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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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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5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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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DUMMY

루도와 레미나는 마리네 쪽에 앞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레미나가 궁전 내부의 지형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덕분에 둘은 별다른 충돌 없이 내실(內室)에서 100m가량 떨어진 무기고 앞에 자리를 잡았다. 무기고는 특수상황이 아니면 개방이 되지 않는데다 그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 덕분에 주위로 접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성 내부를 순찰하는 근위대인데, 순찰 사이클을 고려하면 스크롤을 사용하고 충분히 몸을 숨길만 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레미나가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며 말했다.


“준비됐어 루도. 이제 시작할게.”


“공주, 잊지 마. 안다바리엘을 찾더라도 절대 릴리즈(Release)를 해선 안 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고.”


“어휴~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나도 그 정도는 안다구.”


그녀는 로브 윗자락을 걷어 답답했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처마를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이 두 사람의 발치에 제법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암순응이 됐다곤 하나 시야는 고작 몇 미터 앞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때문에 근위대가 가지고 다니는 횃불을 제외하면 접근하는 적을 알아채는 일은 순전히 청각에만 의존해야 했다.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청각만으로 주위를 경계하라니,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루도는 디리터의 존재가 다시금 아쉬워졌다. 그라면 탐지든 전투든 자신보다 한수 위일 테니 말이다.

레미나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그녀는 스크롤을 똑바로 펴 벽 한쪽에 고정시키고는, 그 위에 적인 룬어를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스크롤을 읽는 동안 단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 특유의 오컬트적인 모습에 루도는 가만히 마른 침을 삼켰다. 진지모드의 레미나는 근처의 사람을 압도하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윽고 레미나의 일갈이 - 물론 소성박력(小聲迫力)이었지만 - 터졌다.


“퍼시스턴트 퍼슈어(Persistent Pursuer)"


뾰보복, 하고 수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담황색 공기 방울 수십 개가 그녀 주위로 모여들었다. 방울은 그녀 주변을 맴돌다 머리 위에서 하나로 합쳐져 주먹만 한 눈동자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루도가 놀란 눈을 뜨며 말했다.


“이게...그 마안이야?”


“아니, 마안은 지금 내가 조종하고 있어. 루도에게는 아마 보이지 않을 거야. 이 노란 눈은 아마 릴리즈를 할 때 차원문(Dimension door)를 구축하는 데 쓰이는 입구 같은 걸 거야.”


루도는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의 역할 따위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것이 엷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빛은 기껏해야 작은 촛불 수준으로 레미나의 하반신도 제대로 비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암흑 속에서는 충분히 눈에 띄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래서는 순찰조가 돌아오는 순간 영락없이 붙잡힐 판이었다. 그들이 구심점을 돌아 루도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까? 불빛을 확인한 순간 전력으로 뛰어올 걸 생각하면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안에 탐색을 끝내고 안다바리엘을 잡든지, 아니면 몸을 숨겨야 했다.


“이거 조짐이 안 좋은데....공주 지금 찾고 있는 거야?”


“으응...지금 막 대전(大殿) 안으로 들어왔어.”


레미나의 눈으로 보자면 그녀는 지금 두 장소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즉, 하나는 원래 그녀가 바라보는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마안(魔眼)과 링크된 시점이었다. 마안이 보는 시점은 본래 시점 위에 덧씌워져서 약간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러다 눈을 감자 이번에는 마안의 시점이 원래 자신이 보고 있던 것 마냥 또렷해졌다.

마안은 레미나의 심중에 따라 즉각 반응했다. 그녀가 위쪽으로 가고 싶어하면 위로 솟구쳤고, 아래쪽으로 가고 싶어 하면 추락하다 못해 땅을 뚫고 들어갔다. 마안은 영체(靈體)형태였기 때문에 장애물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벽을 관통하는 것은 물론이요, 원한다면 땅속 200m 지점까지 내려가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감추어진 비밀장소를 찾는 것도 가능했다.

3개월이 넘게 마인드컨트롤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니 안다바리엘은 분명 아무도 오지 않는 장소에 몸을 숨기고 있을 터였다. 레미나는 일단 높은 장소로 올라가 건물의 구조를 확인한 뒤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수색에 들어갔다.

