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석진의 위협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민정은 석진에게 이끌려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석진의 손에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들려 있었다.
“조용히 따라와, 그럼 아무 일도 없어.”
바들바들 떨며 민정이 울먹였다.
“우냐? 울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라니까.”
때리려는 듯 석진이 손을 치켜들자 민정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싹싹 빌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때리지는 마.”
그들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길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민정은 잔뜩 겁에 질린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석진은 유리조각을 내던지며 말했다.
“이제 눈 떠. 유리도 없다고.”
그제야 눈을 뜬 민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
“시끄럽고, 내 말에 대답만 잘 하면 돼. 알겠어?”
민정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애리랑 친하다며?”
“애리? 근데 그건 왜?”
“씨발, 묻지 말고, 대답이나 해!”
석진이 윽박지르자 민정은 몸을 움츠리며 눈을 감았다.
“아이, 씨······. 눈 뜨고 대답하라고. 애리나 친해? 안 친해?”
“내가 반 아이들이랑 잘 지내는 편이긴 한데, 애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어.”
“전번은 알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던 민정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몰라.”
“몰라? 진짜야?”
민정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응, 몰라. 그것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런 거면 아까 거기서 그냥 물어봤어도 됐잖아.”
“그래, 아이 미안하네. 내가 그것도 모르고······ 미안하다.”
“아니야. 그럼 나 가 봐도 되지.”
민정은 힐끔 석진을 보고는 옆으로 지나가려했다. 그때 갑자기 석진이 팔을 덥석 잡더니 민정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가져갔다. 방심하고 있던 민정은 무방비로 당하고 말았다.
“뭐하는 거야? 내 핸드폰 줘, 빨리!”
달려들어 휴대전화를 뺏으러하자 석진은 팔을 위로 쭉 뻗어 높게 들어 올렸다. 민정은 폴짝폴짝 뛰며 휴대전화를 낚아채려했지만 손에 닿지 않는 높이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줘. 보내준다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내가 언제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리고 내 말을 믿는 거야? 너 참 순진하다. 그런 거짓말에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았냐? 이게 날 뭐로 보고. 씨······. 패턴이나 풀어.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까, 어서.”
휴대전화를 앞으로 내미는 석진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뺏으려했지만 꽉 움켜쥐고 있어 민정의 힘으로는 빼낼 수가 없었다.
“소용없어. 좋은 말할 때 패턴이나 풀어. 너도 참 이상하다, 애리 전번 없다면서? 근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역시 거짓말이었어, 그치? 썅!”
석진은 욕을 뱉어내며 민정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으!”
“내가 우스워 보이냐? 좋은 말한테 핸드폰 패턴 풀어. 더 쥐어터지고 싶으면 계속 그러던가. 빨리 풀어!”
윽박지르며 다그치자 민정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또 눈을 감고 말았다.
“아이, 씨. 눈 떠. 너 또 눈 감으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둔다. 어? 씨발,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너 소희 남자친구 아니야? 소희가 너 이러는 거 알아? 소희, 나랑 같은 반 친구라고. 소희가 이걸 알면······.”
“빌어먹을! 소희랑 헤어졌거든. 이제 됐지. 근데 네가 소희랑 친구라고? 반 친구면 다 친구인 거야, 너는? 지랄한다. 소희도 네가 친구래? 소희가 어떤 아이인줄은 알고, 친구라고 지껄이는 거냐? 너는.”
“몰라. 그래도 같은 반이면 친구잖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소희를 봐서라도 이러지 마. 정말 나한테 왜 그래?”
“네가 덜 맞았구나. 소희는 너 같은 년은 친구로 보지도 않아, 꼴값은······ 친구 좋아하네. 너 서기정 알지?”
“기정이? 기정은 왜?”
“걔가······ 아니다. 아무튼 네가 그걸 알면 절대 친구라고 할 수 없을 거다. 근데 너 기정이랑도 친했어?”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민정을 보고 석진은 곧바로 눈치 채고는 말했다.
“친했구나. 너 설마 기정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거야?”
당황한 민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석진은 피식 웃었다.
“너는 참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말해봐. 기정에 대해서 말이야.”
“모른다고 했잖아. 정말 아무것도 몰라.”
“이게 날 바보로 아네. 이게 정말 씨······.”
욕을 내뱉으며 민정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 충격에 주저앉아 울먹이는 민정을 석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울어? 씨발, 그게 아프다고 우는 거야? 졸라 웃기네.”
석진은 쪼그려 앉아서는 민정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기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말하라고, 알고 있는 것 다. 어서?”
고개가 들린 채로 민정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흐느껴 울기만 할뿐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 씨발. 그만 울라고! 더 맞아야 그칠래?”
석진이 손을 잡아 내리자 민정은 울먹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머리 좀 놔줘, 아파.”
그제야 석진은 민정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래, 말해봐. 뭘 알고 있는 거야?”
머뭇머뭇하며 민정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석진이 또 한 번 머리채를 움켜쥐자 기겁하며 말했다.
“알았어, 말할게. 말할 테니 때리지는 마.”
