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불순한 계획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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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송이가 떨어지면 안 되는 이유를 다 듣고도 방 형사는 깊은 상념에 빠진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차안은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감돌았다. 송이와 그림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차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고 생각한 민철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웃으며 정적을 깼다.
“에이, 괜찮아요. 두 사람······ 아니, 송이랑 그림자 아저씨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면 돼요. 그렇게까지 심각한 거 아닌데 왜······ 왜 그러세요?”
“맞아요. 형사님. 저랑 아저씨 모두 조심하고 있으니까······.”
탁했던 방 형사의 눈빛이 그제야 맑아지며 송이와 민철을 번갈아보았다.
“미안. 그래, 조심해야겠다. 두 사람. 정말 진짜처럼······ 아니, 이제야 좀 실감이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약······ 아니, 아니야. 또 다른 건, 그러니까 내가 주의해야 할 게 더 있나 해서.”
“아, 그림자 아저씨가 아프면 이한 아저씨······ 병실에 입원해 계신 아저씨한테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긴 해요.”
“그렇구나. 정말 조심해야겠네.”
“그것 외에는 없어요.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장소에서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그건 극복하신 것 같고요.”
“그래. 고마워, 날 믿고 말해줘서. 그럼 남궁 경위의 그림자는 저 골목 안의 건물에 있다는 거지? 그리고 송이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남학생이 곁에 같이 있는 거고.”
송이와 민철은 서로를 힐끔 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방 형사는 민철을 칭찬하며 앞으로도 계속 송이 옆을 잘 지켜달라고 격려 같은 부탁을 했다. 그림자가 나올 때까지만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송이가 양해를 구하자 방 형사는 흔쾌히 허락하며 혹시 모르니 자신이 그곳에 갔다와보겠다고 했다.
방 형사가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송이가 불러 세웠다. 속으로 그림자에게 어떤 상황인지 물었던 송이가 대답을 듣고 방 형사를 잡은 것이었다.
“지금 오진태 대표랑 권민희 대표가 만나서 대화중이라고 하니까 가보셔도 소용없을 거예요. 저희랑 여기에 그냥 계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랑 그림자 아저씨는 텔레파시처럼 의사소통이 된다고요. 제가 아저씨의 말을 전할 수 있으니까 안 가셔도 돼요.”
마냥 신기하듯 송이를 바라보던 방 형사는 열린 문을 닫으며 켜져 있던 실내등을 껐다. 갑자기 차안이 어두워지자 민철이 왜 끄냐고 물었다.
“잠복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왜? 무서워? 송이학생은 아무 말 안하는데 남학생이 참······. 맷집은 좋은데 겁이 많은가 보네.”
“아니요. 제가 아니라 송이가 겁······ 아니, 무서워할 것 같아서. 괜찮아? 송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는 민철을 송이가 째려보고 있었다. 괜한 말을 했다 싶은 민철은 또 꼬리를 바로 내리며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방 형사와 송이가 소리 내어 웃자 민철도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어떤 대화가 오가고 있는지 묻는 방 형사에게 송이는 그림자 아저씨가 그건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 앉아만 있으려니 몸도 찌뿌등하고. 아, 근데······. 아니다. 그림자라고 했으니······.”
“왜요?”
말을 하다마는 방 형사에게 민철이 궁금해 물었다.
“아니, 대화내용을 녹음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럴 수 없잖아. 그림자가······.”
“이 아저씨······ 아니, 형사님이 송이 얘기를 제대로 못 들으셨네. 이번엔 잘 들으세요. 아저씨가 이제는 우리처럼 물건들도 만질 수 있다고요. 그래서 지금 다 녹음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주 꼼꼼하신 분이니까.”
마치 초능력을 갖은 히어로의 능력을 소개하듯 기세등등하게 말하는 민철의 얼굴에 뿌듯함이 절로 느껴졌다. 녹취하고 있다는 말에 방 형사는 놀랐는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정말? 지금 대화내용을 다 녹음하고 있다는 거야?”
“왜요? 아직도 저희 말을 못 믿으시는 거예요?”
“아니. 믿어. 아니······ 믿어보려고 하지. 근데 너무 말이 안······ 신기하잖아. 그림자가 물건을 집을 수 있다는 게. 녹음기라면 사람들 눈에 잘 띌 수도 있고.”
이번엔 민철이 콧방귀까지 끼며 말했다.
“왜 이러실까? 형사님이라면서 잠입수사도 안 해보셨어요. 최첨단장비들이 있는데······. 뭐야? 정말 모르시나 보네.”
“내가 뭘······. 잠입수사는 해봤지. 근데······ 최첨단장비가 뭐, 나 같은 일개 형사들한테 보급되는지 알아? 그거야 저기 광수대정도 돼야, 아니면 강력반 형사들 정도 돼야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아무튼 그럼, 그런 장비가 너희한테 있다는 거야?”
신나서 말하려는 민철을 송이가 팔을 잡으며 막았다.
“형사님이 다 받아주시니까 얘가 신나서 과장되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한테 최첨단장비 같은 게 어디에 있겠어요. 볼펜이요. 볼펜처럼 생긴 녹음기가 있어요. 가벼운. 그걸 들고 들어가셨어요.”
소 경위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그림자가 신신당부를 한 것이 생각난 송이가 민철의 말을 급히 막은 것이다. 그런 송이의 마음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던 민철은 자신이 허풍쟁이가 된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심기가 상한 민철이 입을 다물자 차안이 또 고요해졌다. 방 형사도 아직까지 송이가 자신을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 더는 묻지 않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송이는 민철의 팔을 살며시 잡으며 말은 못하고 눈짓으로 미안함을 전했다. 민철은 또 그 눈짓에 금방 마음이 풀려 배시시 웃고 말았다.
