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그림자 킬러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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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갠 하늘에 햇살이 가득 내리는 가파른 언덕길을 자동차 한대가 오르고 있었다. 그 차는 호화로운 대저택 대문 앞에 다다라서 멈춰 섰다. 뒷좌석 문이 열리며 육팔이 내렸다. 곧바로 운전석에서 덕팔이 내려 대문으로 달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자 덕팔은 허리를 숙여 육팔에게 인사하고는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고개를 들어 차로 돌아갔다.
육팔이 계단을 올라 정원에 발을 내딛었을 때 파라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는 미키 정이 보였다. 그는 육팔을 보고 신문을 접으며 자신에게 오라는 듯 손을 까닥거렸다. 육팔은 잰걸음으로 파라솔 앞으로 가 섰다.
“조반은 드셨습니까? 형님.”
“그래, 무슨 일인데 이아침부터 날 만나자고 한 거야?”
“아, 예. 칠구 녀석 일로 상의드릴 것이 있어 부득이하게 급히 연락드렸습니다.”
“칠구? 또 왜? 그놈이 또 무슨 사고라도 쳤어?”
“그런 것 같습니다.”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미키 정은 설마하고 넌지시 물었는데 그렇다는 말에 눈이 커져서 육팔을 올려다봤다.
“뭐? 정말이야?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서기정이라는 아이를 아시겠습니까?”
처음 듣는 듯 미키 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 뭐?”
“서기정이라는 여학생 말입니다.”
“몰라. 근데 뭐? 내가 알아야 하나?”
“아닙니다. 그럼 황상두 의원이라고 하면 기억을······.”
미키 정은 신문으로 테이블을 탁탁 치며 말을 잘랐다.
“나랑 뭐하자는 거야? 아침부터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거야?”
“아닙니다. 몇 주 전에 황 의원이 사고를 치지 않았습니까? 칠구 그 녀석이 어디서 되먹지도 않은 계집을 데리고 와서······. 그 계집이 서기정이라는 여자애였습니다.”
“그래서? 뭐가 이리 서두가 길어.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
“예. 그 일로 제가 금남경찰서 담당 형사를 만나······.”
“그건 알고. 그래서 칠구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그걸 말하라고. 매번 공치사나 내세우고······. 쯧쯧.”
육팔의 말을 끊은 미키 정은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혀를 차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예? 아니······ 그 일을 계속 캐고 다니는 형사가 있어서 말입니다.”
“왜? 그때 다 무마한 거 아니었어? 너 이 자식, 뭐하는 거야? 그것도 제대로 못 막고?”
손가락질까지 하며 미키 정이 화를 내자 육팔은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능범죄수사대? 왜? 거기서 어떻게 알고?”
“서기정이랑 같은 반 아이가 그 형사와 같이 다니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미키 정은 유리잔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근데 그게 칠구 그놈이랑 무슨 상관이야?”
육팔은 눈을 번뜩이며 바로 대답했다.
“칠구 녀석 뒤를 쫓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을 처음 본 곳이 칠구가 거처하던 산장에서였는데, 그저께 밤에도 강미남 클럽 앞에서 그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거가지고 그딴 소리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칠구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말을 해보라고. 아이, 참.”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키 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팔은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지 연신 땀을 닦으며 말해보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또 이런다. 너는 왜 그러는 거야? 왜 내 앞에선 이리 쩔쩔매? 너도 참······. 내가 아직도 그리 무서워? 이제 좀 편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자신의 뺨을 툭툭 치고는 육팔은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어떻게 형님 앞에서 편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좀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서기정이라는 아이와 같은 반인 그 아이의 뒤를 쫓다, 또 다른 경찰이 그 학생을 돕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자도 지능범죄수사대의 일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경찰도 누군지 모르고?”
“예, 아직은. 곧 알아내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그 경찰이랑 학생을 죽이기라도 하자는 거야?”
“아닙니다. 그러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럼? 어쩌자고?”
짜증어린 눈빛으로 미키 정이 쳐다보자 육팔은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참에······ 칠구 그 녀석을 우리 조직에서 쫓아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칠구한테 경찰이 계속 들러붙고 있으면 형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에도 지장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도 보십시오. 어제 그 중요한 모임장소에 경찰이 밖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직은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언제······.”
미키 정은 들고 있던 신문을 툭 던지며 육팔의 말을 잘라 말했다.
