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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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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304
추천수 :
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4.1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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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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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8쪽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DUMMY

반란의 주모자 위그라프가 눈앞에 있었다. 모든 것은 이 사내가 지시한 것이다. 이자 때문에 근위병이, 마법친위대가 몰살당했다. 레미나 여왕은 국가의 통치자라는 빛을 보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로시오는 당장에라도 위그라프의 심장을 뽑아 갈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울분을 터뜨렸다.


“위그라프으!!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 뭣 때문에, 뭣 때문에!”


토해내는 그의 분노가 후작을 향했다. 그런데 정작 위그라프는 그와 대면하고서도 대답도 않은 채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뒤에 누가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남자가 눈치를 주자 그제야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아-! 킬킬킬, 맞아. 내가 위그라프였지. 아직 익숙지가 않아서 말이야...킬킬.”


“저자는 어차피 죽을 테니 상관없지만, 다른 귀족을 대할 땐 그런 무례한 언동은 삼가 주십시오. 안다바리엘.”


“킬킬, 알았다구. 단장 나으리.”


로시오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는 예전에 공적인 일로 위그라프 후작을 몇 번 만난 일이 있었다. 리크나이츠 북부를 호령하는 권세가인 그는, 쥐고 있는 권력에 걸맞은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매사에 공정했을뿐더러 신의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다. 반란을 일으킬 만한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저렇게 어깨를 움츠린 채 소인배 같은 웃음을 흘리지 않았다. 위그라프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웃음, 표정, 몸짓, 말투까지. 그리고 그는 어째서인지 옆에 선 사내를 ‘단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조연이고, 옆의 남자가 모든 일을 지시한 주동자인 것처럼.

후작을 관찰할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로시오 쪽에서 움직임이 없자 가면을 쓴 남자가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한손용으로 제작된 작은 프람베르그(Flamberge)가 허공에 물결 쳤다. 로시오는 조심스레 뒷걸음질치며 물었다.


“더러운 반란자의 무리들이로군. 여왕님을 어떻게 했지?”


“아아아~. 그 미소녀 여왕님 말이십니까? 그분이라면 조금 전 나체로 창문에서 뛰어내리셨는데?”


“뭐...뭐야?!”


가면 뒤에서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농담입니다. 놀라시긴.”


로시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눈앞의 사내는 명백히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위그라프 후작과 그 옆에 선 남자 역시 자신의 등장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마법친위대장이라는 걸, 베너러블 클래스의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도. 노련한 마법사답게 그는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보다는 재빨리 상대방의 역량을 가늠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이거, 명망 높은 마법사를 죽여야 하다니, 제 검도 참 다양한 피를 마시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젊은 처녀의 것을 좋아한답니다.”


가면 쓴 사내는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운율에 맞춰 대사를 읊었다. 자기 딴에는 예술적으로 보이려고 한 행동 같았으나, 타인이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이질적이었다.

로시오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간 순식간에 살해당하고 만다. 그는 가면 쓴 사내가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무영창 캐스팅에 들어갔다.


“오, 멜피드님. 그렇게 계시지 말고 제 말에 맞장구라도 좀 쳐주시지요. 멍하니 계시니 제가 무안해지려 하지 않습니까? 어때, 오시는 길에 만난 자객들은 괜찮던가요? 대충 끌어온 용병 나부랭이지만, 그래도 세간에는 실력 꽤나 한다고 알려진 자들이지요. 뭐 그래도 멜피드님에겐 역부족이었겠지만, 입맛 다실 정도는 되었지요? 아하하하.”


로시오의 예상대로 가면 쓴 남자는 자신의 역할도 망각한 채 시적 언어 구사에 여념이 없었다. 다만 불안요소가 있다면 뒤의 두 남자였는데, 그들도 딱히 공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둘은 로시오에게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피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로시오는 마침내 주문을 완성했다. 그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폈다.

가면 쓴 남자가 말했다.


“멜피드님~. 뭐라 대답 좀 해주시지요. 생명체란 무릇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네 녀석과 할 말은 없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할 말이 없으면 제가 당신을 죽여야 합니다.”


