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이 새끼가 간덩이가 부었네. 죽고 싶은 거냐?”

“그니까 법이래도? 머리가 나쁘니까 이해를 못 하네.”

남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손가락을 뚜둑 꺾기 시작했다. 어차피 유리잔을 맞은 시점부터 곱게 끝나긴 글러 먹은 상황이었다. 제리온도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몸을 일으키자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싹 가셨다.

그런데 막 제리온과 사냥꾼 사이의 거리가 5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즈음, 레미나가 달려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사냥꾼들이 낸 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다른 일행도 2층 난간에 나와 있었다. 루도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무기를 챙겼다.

레미나가 양팔을 벌린 채로 말했다.

“그만! 둘 다 여기까지 해요. 말로 해결할 수 있잖아요?”

갑자기 나타난 미소녀의 모습에 사냥꾼들이 일제히 휘파람을 불었다. 잠옷차림 그대로 뛰쳐나온지라 레미나는 허벅지며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유리잔을 맞은 남자는 그녀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레미나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그 음흉한 시선에 모멸감을 느꼈지만 레미나는 꾸욱 참았다.

남자가 말했다.

“휘유, 이 멋진 아가씨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나이스, 아는 사람이냐?”

“....”

아나이스는 배를 심하게 맞은 탓인지 연방 기침을 콜록거렸다. 마리네가 재빨리 달려가 그녀와 오린을 부축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피부 곳곳이 군홧발에 채여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분노가 치밀었으나, 마리네는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레미나가 말했다.

“당신들, 빚 받으러 온 거죠? 아나이스의 빚은 우리가 대신 갚아주기로 했어요. 돈은 줄 테니, 행패 부리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행과 아나이스 사이의 관계를 알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돈을 준다는 말에 남자의 콧구멍이 벌름벌름 움직였다.

“호오, 아가씨가 아나이스 빚을 대신 갚아준다고? 그래, 그 돈이라는 건 어디 있지? 혹시 아가씨 아랫도리에 숨겨져 있는 거 아냐? 푸하하!”

남자는 완전히 고조되어 저급한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가 보기에 제리온과 레미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에, 어수룩해 보이는 아가씨일 뿐이었다. 어떻게 눈앞의 여자를 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남자의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레미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미리 준비한 가죽주머니를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이자까지 63골드라고 했죠? 이제 빚은 해결됐으니 썩 나가주세요.”

주머니 속에서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레미나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깨닫자 사냥꾼들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정말로 60골드를 준비했다. 하룻밤 사이에 이런 돈을 마련하다니, 눈앞의 소녀는 귀한 집의 영애이거나, 아니면 부유한 상인임이 틀림없었다. 사냥꾼들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아나이스를 위해 60골드를 마련할 정도면, 조금 더 협박을 가미하면 온몸에서 동전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봉도 이런 봉이 따로 없었다.

남자는 일단 눈앞의 돈부터 가로채기로 하고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돈주머니를 건네받기 직전, 제리온이 레미나의 어깨를 잡아 뒤로 확 끌었다.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뭐 하는 거야, 제리온!”

당황하여 그녀가 묻자 제리온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돈 줄 필요 없어. 생각해보니 왜 이딴 녀석들한테 밥을 퍼 먹여줘야 하지?”

사냥꾼들의 관자놀이에 일제히 핏줄이 돋았다. 이걸로 거슬리는 행동이 두 번. 호락호락하게 넘어가기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유리잔을 맞은 남자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제리온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가 말했다.

“너 이 새끼...저 아가씨 봐서 좋게 넘어가려고 했더니 정녕 죽고 싶은 거냐?”

“자...잠깐만요!”

레미나가 재빨리 둘 사이를 중재하려고 달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리온 쪽에서 그녀를 밀어젖혔다.

“누님은 빠져 있어.”

“너,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니?”

“이건 내가 뿌린 씨앗이야.”

레미나는 어이가 없어 뭐라 말하려 했으나, 이미 홀 안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깨닫곤 뒤로 물러났다. 루도와 이칼롯도 말없이 1층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무기를 가진 사람이 셋으로 늘어나자 사냥꾼들도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제리온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로 말했다.

