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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조회수 :
359,287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5.03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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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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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22쪽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DUMMY

루도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몸에 힘을 줄 때마다 칼에 찔린 상처에서는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이미 그를 중심으로 작은 피웅덩이가 고여 있어, 그가 몸부림칠 때마다 질척, 질척, 하며 진흙탕을 헤집는 소리가 났다. 마치 어두운 강물 속에 빠진 기분. 루도는 몸의 감각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야도 점점 흐릿해져갔다.

그러나 루도는 멈추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불꽃마저도 전소시키려는 듯이.


“놔,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죽여버리겠어!!”


아케니온 단원들은 발버둥치는 그를 붙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치명상이 아니라고는 하나 검상을 입고 이런 힘이라니, 나중에는 둘로도 모자라 셋이서 루도를 제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레벨이다. 루도는 결국 아케니온을 뿌리치지 못하고 힘이 빠진 채로 바닥에 축 늘어졌다. 제랄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씩씩대는 그를 보며 제랄드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꽝인 모양이군. 루도, 너도 참 어지간하다.”


“크...아...”


“흐음...그럼 이제 뒤처리를 어떻게 한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데.”


이렇게까지 했는데 각성하지 않았다는 건 제랄드에게는 아주 맥 빠지는 결말이었다. 이렇게 신의 아이 하나가 죽는 것인가? 아니, 그전에 신의 아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고작’ 이런 거에 죽을 정도라면, 로시느도 별거 아니지 않을까?

곁눈질로 살펴보니 제폰은 검을 짚고 선 채 말없이 루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은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제랄드는 그 달관한 듯한 눈이 영 마뜩잖았다. 자기가 내세운 가설이 틀렸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다니, 혹시 각성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단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어찌 됐든 이 또한 예상한 범위다. 제랄드는 나이프를 휙 던져버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루도의 목에 겨누었다. 각성하지 않는다면, 죽여버리면 될 일이다. 레이시의 의도대로 된다는 게 영 탐탁지 않긴 하지만, 이런 결말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자신은 아직 안개송곳니와도, 흑연기사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 루도의 목을 잘라버리려는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제랄드는 히죽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로샤단인가? 기왕 온 거 나머지도 처리해둬야겠지. 부탁하겠습니다, 제폰님.”


그는 루도를 인질 삼아 로샤단의 무장을 해제할 생각이었다. 일단 유리한 위치가 선점되면, 그 후에는 제폰에게 맡기든지, 아니면 다 같이 덮치면 끝날 문제다. 제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디리터와 제리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리터가 쓰러진 루도를 보고 소리쳤다.


“루도!!”


루도는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 눈동자를 굴렸으나, 힘이 빠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제리온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파이어볼을 만들어 제랄드에게 겨누었다. 그의 캐스팅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기 때문에, 제랄드는 협박할 타이밍을 잠시 놓치고 말았다.

그가 말했다.


“제르카엘시온 멜피드. 그거 던질 생각인가? 그럼 여기 펠아람의 아이도 같이 죽을 텐데.”


그러자 제리온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를 되받아쳤다.


“그리고 네놈들도 함께 숯덩이가 되겠지. 뒈지고 싶지 않으면 루도 이쪽으로 넘겨.”


“입장을 망각했군. 동료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마법 지우고 항복해라.”


“너야말로 간이 부었구나. 세 번은 안 말해. 지금 당장 루도 이쪽으로 보내. 그럼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준다.”


“일을 힘들게 만들지 마라. 여기서 항복하면 루도도, 너희도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이 씹새끼가 진짜. 나랑 지금 난장 까자는 거냐?!”


퍼어엉. 제리온의 불꽃이 기름이라도 뿌린 것처럼 일순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염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예의 구체 모양으로 되돌아갔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랄드는 이를 빠드득 가는 그를 보며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협상하기 어려운 타입이로군.’