“네놈이나 죽어라! 파이어볼(Fireball)."


로시오는 재빨리 손을 들어 남자를 겨눴다. 그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불덩어리가 굉음과 함께 남자에게 쏘아졌다. 가면 쓴 남자는 춤이라도 추듯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고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


콰가각! 건물 안에서 일어난 폭발로 대리석이며 석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남자들이 있던 자리는 붕괴된 벽과 동상으로 삽시간에 돌무덤으로 변해버렸다. 로시오 또한 산산조각이 난 유리조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으음...”


그는 깊은 신음을 흘렸다. 셋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곤 해도, 궁전을 이렇게 훼손하다니 선왕을 뵐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 어딘가에 여왕이 있을 터였으므로, 행여 폭발에 휩쓸린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로시오는 다시 전진하려 했지만, 폭발로 말미암은 연기로 한 치 앞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잠시 자리에 멈춰 서 연기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비로소 연기가 흩어져 현장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로시오는 짓눌린 욕설을 뱉어냈다.

위그라프와 갈색 머리 청년이 서 있었다. 그들은 먼지 한 톨 뒤집어쓰지 않은 채 폭발이 있던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복도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만 불덩이를 직격으로 맞은 사내는 가루가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돌무더기 밑에 깔린 건지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가 쓰던 광대 가면만이 복도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블링크(Blink)인가...귀여운 짓을 하는군, 위그라프!"


베너러블 클래스에 왕국 최고의 마법사라는 칭호를 가진 그였지만, 연달아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로시오는 침침해지는 시야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은 건 두 명. 그의 기량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고려해도 둘의 대응은 대단히 민첩했다.


"이번에야말로 숨통을 끊어주마."


“히히...히히히.”


그의 으르렁거림에 위그라프가 배를 잡고 웃었다. 로시오는 그의 기이한 행동에 미심쩍어하는 한편, 더할 나위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가 그리 웃기지?! 네놈은 피눈물을 흘리며 사죄해도 모자라!”


그는 쓰러진 돌무더기를 딛고 올라섰다. 그가 조금씩 다가오자 위그라프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킬킬킬...탐지계의 베너러블 클래스라며? 한심해, 한심해.”


“...무슨 소리냐?”


“킷! 발밑을 조심하는 게 좋겠군.”


푸우욱. 무언가가 발목을 움켜쥔다고 느꼈을 땐 이미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꺽...”


로시오는 경악하여 주위를 둘러봤지만 자객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한 게 누군지, 심지어 지금 배를 뚫고 간 물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익살스러운 광대 가면만이 딱 그의 눈높이쯤 되는 곳에 둥실 떠있을 뿐이었다.


“하-하-하!”


허공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허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떠오른 가면 뒤에서 똑똑히 퍼져 나오고 있었다. 로시오는 부들거리는 팔을 들어 가면 주위를 헤집었다. 가면 외엔 아무것도 없지만, 똑똑히 느껴지는 튜닉의 질감에 그는 눈을 부릅떴다.


“컥...설마...투명...”


“정답입니다! 이야아, 제 연기 어땠습니까? 그럴 듯했지요? 으하하하하.”


가면 쓴 사내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는 폭발로 시야가 어지러워진 틈을 타 재빨리 마법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당한 것처럼 돌무더기 위에 쓰러져 있다가, 로시오가 다가왔을 때 덮친 것이었다.

환영계 학파의 고등 마법인 인비저빌리티(invisibility)였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가면의 미간 부분에서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 가면 덕이지요. 정말 유용하고 재밌는 도구 아닙니까?”


“큭...”


아티팩트(Artifact)를 가진 자객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면이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한 것은, 가면 외에는 전부 투명화한 까닭이었다.


“제 재롱에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멜피드님.”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남자는 손에 쥔 프람베르그를 반 바퀴 돌렸다. 물결 모양의 날이 사냥감의 내장을 잔인하게 휘저었다. 엄청난 경련과 함께, 로시오의 입에서 다량의 피가 터져 나왔다.