“자아, 그럼 우리 이야기나 계속해볼까?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났지? 그런데 이건 정말 서로에게 필요한 대화야! 나는 돈을 안 줘도 되고, 너희들은 만족해서 이 가게를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간단해. 당장 여기서 꺼져. 그럼 내 관대하게 네놈들 목숨만은 살려주마.”

남자는 대답 대신 제리온의 얼굴에 냅다 주먹을 날렸다.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리온은 정통으로 맞곤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남자는 쓰러진 제리온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친구 믿고 깝치다간 오래 못 산다. 내가 이 정도 위협에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우린 전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라고.”

“으...킥킥! 그래, 아주 좋아. 나는 기본적으로 대화로 해결하는 걸 좋아하지만, 뭐 이런 것도 전혀 나쁘지 않지.”

제리온은 오른손을 꺼내 검지로 남자의 인중을 가리켰다. 남자는 그가 무기를 꺼내는가 싶어 잔뜩 경계하다가,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자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리온이 말했다.

“궁금하지? 내가 뭘 믿고 그렇게 나대는지.”

“오냐, 궁금하다. 곧 뒈질 놈이 뭐가 그리 자신만만하냐?”

“내가 믿는 건 이거야. 레서(Lesser)..."

시동어를 읊기 직전, 제리온은 고개를 치켜들어 뒤에 선 루도와 이칼롯의 얼굴을 확인했다. 곧 눈짓으로 둘의 동의를 얻자, 그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띠어졌다.

“임팩트(Impact)"

퍼억. 손가락 끝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남자의 코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상반신이 활처럼 휘었다.

“어억?!”

코뼈가 완전히 나간 모양인지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곧 흘러나온 피가 의자며 테이블 다리를 흥건하게 적셨다. 고통이 어찌나 대단한지 남자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연방 신음을 토했다.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자 제리온은 그의 동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가에 서 있던 사냥꾼들도 위험을 감지하곤 일제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막 무기를 뽑아들기 전, 짧고 강렬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내리꽂혔다.

“뽑지 마라.”

사냥꾼들은 우뚝 멈춰 선 채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이칼롯이 발도자세로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거리가 꽤 되는데도 그들은 이칼롯이 내뿜은 살기에 눌려 숨을 죽였다. 만약 검을 뽑는다면, 그 순간 연노란 칼이 자신들의 목을 훑고 지나갈 게 분명했다.

재차 마법을 준비하던 제리온은 나머지 녀석들이 겁을 집어먹자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도 그렇고, 일행의 수준에 한참 뒤떨어지는 녀석들 투성이었다. 그가 말했다.

“얌마들아, 이 못생긴 새끼 데리고 썩 꺼져.”

사냥꾼들은 쭈뼛거리며 쓰러진 남자를 부축했다. 남자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외쳤는데, 도무지 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종류의 언어가 아니었다. 사냥꾼들이 막 여관 문을 나서기 전, 제리온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려. 네놈들 현상금 사냥꾼이지? 아지트가 어디냐?”

그러자 사냥꾼 중 하나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냐?”

“이따 빚 갚으러 갈라 그런다. 잔말 말고 말해 새꺄.”

“마, 마을회관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됐지?”

“그래. 이따 보자고.”

제리온은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길게 트림을 했다. 아까 먹은 와인이 이제야 소화가 된 모양이었다. 싸움이 일단락되자 레미나가 냉큼 달려와 그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너어~정말! 왜 자꾸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복잡? 아나이스랑 꼬맹이 꼬락서니나 보고 그런 소릴 하쇼.”

레미나는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아나이스는 맞은 상처도 상처지만 정신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져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오린은 이보다 상황이 낫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까 것은 어린애가 감당할 만한 폭력이 아니었다.

아늑하던 여관 안은 순식간에 피와 땀 냄새로 점철되어버렸다. 레미나는 그 악취가 너무나도 싫었다.

