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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050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07 04:17
조회
769
추천
25
글자
19쪽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DUMMY

디리터는 일단 조심스럽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아머드원이 거칠게 포효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크라라락!!”


“아 시팔, 역시 안 되겠어!”


작전이고 뭐고 그는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황급히 몸을 날렸다. 그런데 막 아머드원이 주먹을 휘두르기 직전, 후방에 있던 알룬도가 꾀를 내었다. 그는 연회장에 드리워진 커튼을 엮어 밧줄로 만들고는, 그 끝에 단검을 묶어 추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는 이렇게 급조한 올가미를 던져 아머드원의 발목에 걸었다. 워낙 피부가 각 져있는 탓인지 올가미는 무리 없이 녀석의 발을 휘감았다. 준비가 끝나자 알룬도는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자, 당겨요. 으랏차!!”


병사들은 그의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막 땅을 박차고 나가려던 아머드원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 꿇었다. 놈은 그제야 확인한 듯 자신의 발목에 걸린 올가미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아머드원이 멈춰 선 자리는 신묘하게도 타격대가 요청한 좌표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녀석의 전신이 전부 노출되고, 발리스타의 방향과 일직선 상에 놓이게 되는 자리. 정말 일부러 표적을 세워놓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신이 만들어준 단 한 번의 기회. 병사들은 주저하지 않고 발리스타의 시위를 끊었다. 투웅-하는 소리와 함께 은빛 섬광이 어둠을 가로질렀다. 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디리터는 쇠뇌의 궤적이 어둠 속에 수 놓이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쇠뇌는 정확히 악마의 오른 가슴을 강타했다.


“캬하아악-!!”


아머드원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병사들은 쇠뇌가 직격하는 순간 들려온 금속 깨지는 소리에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밀려난 악마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것 뿐, 녀석은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알룬도는 녀석이 가슴에 박힌 쇠뇌를 뽑는 것을 보곤 안타깝게 탄식했다. 다시 보니 쇠뇌는 30cm가량이 들어갔을 뿐, 아머드원의 신체를 완벽히 관통하진 못했다. 녀석의 피부가 상당 부분 충격을 흡수한 까닭이었다.

의외의 일격에 악마의 시선이 곧장 발리스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놈은 재차 발리스타를 장전하고 있는 병사들을 발견하곤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것만으로도 타격대의 몇몇은 전투의지를 잃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작전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패배의 악몽에 눈을 가린 그 순간, 디리터만은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머드원의 오른 가슴을, 정확히는 쇠뇌가 꽂혔던 지점에서 새로운 교두보를 발견했다. 녀석의 오른 가슴은 더 이상 담청의 외골격으로 덮여있지 않았다.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살점 사이로 마치 구멍이 뚫린 듯 회흑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디리터는 순간적으로 저곳을 찌르면 놈을 끝장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무언가에 떠밀린 사람처럼 아머드원의 측면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검을 비스듬히 늘어뜨린 채로 질주하는 그의 옆모습에서는 흡사 집착마저 느껴졌다.

녀석을 쓰러뜨리겠다는,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밤을 끝내고 싶다는 의지.

알룬도가 놀라서 소리 질렀으나 그는 멈춰 서지 않았다.


“디리터!!”


“으라아아앗!”


한편 아머드원도 갑자기 달려드는 인간에 놀라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노골적일 정도로 쏘아보는 시선 탓인지, 녀석은 디리터가 자신의 상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곤 재빨리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그걸 본 디리터의 다리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뿐으로, 그는 다시 눈을 번뜩이며 악마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아머드원의 숨통을 끊어놓기까지의 그의 행보는 고대 영웅시의 한 구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악마의 환부가 가려지자 그는 순간적으로 목표를 바꾸어 위로 도약했다. 그리고서 그는 녀석의 팔꿈치를 발판삼아 발을 차고는, 마지막으로 놈의 어깨를 디디고 크게 점프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병사들은 도약한 디리터가 허공에서 검을 수직으로 고쳐 쥐는 것을 보곤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마침 아머드원은 디리터의 움직임을 좇아 알맞게 고개를 치켜든 상태였다.