마안의 속도는 시전자의 의사에 따라 변화하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끝에서 끝까지(마법의 최대 사정거리인 200m정도) 단 1초 만에 왕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이렇게 했다간 눈이 따라가질 못할 게 분명했으므로 레미나는 적당히 조율해 초속 15m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으음...2층은 없고...다음 3층!”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 3층에서 4층.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하까지. 레미나는 건물 한 채를 1분도 되지 않아 완벽히 조사해냈다. 그녀 특유의 기억력으로 한 번 방문한 장소는 다시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색속도도 놀랄 만큼 빨랐다.

그러나 대전에서 안다바리엘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좀 더 떨어진 곳에 숨어 있는 것일까? 레미나는 방향을 틀어 귀빈숙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편 루도는 초조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볼 때 레미나는 눈을 꼬옥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행여 소란스러우면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그는 숨을 내쉬는 일도 조심스럽게 했다.

1분, 2분, 3분. 안타까운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레미나의 눈동자는 여전히 굳게 닫힌 채 움직임이 없었다. 그 기약 없는 침묵에 루도는 점점 애간장이 탔다. 이제 슬슬 순찰조가 돌아올 시간인 만큼, 찾았으면 찾았다 없으면 없다 확실한 결과가 필요했다.


“어떻게 됐어? 아직도 못 찾은 거야?”


“그, 그게...대전이랑 귀빈숙소, 내실까지 전부 찾아봤는데 안 보여. 잠깐만, 아직 제례강당이랑 식재료 보관창고가 남았어.”


사실 조바심이 나는 건 루도가 아닌 레미나였다. 건물 3채를 훑었는데도 단서가 나오지 않자 그녀는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자신이 빼먹고 온 공간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그녀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둘의 애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황색 눈은 여전히 광채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복귀하는 순찰조의 기척이 느껴지자 루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레, 레미나! 이 이상은 위험해. 어서 몸을 숨기자.”


“안 돼...조금만 더...지하실까지만.”


근위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도 레미나는 마법을 해제하지 않았다. 일행이 가지고 있는 스크롤은 단 두 장. 그 안에 안다바리엘을 찾아 죽인다는 게 당초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첫 번째 스크롤이 무위로 돌아가려 하자 레미나는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자기비하에 빠져버렸다.

만약 제리온 쪽도 실패한다면? 마법의 범위에 닿지 않는, 그 50m²의 공간에 안다바리엘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라, 자신이 탐색하지 못한 공간이 남아 있었다면?

미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에서 일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만 근위대가 다가올 때까지도 마법을 해제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거기! 웬 놈들이냐!!”


‘읏...젠장...’


중무장을 한 병사 셋이 무기고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루도는 레미나의 앞을 막아서는 한편, 천천히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싸운다면 셋을 동시에 쓰러뜨려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병사들은 즉각 경보를 울릴 것이고, 그럼 두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한 채 포위되고 말 것이다. 왕을 구하지도 못하고 침투조가 붙잡히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놈들, 한밤중에 궁 안에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 거냐! 당장 두 손 머리 위로 올리고 그 자리에 무릎 꿇어라!”


“하하...저기 그게 말이죠...”


그즈음 발각의 원흉이던 담황색 마안이 촛불이 꺼지듯 휘리릭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빛이 사라지자 다가오던 근위병들도 흠칫 놀라 자세를 취했다. 루도는 망연히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레미나에게 말했다.


“어...어떻게 됐어? 안다바리엘은.”


“없어...보이질 않아...”


“으이구우-! 그러니까 대충 포기하고 숨자니까. 제리온이 성공했을 수도 있잖아!”


그는 혀를 끌끌 차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이제 두 사람이 할 일이라곤 눈앞의 근위병들을 쓰러뜨리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막 루도가 검을 뽑으려는 찰나, 레미나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잠깐! 만약 제리온도 찾지 못한다면? 그럼 어떻게 해?”


“뭐...뭘 어쩌자는 건데?”


