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연의 일치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서기정은 담임선생을 찾아가 도난 사실을 알렸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담임이 교실로 와 도난사건에 대해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번이 열 번째에요. 모두 알겠지만 매번 가방을 검사하기도 이제 지쳤어요. 그리고 솔직히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인이 누구인지 밝힐 수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날 때가지 나한테 문자로 자백해주기 바랄게요. 그럼, 지금까지의 일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자백하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알겠죠? 우린 반 학생이 아니라고 난 믿어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기로 한 거예요. 단지, 혹시 몰라서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고요. 그럼 그렇게 알고 다음 시간 수업 준비하세요.”
담임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옆자리 친구들과 쏙닥거리며 송이를 한 번씩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민정이 송이 옆으로 와 말을 걸어왔다.
“송이야, 정말 못 봤어?”
송이는 다시 엎드리려다 민정을 보며 말했다.
“미안, 못 봤어. 계속 책상에 엎드려 눈 감고 있었거든.”
“잔거야?”
“아니, 잠을 잔 건 아닌데······. 그냥 눈감고 있었어.”
“그럼 무슨 소리라도 못 들었어?”
“어. 아무 소리도······.”
“그래, 알았어. 근데 아직도 피곤한 거야? 아니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미안해.”
“어, 알았어.”
송이는 다시 엎드려 눈을 감았다. 민정은 송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기정이 송이에게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앞을 막아섰다.
“기정아, 왜?”
“나와 봐. 물어볼게 있어서 그래.”
“나랑 얘기해. 송이한테 내가 물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들었데.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없어진 게 아닐 거야. 잘 생각해봐, 어?”
“무슨 소리야? 점심시간 전까지 분명 내 지갑 안에 있었다고. 삼십만 원이라고. 너 같으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알아, 근데 그렇게 큰돈을 왜 지갑에 두고 다녔어? 가득이나 도난사건도 많이 일어나······”
“야, 유민정.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조심을 해야······.”
“이제 보니 너희 둘이 짜고 그런 거 아니야?”
“뭐라고? 지금 말 다했어?”
“아니면 나와. 너한테 본 일 없거든.”
기정은 민정을 옆으로 밀치고 송이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송이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송이야, 미안한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송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기정을 올려다봤다. 그때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내가 말해줄 수도 없고. 분명 아무도 없었어. 송이 너는 엎드려 있어서 몰랐겠지만 난 다 보고 있었다고. 분명 점심시간 동안 교실에는 너 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점심시간에는 도난사건이 발생할 수가 없어. 그 전에 발생한 걸 거야. 그렇게 얘기해, 어?’
송이는 그림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기정에게 말했다.
“다 들었는데······. 난 아니야. 물론 민정이도 아니고. 괜한 오해하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 쌤도 말했잖아. 이번에 자백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신다고. 그럼 곧 도둑이 누군지 밝혀지겠지. 안 그래?”
“정말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송이는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가방 좀 살펴봐도 될까?”
이번에도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말해. 아무도 교실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고. 아이, 답답하네. 정말. 내가 대신 말해 줄 수도 없고.’
송이가 말없이 있자 기정이 가방을 집어 들려했다. 그때 민정이 옆으로 다가와 기정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야, 서기정. 너무한 거 아니니? 송이가 아니라잖아. 그런데 가방까지 보자는 건······.”
“왜? 아니면 보여줄 수 있는 거잖아?”
“너 정말······.”
“민정아, 됐어.”
송이가 민정을 말리며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책상 위로 꺼내놓았다.
“됐지.”
책상 위에는 화재가 발생했던 그날 들어있던 교재들과 공책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갑이 마지막으로 뚝 떨어졌다. 그 지갑 사이로 하얀 봉투가 삐쭉 나와 보였다. 그것을 본 기정이 지갑을 들어 안을 살폈다.
“이 봉투는 뭐야?”
“그건······.”
봉투라는 말에 반 아이들이 모두 송이의 자리로 달려와 물었다.
“봉투? 봉투라고?”
“야, 그거 기정이 돈 아니야?”
“빨리 봉투 열어봐, 어?”
기정은 지갑에서 봉투를 꺼내 안을 들려다봤다. 황색 오만 원 권 여러 장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야, 임송이. 이 돈은 뭐야?”
“돈?”
반 아이들은 수군거리며 송이가 돈을 훔친 범인인양 흘겨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네가 훔친 거지? 그동안 일도 다 네가 한 짓이지?”
