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애리의 기지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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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아래 공터에 애리가 전화를 걸며 들어섰다. 전화를 받지 않는 듯 애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안 온 건가?”
“애리야.”
뒤에서 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애리는 바로 뒤돌아봤다.
“어, 네가 왜······.”
민정 옆에는 석진이 있었다. 민정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진은 민정의 손목을 잡아 채 억지로 애리에게 끌고 갔다.
“혼자 왔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야 말로 왜 민정이랑 있는 거야? 민정아, 이리 와.”
석진의 손을 뿌리치며 애리에게 가려했지만 석진은 민정의 손목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
“어딜 가려고? 나랑 있어야지.”
“뭐하는 짓이야? 민정이 놔줘, 빨리.”
“그건 네가 하는 것 봐서.”
“계속 모르는 소리만 할 거야. 내가 뭘 해야 하는데? 당장 그 손 놓으라고.”
“내 질문에 대답만 잘하면 아무 일 없이 민정이랑 돌아가게 될 거야. 근데 네가 날 열 받게 하거나, 거짓말을 늘어놓으면 민정이가 다친다고. 알아?”
주머니에서 유리조각을 꺼낸 석진은 민정의 허리에 갖다 대며 위협했다. 애리는 흠칫 놀라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 둬.”
“더는 날 열 받게 하지마라. 그러다 정말 크게 다칠 수 있다.”
석진이 힘을 실어 허리에 유리조각을 밀어붙이자 민정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다 이내 입을 틀어막았다.
“빌어먹을! 한번만 더 그렇게 크게 소리쳐봐. 그때는 너희 둘 다 가만 안 둬, 알겠어?”
윽박지르며 협박하는 석진에게 애리는 차분하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데?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손에 든 건 내려놓고 말로 해, 응?”
“나도 말로 하고 싶어. 그러니까 내말에 대답이나 잘해. 기정이랑 친하냐고? 얘한테 다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거짓말했다가는 알지?”
“그래. 다른 애들보다는 친하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 그렇게 순순히 나와야지. 그럼 기정한테 있었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말해봐.”
“그게 왜 궁금한데?”
“질문은 나만 한다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다신 같은 말 또 안 해.”
자신이 쥐고 있는 유리조각을 석진은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알았어. 그게 말이야, 다 알고 있어. 기정이 납치 돼,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는 것도.”
“납치? 그래, 좋아. 그리고?”
“다행히 도망쳐 나와 경찰에 신고한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게 다냐고 의심의 눈초리로 묻는 석진에게 애리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며 물었다.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데? 기정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닌 거지? 그래서 네가 이러는 거지? 누구야? 너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되레 큰소리치는 애리가 가소로운지 석진은 픽하고 웃었다.
“너 죽고 싶지 않으면 그 호기심 접어둬라. 그 정도만 알고 그냥 조용히 살아. 그래, 됐다. 더는 아는 게 없나 보네.”
유리조각을 집어 던지고 석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쳇,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민정이 보내줘?”
석진은 잡고 있던 민정의 손목을 놓으며 가라고 등을 밀쳤다. 겁에 질린 탓인지 민정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애리는 민정에게 달려가 어깨를 감싸며 함께 걸었다. 조금 걸어가던 민정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지만 애리가 붙잡아 넘어지지는 않았다. 민정은 애리에게 기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진은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거 누구한테든 말하기만 해. 그때는 너희 둘 학교생활하기 힘들어진다. 알겠냐?”
애리는 울고 있는 민정을 토닥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석진에게 말했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저게 미쳤나. 나한테 하는 소리야?”
“그래.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너도 쟤처럼 되고 싶어서 그런 거냐?”
석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애리와 민정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 뒤에서 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석진! 여자 애들한테 그쯤하고 나랑 한판 붙자.”
바로 민철이라는 걸 알고 석진은 뒤돌아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이것들이 쌍으로 웃기네. 혼자 온 줄 알았더니 떨거지 하나를 데리고 왔네.”
“과연 그럴까?”
“뭐?”
