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방 형사의 미행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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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감겨있던 눈꺼풀을 간신히 뜬 송이의 눈앞에 엉망이 된 민철의 얼굴이 보였다. 몸을 일으키려는 송이를 민철이 말렸다.
“그냥 있어도 돼.”
자신의 무릎에 기댄 채 누워 있는 것이 민망해 송이가 일어서려는 것으로 알고 민철이 말린 것이었으나 송이는 민철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그 얼굴······. 괜찮아? 나 때문에······ 미안해.”
“아니야. 그놈들이 그런 거지. 네가 왜?”
“그래도······.”
그렇게 말하며 송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택시 안인가 싶어 송이가 아저씨를 찾았다. 그런 송이의 입을 민철이 급히 막더니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여긴 방기철 형사님 차야. 형사님이 우릴 도와주셨어.”
“방기철······ 형사?”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방 형사가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그래, 나야. 깨어났나 싶어 봤는데 둘 사이에 꿀이 떨어져서 말 못 걸었지. 너무 걱정 마, 여기 남학생 맷집이 좋더라고. 많이 맞은 것 같은데 툴툴 털고 일어서는 거보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 그냥 누워서 들어. 난 괜찮은데······.”
얘기를 듣다보니 민철의 무릎에 기대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송이가 부끄러웠는지 몸을 일으켜 앉으려는 것을 방 형사는 자신 때문에 그런 줄 알고 말렸다. 말리는 민철의 손도 뿌리치고 송이는 앉아서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형사님은 여기 어떻게 오신 거예요? 혹시 저희를 미행하셨어요?”
“미행? 미행했지.”
자신들을 미행했다는 말에 발끈하며 한소리 하려던 민철을 방 형사가 손을 들어 막으며 말을 이었다.
“네들은 아니고. 말을 끝까지 들어, 남학생.”
눈을 흘기며 민철이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말을 그렇게 하던지······.”
“그럼 누굴 미행하셨는데요?”
송이의 질문에 방 형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형사는 나라고. 지금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학생들이야 말로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송이학생은 납치를 당할 뻔했다고. 저번처럼.”
“정말요?”
취객들에게 맞고 있던 민철을 구하려고 그림자에게 도움을 청하다 정신을 잃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던 송이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민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치를 당할 뻔한 걸 방 형사가 구했다고 말해주었다. 취객들에게 맞고 있던 자신도 구해주었다고.
“그러니까 말해봐. 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학생 둘이 여긴 무슨 일로? 학생들이 올만한 곳도 아닌데 말이야.”
이곳 주변은 유흥가들이 즐비한 곳이어서 놀러왔다고 핑계를 될 수도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송이와 민철이 말을 못하고 있자 방 형사가 말했다.
“말 못하는 거 보니 뭔가 있기는 있나 보네. 둘만 온 게 아니지? 뭐야? 아, 제보자······ 아니, 수연 씨라고 했지. 자꾸 제보자라고 말이 튀어나오네. 아무튼 수연 씨랑 같이 온 거야?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수연 씨는.”
여전히 송이와 민철은 서로 눈치만 볼뿐 말을 못하고 있었다. 송이는 정신을 잃은 후 잠깐 잊고 있던 그림자가 떠올랐다. 곧바로 그림자를 찾았다.
‘아저씨, 지금 어디에 계세요?’
‘괜찮아? 의식을 차린 건 알았는데 바쁜 것 같아서 말 못 걸었어. 난 건물 안에 있어. 오진태 그자를 찾는 중이고.’
‘뭐예요? 도와달라는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아니, 그보다 지금 방 형사랑 같이 있어요. 이 형사가 어떻게 알고 왔는지······. 저희를 구해줬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나도 봤어.’
‘보셨다고요?’
‘그래. 네가 도와달라는 소리에 가봤는데 그때 방 형사가 너랑 민철을 구해주고 있더라고. 그래서 안심하고 난 다시 건물로 돌아간 거고. 이제 방 형사한테 모든 걸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말끝을 흐리는 그림자에게 송이가 물었다.