한편 디리터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제폰과 대치하고 있었다. 둘은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디리터는 단박에 그가 진홍검(眞紅劍) 제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20여 미터에 달했으나 디리터는 그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늘처럼 연마된 감이 전신에서 아우성을 쳤다. 저 남자는 못 이긴다. 이기긴커녕 다섯 합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서는 어떻게든 루도만 빼돌려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제랄드와 제리온은 서로가 서로에게 협박을 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제리온은 금방이라도 파이어볼을 날릴 듯이 큰소리를 쳤고, 제랄드는 아예 루도의 목을 밟아 부러뜨릴 준비를 했다. 이런 과열된 분위기이다 보니 언제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제리온이 루도를 두고 마법을 날리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제랄드의 요구에 응해 꼼짝없이 붙잡혀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해답 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사이, 루도는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너무 피를 많이 흘린 까닭인지 전신에 힘이 없고, 목소리도 전혀 나오질 않았다. 제리온의 외침도 꿈처럼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런 곳에서 죽을 줄이야. 아직은 죽을 수 없는데. 데루루피아를 구해야 하고, 왕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하고, 레이시에게 복수해야 하고...제폰, 제폰, 람카디스를 죽인 제폰!

시이이익...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 그 맥없는 날숨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깨닫자, 루도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의식은 그곳에서 끊겼다.


“...어?”


처음 이상을 발견한 건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남자였다. 보랏빛 연기가 -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도 모를 보랏빛 연기가 루도의 몸을 잔뜩 휘감기 시작했다. 연기는 특히 상처부위에 집중됐다. 힘줄이 끊어진 뒤꿈치에, 나이프에 찔린 오른 가슴에, 횡격막에. 연기가 스며들 때마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피가 멎고, 환부에서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남자는 제랄드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명도 잊고 멍한 표정으로 그 기이(奇異)를 관찰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자신이 미쳤으면 미쳤지, 도무지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광경에 그는 입만 뻐끔거렸다.

때문에 제랄드가 뒤늦게 오오라를 느끼고 발밑을 쳐다봤을 땐 이미 루도의 자가치료가 완료되어가고 있었다.


“...무슨?!”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제랄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발아래 있는 건 만신창이가 되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분명히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이것’은 대체 뭐지?

미처 지시를 내릴 틈도 없이, 다리를 붙들고 있던 남자가 하늘로 치솟았다. 다른 한 명은 황급히 손을 놓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그 남자의 허벅지를 걷어차 부러뜨리면서, 루도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설마 설마 했는데, 이게 각성이라는 건가!”


루도는 양손에 묶인 밧줄을 가볍게 풀어냈다. 매듭을 푼다거나, 날붙이로 줄을 자른다거나 하는 번거로운 짓은 필요 없었다. 그저 힘을 주어 양팔을 당기자 밧줄은 힘없이 투둑 끊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발치에 놓인 검을 주워들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제랄드를 향했다.


“큭?!”


늘어뜨린 검을 대각선 위로 올려치는 공격. 제랄드는 황급히 몸을 숙여 이를 피했다. 그런데 뒤통수에서 무언가가 우지직,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루도의 일격에 나무 두 그루가 잘려 기울어지고 있었다.


“컥...!”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는데 정신이 팔려, 그는 루도의 발길질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옆구리에 정통으로 발차기를 맞고 5미터가량을 날아가 처박혔다. 그는 쓰러지자마자 피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쿨럭, 커헉!”


단지 발로 한 번 걷어차인 것뿐인데 늑골이 몇 대가 부러졌는지도 모르겠다. 갑옷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살을 뚫고 들어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제랄드는 이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날린 소년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킬레스건을 끊어놓았을 텐데, 소년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저게 신의 아이...!”


루도는 쓰러진 제랄드를 한 번 흘기고는, 바로 제폰을 향해 검을 돌렸다. 제폰도 그의 투기를 느끼고는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펠아람의 아이, 결국 각성한 건가.”


