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달빛에 드러난 그림자의 정체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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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저씨라고 아이들이 외치자 방 형사가 민정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떼며 돌아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산장입구에 우거진 나무들 틈새로 달빛도 흐릿하게 드리워 우뚝 서 있는 검은 인영이 사람인지 그림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뭐? 그림자 아저씨라고······? 이한은 죽었는데. 뭐야, 그림자는 사라진 게 아니었어.”
그림자라는 사실에 방 형사는 쉽사리 그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보내고 나랑 상대하지.”
조용한 산장에 이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말도 하잖아. 아니야. 아니, 그림자는 말을 못한다고. 그 아이만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랬다. 그림자라면 말을 할 수 없었다. 송이의 귀에만 들릴 뿐이었다. 방 형사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이한이 아닌가, 아니면 이한이 죽은 게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이한 그 작자가 죽어 정말 귀신이라도 되었다는 것인가. 방 형사의 생각은 거기까지 흘러갔다.
그러는 틈에 민정과 동진이 슬그머니 그림자에게 도망가려는 찰라 방 형사의 손에 민정이 붙잡혔다.
“카악! 살려주세요!”
“조용히 해. 어딜 가려고.”
겁박하는 방 형사에게 겁에 질린 민정은 스스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숨죽였다. 방 형사는 다시 그림자에게 눈길을 주며 소리쳤다.
“네 정체가 도대체 뭐야? 정말 그림자······ 아니, 귀신이라도 되는 거야? 아니지. 너, 남궁이한이 아닌 거지. 빨리 정체를 밝혀! 안 그러면 이 여자애가 다칠 수 있어.”
접이식 칼을 꺼내 든 방 형사는 칼날을 민정의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댔다. 잔뜩 겁에 질린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럼에도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더 틀어막았다.
“알았으니까, 학생들은 풀어줘.”
그림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달빛에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흐릿한 달빛에 드러난 그림자는 남궁이한이었다. 그림자가 아닌 사람이었다.
“너, 네가 어떻게······.”
“이제 누군지 알았으니 그만 아이들을 보내주지.”
“넌 죽었다고······ 뭐야, 모두 위장이었나. 남궁이한!”
뒤늦게 학교에서 나오던 민정과 동진이 방 형사에게 이끌려 차에 올라타는 애리를 목격했다. 차가 출발하고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싶어 유심히 지켜보던 그들은 달리는 차에서 휴대전화가 밖으로 던져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는 주어주려고 달려가려는데 갑자기 멈춰 선 차를 보고 휴대전화를 줍나 싶어 그대로 서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진 않고 조금 흔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상하다 싶은 민정이 휴대전화가 있는 곳으로 먼저 달려가 주었다. 그리고 동진이 차로 달려가는데 차가 다시 출발했다. 민정이 달려와 동진에게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애리 핸드폰인데. 무슨 일이지?”
“이상해. 이거 납치 아니야?”
“납치? 납치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지.”
납치라는 말에 민정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하려는 것을 동진이 막았다.
“잠깐. 아니, 일단 뛰자.”
“어?”
무작정 동진은 민정의 손을 잡고 차가 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탔다. 동진은 다급하게 방 형사의 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택시기사에게 쫓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민정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동진이 잡고 있던 손을 떼어내며 물었다.
“뭐야? 저 차를 따라가려고? 그러지 말고 빨리 경찰에 신고를······.”
동진은 민정의 손을 다시 잡으며 막았다.
“아니. 아직 모르잖아, 납치한 건지. 그러다 아니면 어떡해? 내가 보니까 애리를 데리고 간 사람이 형사 같았어. 일단 모르니까 따라가 보는 거야.”
“그래도······. 알았어. 그럼 송이한테 전화해보자.”
“어, 그래. 네가 해봐.”