“컥...이...우...”


“음~. 꽤 조용하게 가시는군요. 이런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쿨럭...건방 떨긴...”


로시오는 내뻗은 팔을 움직여 남자의 가슴팍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도 프람베르그가 몸을 관통한 상태. 경련으로 팔이 부들부들 떨렸고, 기이하게 뒤틀린 손가락은 그가 감내하는 고통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로시오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다른 한 손으로 프람베르그를 짚고 견뎠다.

그가 다 죽어가는 몸으로 자신의 신체를 훑자 가면 쓴 남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뭡니까, 이건? 남자의 애무는 사양하고 싶습니다만...”


그러자 로시오는 힘이 빠져 개미만 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쇼크(Shock)"


번쩍, 파지직! 푸른 전격이 그의 심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그 엄청난 충격에 남자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우아아아아...!!”


그가 뒷걸음질치며 검을 물렸기 때문에 지지대를 잃은 로시오의 허리가 푹 꺾였다.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지만 그는 쓰러지는 것만은 간신히 버텨냈다. 그러나 그것도 극한의 정신력이 불러온 기적일 뿐,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입안에 고인 피로 호흡하기조차 어려웠다. 로시오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했다.


“스펠 카트리지(Spell Cartridge)입니까? 대단한 준비성이네요.”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귓가에 와 닿자 로시오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광대 가면이 허공에 오롯이 떠 있었다. 분명히 심장에 정확히 박아 넣었는데, 그만한 충격이라면 일반인은 그대로 즉사하는 게 정상이었는데도!


“쿨럭...너 대체...정체가.”


“이야~ 이번 건 정말 아팠어요. 사람이었으면 죽었겠죠? 하핫.”


“으...아아아!!”


로시오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품에서 작은 보석 조각을 꺼냈다. 이미 승부는 났다. 가만히 놔둬도 1분을 넘기기 힘들만큼 자신의 상처는 깊었다.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에, 그는 체념하기보다 상대방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에 주력했다.

가면 뒤에는 대체 어떤 얼굴이? 로시오는 보석을 땅바닥에 내리치며 외쳤다.


“트루 사이트(True sight)."


기이이이...그의 동공이 연녹색 빛으로 점철되어갔다. 주변 마나의 흐름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하고, 거짓된 허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것은 공격 효과는 없지만, 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간파해낼 수 있는 탐지계 최강의 마법 중 하나였다.

마법에 의해 덧씌워진 그의 연녹색 눈동자가 빠르게 전방을 훑었다. 가면 쓴 사내는 그 시선을 느끼고는 불쾌한 듯 손을 내저었다.


“아아-. 그만 끝내죠. 속살을 보여주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로시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남자가 쓴 가면이 아티팩트인 것도, 그가 마법 장벽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도 모두 예상한 결과였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는 상대도 안 될 만한 ‘진실’이 로시오의 눈동자에 각인됐다.

가면 뒤의 얼굴. 본 적도 없고, 보아서도 안 되는 절망의 존재. 아티팩트는 단지 그럴듯한 이유에 불과하고, 그 남자가 가면을 쓴 이유가 정말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로시오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헉...쿨럭...너, 어떻게...이럴 수가...”


“뭐, 그런 겁니다. 놀랍죠? 하하하.”


로시오는 마지막으로 눈을 돌려 위그라프 후작을 바라보았다. 이런 괴물을 부리다니,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려 한단 말인가.

그리고 진실의 눈은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위그라프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로시오는 망연하여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가면 쓴 사내의 프람베르그가 심장에 꽂힌 것도 그즈음이었다.


“....!”


쿠욱. 그의 팔이 태엽이 다한 목각인형처럼 땅에 떨어졌다. 트루 사이트의 효과는 삽시간에 흩어져 사라졌고, 그의 눈동자에 어린 빛은 그것만큼이나 빠르게 사그라져갔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로시오는 위그라프 후작을 향해 알 수 없는 단어를 늘어놓았다.