“됐어. 칠구한테 조심하라고 전하고. 지능범죄수사대? 거기 경찰이 누군지 알아봐. 그리고 그 학생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경찰은 박동식 경위라고 하고, 여자아이는 임송이라는 학생······.”
“잠깐. 박동식이라고 했어?”
“예.”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지능범죄수사대라고 했지?”
“예, 형님.”
“오호, 그놈 같기도 하고. 근데 그 자식이 왜······.”
“아는 놈이십니까?”
“그런 것 같아. 그건 내가 알아보면 되고. 그러니까 서기정이라는 여자애 하나 때문에 우릴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리지? 칠구가 그 벌레 새끼들을 끌고 들어 온 거고?”
손뼉을 탁 치며 육팔이 재빨리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역시, 형님은 단박에 알아듣게 정리를 잘 하십니다. 제가 닮고 싶은 점입니다, 형님.”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숙여 고개를 조아렸다.
“됐어. 아부할 시간에 해결방안이나 찾아. 칠구한테 주의 주고.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그놈 모자란 놈이지만 네가 형으로 잘 좀 챙기라고. 어떻게 동생을 쫓아낼 생각만 하는 거야? 잘 좀 지내라고 그리 말했는데. 그놈이 뭘 할 줄 아는 게 있어? 네가 다 알아서 하는 거 잘 알아. 그러니까 칠구한테 괜한 경쟁심 같은 거 같지 마. 그게 더 없어 보여. 그 넓은 가슴으로 동생을 품으라고 했잖아.”
자신을 칭찬하는 형님의 말에 감동을 받은 육팔은 속에 두고 있던 말을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형님, 어떻게 형님은 매번 사고만치는 그 녀석을 그리 싸고만 도십니까? 그러다 계속 경찰들이 우리 쪽을 들여다보면 더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참에 칠구 녀석을 조직에서 쫓아내 후환을 없애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형님 말씀대로 그 녀석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습니까? 싸움 좀 한다고 그 자리에 앉힌 것도 웃긴 일 아닙니까? 형님만 모르시지 식구들은······ 아윽!”
유리잔이 갑자기 육팔의 머리로 날아와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깨졌다.
“으윽! 형님······.”
“이 개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깐······. 야! 편하게 하라니까, 막말을 해? 웃겨? 내가 웃기냐고! 내가 칠구 그놈한테 그 코딱지만 한 클럽 하나 맡긴 게 그렇게 웃겼어? 내가 웃기냐고 이 새끼야!”
불같이 화를 쏟아내는 미키 정 앞에서 육팔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화를, 화를 가라앉히시고······.”
“시끄러워! 칠구를 쫓아내니 마니 그딴 소리 한번만 더 꺼내봐. 그땐 너하고 나 다신 보는 일 없을 거다,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만 가봐.”
육팔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일어섰다. 뒤돌아 나가려던 육팔은 미키 정에게 물었다.
“형님, 그 경찰하고 송이라는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 지켜봐. 내가 지시할 때까지. 그리고 칠구 들어오라고 해.”
“예, 형님. 그럼.”
육팔은 미키 정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저택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형님,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덕팔은 육팔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놀라 휴지를 찾아 건넸다.
“출발해.”
“또 영감탱이가 그런 겁니까?”
“입 조심하라고 했지?”
“아니, 왜 형님한테만 이러는 겁니까? 그 빌어먹을 칠구 놈은 한번을 건들지도 않으시면서 어째 형님만······.”
육팔은 말을 끊고 눈을 감으며 좌석에 등을 기댔다.
“됐고. 조용히 가자.”
“제가 이참에 담가버릴까요?”
“누굴? 칠구를? 됐어. 형님이······.”
“아니요. 그 영감탱이 말입니다.”
덕팔의 말에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든 육팔은 주위를 살피더니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내가 입 조심하라고 했지. 네가 형님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딴 소리야?”
“아이, 형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십니까? 아니, 조직을 이만큼 키운 게 누군데? 형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좋다 말입니다. 근데 그 칠구 새끼는 하는 일 없이 매일 놀고먹고만 하는데도 영감탱이가 한 소리를 안 하지 않습니까? 형님한테 하는 것 반만 해도 뭐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거, 이거 뭐가 좀 바뀐 거 아닙니까? 칠구 그 새끼가 더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근데 매번 형님만······.”