디리터는 손가락이 바스러져라 검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낙하하는 중력을 무기 삼아 그대로 악마의 입 속에 검을 꽂아 넣었다.


“니 새끼는 목구멍도 철판으로 되있냐아아!!”


쑤거어억-. 금속 때리는 소리가 아닌, 살결을 파고드는 둔중한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어찌나 깊숙이 찔렀는지 검의 가드부분이 놈의 턱에 와 닿을 정도였다. 그의 투핸드소드가 1미터가 넘는 대검인 것을 감안하면 웬만한 신체 장기는 전부 꿰뚫렸다고 봐도 좋았다.

예상대로 아머드원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다만 녀석은 숨이 끊어진 후에도 우두커니 서 있는 모양새였는데, 디리터가 검을 뽑자 그제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괴물의 죽음에 병사들은 한동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쓰러진 악마와 쓰러뜨린 디리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입을 뻐끔거렸다. 디리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검에 묻은 내장을 닦아낼 즈음에야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곤 긴 함성을 터뜨렸다.


“우와앗! 괴물을 쓰러뜨렸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 만세!!”


“맙소사...저걸 진짜로 쓰러뜨릴 줄이야.”


병사들은 마다하는 디리터를 얼싸안고는 환희의 개가(凱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훗날 한 병사가 이날을 묘사하기를, '거구의 악마가 넘어가는데, 마치 요새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고 하였다. 실제로 병사들이 느낀 성취감은 성을 함락시킨 것에 비견할 만큼 대단했다.

아머드원이 쓰러진 것과 비슷한 시간에 편전에서는 이칼롯이 나이트셰이드의 숨통을 끊었다. 편전에서 들려온 함성이 연회장의 그것과 더해지고, 이는 점차 궁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쩌렁쩌렁한 개가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디리터와 알룬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사들과 어울려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크나이츠의 승리이자, 로샤단의 승리이기도 했다.



***



왕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안개송곳니는 적지 않은 손실을 입고 퇴각했다. 이는 델키아를 떠난 이래 일행이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승리의 전리품은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달콤했다. 걸려있던 현상금은 즉각 해제되었고, 레미나의 열정적인 후원 덕에 일행은 구국의 영웅으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로샤단’이라는 이름이 수도 전체로 퍼지기까진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심지어 레미나 공주의 생환 소식이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였다.) 물론 왕실의 엄격한 통제 하에 그날의 전투는 철저히 은폐되었으나, 현상수배서가 한날한시에 모조리 회수된 것만으로도 로샤단이 시민들의 뇌리에 각인되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소문에 민감한 자들은 술집을 돌아다니며 로샤단이 국왕암살범을 붙잡았다고 큰소리를 쳐댔다. 역적이 영웅이 되기까진 한나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그 대가로 얻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유미르네와 레미나를 제외한 전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칼롯은 전신에 자잘한 타박상과 검상을, 알룬도는 잔 검상과 과다출혈로 인한 빈혈 증세를 보였다. 루도와 디리터는 각각 오른발 골절과 왼손 골절을, 마리네는 전신에 경미한 화상 및 검상을 입었다. 특히 마리네는 블레이드 댄서의 검을 직접 움켜쥔 것이 문제가 되어 한동안 양팔에 붕대를 감고 다녀야 했다.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제리온이었다. 그는 허벅지와 옆구리, 어깻죽지 등에 검상을 입은 데다 왼 어깨는 쇄골이 부러질 정도의 관통상을 입었다. 또한 ‘플레어 오브 어나이얼레이션’의 반동으로 그의 오른팔은 근육조직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온몸에 붕대를 동여매고, 양손에는 부목을 대어 고정시킨 채 누워있는 그의 몰골은 흡사 미이라와도 같았다. 이런 상태니 레미나가 그를 보고 죽은 게 아닌지 지레 겁을 먹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씨팔, 루도. 똥 마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냐.”