고개를 끄덕이며 민정은 송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만 들릴 뿐이었다. 송이까지 연락이 되지 않아 민정은 덜컥 겁이 났다. 송이와 애리 모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민정은 바로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망선고가 떨어지며 하얀 시트가 이한의 얼굴 위로 덥혀졌다. 이한의 엄마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의사가 이한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을 하는 동안 옆에서 이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소리치던 수연은 기진맥진한 채 겨우 서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하얀 천으로 덮여 있는 이한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의료진들이 나가고 병실 안에는 통곡소리만 쓸쓸히 울려 퍼졌다. 한참을 자리에 못 박인 듯 서서 울던 수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도저히 이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한을 이름을 울부짖듯 불러대는 이한의 엄마를 다독이며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이러다 기절이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던 수연은 물을 가져와 이한의 엄마를 뒤에서 안으며 직접 입에 먹여주었다.
조금 진정된 이한의 엄마는 천 위로 이한의 얼굴을 만지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하며 울먹였다. 그때 수연의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수연은 눈물을 닦아내며 전화를 받았다.
“네, 유수연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송이 친구 민정이라고 하는데요.
“어, 민정학생이구나. 그래요, 송이는 괜찮은 거예요?”
수연은 그제야 송이와 그림자의 안전이 걱정됐다. 송이의 소식을 묻고자 전화했던 민정은 오히려 송이의 안위를 묻는 물음에 놀라 되물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송이가 괜찮냐뇨? 송이랑 같이 계신 거 아니세요?
“아니요. 그럼 무슨 일로 전화한 거예요? 송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 아니요. 저도 송이랑 연락이 안 돼서, 그보다 지금 애리 뒤를 쫓고 있는데요. 그게, 그러니까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민정은 자신이 학교 앞에서 본 것을 수연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정말요? 형사가 데리고 갔다는 건 확실해요?”
- 그건 동진이······. 같이 있는 동진이 그런 것 같다고. 그래서 납치가 아닐 수 있어서 경찰에 신고를 못했어요.
“그래도 경찰에 신고를······.”
아악! 뒤에서 갑작스런 비명소리가 들려 수연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런데 침상 위에 하얀 천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걸 보고 이한의 엄마는 화들짝 놀라 짧은 비명과 함께 기절을 한 상태였다. 수연도 깜짝 놀라 뒷걸음치며 소리쳤다.
“뭐야, 뭐······. 이한 씨.”
수화기 너머로 비명소리를 들은 민정이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수연을 찾았다. 수연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침상에 우뚝 서 있는 하얀 천에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곧 하얀 천이 스르르 흘러내리며 이한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이한 씨야, 살아 있었던 거야.”
“그 전화, 내게 줄래.”
“어? 어. 그래.”
이게 무슨 일인가, 얼떨떨한 얼굴의 수연은 휴대전화를 이한에게 건넸다. 그리고 기절한 이한의 엄마에게 다가가 살폈다. 그러면서도 믿기지 않는 듯 힐끔힐끔 이한을 보았다.
“내 말 들리니, 민정아.”
- 누구세요? 수연 쌤은 괜찮은 거예요?
“어, 그래. 괜찮아. 송이가 납치됐어. 애리가 위험해. 지금 애리랑 같이 있니?”
- 네? 송이가 납치······. 아니, 지금 애리도 형사한테 납치를 당한 것 같아요.
“형사? 어디로 갔는지······. 아니다. 알았다. 이만 끊을 게.”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려는 이한을 민정이 불러 막았다.
“아저씨, 잠깐만요. 저희가 지금 그 차를 미행하고 있어요. 근데요, 아저씨 누구세요? 소 경위님은 아니신 것 같은데. 혹시 동료 경찰관이세요?”
- 나 이한이야. 남궁이한.
“네? 그림자 아저씨라고요. 그림자 아저씨는 지금······ 어! 깨어나신 거예요? 정말요?”
병상에 누워있던 이한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민정이 목소리가 커져 동진과 기사의 시선이 쏠렸다. 동진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 민정에게 물었다.
“민정아, 아저씨가 깨어났다는 게 무슨 소리야?”
휴대전화를 떼며 동진에게 말했다.