“네놈들...후작을...어떻게...”


그의 죽음과 동시에 마법을 해제한 남자의 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갈색 머리 청년이 말했다.


“너무 지체했습니다, 제스터. 시간도 얼마 없는데...”


“하핫! 그럼 좀 도와주시지. 이번 건 정말 위험했다고요?”


그러자 위그라프 후작이 낄낄대며 웃었다.


“키키키...난 이 몸을 지배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말이야. 좀 더 수고하라고. 케케.”


제스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로시오의 시체에서 검을 뽑았다. 그가 검을 흔들자 묻어 있던 내장 조각과 피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갈색 머리 청년은 그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길 기다린 후 도서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친위대는 대충 다 처리한 것 같군요. 이제 여왕을 만나보러 갈 차례입니다.”


***


그람은 마법으로 기척을 지운 채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종종 그랬던 것처럼 왕실서고에 잠입해 신의 아이에 대한 문서를 열람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궁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결계가 궁 안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었고, 반란군은 정보가 차단된 틈을 타 은밀하게 병사들을 처리하고 다녔다.

발걸음을 옮기며 그람은 혀를 끌끌 찼다.


“반란이라니...리크나이츠도 많이 썩었군. 이번 왕은 민심을 거스른 건가...”


사실 그는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500년을 지내며 속세의 일에 무감각해진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관심사가 신의 아이다 보니 그쪽 분야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라키시아에 들어선 것도 몇 년 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는 신의 아이 - 정확히는 펠아람의 저주 -를 연구하며 카잘 산맥에 틀어박혀 있었다.


“금서(禁書)관리실은 왕족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가...결계를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그는 가로수가 드리워진 정원을 지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궁 중심부에선 아직도 전투가 한창이었지만, 도서관은 워낙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지라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람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도서관 문을 열었다. 그저 새로운 국왕이 신의 아이에 관심 두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


마법으로 자물쇠를 따려던 그는 이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종종 왕실 서고에 잠입했던 그지만, 항상 깊은 밤을 틈타 움직였기에 다른 사람과 조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짧은 망설임 후 그람은 서고로 들어섰다. 먼저 들어간 자가 자신을 목격한다면 즉시 입을 막아야 했기에 캐스팅도 준비했다.

안은 고요했다. 누군가 먼저 들어간 것은 확실한데, 어쩐 일인지 촛불 하나 켜지 않아 칠흑 같은 암흑만이 서고 안을 감돌고 있었다. 만약 이곳의 사서였다면 침입자를 잡아내기 위해 소란을 피울 테지만, 그람은 신경 쓰지 않고 금서관리실로 향했다. 그는 자기 일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도둑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금서관리실에 다다른 그는, 결계가 사라진 채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의 앙상한 해골이 따닥, 하는 기이한 소리를 냈다.


‘다른 침입자...아니, 왕족인가?’


금서관리실에 걸린 주문은 보통이 아니니 아무래도 왕족일 가능성이 컸지만, 그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호막을 두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아압!!”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그의 측면을 노리고 촛대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람이 시전한 보호마법으로 인해 촛대는 산산이 부서졌고, 도리어 공격한 쪽이 반동으로 멀리 튕겨나갔다.


“꺄아아악!!”


“...기습치곤 조잡하군. 어째서 이런 곳에...”


그람은 괴한의 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터뜨려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괴한의 정체가 잠옷차림의 소녀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흠칫 놀라 손을 놓았다. 소녀는 풀려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금서관리실은 그람이 서 있는 문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었다.


“윽...으윽...대체 왜...”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자 소녀는 몸서리를 쳤다. 그녀가 어찌나 어깨를 심하게 떠는지, 붙잡은 의자 다리가 땅바닥에 끌려 소리가 났다.

그람은 정체라도 캐내고 죽이자는 생각에 소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녀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턱을 붙들었다.