“그건 그렇지만...분명 싸우지 않는 선택지도 있었을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그랬겠지. 나는 아니야.”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동료가 된통 당했다는 걸 알면 사냥꾼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냥 잠자코 있을까, 아니면 머릿수를 모아 쳐들어올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먼저 움직이는 건 이쪽이 될 테니.

제리온은 입술에 묻은 피를 쓰윽 훔치고는 말했다.

“이봐들. 내가 멋대로 행동한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어.”

루도와 마리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리온이 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먼저 칼을 뽑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해득실을 떠나, 길드의 명예가 걸린 문제였다. 이 마을에 고통을 가져온 게 로샤단이라면, 이를 해소하는 것도 로샤단이어야 한다.

제리온은 돌연 방향을 틀어 오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옷자락이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은 채로, 그는 다리를 구부려 오린과 눈높이를 맞췄다.

오린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눈물이 고인 것일 뿐. 제리온은 씨익 웃으며 그의 뒤통수를 쳤다.

“꼬맹아. 넌 영웅 같은 건 안 믿는다고 했지?”

“뭐, 뭐야. 네가 영웅이라도 된다는 거야?”

“킥, 영웅은 무슨. 난 그냥 쓰레기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밖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샛노란 햇살이 차양 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피 섞인 침을 찍 뱉어내며 말했다.

“그래도 다른 쓰레기보다는 훨씬 우월하지.”

오린은 비척비척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레미나가 어딜 가냐고 묻자 제리온은 엄지를 아래로 척 향해 보였다.

“내가 싼 똥 치우러 가우.”

그런데 그가 막 문을 나서려는 찰나, 재빨리 달려온 루도가 제리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자 루도는 검지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무슨 소리. 내가 싼 똥을 왜 제리온이 치워?”

“뭐? 왜 니 똥이야? 내 똥이지.”

“펠아람의 아이는 나니까 내가 싼 똥 맞아.”

“...으휴, 드러워. 비유를 해도 꼭.”

어느새 합류한 마리네가 해실거리며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셋은 변장도 하지 않고 평소의 복장 그대로 문밖에 섰다. 서로에게 어깨를 기대고 있자니 들이마시는 아침공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행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돈주머니를 회수한 순간부터, 일행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레미나도 그들을 따라가려 했으나 이칼롯이 그녀 앞을 막았다.

“공주님은 여기 계십시오. 안 좋은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 하지만...”

“공주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저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을 뿐이죠.”

그녀를 설득하고 나서 그는 디리터에게 시선을 옮겼다. 디리터는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의 투핸드소드는 발치에 널브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검을 뽑을 각오는, 현재의 그에겐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디리터, 공주님과 아나이스를 부탁한다. 한 시간 안으로 돌아오마.”

“...어. 미안.”

디리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나이스나 오린보다, 지금은 그의 상태가 더 걱정이었다. 그가 영 기운을 되찾지 못하자 옆에 있던 유미르네가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산송장이 다 됐네. 맥 빠지게...”

대화를 마치고서 이칼롯은 루도의 왼편에 따라가 붙었다. 먼저 출발한 셋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그는 현 로샤단의 우두머리다. 그러니까, 그는 문제를 확실히 맺고 끊을 필요가 있었다.

셋을 비난하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든지.

“여기까지 온 거다. 안개송곳니도 우리가 수도로 향한다는 걸 진즉에 눈치챘겠지.”

루도는 왠지 가슴이 들떠서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점이 이칼롯의 장점이자, 또 단점이기도 했다.

“하여간 명분 만들기에는 도사야.”

투구를 벗고, 가발을 던지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는 침대맡에 내팽개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불어오는 맞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주민들은 1열 횡대로 걸어가는 일행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진짜 로샤단’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제리온이 콧잔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바로 며칠 전에 제스터에게 털려놓고 이렇게 당당해도 되는 거냐? 쪽팔리게스리.”

루도는 뒷짐을 지고 잠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로샤단이 안개송곳니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자신이 믿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따름이다. 이제 조금만 가면 수도 라키시아가 보이지 않는가.

그가 말했다.

“난 원래 약자에게 강해. 이기는 걸 좋아하거든.”

“킥킥,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지.”

