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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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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404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01 11:40
조회
3,540
추천
46
글자
7쪽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DUMMY

2화. 신분 은폐






청년의 입술 새로 고통스러운 숨이 흩어졌다.


여인이 말하는 뮤즈 마을이 정확하게 어느 영지에 속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의 귀환 경로를 대강 고려해 봤을 때 코네세타 남부의 해안 마을 중 하나일 거라 대충 짐작한 그는 신음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확실히 여인의 말대로 일단은 몸의 회복이 우선일 듯하였다.


자신을 구한 이가 작고 외진 마을에 사는지라 그의 신분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어수룩하고, 이 집의 위치 역시 동떨어져 있어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왔는데도 소문이 퍼져 나갈 염려가 없다는 점은 분명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본래 변두리에 놓인 작은 마을일수록 외지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법이었다. 몸도 성치 않은 마당에 공연한 의심을 사게 되어 성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면 그보다 더 큰 낭패는 없을 터였다.


코네세타는 그의 조국인 세레즈와 적대 관계에 놓인 나라였으며, 그는 저들로서는 대천지수나 다름없는 적국의 태자였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나라 안팎에 수많은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왕위계승문제를 두고 대립 중인 계모가 자신이 다친 몸으로 적국에 홀로 표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나올지는 불문가지였다.


일단은 신분을 감추고 저에 대한 모든 것을 숨겨야겠다고 그는 통증의 여파로 판단력이 흐려진 머리로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운신이 가능해지고, 다음 행보에 대하여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때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네즈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향긋한 수프 냄새가 한달음에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기척을 느낀 청년이 끙끙거리며 몸을 어떻게든 일으키려고 하자, 아이네즈는 들고 들어온 수프를 탁자 위에 놓아두고 빠르게 침대로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아직은 조심해야 해요. 몸도 여기저기 아프겠지만, 며칠을 고열에 시달렸어요. 열이 다 내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럽거나 메스꺼울 수 있어요.”


“경황이 없어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추슬러 앉을 수 있게 된 청년은 열꽃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열어 감사를 표했다.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르고 까칠하게 일어난 음성이었다.


“이렇게 구해주시고 지금껏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걸요.”


아이네즈는 푹신한 베개를 뒤에 세워 청년이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가 침대 위에서 편하게 자리를 잡자 갓 끓인 수프를 내밀었다.


“드세요. 시장하실 것 같지만, 수프 이외에는 아직 드시기 힘들 것 같아서.”


육신이라는 것은 참으로 비루하기 이를 데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도 허기가 졌다. 우습고도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그릇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일평생 본 적도 없는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그는 먹기 전에 다시금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시중을 받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에게 대단찮은 먹을거리를 챙겨준 일이 인사치레를 할 만큼 굉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그녀의 동거인이 바다에서 그의 목숨을 건져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겉보기에 궁색하다 할 만큼의 살림은 아니나 평민의 삶이란 고만고만한 법이었으니 넉넉하지 않을 형편에 아무런 대가 없이 일면식도 없는 저를 구하고 지금껏 돌보아 준 것은 분명 고마움을 표할 만한 일이었고, 평생을 남에게 떠받들려 살아온 그에게도 그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반지나 시계, 혹은 팔찌라도 끼고 있었다면 이럴 때 사례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장시간 파도에 휩쓸리면서 그마저도 다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시 눈을 뜨지도 못했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은을 하고 싶지만 당장 가진 것이,”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에 무언가를 바라면 천벌 받을 일이지요. 마음 쓰지 마세요. 아버지도 저도,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바라지 않았어요. 사는 데 큰 모자람도 없고요. 정말이에요.”


청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네즈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무사히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쁘네요. 열이 심해서 내심 걱정했거든요.”


뜻밖의 반응에 그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자신은 그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순수하게 호의를 보이는 아이네즈를 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가······.”


무어라 운을 떼려던 그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진 까닭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태자가 아닌 위치에서 타인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왕성이 아닌 곳에서 신분이 다른 상대를 이리 가까운 자리에서 이토록 오래 마주 대한 경험 또한 없었다. 머리로야 이러저러해야지 해도, 막상 닥치자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아가씨를 어떻게 불러야 하지요?”


자신을 아가씨라고 칭하는 것이 많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수프 그릇에 눈길을 준 채 들릴 듯 말 듯 물어오는 작은 목소리가 묘하게 귀여워 보여서 아이네즈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성장기에 있는 얼굴이라기에는 이목구비가 지나치게 뚜렷하고 태도가 의젓하여 저보다 연상일 거라 짐작하였으나, 의외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네즈, 저는 아이네즈 티아르예요. 당신은?”


“저는,”


무심코 운을 떼려던 청년이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살짝 벌려진 입술 새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주친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멍하니 입술을 벌린 청년의 얼굴 위로 서서히 경악과도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왜 그래요?”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면 상대의 이름 또한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그녀의 이름을 물어봤을 때 그가 그러하였듯 아이네즈 역시 별 뜻 없이 물어본 질문이었다.


“아······.”


청년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고통스러운 잇새로 신음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그가 머리를 움켜쥐며 다리를 웅크렸다.


그 서슬에 청년의 무릎 위에 있던 나무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수프가 청년이 덮고 있는 이불과 아이네즈의 치맛자락 위로 흘렀으나 놀란 아이네즈는 뜨거움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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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3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2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3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5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5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3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49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0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4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2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79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3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4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5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7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59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8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7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8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4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0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1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1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0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5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6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2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2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1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0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1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8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1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8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4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4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69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4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3 34 7쪽
»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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