명은 데리고 가자는 심산에서였다. 짧은 수초의 시간 동안 위첼의 이마며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러나 그는 직감적으로 두세 명은 고사하고, 이칼롯 하나도 자신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루도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기다려! 둘 다 손 내리고 내 말 좀 들어봐.”


둘은 선선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해봐.”


“난 이 녀석과 약속했어.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까지 서로 싸움을 멈추고 협력하기로.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난 아스트리카 병사들에게 사로잡혀 죽고 말았을 거야.”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이 녀석을 그냥 보내달라는 말이지.”


순간 루도는 흠칫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제리온이 얼굴을 구기며 사정없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그는 이맛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말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건지 아냐?”


하지만 루도도 물러서지 않았다.


“알아. 제리온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건지도 알고.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야.”


“그놈의 약속은 계약서라도 써놓고 한 거냐? 어디 입회인은 있었고? 저 자식을 죽이면 아무 문제없이 끝나. 합리적으로 생각해라.”


“이건 신의의 문제야! 합리적이고 뭐고 생각할 게 아니라고. 약속을 지키는 게 왜 잘못이라는 거지?”


“하, 그러니까 네 자기만족 때문에 다 잡은 안개송곳니를 놔주자 이 말이냐? 너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구나. 벌써 잊은 거냐? 로샤단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 람카디스랑 카토르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루도는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검을 사납게 땅바닥에 꽂았다.


“젠장, 우습게 보지 말라고!!”


단지 땅에 검을 꽂은 것뿐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게 공격모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리네와 디리터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리온도 그가 이렇게 격정적인 행동을 보일 것이라곤 예상 못 했는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루도는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말했다.


“우리가 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건데? 왜 안락한 섬 생활을 버리고 여기로 돌아온 건데? 합리적?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애초에 레이시에게 대적하지 말았어야지. 그럼 우린 지금쯤 어디 시골로 내려가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을 거야!”


“.....”


“난 로샤단이 지금까지 와해되지 않은 게 단순히 이해타산이 맞아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우리만이 공유한 공통된 가치관이 있고, 그게 안개송곳니와 명백히 상반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놈들과 맞설 수 있었던 거야. 그게 깨지면 결속이고 뭐고 없어. 나는 제리온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데, 제리온은 어때? 합리적으로 생각할 거야?”


제리온은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나서 말했다.


“...좋아, 합리적이라고 한 건 아무래도 내 말실수였던 거 같다. 그런데 그 문제를 떠나서...”


“나는 위첼과 약속했고, 녀석은 거기에 성실히 임했어. 포로를 구하고 도망칠 때는 처음 보는 여자애 때문에 목숨을 걸기까지 했지. 그런데 여기서 녀석을 죽인다면 그건 단순히 약속을 못 지킨다는 식의 문제가 아냐. 나는 정말 안개송곳니보다 못한 새끼가 되어버린다고. 그러니까, 나는 약속을 지켜야겠고! 위첼을 보내줘야겠어. 그러니까 모두 이 자리에서는 내 체면을 지켜줘. 이건 부탁이기도 하고 명령이기도 해.”


루도의 마지막 두 마디는 꽤 충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는 만약 끝끝내 위첼을 죽이려 한다면 전투까지 불사하겠다는, 나름의 각오를 시사한 것이었다. 짙은 청색의 새벽, 해는 아직까지 뜨지 않고 있었다. 불붙은 다리는 어느새 꺼져 잿가루만 휘날릴 뿐이었다. 함께 있던 백천기사단 기사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침묵을 지켰다. 마리네와 디리터도 감히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제리온의 찌푸려진 이마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게 그가 물러섰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좋아. 한 번쯤 널 두들겨 팰 날이 올 거 같긴 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


“싸울 거면 마법을 쓰지 그래? 맨주먹으로는 절대 날...”


“거기까지.”


퍼억. 미처 말을 끝맺을 틈도 없이 루도는 이칼롯의 발길질에 맞고 쓰러졌다. 그냥 세게 밀치는 수준이라 흙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정도로 끝났지만, 루도는 일어날 타이밍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이칼롯이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건방지게 입을 나불댄 죄다. 루도, 조금 전 ‘명령’이라는 단어를 쓴 거 같은데, 네가 우리들의 대장이었나?”


“...아니야.”


“그럼 로샤단에서 빠질 생각이냐?”


“무, 물론 아니지.”


“일어나라.”


루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며 머리카락에 모래 알갱이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그는 채 털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칼롯은 이번에는 제리온을 응시했다. 제리온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싸움을 말린 것에 대해서는 만족한 듯 한 번 입맛을 다셨다. 뒤이어 마리네와 디리터를 바라본 후, 이칼롯이 말했다.


“다수결로 정한다. 여기서 결론이 나면 무조건 거기에 따르기로. 루도, 만약 위첼을 죽이기로 했는데 또 조금 전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면 그땐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알았어.”


루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리온도 그의 중재안에 동의했지만, 한편으로는 영 탐탁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대장이잖아? 그냥 명령을 내리지 그래.”


