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광수대 민 팀장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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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정문 앞에 소진남 경위가 시계를 보며 초초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두리번거렸다. 정문 앞으로 들어오는 차를 소 경위가 뛰어 들어 앞을 가로막았다. 차가 급정거하자 소 경위가 곧장 그 차의 보조석에 올라탔다.
“야, 소 경위. 뭐하는 짓이야?”
“죄송합니다, 팀장님.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전화? 내가 일이 좀 있어서······. 인마 그래도 그렇게 차에 뛰어들면 어떡해? 칠 뻔했잖아.”
“에이, 제가 팀장님의 반사 신경을 잘 아는데, 왜 엄살이세요.”
“엄살? 야, 나도 나이 먹어. 눈도 점점 어두워지고. 됐다, 뭐야? 무슨 일인데, 또?”
더 말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팀장이 용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건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으로 차를 옮기시죠. 뒤에 차들이 기다립니다.”
“이 자식, 무섭게 왜 이래. 그래, 들어가자.”
차가 천천히 움직여 경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차가 갑자기 급정거하며 멈춰 섰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다짜고짜 우리 팀을 움직여 달라니?”
간단한 용건인 줄 알았던 팀장은 기가 찬 얼굴로 소 경위를 쳐다보았다. 소 경위는 앞뒤 설명 없이 강력범죄수사대 강력팀을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일단 주차 먼저 하시고 얘기를 더 들어보세요.”
“웃긴 자식이네. 야, 뭔지 몰라도 그건 니네 팀장님한테 가서 부탁해. 어디서 광수대에 와서 네 마음대로 움직이라 마라야? 죽을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팀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소 경위는 진정하라며 자기네 형사과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별장사건으로 윗선에 눈 밖에 난 터라 현재 마음대로 팀원들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그뿐 아니라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사 중인 모든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이 내려온 상태라 형사과에서는 윗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급하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 한때 형사과 선임으로 있었던 광역수사대 강력범죄수사대 강력팀 팀장인 민우직 경정을 찾아 온 것이다. 매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손발 걷어붙이고 도와준 의인이었다.
“그래, 그쪽 사정은 나도 들어 알지. 그래도······ 야, 그래도 뭔지는 알고 인마, 팀을 움직이지. 네 말만 듣고, 어? 인마, 네가 광수대 대장이야, 뭐야? 어디서. 빨리 말해. 뭐야, 뭐 때문에 이러는데?”
말은 거칠고 목소리는 커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민 팀장이어서 소 경위는 안심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뜸을 드리다 소 경위는 시계를 힐끔 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오진태 대표와 도무철 변호사의 밀담을 녹음기에 담은 그림자는 침상 밑에 숨어서 오 대표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녹음기인 펜을 가지고 나가려면 문을 열고 나가야 했기에 그가 잠들거나 누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오 대표가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TV만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림자는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그 병실의 층수는 5층이었다. 그림자이니 죽지 않을 것이라, 열린 창문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오 대표의 시선을 잠시 딴 곳으로 돌려야했다. 창문 아래 화분이 하나 있었다. 그 화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문 쪽으로 빠르게 던졌다. 타닥! 소리에 오 대표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하자 그림자는 창밖으로 펜을 던지고는 곧바로 창을 뚫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설마, 그림자라 공중에 떠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려는 찰라,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그림자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밖으로 나오는 순간 바닥으로 고두박질 치는 기분을 그림자는 생생하게 느꼈다. 가속도가 붙으며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펜을 손에 움켜쥘 수 있었다. 땅바닥에 부딪히려는 순간 또 죽는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은 필요 없었다.
바닥에 부딪혔으나 아무런 고통도, 그렇다고 땅에 박히지도 않았다. 신기할 노릇이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녹음기 펜도 무사했다.
무사히 차로 돌아온 그림자는 송이에게 신기한 경험을 자랑하듯 얘기했다. 송이는 소 경위와 민철에게 그림자 아저씨가 슈퍼맨 놀이를 하고 왔다며 핀잔인 듯 아닌 듯 전했다.
“안 물어보세요?”
그림자 얘기에도 놀라지 않고 별 말없이 듣고 있는 민 팀장이 소 경위는 더 이상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소 경위를 민 팀장이 왜 그러냐는 듯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다 이내 입을 뗐다.
“아하, 그림자? 에이, 뭐 시체 보는 놈도 있는······ 아니,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럴 수 있겠다고요? 근데 시체 보는 놈은 무슨 말입니까?”
“아니야, 일단 계속 얘기해봐. 재밌네.”
“재밌어요? 이게. 아무튼 네에.”
어찌됐건 그림자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된 소 경위는 한시름 놓으며 어제 일을 이어갔다. 사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심이 깊었던 터였다.
