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그것이 어찌 국가의 존망까지 운운할 일이겠소. 태자 아체프렌이 세레즈의 정통한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아직 그 실종이 어떤 사고인지는 확실치 않소. 또한 확고한 일정을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닌 이상, 태자 개인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소?”
“이는 영명하신 여왕 폐하답지 않은 말씀,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코네세타와 자국의 이해가 맞지 않아 상호 간에 마찰과 대립이 많았다는 것은 오랜 사실이옵고, 특히 지난번의 문책 사건으로 인해 코네세타 측에서 크게 분노했다는 이야기는 영지에만 머무르고 있던 신의 귀에까지 들어왔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에 대한 불만을 태자 전하께 직접적으로 나타냈을 가능성 또한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왕의 입가에 경련하는 듯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저 늙은 너구리는 쉽게 보아 넘길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느비엔느는 속내를 감춘 채 입을 열었다.
“짐의 생각으로는 조금 지나친 해석인 듯싶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소?”
“어리석은 신이 어찌 감히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대로 아체프렌 전하의 실종에 대한 공식 발표를 미루신다면 분명 신료들과 영주들 간에 어떤 동요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아직은 실질적인 수색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할지라도, 왕실과 제국의 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이니만큼 가능한 한 조속히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내 그것을 묻는 것 아니겠소. 대외적으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왕실의 위엄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지 그대의 의견을 말해 보시오.”
재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야 아체프렌 전하의 실종을 왕실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아직 살아 계심을 가정한다면 즉시 코네세타와 커런스에 사신을 파견하여 책임을 추궁하고 전하를 찾기 위한 수색을 재촉하여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세레즈 왕실의 불안정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피할 수 없지 않겠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왕실의 진정한 안녕을 위해서는 왕위 계승자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그렇기에 신으로서는······.”
“계속하시오. 일리 있는 의견이라 생각되오.”
“······폐하의 아량에 기대어 감히 무례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참혹한 일이나 벌써 두 달째 아체프렌 전하의 생사조차 불분명합니다. 노파심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은 일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후에 크게 당황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해안 정찰대의 보고에 의하면 태자에 대한 확실한 소식은 코네세타 관할 아래에 있는 베네리타 항에서의 출항 연락이 마지막이었다고 하오.”
재상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였다. 이번에 여왕은 안타미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하나의 완벽한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 연극의 배역을 신청하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배역을 얻기 위해서는 각본에 어울릴 만한 착상을 제공해야만 했다.
“평생 이 나라 왕실에 종사해 온 신으로서는 무엇보다 왕실의 안정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체프렌 전하의 왕위 계승권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오나, 이제 전하의 행방이 불분명하고 코네세타의 불온한 움직임이 뚜렷한 이상 임시로라도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새로운 왕위 계승자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폐하.”
“재상. 지금 그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한 나라에 왕위 계승자가 둘일 수는 없는 것이오. 임시든 무엇이든 간에 계승자를 새로이 임명한다는 것은······.”
“그렇기에 신이 폐하께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태자 전하께서······ 돌아가셨음을 왕실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실이 직접 대외적으로 왕자의 죽음을 공표하란 말인가? 그러면 새로운 계승자는?”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임명한다면 선대왕 폐하의 차남이시자 여왕 폐하의 친자이신 안타미젤 왕자님을 제외하고 누가 있겠습니까? 그분이 계시어 새 계승자를 논하는데 혼란의 여지가 없음을 신은 크게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는 문자 그대로 재상이 자신의 편으로 돌아선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나뿐인 딸을 아체프렌의 약혼녀로 줄 만큼 그에게 절대적인 무게를 얹어오던 재상이 이제는 안타미젤 아래로 들어오겠다는 것인가? 물론 재상을 얻는다면 자신이 도모하고자 했던 일은 훨씬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나 그 속을 누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인지. 그러나 재상은 여왕의 그러한 심사까지도 읽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미 말씀드렸듯 신은 무엇보다도 왕실의 평안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여식과 정혼하였던 아체프렌 전하께서 돌아가셨음을 공표하시라고 감히 주청 드리는 것입니다. 왕실과 세레즈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왕위 계승자께서 그 위치를 확보하실 때까지 늙은 몸, 미력하나마 그 보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왕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이리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군. 짐 역시 왕가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그대와 동감하고 있소. 그러나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군. 다른 왕족이나 영주들이 태자의 죽음을 그리 쉽사리 인정하려 들겠소? 오히려 기회를 타서 안타미젤 왕자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반란이라도 꾀한다면 어찌할 것이오?”
“그 대답에 앞서 신도 한 가지 덧붙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
“기탄없이 말해 보시오.”
“대국의 태자를 시해한 코네세타를 그냥 저리 내버려 두실 생각이신지요? 모든 대신과 영주들은 태자 전하의 복수전을 원할 것입니다. 새로운 왕위 계승자라 해서 예외이겠습니까?”
아군이고 적군이고 간에 앞서 본인의 생각을 바닥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놀라운 통찰력에 대해선 혀를 내두름과 동시에 무언가 피부에서 스멀거리는 듯한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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