“참어. 똥 좀 안 싸도 안 죽어.”


“염병할, 간호사! 이봐요 간호사!”


알룬도를 포함하여 로샤단의 여섯 명은 함께 한 병실에 배정되었다. 그들의 공로를 따지면 1인 1실을 마련해야 마땅하겠지만, 악마들과의 전투로 근위대 측의 부상자가 너무 많이 나온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아 일행은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며 한때의 여유를 즐겼다.

일행의 옆 병실에는 데루루피아가 회복 중에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디리터는 곧장 지하 감옥에 들러 갇혀있던 그녀를 구출해냈다. 그녀는 영양실조로 몸이 비쩍 마른데다 고문을 받은 탓인지 몸 군데군데에 상처가 나 있었다. 특히 그녀는 양손의 손톱이 모두 뽑혀 바람이 닿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3개월 가까운 고문 치곤 데루루피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워낙 그녀의 정신력이 굳건한 데다, 케이달의 배후공작 덕에 그녀에게 가해진 고문이 생각보다 경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실에 옮겨진 지 한나절 만에 의식을 되찾았고, 그 이튿날에는 손수 일행을 찾아와 안부를 묻기도 했다.


“고집불통들 같으니. 내가 섬에서 나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어? 누님, 그게 살려준 사람한테 한 말이야?”


“고맙다는 뜻이잖아, 이 바보야!”


갑옷을 벗고 무기는 침대 한쪽에 걸쳐 두고-.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창을 활짝 젖혀두면 늦가을의 상쾌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 조금 어깨가 으슬으슬해질 정도가 되면 햇살을 머금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 되는 일이었다. 창가에 앉은 이들은 커튼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윽한 백포도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루도는 막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 창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피 냄새에 절어 살던 자신이 경멸스러울 정도로.


사흘째가 되자 제리온을 제외하곤 다들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체력을 회복했다. 이즈음 하여 왕의 전언이 떨어졌다. 로샤단의 공로를 치하할 테니 정오에 왕을 알현하러 들르라는 것이었다.

국왕을 알현한다는 것은 공직자, 특히 군인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루도와 마리네는 새벽부터 일어나 정복을 다리기에 - 이미 궁녀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는데도 - 여념이 없었다. 특히 마리네는 만류하는 간호사를 뿌리치고 억지로 가죽장갑을 착용하려다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이들처럼 군기 잡혀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 까칠한 성격인데다, 공주의 죽마고우이며, 부상자라는 면책권까지 얻은 누구는 아침부터 디리터를 까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이구, 그래서 면전에 대고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랬어? 너 미친 거 아니냐? 처제랑 결혼이라도 하려고?”


“이 자식은 꼭 말을 해도.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기분 나쁘게스리.”


“내가 뭐 틀린 말했냐? 팔팔한 처녀한테 지켜준다고 말하면, 그게 프로포즈지 뭐냐? 솔직히 뉘앙스가 딱 그거잖아. 아니 뭐 좋아. 너는 어쩔 건데? 뒤에서 경호원처럼 따라다니기라도 할 거냐? 그거 참 남의 혼삿길 막는데 과히 효과적이겠네.”


“그건 아니고...그냥 후견인이 되어주겠다 - 뭐 이런 뜻이지.”


“평민이 후견인은 얼어 죽을. 메이드를 후원해봤자 강력한 메이드밖에 더 되냐.”


“강력한은 또 뭐냐.”


둘은 어디서 꿍쳐온 것인지 눈을 뜨자마자 사이좋게 브랜디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제리온은 손이 불편하자 어디서 빨대를 구해와 술병에 꽂아 넣고 쪽쪽 빨았다. 그가 원체 술을 ‘전투적으로’ 마시는 타입인지라, 브랜디는 꽤 독한 종류임에도 30분이 채 안 되어 동이 났다. 간호사가 이불을 갈러 들어왔을 때 제리온은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당연히 간호사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멜피드씨! 술은 마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욧!”