“이한 아저씨가 깨어나셨대. 지금 이한 아저씨랑 통화 중이야.”
“정말? 그럼 그림자 아저씨는 사라진 거야?”
“그러겠지. 잠깐만.”
손을 들어 보이며 민정은 다시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가 이한에게 물었다.
“아저씨, 그럼 그림자 아저씨는 사라진 거예요?”
- 그런 것 같아. 그것보다 애리가 납치되었다면 송이와 같이 있을 거야. 그곳이 어디쯤인지 말해주겠니.
“저희가 뒤따라가고 있는데······.”
민정이 택시기사에게 이곳이 어디쯤인지 물었고, 그걸 듣고 이한에게 전달했다.
-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충 알겠다. 너희들은 위험하니까 그만 따라가. 그러다 너희들까지 잡힐 수 있겠어. 이제 아저씨한테 맡기고 거기서 멈춰. 경찰한테는 아직 신고하지 말고. 경찰이 먼저 도착하며 친구들이 위험해질 거야. 알겠지?
“아니에요.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저희가 끝까지 쫓아갈게요. 저희 걱정 마시고. 빨리 와주세요.”
더는 민정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 이한은 가능한 멀리서 쫓으라고만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이한에게 수연이 말을 걸려는데 이한이 먼저 말했다.
“수연 씨, 미안해. 어머니 좀 부탁할게. 이 휴대폰은 내가 가지고 갈게. 내가 1시간 뒤에도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해줘. 알겠지? 장소는 문자로 찍어줄게.”
“그게 무슨 소리야? 내 핸드폰을 가져가면서 나한테 어떻게 연락하겠다고?”
“어머니 핸드폰으로 연락할게. 그러면 되잖아.”
“그건 알겠어. 지금 학생들이 납치된 거야? 혼자 거기 가서 어떻게 하려고, 경찰을 부르는 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 자세한 건 나중에. 미안.”
말을 끊고 서둘러 나가려는 이한을 수연이 붙잡았다.
“미안해. 지금 한시가 급해서 그래.”
“그게 아니고. 여기, 내 차 가져가. 지하 1층에 주차되어 있어. 그리고 옷은 갈아입고 가야지. 잠깐만.”
차키를 이한에게 건넨 수연은 서랍에서 옷가지를 꺼내 건넸다. 언제일지 모르는 이한이 깨어날 그날을 위해 미리 챙겨뒀던 옷이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방 형사의 차를 미행하던 민정과 동진은 산장까지 따라 올라가지 않고 계곡입구에서 내려 이한을 기다렸다. 안심이 안 되는지 올라가보겠다는 동진을 민정이 말려보았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산중에 계곡산장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입구까지 접근했다.
“그만 가자. 이러다 정말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여태껏 안심이 안 된다던 동진이 민정을 막아섰다.
“뭐야, 저기 별장에 애리가 있는지 확인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여기 차만 세워놓고 다른 곳으로 갔으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안 돼. 여기까지 왔으니 가서 직접 확인해야겠어.”
“뭐야, 언제는 들키며 어쩌느냐고 말리더니. 여자 마음은 갈대라더니 정말 모르겠다.”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 그렇게 겁나면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아니야, 같이 가. 너 혼자 어떻게 보내.”
“치, 왜? 나 혼자 가도 돼.”
새침하게 눈을 흘기며 먼저 앞서 가는 민정의 손을 동진이 덥석 잡았다.
“뭐야, 손은 왜 잡고······.”
“같이 가. 너 혼자 못 보내. 그리고 내 뒤에서 따라와. 넌 무섭지도 않니?”
“무섭지. 근데 네가 있잖아. 네가 같이 가줄 거라 믿었어.”
“정말 못 말리겠다. 그래, 가자.”
앞서 나가는 동진의 입가에 근심걱정은 떨어지고 웃음이 주렁주렁 걸렸다. 그 뒤를 따르는 민정의 얼굴에도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그들 아래로 달빛이 짙게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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