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엇갈린 인연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뭐? 세탁된 돈이라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끝까지 발뺌을 할 셈인가 본데. 그래, 말해줄게. 너의 사촌 형한테 들어간 돈. 그 큰돈이 왜 너의 사촌형한테 갔을까? 그 사촌형은 그 큰돈을 바로 현금으로 찾았다고 하더군. 현금을 찾은 그날 사촌형과 네가 만난 것도 확인했고.”
“야, 그건 그날 우연히······.”
“동식아. 끝까지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이한의 표정에 동식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알아?”
“뭐? 나 때문이라고?”
“그래, 나는 네가 오 선배의 청탁을 받아드린 줄 알았어. 오 선배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것도 진급을 대가로 말이야.”
“무슨······ 그럼 나한테 물어봤어야지.”
“물어보면 사실대로 말해줬을까? 아니, 네가 아니라고 했어도 내가 못 믿었을 거야. 미안하다. 너도 알잖아. 내가 진급에 얼마나 미련스럽게 집착했는지. 항상 나보다 앞서서 진급해 와서 넌 내 마음 모를 거다. 지수대도 원래는 내가 오고 싶었던 곳이었어. 근데 네가 먼저 지수대에 갔잖아. 내가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냐? 그런데 또 너한테 뒤처질까봐······.”
“너 미쳤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건 범죄라고.”
“알아. 나도 내가 미쳤다는 거. 그땐 나는 정말 미쳤으니까.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달려들었으니. 이한아, 이번 한번만 눈감아줘라. 돈은 다시 오 선배한테 돌려줄게. 나도 그자에게 완전히 속은 거라고.”
“그래서 나 때문이라는 거였어? 너 도대체······.”
동식은 이한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빌게. 너도 내 사정 잘 알잖아. 경찰복 벗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 경찰이 내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나야. 너도 알잖아. 제발 부탁한다, 이한. 홀로 계신 우리 어머니는 또 누가 봉양하고? 내 사정 좀 봐줘라, 친구야.”
허탈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한이 이내 말했다.
“당장 그 돈은 돌려주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 나랑 여기서 약속하고.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이번 일도 함께 처벌 받게 될 거야, 알겠어?”
“내가 미쳤냐? 또 그런 짓을 하게. 나도 후회 많이 했어. 차라리 잘 됐다, 마음이 다 후련해.”
“아이고, 자식아.”
이한은 동식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동식은 그 주먹을 움켜쥐며 이한을 끌아 안았다.
“고맙다, 이한.”
그림자의 이야기를 듣던 송이가 놀라 물었다.
‘뭐라고요?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고요?’
‘그래. 그때 나도 잘못 판단한 거지. 사실을 밝히고 죗값을 받게 하는 게 맞았어. 그래야 동식이가 정신을 차렸을 텐데 말이야. 경찰직은 내려놓아야했겠지만, 계속 그들과 유착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 그들에게 계속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일지 몰라.’
‘아저씨는 아직도 박 형사님을 걱정하고 계신 거예요?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병원에서 아저씨를 죽이려했던 사람이 박 형사님일 수 있다고요.’
‘동식이라고? 아니야, 나도 CCTV 영상을 봤다고 했잖아. 그 사람은 확실히 동식이가 아니었어.’
‘박 형사님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아저씨를 죽이려한 걸 수도 있죠. 그러니까 우리한테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아저씨 어머니를 생각해서 했다는 말은 다 핑계고요. 그러고 보면 박 형사님 완전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하는 말마다 다 거짓이잖아요. 그런데도 아저씨는 박 형사님을 아직도 믿는 거예요?’
‘아니······. 그래, 이제 아니야. 사실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줘.’
‘누가 몰아붙였다고 그러세요? 아무튼 말을······. 저는 그냥······.’
‘알아. 알았으니까······ 이제 수연 씨랑 민철한테도 말을 해주지. 다들 너만 바라보고 있잖아.’