애리와 민정이 있는 뒤에서 박동식 경위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강석진 학생, 이제 그만하고 나랑 같이 경찰서로 가지.”
“뭐야? 씨발.”
석진은 곧바로 민철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치듯 달려갔지만 민철이 가로 막았다.
“야, 안 비켜. 또 쥐어터질래?”
“그래도 못 비켜. 경찰 아저씨 따라가, 그게 너한테도 좋아.”
“아이, 빌어먹을! 젠장, 어떻게 알고 여길 온 거야.”
1시간 전, 송이는 박동식 경위가 생각보다 쉽게 믿고 받아들이자 바로 기정의 사건에 대해 말했다.
“그림자······ 아니, 이한 아저씨가 객실로 몰래 숨어들어 보셨는데요. 성착취범이 누군지······.”
송이가 성착취범을 말하려는데 그림자가 급히 말렸다.
‘송이야, 그건 아직 말하지 마.’
‘······왜요? 그걸 알아야······.’
‘아직은 몰랐으면 해. 어? 그렇게 해.’
‘알겠어요.’
말하다 말고 머뭇거리며 바닥의 그림자만 보고 있는 송이에게 박 경위가 물었다.
“왜요? 왜 말하다 말아요. 근데 성착취범이 누군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 이한?”
“아니요.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씀드리려다 이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서요.”
“그래요. 내가 알아본 바로는 조폭인 걸로 아는데. 미성년자 성매매 미수로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자기는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고 끝까지 발뺌을 했다고 하더라고. 이게 다툼의 여지가 있어서 좀 더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피해자가 죽는 바람에 더는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종결된 상태라고 말이야.”
“네, 근데······. 아니, 아니에요. 그랬구나.”
뭔가를 말하려다 송이가 또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박 경위는 뭔가 의심스러워 물었다.
“자꾸 뭔가 말하려다 마는 것 같은데, 뭐예요? 내가 알면 안 되는 거라도 있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어! 잠깐만요.”
때마침 송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애리의 전화라는 걸 안 송이는 그림자에게 바로 말했다.
‘아저씨, 애리 전화예요.’
‘정말? 어서 받아봐.’
고개를 끄덕이며 송이는 전화를 받았다.
“어, 애리야. 아저씨가 지금 알아······.”
“그게 아니라 민정한테 일이 생긴 거 같아.”
“민정이? 무슨 일이······?”
“아직은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문자가 왔어.”
“문자? 무슨 문잔데?”
“만나자고, 급한 일로 부탁할게 있다면서 혼자 나오라는 거야. 그것도 장소가 기찻길 아래 공터고 말이야.”
“정말 이상하네. 민정이가 거기서 만나자고 할리가 없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문자도 민정이가 보냈나 싶을 정도로 딱딱해.”
“딱딱하다고?”
“응. 너랑 톡하는 거 옆에서 본 적이 있거든. 그때 보니까 글 마지막에 꼭 이모티콘이나 웃는 모양, 하트를 붙이잖아. 그치?”
“맞아.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는 거지?”
“응. 그래서 말인데······.”
“강석진.”
“어, 맞아. 그 얘가 민정이랑 같이 있는 게 아닐까? 기정 일로 말이야.”
“그럼 너 혼자 가면 더더욱 안 되겠다.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어?”
“송이야, 나도 모르게 문자를 읽어서 바로 전화를 해야 의심을 안 받을 거야. 그래도 이한 아저씨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전화했어.”
“그래, 잘했어. 내가 물어보고 바로 전화할게. 조금만 기다려줘.”
“응, 알았어.”
기정의 기지로 민철과 박 경위가 이곳에 늦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앞뒤로 퇴로가 막힌 석진은 짜증을 내며 머리를 헤집었다.
“아우, 씨발. 이러면 일이 졸라 꼬이는데. 새끼야, 빨리 비키라고! 꺼져!”
석진은 소리 지르며 민철에게 달려들어 발을 날렸다. 민철은 뒤로 물러나며 석진의 발 공격을 모두 피했다.