“응? 아아, 걱정 없어요. 알현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으니까. 그냥 서 있다 고개만 끄덕이고 오면 되는 건데 뭐.”


“그게 아니라! 당신은 중환자라구욧!”


한편 이칼롯은 이 난리판 속에서도 꿋꿋이 잠을 청했다. 그는 위험요소가 있을 땐 초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잠들지 않지만, 일단 경계가 풀리고 나면 그동안 누적된 피로를 한꺼번에 풀려는 듯 맹렬하게 휴식을 취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그에게 지난 3일은 피로를 풀 수 있는 - 즉 온종일 잠을 잘 수 있는 - 최적의 조건이었다. 부상자라는 위치 덕에 알현도 뒤로 미루어졌겠다, 그는 자잘한 뒤처리는 모두 레미나와 알룬도에게 떠넘기고 오직 휴식에 전념했다.

그는 국왕을 알현하기 두 시간 전 번쩍 눈을 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 기계적인 모습에 루도와 마리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둘은 너무 긴장하여 아침 일찍부터 모든 준비를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한 시간 전이 되자 이칼롯은 옆에서 코를 골던 제리온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그는 몇 번 머리를 긁적이다 옷장에서 치렁한 로브를 꺼내 뒤집어쓰는 것이었다. 셔츠 위에 조끼를 입고, 조끼 위에 휘장을 걸치고, 옷의 단추란 단추는 전부 꼭꼭 잠근 뒤 넥타이-조끼 단추-혁대의 삼선일치까지 자를 재어 맞춰놓은 루도가 그의 간편한 복장에 볼맨 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대충 입어도 되나? 국왕폐하를 알현하러 가는 건데.”


그러자 제리온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마법사는 이게 정복이야 짜샤. 그리고 나는 옷 입기도 힘든 중환자라고.”


“탁자의 술병이나 좀 치우시고.”


“예이예이.”


시간이 다가오자 궁무관리들이 들어와 기본적인 리허설을 보여주었다. 요는 고개 숙이고 입 닥치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루도는 관리들이 건네준 장미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의례용 검을 허리춤에 찼다. 이러고 있으니 그도 제법 군인 티가 났다.

이칼롯을 필두로 일행은 2열종대로 병실 문을 나섰다. 문밖에서는 어느새 유미르네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루도의 헤어스타일을 보자마자 즉각 눈살을 찌푸렸다.


“홀아비가 따로 없네. 가르마를 뭐 그렇게 해놨니? 이리 좀 와봐, 이렇게, 어느 정도 세련되게.”


“야아-! 군인은 원래 각을 잡아야 하는 거란 말이야.”


“레인저가 군인은 무슨. 그냥 들판의 잡패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말끔한 정복 차림새였다. 그녀는 늘 입고 다니던 어두운 여행복 대신 순백색 가죽바지와 은사가 수 놓인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약간 굽이 있는 구두로 라인을 살리고, 머리를 둥그렇게 틀어 올리니 영락없는 여성장교였다.

그녀는 마리네의 옆에 따라붙어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일부러 발목에 힘을 주어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굽소리가 나도록 했다. 그 절도 있는 걸음걸이에 주위의 사람들뿐 아니라 일행까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리온이 말했다.


“평소에도 좀 그러고 다니지 그러냐. 싼 티 내지 말고.”


“흐응, 난 누구랑 달리 맡은 역할에 충실한 성격이라서요.”


“어련하시겠어. 거저 돈 버는 일인데.”


중앙회랑에서는 레미나가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복도 한편에 오도카니 서 있던 그녀는 멀리서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곤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앗, 여러분 여기에요!”