그때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차안으로 밀려들어오더니 곧이어 골목으로 사라졌다. 방 형사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차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니 차에서 내려 방금 전 골목으로 들어간 차를 뒤쫓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나가버린 방 형사를 송이와 민철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오진태와 권 대표는 한동철 비서실장을 조용히 풀러나게 할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오진태는 언론을, 권 대표는 검경을 움직여 조용히 비서실장을 그 사건에서 빼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대화를 그림자가 녹취를 하고 있었다. 소파 뒤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그림자 아래로 검정색 펜 모양의 녹음기가 보였다.
그들의 계획이 모두 오가고 권 대표가 휴대전화를 보며 그만 가봐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부탁드려요. 오 대표.”
“걱정 말라니까요. 제 전문입니다. 그것보다 약속한 건 꼭 지켜줘요.”
“그러죠.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한동철 비서실장도 뭐라고 하진 못할 거예요.”
“그래요, 권 대표만 믿겠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줘서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요.”
권 대표가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권 대표를 안내했던 웨이터가 들어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대표님.”
그렇게 말하고 나간 웨이터 뒤로 미키 정이 들어와 권 대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권 대표님이 아니십니까? 형님과 함께 계셨던 겁니까?”
미키 정은 오진태의 부름을 받고 왔으나 권 대표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제가 불렀습니다. 혼자 무슨 재미로 이 많은 걸 마시겠어요. 이런 곳에서 권 대표랑 마시기도 그렇고······.”
“잘 하셨네요. 가까운 지인들이라도 불러 즐기시라고 말씀드리려던 차였어요. 제가 에이스들로만 들여보내 달라고 할 테니 재밌게 즐기다 가세요. 그럼.”
선글라스를 끼며 도도하게 턱을 들어 인사하고는 권 대표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룸 안에서 들릴 것 같지 않은 소리가 들리자 권 대표가 돌아서며 물었다.
“두 분이 내신 소린가요?”
“아닙니다.”
미키 정과 오진태를 서로 쳐다보며 자신들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미키 정이 도청되고 있는 거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룸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무슨 도청? 이곳에?”
“예, 형님. 그 소리가 녹음기가 켜지는, 아니면 꺼지는 소리처럼 들려서 말입니다. 안을 수색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오진태는 의심의 눈초리로 권 대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장난치는 거 아니죠? 권 대표.”
난처한 듯 권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왜 그런 장난을······. 그리고 아시잖아요. 여기는 손님을 받기 전에 방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도청장치나 몰래카메라 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 항시 조사를 한다고요. 설마, 내가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의심스러운 미키 정은 당장이라도 권 대표의 몸을 수색할 것 같은 눈빛으로 오진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진태는 웃으며 아이스버킷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들어보라는 듯 손으로 가리켰다. 그때 달그락,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미키 정은 의심의 눈을 거두고 권 대표에게 사과하듯 인사했다.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권 대표님.”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조심성 많은 건 좋은 거니까. 그럼 즐기고 가세요.”
쿨하게 넘기며 권 대표가 나가자 미키 정은 오진태 맞은편에 앉았다. 그림자는 속으로 크게 숨을 삼켰다. 녹음기의 용량이 다 되어 자동으로 꺼지면서 달칵 소리를 낸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스버킷 속 얼음이 녹으며 내는 소리가 비슷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빨리 만나신다더니 이렇게 바로 만나고 계실지는 몰랐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어. 황 의원 사건 터질 때 알아봤다고. 근데 아직 숨기고 있는 게 있어. 그게 뭔지 너무 궁금해 미치겠는데······. 권 대표 성격에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될 것 같아서 기다려주기로 했지.”
“그렇군요. 근데 뭡니까, 그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나한테 맡기고. 동생은 동생 할 일이나 하라고. 그래, 박동식 그놈은 그림자 킬러가 처리한 게 맞아?”
“아, 예. 그놈이 처리한 게 맞습니다. 그 남궁이한 그놈도 곧 처리할 계획이랍니다.”
“왜 그렇게 늦는 거야? 의식 없는 환자를. 아직도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건······. 곧 알아내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믿어보시죠.”
그림자는 그들의 입에서 박동식 경위와 자신의 이름이 나온 것에 놀라 분노했지만 그들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꾹꾹 화를 눌러가며 참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송이의 이름까지 나왔다. 송이와 이한 사이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 대화를 녹음할 수 없는 게 분할 뿐이었다. 그래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있는 힘껏 소파를 테이블까지 밀어붙였다. 갑작스런 소파의 움직임에 놀란 오진태는 벌떡 일어서려다 테이블에 허벅지와 급소를 정확히 부딪쳤다. 너무 고통스러워 소리도 못 지를 정도였다. 미키 정은 소파가 저절로 움직이는 걸 보고 지진이라도 난 줄 알고 천장을 살피기 바빴다.
“뭐야? 지진이야?”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고통스러워하는 오 대표를 보고서야 미키 정은 그가 다친 걸 깨닫고 괜찮은지 묻는 그 순간 또 소파가 움직이며 이번엔 미키 정에게 테이블이 밀고 들어왔다. 미키 정은 날쌔게 소파 위로 뛰어올라 테이블과 부딪히지 않았다.
분명 지진은 아니어서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미키 정은 재빠르게 소파 뒤로 뛰어넘어가 누가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한곳이 조금 어두워 보일 뿐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볼펜 한 자루가 띄었다. 얼른 그 볼펜을 들어 뭔지 살피던 그는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양복 상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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