석진이 잡은 머리채를 놓자 민정은 곤혹스런 얼굴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기정이 호텔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할 뻔한 일에 대해 말하고 말았다. 그래도 민정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해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때 그 일은 민정과 애리 그리고 동진도 자세히는 몰랐다.
“정말 그게 다야?”
“왜 더 뭐가 있는 거야? 그래?”
“아니야, 맞아. 그게 다야. 혹시나 해서······. 네가 거짓말하고 있나 싶어서 물은 거야.”
“그럼 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지.”
“근데 그걸 왜 묻는 건데? 이렇게 위협까지 하면서.”
“씨발, 내가 좋게 대해주니까, 친구 먹은 줄 아냐? 내가 질문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고!”
욕설에 쏟아내는 석진에게 겁을 잔뜩 먹은 민정은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넌 그게 어울려. 어디서······. 핸드폰 열고 애리한테나 전화해.”
“애리······. 왜? 내가 다 말했잖아.”
“그거 너고. 애리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애리도 나랑 똑같······ 아으!”
고개 들어 말하는 민정의 뺨을 석진이 세게 내리쳤다.
“졸라 말 많네. 너는 고개 숙이고 벌벌 떠는 게 어울린다고 방금 내가 말했잖아! 입 다물고, 내가 시키는 거나 잘 해. 씨, 쯧.”
울먹이며 떨리는 손으로 석진이 쥐고 있는 자신의 휴대전화 패턴을 풀었다. 그리고 주소록에서 애리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래, 넌 이러면 된다고. 꼭 맞아야 말을 들어 처먹으니.”
석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
금남천 둔치에서 유수연이 박동식 경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박 경위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보였다. 수연 앞으로 박 경위가 다가와 섰다.
“안녕하세요, 수연 씨. 무슨 일입니까?”
“여기 앉아서 얘기해요.”
수연은 인사하고는 벤치를 가리키며 앉았다. 박 경위도 따라 옆에 앉았다.
“근데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겁니까? 병원에서 봐도 되잖습니까? 이한 면회도 할 겸 그곳으로 갈까 했는데.”
“죄송해요. 그곳에서 말씀드릴 얘기가 아니라서.”
진지한 표정의 수연을 박 경위는 조금 얼떨떨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말씀해 보시죠.”
“잠깐만요. 더 올 사람이 있어서요.”
“누가 또 오는 겁니까?”
“네, 음료수를 사온다고 해서요. 아, 저기 오네요.”
수연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박 경위의 눈에 송이와 민철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 저 아이들은······.”
“네, 아시죠? 임송이 학생하고 김민철 학생이에요.”
“도대체 무슨 얘기인데 저 학생들까지 부른 겁니까?”
“제가 부른 게 아니고요. 저 학생들이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부탁이요?”
송이와 민철이 달려와 인사했다. 박 경위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수연에게 물었다.
“얘네들이 부탁을 했다고요? 송이 학생, 혹시 그날 일이 기억난 거예요?”
박 경위의 물음에 송이는 수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연이 나서서 말했다.
“동식 씨, 그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면······ 어서 말해 봐요. 궁금하네요.”
민철이 봉지에서 커피 캔을 꺼내 수연과 박 경위에게 건넸다.
“이거 먼저 받으세요. 드시면서 얘기하세요.”
“학생, 고마워. 수연 씨, 이제 말해 봐요. 이 아이들과 관련된 일인가요? 아, 기정 일 때문에 그래요? 그건 민철 학생한테 문자로 보냈는데. 그거라면······.”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던 수연은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박 경위의 말을 끊었다.
“아니에요. 많이 궁금하신데 제가 너무 끌었나 봐요. 그래도 커피 먼저 드시고 제 얘기 들어주시겠어요. 그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목이 좀 마르기도 하고요.”
“그래요, 그럼.”
떨떠름한 표정의 박 경위는 커피를 마시며 송이와 민철을 힐끔 보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음료수만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커피를 마저 마셨다.
“이제 말씀해보시죠, 수연 씨.”
마시던 커피 캔을 내려놓으며 수연이 입을 열었다.
“제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사실은 말이죠.”
수연은 박 경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던 박 경위는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서서히 바뀌더니 눈동자까지 흔들렸다. 수연의 말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박 경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내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지금 여기 송이 학생의 그림자가 이한이라는 말인가요? 어!”
송이 뒤로 드리워 있던 그림자가 떨어져 나오자 박 경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이한······ 남궁이한 경위라고?”
믿기지 않는 듯 되묻는 박 경위에게 송이가 대답했다.
“네, 맞아요. 형사님. 이한 아저씨······ 아니, 남궁이한 경위님이세요.”
“좋아요. 그렇다고 해도, 왜 날······ 아, 그날 일 때문에······.”
굳은 표정으로 말하던 박 경위는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일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한 아저씨는 기억을 모두 잃으셨어요.”
“기억을 잃어······?”
박 경위는 고개를 들어 송이에게 되묻듯 말하고는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야? 내 말은 들린다고 했지? 정말 기억을 다 잃은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그림자의 모습에 박 경위는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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