목소리를 낮게 깔며 덕팔의 말을 자른 육팔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덕팔아, 나도 그건 이해가 안 되는데. 괜히 나서지 마라. 형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다, 알겠냐?”
“왜요? 키는 작달막하고 한주먹도 안 될 것 같은데.”
육팔은 피식 웃으며 다시 눈을 감고 좌석에 등을 기댔다.
“왜 아닙니까?”
“너, 그림자라고 들어봤냐?”
“그림자요? 아이, 형님은 제가 가방 줄 짧다고 그림자도 모르겠습니까?”
“아니. 전설적인 킬러, 그림자.”
“킬러요?”
“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멓게 하고 다녀서 그림자라는 별명이 붙은 거야. 그런데 빠르기가 얼마나 빠른지 사람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그림자라고 한 거라고. 왜? 밤에만 활동을 하니까, 어둠에선 보이지 않는 거지.”
“정말입니까? 형님은 직접 보셨습니까?”
“그래. 내 앞에서 무려 여섯 명을······.”
육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잇지 못하다 이내 말을 이어갔다.
“잔인하기가······ 말로 표현을 못한다. 그걸 눈앞에서 봤으니 내가 형님 앞에서 쩔쩔매는 게 이상하지 않은 거지. 안 그러냐?”
많이 놀란 듯 덕팔의 눈과 입이 동시에 커지며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게 정말······. 어쩐지 어디 가서도 항상 당당하신 형님이 그 영감탱이······ 아니, 큰형님 앞에서만 쩔쩔매는 게 이상했긴 했습니다.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그러니까 입 조심하고. 괜히 겉모습만 보고 덤비지 말라고.”
“예, 명심하겠습니다.”
***
등교할 준비를 다한 송이는 아침상을 차렸다. 그제야 일어난 송이의 엄마는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고 말하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엄마의 말에 송이는 바로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 기름을 둘렀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능숙하게 휘저어 달군 프라이팬에 살살 두르며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그 사이에 씻고 나온 송이엄마는 화장을 하며 말했다.
“너 요즘 왜 그렇게 늦게 다녀?”
“학원에서 애들이랑 공부하고 오느라······.”
“그래? 그래도 학원 끝나면 바로 와서 방청소랑 빨래는 해놔야 할 것 아니야. 엄마가 일하고 와서 얼마나 피곤한 줄 알아? 다리가 퉁퉁 붓게 걸어 다니느라 집에 오면 서 있을 수가 없다고. 근데 내가 네 빨래까지 해야 하는 거야? 아, 그리고 오늘 집에 올 때 세탁소 들려서 엄마 옷 가지고 와. 돈을 미리 냈으니까 들고 오기만 하면 돼. 알았지?”
“어, 알았어. 근데 엄마, 엄마한테 보험 드는 사람들 중에 변호사도 있어?”
“변호사? 그건 왜?”
“아니······ 그냥.”
“아무튼 싱겁기는······. 그럼, 변호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대기업 사장님들도 있지. 왜? 너도 보험일 해보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어! 계란말이가 이게 뭐니? 아무튼 매번 할 때 마다 모양이······.”
“왜? 이번엔 그래도 잘 말렸는데.”
“됐어. 밥이나 먹어. 뭘 해도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누구 닮았는지 정말.”
또 미운 말을 들은 송이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도무철 변호사라고 알아?”
“어?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맞구나?”
“뭐야?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아냐고 묻잖아.”
“아니, 친구가 그 변호사랑 같이 있는 엄마를 봤다고 해서 말이야.”
“왜? 그 친구가 도 변을 안데? 도 변 딸이야?”
“아니, 친구의 아빠라고······.”
“그래? 딸이 있었나?”
“보험 때문에 만난 거야?”
“뭐야? 그 말뜻은? 얘가······.”
송이엄마는 말하다 크게 웃더니 입가에 웃음을 걷고는 말을 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한다. 도 변이 사람 여럿 소개시켜줬거든. 그래서 그날은 아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만난 걸 거야. 식사라도 대접해야 했는데, 바쁘다고 해서 차만 마시고 헤어졌지. 왜? 엄마가 그새 남자 만나고 다닐까봐 그래? 걱정 마. 내가 미쳤니? 또 결혼을······. 난 너 밖에 없어. 네가 나중에 엄마 호강 시켜줘야 해.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기지배야. 어서 밥이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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