‘아, 그러네요.’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나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수연과 민철에게 송이가 그림자에게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민철은 그럴 줄 알았다며 처음부터 박 경위가 수상했다며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송이도 같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치고는 민철과 함께 박 경위에 대해 성토하며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가 오가다 조용해져서야 수연이 입을 열 수 있었다.
“이제 끝났어요? 두 사람 언제부터 이렇게 짝짜꿍이 잘 맞은 거예요? 이제 보니까 서로 잘 통하는 것 같고 보기 좋아 보이네요. 그렇죠?”
“아이, 뭐가요? 아저씨 말을 들어보니까······ 아이, 몰라요. 그런 거 아니에요.”
송이가 쑥스러워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민철이 대변하듯 나섰다.
“쌤은 화도 안 나세요? 완전 나쁜 사람이잖아요. 송이 말대로 완전 거짓말쟁이라고요. 말 하나하나가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박 형사님도 속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전 못 믿겠어요, 이젠.”
수연은 그림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민철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그래요. 맞는 말이에요. 그래도 이한 씨를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함께 했고 믿어 왔던 친구를 한 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거예요. 그래도 이제 이한 씨도 알았으니 너무 흥분들 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고요. 지금부터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판단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예요. 누가 우리 편인지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우리 네 사람은 믿을 수 있는 거겠죠?”
송이와 민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은 그들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 이한 씨 얘기를 좀 더 들어보는 게 어때요? 앞으로 계획을 말이에요.”
“그러네요. 송이야, 아저씨가 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어, 아직은. 아저씨······.”
송이는 수연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
박 경위 앞에 앉은 남자는 놀란 얼굴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한번은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
“나쁜 놈들. 그럼 그때라도 솔직히 남궁 경위에게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몇 번 말하려고 했지. 근데 이한을 볼 때마다 입에서 떨어지지 않더라고.”
“그건 또 그러네요. 굳게 믿고 있는 친구한테 쉽게 말 못하죠. 그런데 결국 진급도 못하고, 그걸 약점 잡혀 계속 끌려 다니신 거군요.”
“그렇지.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는 거지. 매번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의식도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남궁 경위에게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까? 저는 좀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뭔가 더 있었던 거죠? 제게는 말씀해보시죠.”
“자식이 정말······. 사적인 일이라 차마 말하기가······.”
말하기 꺼려하는 박 경위에게 술을 따르며 그는 집요하게 물었다.
“말씀해 보세요.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말이야······.”
카페 문을 열고 동식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인과 이한이 앉아 있는 곳으로 옷매무새를 만지며 걸어갔다. 그를 본 이한이 먼저 일어서며 손을 들어보였다.
“어, 여기야.”
동식은 자리로 와서 이한의 어깨를 감싸며 작게 말했다.
“고맙다, 친구야.”
“에이, 뭐가? 여기 앉아. 오늘 반가웠습니다, 정인 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정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네, 고마웠어요.”
이한이 나가고 동식과 정인 사이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동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기다리게 했죠?”
“아니에요. 친구 분 덕분에 괜찮았어요. 좋은 친구 분을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정인의 말에 동식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네, 좋은 친구죠. 그래도 지루하지 않으셨어요? 워낙 그 친구가 말수도 적고 재미가 없는 친구라 말이죠.”
“그래요? 아니던데요. 말씀도 잘 하시고, 재미있으셨어요.”
“정말요? 그럴 리가······. 그럼, 다행이네요. 저는 지루하게 기다리고 계시면 어쩌나 하고 빨리 달려왔지 뭡니까.”
“그러셨어요? 어떻게요. 그러실 필요 없었는데. 경찰이시니 갑자기 사건이 생길 수도 있는 거죠. 이해해요.”
“이해해주신다니 고맙네요. 예의가 아니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이해심도 넓으시네요.”
부끄러운 듯 정인은 작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이한 씨가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경찰과 사귀려면 몇 가지는 이해를 해줘야 한다고요.”
“아이, 자식이 쓸데없는 얘기를······.”