레미나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루도는 아주 미묘한 변화였지만 소매를 붙잡은 레미나의 악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크롤 두 장이 전부 불발로 끝났을 경우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그러나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에 알룬도가 알면서도 입에 담지 않았던 작전이, 아직 남아 있었다. 레미나는 지금 이 순간, 이번 작전에 자신의 목숨을 걸기로 결심했다.


“국왕을 직접 만나러 가야겠어.”


“...!!”


루도는 근위대가 다가오는 것도 잊고 멀거니 그녀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부비는 그에게 레미나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루도, 네 도움이 없인 불가능해. 목숨은 장담할 수 없지만.”


“공주...진심이야?”


“미안! 하지만 작전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해!”


그녀는 주저 없이 루도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날카롭게 연마된 롱소드가 순백의 반사광을 내뿜었다. 두 사람이 침입자라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근위병들도 대화를 포기하고 즉시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루도의 검은 근위대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


“비상! 비사앙!! 대기조는 전원 무기고로 집합하라! 비상!!”


땡땡땡땡땡...첨탑 위에 비치된 경종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한밤중의 침묵을 찢었다. 곳곳에서 등화관제가 시행되는 가운데 병영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란은 물론 밖에 있던 일행에게도 전해졌다.


“이런...! 들킨 건가?”


알룬도는 서둘러 남문으로 접근해 내부의 상황을 살피려 했다. 그러나 근위대가 궁성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쫓겨나고 말았다.


“일반인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당장 꺼져!”


근위대의 움직임은 흡사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듯 역동적이었다. 대기 중인 모든 병력이 투입된 것인지 수십 명이 열을 맞추어 달려가는 소리가 성 밖에까지 울려 퍼졌다.

대기조가 침입자를 처리하러 간 사이, 성벽 위의 병사들에겐 현 소동의 전말이 신속하게 하달되었다. 문서로 처리할 만큼 만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신송은 구두로서 이루어졌는데, 마침 운 좋게도 남문에서의 신송상황이 알룬도의 귀에 들어왔다.

대화내용은 이랬다.


“대체 무슨 일인가? 이렇게 요란하게.”


“치,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정도는 보면 알아.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대기조가 전부 투입되느냔 말이야! 군대라도 나타난 건가?”


“그게...그...하사관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로샤단의 루도 클로람 말입니다. 4천 골드의 현상금이 붙은.”


“그 녀석이 나타났다고? 허어.”


“녀석이 지금 인질을 붙잡고 이동 중인데...그....인질이 아무래도 공주님 같습니다.”


“....뭐?”


“레미나 공주님 말입니다! 5년 전에 돌아가셨던.”


“잠깐잠깐! 그러니까 뭐야, 4천 골드짜리 범죄자가 인질을 데리고 궁 안에 침입했는데, 그 인질이 죽은 레미나 공주님이라고?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저, 저도 지금 긴가민가합니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 말로는, 아무리 봐도 공주님이 맞다는 겁니다. 그 생김새며 목소리 하며, 5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저희가 설마 공주님 얼굴을 잊겠습니까?!”


“대, 대체 이게 무슨..!!”


그때 알룬도가 지은 표정은 실로 가관이었다. 그는 머리털을 쥐어뜯다가, 뒷목을 잡고 다 죽어가는 신음을 흘리다가, 결국 인상을 팍팍 쓰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상황을 설명하자 이칼롯와 유미르네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유미르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아-일 났네 일 났어.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래요?”


황당하기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느 정도까지 일이 틀어져야 루도가 레미나를 인질로 붙잡는 상황이 온단 말인가? 차라리 싸우다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알룬도가 말했다.


“여하튼 그 두 사람은 실패했다고 봐야겠군. 자,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구하러 가는 건 자살행위예요.”


“같은 생각이오. 지금은 루도가 죽기 전에 제리온과 마리네가 성공하길 빌어야겠지. 그래도 공주를 인질로 붙잡고 있으면 근위대도 섣불리 다가서진 못할 거요.”