그들은 미키 정과 투자자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로망스클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 경사가 합류하며 수상한 차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그 차를 주시하며 미키 정을 기다렸다. 오 대표의 지시로 언제 미키 정을 살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 경사는 해킹한 오 대표의 휴대전화를 특이사항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미키 정이 클럽에서 나왔다. 만취한 듯 미키 정은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미키 정의 차가 움직이자 수상한 차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 경위도 미키 정을 뒤따라가며 수상한 차를 계속 주시했다.
수상한 차가 미키 정의 차를 미행한다는 것을 확신한 그림자는 수상한 차에 가깝게 붙어달라고 부탁했다. 송이는 또 슈퍼맨 놀이를 하려고 한다며 걱정스런 얼굴로 반대했다.
‘괜찮아. 잘 붙어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며 문제없을 거야. 그게 아니면 잠깐 정차할 때라도 부탁할게.’
‘몰라요. 근데 저 차에 타서 뭐하려고요?’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쪽 차에 알려야지. 그런 뒤에 다 생각이 있어.’
‘무슨 생각이요? 그걸 묻는 거잖아요.’
5층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도 아무 말이 없었고, 이번에도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부탁만 하는 그림자에게 송이가 단단히 화난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미안. 일단 급해서 그랬어. 지켜보면 다 알게 될 일이야. 그러니까 어서 소 경위한테 말해줘. 부탁해.’
지켜보면 알게 된다니 송이는 더는 뭐라고 물어보지 못하고 소 경위에게 그림자의 말을 전했다. 송이의 걱정과 달리 신호에 걸려 수상한 차 바로 뒤에 붙어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림자는 곧바로 운전석 앞으로 넘어가 앞 유리를 통과해 보닛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점프해 그 차 안으로 숨어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차에서 저차로 그림자가 사라졌다.
날이 저물어 헤드라이트를 켠 상태라 흐리긴 해도 그림자의 모습이 그대로 다 보였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아 있던 소 경위와 진 경사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지켜보고 있었다. 진 경사의 경우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고 있자니 믿기지 않았는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수상한 차로 넘어간 그림자는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보조석으로 가더니 비상등 버튼을 몰래 눌렀다. 갑자기 비상등이 켜졌지만 미키 정의 차를 주시하고 있던 운전자는 비상등이 켜져 있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운전자는 까만 피부에 마른 체구의 남자였다.
한참을 가다 비상등이 켜진 걸 깨달은 그는 빠르게 끄며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 켜졌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몇 번을 그림자가 비상등을 몰래 켜서 미키 정의 운전기사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미키 정을 미행하던 마른 체구의 남자는 비상등이 고장 난 것으로 생각하고 미행을 잠시 접고 뒤쳐서 따라갔다.
미키 정의 저택에서 멀리 차를 세운 그는 도무철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술에 취해 자택으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하고 계속 지켜보라는 도 변호사의 지시에 잠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그림자도 소 경위의 차로 돌아와 수상한 차의 운전자가 도무철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미키 정을 제거하려는 그들의 거사가 내일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며 오늘은 이곳에서 잠복해야 한다고 했다.
“잠복이요? 그럼 송이는요? 내일 학교도 가야하는데 어떡해요.”
내일 등교가 걱정 됐는지 민철이 물었다. 그림자는 송이에게 내일은 꼭 이곳에 남아 할 일이 있다고 미안하지만 결석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송이도 중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민철이라도 집으로 돌려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민철은 송이가 남는다면 자신도 남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남아 이곳에서 잠복하기로 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각자 조용히 자신의 일들을 보느라 차안에 정적이 흐르려던 찰라 소 경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석진의 전화였다. 칠구가 불러낸 연락을 받고 바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조용한 차안에서 소 경위가 내려 석진과 통화를 이어갔다.
소 경위는 석진에게 계획 대로하면 문제없을 거라며 학생들의 이름을 알려주어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그 사이 송이는 수연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학교에 결석을 해야 한다며 담임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민철에게도 부모님께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괜찮다며 하루 결석하는 게 무슨 대수냐면서 좌석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 아니야.”
“됐어. 문자로 동진의 집에 잔다고 했어. 동진한테도 미리 얘기해 뒀고.”
“뭐야? 벌써. 언제?”
“아까 전에 잠복한다고 했을 때 바로 카톡 보냈지. 내가 눈보다 손이 좀 빠르거든.”
자신과 함께 남아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어 보이는 민철에게 송이가 고맙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송이의 따뜻한 한마디에 민철이 좌석에서 등을 떼며 진지한 눈빛으로 송이를 보았다.
“나도 고······ 아니, 좋아해.”
좋아해. 잘못 들었나 싶은 송이가 민철을 빤히 쳐다보았다.
“좋아한······.”
다시 말하려는 민철의 입을 송이가 급히 틀어막았다. 그리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고백을 해오는 통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차안이 덥게 느껴졌다. 민철은 따라 나가야 하나 그냥 여기에 있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있었다.
그러나 더 뻘쭘한 사람이 차안에 있었다. 바로 진 경사였다. 진 경사는 룸미러로 민철의 눈치를 살피며 잠시 지켜보다 내리지 않자 곧장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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