“아이, 새끼가 피하기만 하네. 좋아, 그럼.”
다시 민철에게 달려드는 척하고는 석진은 옆으로 빠져 도망치려했다. 그걸 바로 눈치 챈 민철은 석진에게 달려들어 뒤에서 끌어안았다. 몸부림치며 민철에게서 빠져나온 석진은 곧바로 뒤돌려 차기로 얼굴을 공격했다.
하지만 박 경위가 석진의 발을 양손으로 잡아 돌렸고 그 반동으로 석진은 한 바퀴를 돌며 땅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민철이 곧바로 석진의 등에 올라타 양팔을 뒤로 꺾었다.
“이 장면을 또 보네. 이제 순순히 말 듣지?”
“빌어먹을······. 너 김민철, 두고 보자.”
“그래, 우리 꼭 두고 보자. 다음엔 내 힘으로 널 이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웃기네. 아프다고, 새끼야. 그만 내려와.”
석진 눈앞에 박 경위가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학생이 그러면 안 되지. 방금 전에 여학생들한테 하는 걸 들어보니까, 거의 조폭 수준이던데. 누구야? 누가 시킨 거야?”
“몰라요. 경찰이라고 했죠? 경찰이 지금 이래도 되는 거예요? 전 학생이라고요. 학생을 이런 식으로 잡아도 되는 거냐고요?”
“내가? 나는 싸우는 학생들을 말린 것뿐인데. 그리고 내가 볼 땐 네가 가해자 같았는데, 아닌가? 여기 증인들도 여럿 있고 말이야. 안 그래? 학생들.”
박 경위는 뒤에 서 있는 민정과 애리를 향해 물었고, 애리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쟤가 우릴 협박했다고요. 민철한테 먼저 공격했고요.”
“들었지? 학생. 그러니, 나랑 같이 경찰서로 갈까?”
“아이, 그런 게 아니라고요. 다 오해예요, 오해. 저는 그냥 몇 가지 물어본 게 다라고요, 그게 다예요. 저기 저 애들을 보세요. 어디 다친 데라도 있어요? 네?”
석진이 끝까지 발뺌을 하자 민정이 눈물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네가 때렸잖아! 경찰 아저씨, 쟤가 저를 때리면서 유리조각 같은 걸로 겁을 줬어요.”
“폭행에 특수협박까지······. 죄질이 너무 좋지 않네. 강석진 학생을 폭행 및 특수협박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학생은······.”
“잠깐만요. 어떻게 쟤 말만 듣고 그럴 수 있는 거죠? 저는 그런 적 없다고요.”
이번엔 애리가 나서서 석진이 저지른 짓을 말했다.
“아니요. 저도 봤어요. 제 앞에서 민정한테 유리조각 같은 걸로 위협하며 말하라고 강요했다고요.”
“더는 발뺌할 게 없을 것 같은데, 학생. 이제······.”
“경찰 아저씨,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번만 봐주세요. 저도 학생인데 한번쯤은 봐주실 수 있잖아요. 정말 부탁드릴게요. 다시는 그러지 않고 착하게 살게요.”
“정말?”
“정말이고말고요. 한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개과천선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어쩌지? 학생들. 이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는데 한번 봐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단, 이 학생들한테 정식으로 사과를 하는 조건으로 말이지. 아!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면 말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얘들한테는 사과할게요. 근데 뭘 물어보신다는 거예요?”
“일단, 사과 먼저 하고.”
민철은 석진의 등에서 일어나 일으켜 앉혔다.
“어서 사과해, 학생.”
막상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석진은 존심이 상한 듯 미적거리다 박 경위의 눈치를 보고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말. 민정아,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용서해줘. 애리야, 민철아 정말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앞으로는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흉기로 협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알겠어?”
“예,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대답만 잘하면 되는 거야?”
“예? 아니······.”
“싫어? 그럼 경찰서에 가서 얘기할까?”
“아니요, 알겠어요. 말할게요. 물어보세요.”
박 경위의 그림자 옆으로 짙은 그림자가 살며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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