유미르네뿐 아니라 이칼롯도 일단 두 사람을 구출하는 방안은 보류했다. 지금 루도는 수백 명의 군사에 둘러싸여 있을 게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그들을 구하러 간다 해도 그 빽빽한 인파를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는 그들을 구출하기보다 서둘러 안다바리엘을 저지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다행히 제리온과 마리네가 붙잡혔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루도가 모든 근위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만큼 그쪽도 야간순찰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스크롤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 이칼롯은 멀리서 카이안이 절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횃불은 반시계방향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로군...녀석들이 온다!”


안개송곳니가 돌아오고 있었다.

침투조가 발각되었을 때 그들은 동문 외곽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망루에서 경종이 울렸을 때, 그리고 근위대의 입에서 ‘루도 클로람’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들었을 때 그들이 무엇을 떠올렸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카이안의 신호를 발견했을 즈음 놈들은 이미 일행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해 있었다. 이칼롯은 일단 숨을 죽이고 안개송곳니의 동태를 살폈다. 놈들은 아직 로샤단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알룬도가 말했다.


“어떻게 하지? 틀림없이 루도를 노릴 텐데.”


그러자 유미르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잠깐, 지금 루도는 근위대에게 둘러싸여 있잖아요. 그럼 안개송곳니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텐데?”


“음, 하긴. 그럼 우리는 일단 제리온을 지원하는 쪽으로...”


그러나 일행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남문에 도착하자마자 고르딘이 철퇴로 성문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성문이 우그러지는 걸 보자 유미르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저거 진짜 사람?!”


고르딘이 성문을 파괴하는 사이 제스터는 성벽을 밟고 뛰어올랐다. 침투조가 그 고생을 하며 기어오른 성벽이건만, 그는 촉수를 이용하여 단 몇 초 만에 성곽 위로 올라섰다.


“너, 네놈들 무슨...컥!”


병사 하나가 그에게 달려들었으나 일격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근방에 있던 병사들도 활시위 한 번 제대로 당기지 못하고 동료의 뒤를 따랐다. 덕분에 고르딘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신나게 성문을 두드려댔다. 문은 어느새 건너편이 보일 정도로 반파되어 있었다.


“저 자식들 설마...!”


순식간에 남문이 제압당하는 것을 보며 이칼롯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자식들, 정말로 루도를 죽일 작정이다.’


그것이 레이시의 명령인지 아니면 제폰의 즉흥적인 판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찌됐든, 그들이 루도의 목숨을 왕실근위대 전부와 싸울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로써 안개송곳니는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들에겐 로샤단도, 근위대도 격파해야 할 대상이었다. 로샤단은 근위대와는 싸울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이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근위대의 입장에서 볼 때 로샤단이든 안개송곳니든 똑같은 침입자에 불과했다.

기묘한 삼파전이었다. 하지만 말이 삼각구도지 로샤단은 다른 두 집단에 비해 전력 면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였다. 성문이 파괴될 때까지 유미르네와 알룬도가 입씨름을 벌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아무리 저 세 명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 많은 근위병들을 돌파할 순 없어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중과부적으로 자멸하고 말 거라고요.”


“아니, 저놈들은 반드시 루도를 찾아 죽일 거요.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이미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놈들이란 말이오!”


“그럼 더더욱 싸워선 안 되죠! 우린 얼마 전에 제스터 단 한 명에게 전멸할 뻔했다고요.”


“아주 잠깐 동안만 발목을 붙잡으면 되오! 제리온이 안다바리엘을 처치할 때까지만...그럼 근위대도 이쪽에 가세할 거요.”


그때까지도 이칼롯은 뚜렷한 지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은 루도를 구하러 가라고 외쳐댔고, 머리는 녀석들과 싸워선 안 된다며 옷깃을 잡아끌었다.

의사결정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졌다.

막 안개송곳니가 성문을 통과할 무렵, 멀리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고르딘의 뒤통수를 때렸다. 까아앙! 투구를 쓰고 있어 데미지는 전혀 없었지만, 그 청량한 쇳소리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르딘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더불어 몸을 숨기고 있던 일행도 그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한 인물에게 시선을 건넸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로 한복판에 검을 짚고 선 디리터를 제외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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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7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4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09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4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3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3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4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7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5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7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4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1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0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89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599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3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28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39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5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2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6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6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0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2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5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29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0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5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7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8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1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5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6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0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6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6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69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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