한편 디리터와 제리온은 넋이 나간 채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성한 루도와는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눈앞에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말도 안 되는 괴력으로 아케니온을 제압한 루도. 그에게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제리온은 루도가 제폰에게 달려들 즈음에서야 정신을 차렸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제폰에게 달려드는 게 자살행위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제기랄! 루도 이 자식아, 됐으니까 이리로 와!”


“으아아아!!”


제리온의 목소리는 그가 내지르는 함성에 묻혀버렸다. 제폰과의 거리는 10미터가량이었지만 루도는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그 거리를 좁혔다. 둘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둘이 맞부딪힌 지점에서 일순 불꽃이 튀었다. 양쪽의 무기가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귀청을 찢는 고음이었다.


“크악...?”


제폰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가린워드 마을에서 레이시를 공격하던 때였던가? 그때도 제폰은 땅바닥에 굳건히 뿌리내린 채,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다. 스위치가 바뀐 지금도.

우직, 우지직. 나뭇가지 몇 개가 사정없이 부러져나갔다. 제폰의 공격에 밀려 몇 미터를 날아간 루도는 낙법조차 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딘가 부러진 느낌이 들었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온 오오라가 순식간에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네가...람을..!”


회복이 끝나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조금 전보다 더욱 빨라진 스피드가 그의 광기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녀석의 목을!

그러나 그는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탓인지 제폰이 다음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크림슨 블레이드가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핏물이 검의 옆면에 파여진 홈을 따라 흘러내려 진홍의 마법진을 완성해냈다.

블러디로어(Bloody Roar). 루도는 코앞까지 다가간 다음에야 그의 검이 붉게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젠 멈출 수도 없었다. 쏘아진 화살은 적의 심장을 꿰뚫거나, 아니면 방패에 가로막혀 무력하게 부러질 뿐. 그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측면의 시야가 일순 밝아진다고 느낀 건 그때였다.

콰아앙!

제리온이 날린 화염이 제폰의 상체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그는 십여 미터를 날아가 쓰러졌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루도 또한 폭압에 휘말려 바닥을 뒹굴었다.


“으, 으아앗?! 이게 무슨...”


루도는 재빨리 몸을 굴려 옷에 묻은 불을 껐다. 조금만 거리가 가까웠다면, 그리고 조금만 조준이 잘못됐다면 그도 함께 숯덩이가 됐을 상황이었다. 그의 과격함은 한두 번 본 일이 아니지만, 이번 것은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러나 한마디 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루도는 목구멍에 올라온 것을 도로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리온이 머리 끝까지 화난 얼굴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노기가 어찌나 짙은지 머리 위로 불꽃이 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잔뜩 위축된 그에게 제리온이 말했다.


“제발, 가자, 이 새끼야!”


꽉 다문 이빨 사이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낮고 짤막한 몇 마디가 루도의 다리를 옥죄었다. 그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눈동자는 이제 됐다고, 더는 몸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하자 달아올랐던 감정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전신을 감싸던 오오라도 바람에 뒤섞여 스르륵 자취를 감추었다.

루도는 둘이 있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몸을 덧씌우고 있던 오오라는 전부 사라졌지만, 무언가 평소의 그와는 다른 이질감에 디리터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야, 너...”


그는 디리터의 앞에 다다르자마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갑자기 쓰러지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디리터는 화들짝 놀라 그를 부축했다.


“루도 얌마! 정신 차려!”


“으...으음...여기는?”


루도는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몽롱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리온이 혹시나 싶어 그의 몸을 구석구석 훑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안 묻은 곳이 없었지만, 중상은커녕 생채기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무슨 영문이냐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루도를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자식, 대체...


“뭐야, 내가 왜...? 제랄드 새끼는 어디 갔어? 제폰은...헉!”


발걸음을 내딛던 루도는 갑자기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어...어?”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누워 있는데도 등이나 엉덩이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몸이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흘리고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펠아람의 능력은 끊어진 동맥을 포함해 신체의 모든 상처를 회복시켰으나, 소진된 혈액까지 되돌리진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루도가 느끼는 증상은 전부 심각한 빈혈이라고 봐야했다.