‘싶은데, 왜요? 아직도 방 형사님을 못 믿는 거예요?’
‘갑자기 님자가 붙었네. 아니야. 너랑 민철을 구해준 것 보고는 이제 의심은 싹 사라졌어. 근데 이곳에 어쩐 일로 온 거지 그게 좀 미심쩍어서 그래. 그것 좀 알아본 뒤에 내 정체를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아.’
‘알았어요. 그런 거라면 제가 물어볼게요. 그 다음에 아저씨 정체도 밝히고요.’
‘그렇게 해주면 좋고. 난 여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너랑 민철이 방 형사랑 있으면 안심도 될 것 같고. 대신 알지? 멀리 가면 안 된다.’
‘알죠. 그럼 수고하세요.’
송이가 그림자와 대화하는 동안 방 형사는 입을 다물고 있는 송이와 민철에게 왜 말이 없냐고 말해보라고 채근했다. 민철이 더는 말없이 있을 수 없어 송이의 눈치를 살피며 수연이 같이 왔고 자신들도 누군가를 미행하다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누굴 미행하는지는 말할 수 없다며 방 형사가 말해주면 말하겠다고 자기 딴엔 꾀를 썼다.
“뭐? 일단 먼저 말해. 그럼 나도 말해줄게. 그리고 학생들이 이러면 안 돼. 아까처럼 그런 일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데 단 둘이 미행을······ 아니지, 수연 씨도 같이 있다고 했지. 그래도 민간인들이 그러면 위험하지. 내가 수연 씨를 만나면 따끔하게 말해둬야겠네. 그래, 누구야? 누굴 미행하고 있는 건데?”
꾀를 썼지만 먼저 말할 수 없었던 민철은 송이의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송이가 그림자와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무슨 답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며. 송이의 눈치만 살피는 민철을 의아해하게 보던 방 형사는 송이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그런 방 형사의 물음에도 송이는 대답이 없었다. 어딘가를 멍하니 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송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방 형사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뒷좌석 실내등을 켰다.
차안이 환하게 밝아졌지만 송이 아래로 비춰져야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눈치 챈 방 형사가 민철과 자신의 그림자를 번갈아보며 다시 확인했다. 맞았다, 송이의 그림자만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왜 송이학생 그림자만······.”
드디어 들켰구나 싶은 민철이 급하게 방 형사를 부르며 시선을 자신에게 유도했지만 이미 방 형사의 눈은 송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형사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그래요, 말씀드릴게요. 저희가 누굴 미행하는지······.”
말하는 민철의 팔을 송이가 덥석 잡았다.
“민철아, 괜찮아. 형사님, 맞아요. 저는 그림자가 없어요. 이상하시죠? 그 이유도 말씀드릴 테니 먼저 말씀해 주시겠어요. 누굴 미행하신 건지.”
당당히 말하는 송이를 빤히 보고만 있던 방 형사가 마른입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좋아. 다 말해준다니까 먼저 하지. 학생들도 알거야. 병원에서 송이학생을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 머리 염색한 그놈들 말이야. 그놈들 쫓다가 어떤 남자를 만나는 걸 우연히 봤어. 그 남자가 누군지 조사하다보니 권 대표라고······. 그 대표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 그래서 권 대표가 배후인가 싶어서 며칠 뒤를 밟고 있었는데 이곳에 너희가 있는 거야. 그냥 지나가려는데 취객들한테 맞는 걸 보고 그냥 갈 수 있어야지. 도와준다고 왔는데 그때 송이학생이 납치를 당하는 걸 보고 구한 것뿐이야.”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자 송이와 민철이 놀란 표정으로 방 형사의 이야기를 유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송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권 대표라면······ 정확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말하면 알아? 권민희 대표라고.”
“그 사람이······. 날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이란 말인가요? 그래서 이번에도 절······.”
너무 앞서 나가는 송이를 방 형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니, 아니야. 그건 나도 모르지. 널 납치하려던 놈들하고 권 대표가 어떤 관계인지는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아, 그러고 보니까 그놈들이 며칠째 안 보이더라고. 어디로 숨었는지······.”