그건 정말로 현실감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일행이 아는 레미나는 치마든 바지든 아무거나 주는 대로 껴입으며, 노숙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또 신기한 것이 있으면 눈을 반짝이며 달려가는 그런 천진난만한 아가씨였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아름다운 공주님의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프릴이 장식된 시폰 드레스와 유리 구두, 단아하게 빗어 묶은 금발과 실크 면장갑 등 -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왕족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기품 있는 자태에 일행은 한동안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몇 달 동안 한솥밥을 먹고 한데 뒤엉켜 자던 소녀가 본디 일국의 공주였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알맹이까지 바뀐 건 아니었다. 일행이 주춤거리자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명랑하게 인사를 건넸다.


“히야, 다들 너무 멋있어요. 역시 옷이 날개라는 건지...제리온도 멋져! 그 깁스만 좀 어떻게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 제리온이 입을 비죽 내밀며 말했다.


“깁스 풀면 훨씬 흉할 텐데?”


“호호.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자, 모두 따라오세요.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답니다.”


일행은 레미나의 인솔을 받아 알현실로 향했다. 지금까지는 주욱 이칼롯이 대장직을 맡아왔지만, 오늘만은 레미나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공주가 로샤단을 이끌고 돌아와 왕을 구했다 - 라는 레퍼토리가 훨씬 모양새가 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레미나와 로샤단’이 아니라 ‘레미나의 로샤단’인 셈이었다.

알현실 앞에 도착하자 레미나는 빙글 뒤돌아 일행에게 말했다.


“웅, 다들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이건 공적인 자리니까 무례한 언행이나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해요. 숙부님뿐 아니라 다른 많은 대신들도 함께 있거든요.”


루도와 마리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레미나의 당부가 아니라도 그들은 알현이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한편 디리터는 귓구멍을 후비며 딴청 부리는 제리온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너 이 새끼야, 너. 입조심 하라고.”


“으윽. 나도 그 정도 주변머리는 있다고!”


“류이너스 교단 때처럼 하면 진짜 큰일 난다 너.”


제리온은 투덜거리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레미나가 문지기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문지기는 알현실 문을 두 번 두드리고는, 머리를 조아린 채 외쳤다.


“폐하, 레미나 공주가 폐하의 알현을 청하러 오셨습니다.”


그러자 문 안쪽에서 란도스 국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라 하라.”


“예, 폐하.”


끼이이익-. 높이만 4m가 넘어가는 거대한 문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젖혀졌다. 그러자 알현실 내부의 전경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20여 명의 기사들이 중앙 카펫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도열해 있고, 그들을 따라 올라가면 다시 수십 명의 대신들이 자리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끝자락에는 옥으로 만든 왕좌가 놓여 있었는데, 역시나 그 자리에는 란도스가 앉아 있었다.

알현실 내부는 마치 화폭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루도는 수십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긴장된 가운데에도 대신들 앞에 놓인 작은 서류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아마 일행이 오기 전부터 무언가 토의 중이던 모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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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38 퉁실퉁실
    작성일
    15.05.07 06:51
    No. 1

    잘보고갑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두개골
    작성일
    15.05.07 11:45
    No. 2

    이번전투는 로샤단 사망자없이끝나서 다행이네요 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斷劍殘人
    작성일
    15.05.07 17:31
    No. 3

    판타지를 쓰려면 중세의 옷감이라든가 패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겠군요 쉬폰이 먼지 찾아봤네요
    백포도도 있으면 한번 맛보고싶고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el*****
    작성일
    15.05.12 20:07
    No. 4

    눈이 뜨자마자→눈을 뜨자마자
    부상자라는 위치 탓에→위치 덕(분)에
    볼맨 소리→볼멘소리
    하여튼 제리온 저거저거ㅋㅋㅋ
    이칼롯은 알현 직전에 딱 일어나는 기계적인 모습이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레인Rain
    작성일
    15.07.11 16:26
    No. 5

    건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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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8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79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6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1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5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1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3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7 23 24쪽
»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89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2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1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6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2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29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2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0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5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1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5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7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89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6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5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7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8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8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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