“아주 염병을 하는구나, 이 새끼! 일단 돌아가서 보자.”


제리온이 그의 어깨를 부축하며 말했다. 루도는 찍소리 않고 그에게 의지해 몸을 늘어뜨렸다.

그는 루도를 말에 싣고 곧장 등자를 밟고 올라탔다. 그런데 이렇게 탑승을 하고 보니 디리터가 탈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얼마 전 루도가 위첼을 포함해 셋이나 태우고 온 것과는 경우가 다른 게, 디리터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너무 컸다.

루도가 보여준 위용에 놀라 쩔쩔매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후방에는 아케니온 몇 명이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를 남기고 떠나기란 실로 애매했다.

그런데 마침 그 시점에서 이칼롯이 허겁지겁 말을 몰고 나타났다. 마리네의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루도를 구원하러 온 것이다. 디리터가 그를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기가 막히게 나타나시네, 대장 나리.”


“...미안하다. 루도는?”


“일단 죽지는 않은 모양인데...으엉?”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디리터는 측면에서 느껴진 살기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제리온도 그를 발견하곤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직격으로 맞았을 텐데...! 새카맣게 타오르고 있는 잔해 너머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몸에 붙은 불을 손으로 툭툭 쳐 꺼트리면서, 제폰은 말 위에 쓰러진 루도를 응시했다. 일행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더 볼일 없으면 어서 가지.”


“출발! 추울발!!”


제리온과 이칼롯은 사정없이 말의 옆구리를 쳤다. 제폰이 일행을 향해 몇 보 내딛긴 했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디리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괴물과 칼부림을 했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옆을 보니 루도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칼집으로 루도의 뒤통수를 두드리며 말했다.


“뭘 쳐다봐? 이 사고뭉치야.”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 이렇게 우리끼리만 와도 돼?”


“어...앞쪽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 니 구한다고 마차까지 돌릴 수는 없잖아.”


“그렇네...”


루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이 달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맞바람이 불어와 잔뜩 이마를 때렸지만 녹초가 된 까닭인지 시원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루도는 이때 이미 자신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났었음을 깨달았다. 기억의 공백, 피떡이 되어 나뒹굴고 있던 아케니온, 그리고 어째서인지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은 자신.

자신이 펠아람의 아이임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그는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을 하나씩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


마리네는 마차 주위를 맴돌며 일행이 돌아오기를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칼롯이 지원을 떠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귓가에는 말발굽 소리는커녕 풀벌레 우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다들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발을 굴리는 그의 움직임이 더욱 부산해졌다.


“얘! 좀 가만히 있어. 보는 내가 정신 사납네.”


보다 못한 에레이시아가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그녀는 마차 옆문에 기대어 선 채 일행이 떠난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불안하게 돌아다니는 마리네와 달리,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묘한 차분함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레미나도 별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느릿느릿하게 떠다니는 한 조각 구름조차 눈에 밟힐 정도로 사위는 정적이었다. 마리네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침착해지려 했지만 칼같이 선 감각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따금 벌레가 눈앞을 지나갈 때면, 그리고 숲 속 어딘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에레이시아는 그런 그를 보곤 신경과민이라며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곧 돌아오겠지. 걔네들 질긴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야...그렇지만...”


마리네는 애써 미소 지었다. 그러나 가슴 한편으로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루도를 찾으러 간 일행은 돌아오지 않고 있고, 유미르네 또한 행방이 묘연하다. 그리고 음영이 드리워진 숲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하다.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다른 두 아가씨도 느낄 정도로 그의 긴장은 적나라했다. 결국 레미나가 위축된 그의 어깨를 풀어주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칼롯이 베리어스에게 뭐라고 말한 거야? 귓속말로 뭐라 하던데.”


“응? 아아, 그건 나도 못 들었는데.”


“지금쯤이면 류이덴사에 도착했을 텐데. 뭔가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거야?”


“그야 뭐...그쪽 입장도 있으니까. 현상수배자 돕는 일에 수호기사단을 동원할 수는 없으니...어?!”