한편 일행의 뒤편에서는 유미르네가 다섯 보 정도 거리를 벌린 채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색 계통의 옷으로 온몸을 두른 그녀는, 정말 그림자라도 따라붙은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넌 왜 따라오냐?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제리온이 비아냥거리자 그녀는 생긋 웃으며 답했다.

“구경이나 하려고. 신경 끄셔~.”

마을회관은 「여행자의 요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인지, 거리에 사냥꾼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전원 마을회관으로 집결한 것이리라. 그럼 찾아갈 수고를 한결 줄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마을회관 앞에는 사냥꾼 셋이 무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막 그들과 맞닥뜨리기 전, 이칼롯이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제리온, 한 가지만 지켜다오.”

“응? 뭔데.”

“파이어볼은 쓰지 마라.”

“왜?”

“넌 너무 시끄러워.”

“크크크, 알았어.”

일행이 다가오자 한 남자가 플레일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멈춰라! 네놈들, 타지에서 왔지? 왜 말썽을 피우는 거냐!”

그 말에 루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타지에서 온 건 맞지만, 에이 설마.

“타지인이라니...당신들 정말 내가 누군지 몰라요?”

“음...뭐?”

“아니, 모르면 됐고.”

이렇게 코앞까지 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정말로 멍청한 집단이다. 뭐, 무식하면 그건 그거대로 고마울 따름이다. 이칼롯이 플레일을 든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현상금 사냥꾼 아지트인가? 너희들의 우두머리와 할 말이 있다.”

“하, 그렇겐 못하지.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아!”

철벅! 호기 좋게 휘두른 플레일은, 그러나 애꿎은 흙먼지만 튀기며 바닥에 처박혔다. 튀어 오른 모래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남자는 목덜미를 찍히고는 맥없이 쓰러졌다.

“너, 너 이 새끼들....!”

동료가 쓰러지자 나머지 두 명의 문지기가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루도와 마리네는 각각 한 명씩 노리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자세를 낮춘 채 파고드는 둘의 공격에 문지기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공격다운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칼집으로 명치를 두들겨 맞았다.

문지기 셋을 쓰러뜨렸으니 이제 안으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철커덕-하면서 무언가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마리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거, 안에서 잠긴 모양인데?”

그러자 제리온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부수고 들어가면 되잖아.”

“제리온...시끄럽게 하지 말자니까.”

일행은 쓰러진 문지기들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칼롯이 열쇠꾸러미를 찾아냈다. 그는 홈에 맞는 모양의 열쇠를 찾아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런데 열쇠를 돌리던 그의 손목이 돌연 우뚝 멈춰 섰다. 이칼롯은 멈춰 선 그대로 몇 초간 경직되어 있다가,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아니, 역시 부수는 게 좋겠어.”

제리온은 낄낄대며 캐스팅에 들어갔다. 잠시 후 주먹만 한 잿빛 구체가 그의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구체는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아갔는데, 신기하게도 그 안에는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또 다른 구체가 있었다. 그 안에는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또 다른 구체가 있었고, 이런 식으로 총 다섯 개의 덩어리가 불안정한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전 준비가 끝나자 제리온은 오른손을 앞으로 척 내밀며 말했다.

“트위스티드 오브(Twisted Orb)"

큐우웅-바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구체가 앞으로 쏘아졌다. 날아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마법을 쏜 제리온의 팔이 반동으로 위로 치솟을 정도였다.

구체가 닿자 문이 사정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무를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 끼워 돌리면 저런 모양이 나올까? 기이하게 비틀리는 균열이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문은 산산이 조각나 건물 안을 덮쳤다. 때문에 안에서 석궁을 장전하고 있던 사냥꾼들은 미처 몸을 가릴 틈도 없이 나무파편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말았다.

***

[퉁실퉁실]

안개송곳니에 뺨맞고 멍청한 현상금사냥꾼들한테 화를 푸네요 ㅋㅋㅋ

[el*****]

널브러진 체->채
로샤단이 매듭지어야 할 일이니 엉뚱한 곳에 화를 푸는 건 아니죠

[레인Rain]

건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