“아니······ 저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좋았는데요. 그렇잖아요. 일반 회사원은 아니니까요.”
“아, 그런가요. 또 무슨 얘기를 했나요?”
“경찰과 사귀려면 이해해야 하는 거요? 그게······.”
동식은 손을 까딱거리며 정인의 말을 잘랐다.
“아니요. 그거 말고. 뭐 다른 얘기는 없었나요, 저에 대해서나?”
“아, 네. 좋은 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의리 넘치고 멋지신 분이라고.”
정인의 말에 박 경위는 헤벌쭉 웃으며 의외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그래요? 자식······.”
“동식 씨라고 해도 되죠?”
“네. 그렇게 불러주세요.”
“동식 씨한테는 이한 씨가 어떤 분인가요?”
“이한이요? 아니······ 뭐, 좋은 친구죠. 같이 있으면 좀 재미는 없지만 워낙 착해서요. 근데 착하면 아시잖아요, 참 답답한 거. 고지식한 면도 있어서 말이죠.”
“그렇군요. 네.”
동식과 정인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 다음날 동식은 정인에게 전화해 애프터 신청을 했다. 하지만 정인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러 이한이 동식을 조심스레 따로 불렀다.
“무슨 일로 따로 보자고 한 거야? 사무실에서 말하지.”
이한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너 정인 씨 기억하냐?”
“정인? 누구······ 아, 1년 전에 소개팅 했던 여자 말이야?”
“맞아. 역시 기억하네.”
“그 여자는 갑자기 왜?”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났어.”
“그래? 근데 그게 왜? 아, 나랑 다시 만나고 싶다고 그래?”
“아니, 그게 아니고. 너 아직도 정인 씨한테 마음 있어?”
“에이, 무슨? 나 싫다는 여자 나도 싫다. 그때 말했잖아.”
“그래, 알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정인 씨를 만나도 될까?”
“뭐?”
놀라는 동식을 보고 이한은 살짝 상심한 듯 보였다.
“안 되겠지? 그래도 너랑 소개팅까지 한 사인데?”
“왜? 너 그때 마음에 있었냐?”
“아니야. 그건 아니고. 진짜 우연히 몇 번 만났어. 정말 우연히. 근데 볼 때마다 마음에 쓰여서 말이지. 뭔지 모르겠는데 계속······.”
“뭐가 몰라? 좋아하네. 자식. 그래, 잘해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동식을 보고 이한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정말이야? 만나도 되는 거지?”
“뭐야? 벌써 사귀는 사이야?”
“아니야. 너랑 관계도 있고······. 네가 어떤지 몰라서 말한 다음에 고백해보려고 했지.”
“그렇구나. 그래, 해봐. 잘 되면 말해주고.”
“고맙다, 동식아.”
“자식, 뭐가? 뭘 대단한 거라고. 그럼, 가 봐도 되지?”
“어.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식은 뒤돌아서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얘기를 하며 술을 들이키는 박 경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술 때문인지 그날 일을 회상하며 느끼는 감정 때문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근데 그게 왜요? 남궁 경위가 미리 말을 했네요.”
“아니지. 수작을 부린 거라고. 나 몰래 만나고 있었다고, 두 사람. 이한 그 자식,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거였어. 그러니 자기 자랑을 얼마나 했겠냐고. 어쩐지 그녀 입에서 내내 이한 얘기가 나오더라고. 그리고 이한 그 자식이 분명 나에 대해 안 좋게 말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한번 보고 단번에 싫다고 했겠지.”
“아이고, 정말 속상하셨겠네요. 그래도 1년이나 지났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둘이 만나면 될 것이지, 꼭 나를 불러서는. 얼마나 꼴사나웠는지 알아? 내 마음도 모르고.”
“정말요? 아이, 너무하네.”
“그랬으면 잘 지켜주기나 했어야지.”
그는 술잔을 들다 박 경위의 말에 다시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여자 죽었다.”
“예? 죽어요?”
“그래. 이한 그 자식과 원한이 있는 자가 죽였다고.”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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