“그래선 어느 한 쪽이 납득하지 못할 테지. 응어리가 남은 채로 여행을 계속 할 수는 없어.”


일이 이렇게 되자 불길은 가만히 있던 마리네, 디리터에게로 쏠렸다. 둘이 누구의 의견에 동의하느냐에 따라 위첼의 생사가 결정되는 판이었다.

한편 위첼은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목에 칼을 겨눈 것도, 자신을 포위한 형국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몇 걸음 움직이자마자 그의 뒤꿈치 부근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우, 우와악?”


그는 화들짝 놀라 옷자락에 붙은 불을 껐다. 고개를 돌리자 제리온이 한 손을 든 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수작 부리지 마라 새끼야. 그러다 얄짤없이 죽느니 조금이라도 살 확률에 거는 게 낫지 않냐?”


위첼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무영창(無詠唱)인가? 하지만 말하는 중이었는데 어떻게...로샤단에 이 정도 실력자가 있었을 줄이야.’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 심지어 백천기사단까지도 - 그를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목숨이 저당 잡힌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해주는 게 오직 펠아람의 아이뿐이라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소동이 진정되자 디리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난 루도 쪽이야. 긍지라는 건 때로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법이라고.”


루도와 레미나의 표정이 즉시 밝아졌다. 뒤편의 기사 몇몇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이칼롯과 제리온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실망했다기보다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들은 마리네가 입을 열었을 때에도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나, 난 제리온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루도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위첼을 놓아주면 우리의 정보가 안개송곳니에게 넘어가고 말 거야. 그리고...역시...안개송곳니를 살려준다는 건...”


그렇게 말하며 마리네는 루도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루도는 딱히 배신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그도 자신이 억지를 쓰고 있고, 이 때문에 지금의 분쟁이 나타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리네의 선택으로 의견은 2:2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위첼의 운명은 얄궂게도 이칼롯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위첼이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칼롯은 제리온과 함께 위첼을 죽이려 했었고, 루도가 이를 막아섰을 때에도 시종일관 냉담한 반응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의 갈등이 이성과 감성의 대립으로 나타났다는 걸 고려하면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성파였다. 로샤단에서 가장 냉정하고 침착한 판단력을 가진 그가 루도를 두둔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 레미나가 뛰어들었다. 그녀는 양팔을 벌린 채 황급히 위첼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나, 나도 루도 쪽! 그럼 이제 3:2가 되는 거죠?”


그러자 제리온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디리터 때에도, 마리네 때에도 침묵을 유지했던 그였지만 레미나의 난입에는 극도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레미나는 그의 노기 띤 얼굴에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건 짜증 섞인 불평이나 일상적인 욕설과는 분명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제리온은 성큼성큼 걸어가 거칠게 레미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아얏! 아파!”


“누님, 건방 떨지 마.”


“뭐....뭐?”


“누님이 뭔데 나서는 거야? 이건 우리들, 로샤단의 문제야.”


레미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두드려 맞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뒷걸음질치는 그녀를, 하지만 제리온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코앞에다 대고 소리쳤다.


“이건 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야.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알았어? 우리가 같이 어울려 주니까 정말 모험가라도 된 것 같아? 착각하지 마. 누님은 절대 우리하곤 어울릴 수 없어. 그리고 어울려서도 안 돼!”


“제리온...”


이칼롯이 둘을 갈라놓았을 때는 이미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뒤였다. 그러나 이칼롯이 흐느끼는 그녀에게 건넨 것은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


“제리온이 틀린 말을 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아가씨. 이건 우리 길드의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


레미나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끅끅대며 등을 돌렸다. 에레이시아가 등을 다독여주었지만 충격이 큰 모양인지 그녀의 어깨는 한동안 들썩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며 에레이시아는 제리온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너, 진짜 못 됐다.”


“...시끄러 이 기집애야.”


레미나가 구석 후미진 곳에 웅크리자 화제는 다시 이칼롯에게로 넘어갔다. 위첼은 여기까지의 트러블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지만 도망치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말다툼을 하는 동안에도 일행의 온 신경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손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땐 정말 불에 타든지, 아니면 이칼롯의 일격에 목이 날아가버릴 게 분명했다.

이칼롯은 텔슈피드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천천히 위첼에게 다가갔다. 검 끝이 자갈이며 모래에 부딪혀 기이한 소리를 냈다. 루도와 마리네, 디리터는 그 광경을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영락없이 이칼롯이 위첼을 처형하러 가는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검이 닿는 범위까지 오자 그는 멈춰 섰다. 위첼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마 무의미한 저항으로 끝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일격은 날리자는 생각에서였다.

이칼롯은 말없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쉬며 검집에 집어넣었다.


“가라.”


“...응?”


모두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얼떨떨해하는 순간, 오직 제리온만이 볼멘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젠장, 내가 누굴 믿으리오. 칼잡이는 하나같이 머저리들만 모인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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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7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6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1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7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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