“숨어······ 아, 경찰에 잡혔을 거예요.”
방 형사가 모르는 것 같아 민철이 자신도 모르게 그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송이는 그런 민철을 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방 형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둘 다 재밌어. 이렇게 엉성해서 뭐라도 캘 수 있겠어. 그러니까 학생들이 뭘 하겠다고 나서긴 나서. 납치나 당할 뻔하고, 매나 처 맞고.”
“아니,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시는데요? 우리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또 쓸데없이 나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만 민철이었다. 송이의 한숨 소리가 또 들려왔다. 송이는 가만히 있으라고 민철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하고는 방 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제 말씀 드릴게요. 저희는 아빠사건을 조사 중이었어요. 그러다 박동식 경위님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런 박 경위님이 오진태 대표라는 사람과 관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돼 그 사람을 미행하고 있었어요.”
“아빠사건이라고? 그걸 조사하고 있다고? 박동식 경위가 연루되었다는 건 또 뭐야? 아, 박동식 경위가 죽었다는 건 알아?”
묻는 동시에 송이와 민철이 알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방 형사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구나. 그럼 박 경위가 임승택 씨를 죽인 건가? 그래서 그 배후를 쫓고 있는 거고?”
“아니요. 그건 저희도 몰라요. 그 배후일지 범인일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오진태 대표의 뒤를 밟고 있었던 거고요.”
“그래? 그럼 지금 수연 씨가 쫓고 있는 건가? 거기가 어디야?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 줄게.”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근데 형사님은 권민희 대표를 미행하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뭐라도 알아내신 게 있나요?”
“아니, 나도 알게 된지 며칠 안 돼서 말이야. 그리고 너희를 도우려다 놓치고 말았잖아.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놓쳤지. 수연 씨 혼자 미행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방금 전에 너희를 봤으면 수연 씨가 위험할 수도 있어. 어디에 있어? 바로 전화해서······.”
송이가 방 형사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아니요. 수연 쌤은 우리랑 같이 오지 않았어요.”
“오지 않았다니······. 그러니까 지금 어디에 있냐고?”
“그게 아니라 미행을 같이 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뭐? 그럼 둘이 미행을 하다 걸린 거였어?”
“아니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는 송이를 방 형사가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라고?”
“네. 취객들이 시비는 건 거였어요.”
“그게 아니었다니까. 납치를 하려고 했어. 송이학생을. 정신을 잃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덕팔이······. 그래, 덕팔이 그 깡패가 학생을 납치하려고 했다고.”
덕팔이라는 말에 전혀 몰랐던 송이와 민철 모두 놀란 눈으로 방 형사를 쳐다볼 뿐이었다. 민철도 조직원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었기에 덕팔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림자도 보긴 했지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아 송이도 몰랐다.
“그래, 정신을 잃었으니 몰랐겠지. 남학생도 처 맞고 있어서 몰랐을 거고. 권 대표랑 덕팔이 연결이 된 건지 아니면 오 대표와 연결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송이학생이 여기에 있는 걸 알고 온 건 확실해.”
“그럼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언제 또 올지 모르잖아요.”
민철이 걱정 돼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방 형사가 이해한다며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차라리 여기가 나을지 몰라. 설마 이곳에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조금 떨어진 곳이니까 걱정 말고. 오진태 대표라······. 일단 그 사건은 나한테 맡기고. 학생들은 공부나 해. 아버지 일이라 그러는 건 알겠지만 이번이 몇 번째야, 납치당할 뻔한 게. 이러다 정말 큰일 친다. 그러니까 그 사건에서 손 떼. 내가 덕팔이 그놈 잡아서 조사해볼 테니까. 이제 그만 가봐. 나는 여길 좀 더 지켜보고 갈 테니. 둘이 갈 수 있지?”
그림자에 대해 말할 줄 알았던 송이가 말없이 듣고만 있는 것을 보고 민철은 눈치를 보며 송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래, 우린 이만 가자.”
“잠깐만, 민철아. 이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정말? 아저씨랑 얘기된 거지?”
결심이 선 듯 송이는 말없이 고개를 힘주어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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