“넌 누구냐?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억지로 고개를 돌리자 눈물범벅이 된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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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람의 계승자 - ep.5 - 부조리(1) +2 15.05.03 856 23 20쪽
209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7) +5 15.05.03 795 28 25쪽
208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6) +2 15.05.03 895 24 22쪽
207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5) +4 15.05.02 938 29 21쪽
206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4) +1 15.05.02 884 27 20쪽
205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3) +2 15.05.02 690 24 21쪽
204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2) +2 15.05.02 768 24 24쪽
203 람의 계승자 - ep.5 - 이별이 그러하듯이(1) +2 15.05.02 586 24 22쪽
202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6) +3 15.05.02 696 28 18쪽
201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5) +5 15.04.29 863 24 19쪽
200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4) +1 15.04.29 938 24 26쪽
199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3) +1 15.04.29 789 24 24쪽
198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2) +3 15.04.29 812 26 18쪽
197 람의 계승자 - ep.5 - 만남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1) +1 15.04.29 758 24 17쪽
196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8) +4 15.04.28 905 28 16쪽
195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7) +3 15.04.28 840 25 20쪽
194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6) +3 15.04.27 712 26 19쪽
193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5) +3 15.04.27 756 22 17쪽
192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4) +2 15.04.27 731 22 18쪽
191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3) +1 15.04.27 732 30 18쪽
190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2) +2 15.04.27 758 27 19쪽
189 람의 계승자 - ep.5 - 전장에 떨어지다(1) +2 15.04.27 791 31 18쪽
188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完) +1 15.04.27 600 33 18쪽
187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5) +4 15.04.26 734 24 17쪽
186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4) +1 15.04.26 931 28 16쪽
185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3) +2 15.04.26 739 26 20쪽
184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2) +6 15.04.23 779 28 15쪽
183 람의 계승자 - ep.4 - 바람은 가지 말라 하지만(1) +3 15.04.23 840 26 19쪽
18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2) +2 15.04.23 756 25 17쪽
18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1) +3 15.04.23 767 26 15쪽
180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0) +1 15.04.23 683 25 22쪽
179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9) +3 15.04.22 811 29 16쪽
178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8) +3 15.04.22 847 27 15쪽
177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7) +1 15.04.22 778 29 18쪽
176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6) +1 15.04.22 793 23 18쪽
175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5) +2 15.04.22 765 29 15쪽
174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4) +3 15.04.22 911 25 18쪽
173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3) +5 15.04.21 767 27 16쪽
172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2) +2 15.04.21 923 25 14쪽
171 람의 계승자 - ep.4 - 거울이 보여준 것(1) +3 15.04.21 807 25 17쪽
170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8) +3 15.04.21 730 24 21쪽
169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7) +2 15.04.21 703 19 15쪽
168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6) +4 15.04.20 752 24 18쪽
167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5) +2 15.04.20 657 20 18쪽
166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4) +1 15.04.20 768 23 17쪽
165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3) +2 15.04.20 739 24 16쪽
164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2) +3 15.04.20 809 20 16쪽
163 람의 계승자 - ep.4 - 격노(1) +1 15.04.20 821 22 21쪽
162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6) +1 15.04.20 830 29 14쪽
161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5) +2 15.04.20 712 25 18쪽
160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4) +3 15.04.19 866 28 18쪽
159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3) +3 15.04.19 949 28 18쪽
158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2) +3 15.04.19 901 26 22쪽
157 람의 계승자 - ep.4 - 케리아돌의 둥지로(1) +5 15.04.19 1,212 46 22쪽
156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10) +6 15.04.18 901 26 21쪽
»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9) +3 15.04.18 773 26 18쪽
154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8) +1 15.04.18 657 24 19쪽
153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7) +2 15.04.18 687 26 18쪽
152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6) +1 15.04.18 748 27 17쪽
151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5) +4 15.04.18 713 23 16쪽
150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4) +1 15.04.18 670 24 17쪽
149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3) +2 15.04.18 754 22 17쪽
148 람의 계승자 - ep.4 - 불쾌한 소년, 유쾌한 소녀(2) +3 15.04.16 849 2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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