순간 마리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찌이이잉...강렬한 위화감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발가벗겨진 기분. 뒤통수가 서늘해져서, 마리네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반색하는 그를 보며 레미나와 에레이시아도 몸을 움츠렸다. 에레이시아가 말했다.


“뭐...뭐야? 왜 그러는데?”


“방금 그거 못 느꼈어요?”


“그거라니? 난 아무것도...”


“누군가 있어요..누군가...!”


마리네는 아예 무기를 뽑아들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는 레인저 시절 하던 대로 공간을 동,서,남,북으로 나눠 각 지점을 5초마다 번갈아 주시했다. 도로, 나무, 바위 - 똑같은 풍경이 반복된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나 다시 돌아본 시야에 전과 다른 이질감이 발견된다면, 이는 이상(異常)으로 간주된다.

그는 경직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도로, 나무, 바위, 도로, 나무, 바위, 도로, 나무, 바위 ....

가면.

흘러가던 눈동자가 황급히 한 지점에 고정됐다. 명백한 이상(異常)! 숲 속 가시덤불 틈새로, 광대가면 하나가 살짝 기울어진 각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네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으아앗...제스터?!”


그는 발치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 그대로 던졌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은 가면의 아래쪽 허공에 부딪혔다.


“오우...오늘은 참 잘 들키는 날이로군요. 이래서 레인저는 귀찮다고 했는데.”


“꺄아아아...?”


숲속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에레이시아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위치가 발각된 이상 더는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제스터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마리네의 눈에는 광대가면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신 분명 심장을 찔렸을 텐데...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마리네의 질문에 제스터는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그는 손에 쥔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 또한 오늘 자주 듣는 질문이로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악마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킬킬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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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2) +1 15.05.11 778 22 21쪽
241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5) +6 15.05.10 749 22 15쪽
240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4) +1 15.05.10 786 22 17쪽
239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3) +2 15.05.10 880 21 17쪽
238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2) +1 15.05.10 769 24 13쪽
237 람의 계승자 - ep.5 - 까마귀가 우는 밤(1) +4 15.05.09 880 24 28쪽
236 람의 계승자 - ep.5 - 왕하직속뭐시기(1) +3 15.05.09 915 23 21쪽
235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7) +2 15.05.09 1,008 24 18쪽
234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6) +5 15.05.08 1,023 28 24쪽
233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5) +2 15.05.08 886 23 24쪽
232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4) +2 15.05.08 902 22 26쪽
231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3) +2 15.05.08 894 24 19쪽
230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2) +2 15.05.08 759 23 24쪽
229 람의 계승자 - ep.5 - 승리 뒤에 오는 것들(1) +5 15.05.07 770 25 19쪽
228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0) +2 15.05.07 891 23 24쪽
227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9) +1 15.05.07 813 21 24쪽
226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8) +4 15.05.06 733 26 22쪽
225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7) +2 15.05.06 979 24 29쪽
224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6) +3 15.05.06 805 23 28쪽
223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5) +4 15.05.05 931 26 24쪽
222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4) +2 15.05.05 762 23 23쪽
221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3) +1 15.05.05 643 22 15쪽
220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2) +2 15.05.05 772 24 18쪽
219 람의 계승자 - ep.5 - 빗속으로(1) +4 15.05.05 686 23 15쪽
218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4) +2 15.05.05 922 24 23쪽
217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3) +3 15.05.04 936 22 23쪽
216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2) +2 15.05.04 868 22 21쪽
215 람의 계승자 - ep.5 - 사냥감의 반전(1) +1 15.05.04 775 24 20쪽
214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5) +2 15.05.04 710 24 15쪽
213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4) +2 15.05.04 720 25 23쪽
212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3) +3 15.05.03 846 29 18쪽
211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2) +3 15.05.03 765 22 23쪽
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5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5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8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8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2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1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91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600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4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30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6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3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7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8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2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3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7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2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7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8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9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2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6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9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1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155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2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70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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