기정이 봉투를 흔들며 다그치자 송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송이의 기억에 그 봉투가 떠올랐다. 아빠의 발인이 있기 전날 한 당숙어른이 송이에게 다가와 봉투를 전하며 위로했던 그 순간이. 그날 받은 봉투를 송이는 지갑에 넣어놓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줄 생각으로······. 하지만 그걸 깜빡 잊고 있었다.
“왜 말을 못해? 맞구나, 그치?”
송이가 말을 못하고 있자 민정이 다가와 기정을 말렸다.
“서기정, 잠깐만. 그렇게 몰아붙이면 어떻게 말을 해. 그 봉투 줘봐. 도대체 얼마나 들어있는지 보자. 어?”
“그래, 네가 꺼내봐. 그럼.”
기정은 봉투를 민정에게 건넸다. 민정은 봉투에서 오만 원 지폐를 꺼내 개수를 셌다. 총 6장이었다. 삼십 만원. 기정이가 도난당한 알바 비와 같은 금액이었다.
“이거 봐, 맞잖아. 내 삼십만 원이잖아.”
“아니, 잠깐만. 송이, 송이 애기 좀 들어봐야지. 송이야, 이게 뭐야? 아니지?”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야, 그 봉투. 빈소에서 한 어른이 너한테 준 거야. 기억하지? 당숙이라고 하면서 엄마한테 주지 말고 너 쓰라고 준 거라고. 어? 왜 말을 안 해? 속으로 말을 하라고, 답답하네.’
송이는 그림자에게 속으로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것조차 들킬까봐 조심스러워 말하지 못하고 기정에게 말했다.
“내가 설명할게. 이건 아빠 장례식장에 조문오신 당숙께서 주신 돈이야. 내가 가지고 있다 엄마를 준다는 게······.”
“됐어.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니? 당숙이라는 분이 왜 너한테 돈을 줘? 부조금이면 부조금 통에 넣거나 네 엄마한테 줬겠지. 그리고 그 봉투 겉에는 아무런 글씨도 없잖아. 부조금이면 나도 알거든. 봉투 겉에 한자로 뭐······. 부조금이라고 쓰여 있잖아. 안 그러니, 애들아?”
반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다고 대답했다. 순간 송이의 말은 모두 거짓이 되고 말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그림자는 답답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휴! 이거 내가 말해줄 수도 없고. 이거 완전 내가 증인인데······. 내가 다 봤다고. 송이야, 내가 나와서 말해······ 아니, 말해도 못 듣지. 아휴, 답답해. 송이야, 뭐라고 좀 해라. 이렇게 당하지만 말고.’
그때 민정과 동진이가 송이를 지켜주듯 앞에 섰다. 민정은 뒤돌아 송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송이야, 네가 말해봐. 아니지? 정말 부조금인 거지?”
송이는 민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니야. 난 아니라고. 그 돈은 당숙어른이 나한테 준 부조금 맞아. 아빠를 걸고 맹세해.”
민정은 결연한 눈빛으로 송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정에게 뒤돌아 크게 말했다.
“송이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송이는 거짓말을 못하는 애라고. 그러니까, 기정. 너 빨리 송이한테 사과해. 우연히 금액이 맞았을 뿐이라고. 그리고 넌 알바 비를 봉투에 넣어 놓은 것도 아니잖아, 그치? 지갑 안에 돈이 그냥 들어있었던 거잖아, 안 그래?”
“그렇지만 봉투는······.”
이번엔 동진이 나서서 말했다.
“그래, 송이가 아니라잖아. 일단 수업 곧 시작하니까 모두 자리로 돌아가. 기정아,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송이는 아니야. 송이가 진짜 도둑이었으면 가방을 그렇게 쉽게 보여줬겠어?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내 알바비랑 같은 금액이고 교실엔 송이 밖에 없었다고.”
“그거야, 우연의 일치일 수 있고. 일단 자리로 돌아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어?”
“알았어, 짜증나.”
기정은 송이를 한번 흘겨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반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나서야 민정과 동진도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송이도 그제야 자리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데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야, 그래도 친구들은 잘 뒀네. 민정이랑 동진이라고 했나? 널 끝까지 믿어줬잖아. 야, 말 좀 하라고. 속으로 말하면 되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미안해요. 애들한테 들킬까봐서요. 가능한 학교에서는 말 섞지 말죠.’
‘뭐? 아이고, 참. 그래, 조심하자는데 어쩔 수 없지.’
동진이 자리에 앉자 민철이 말을 걸어왔다. 민철은 그때까지도 아무 관심도 갖지 않고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야, 동진아.”
“아니라고, 송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송이? 뭐?”
“어? 너······.”
“무슨 일 있었어? 난 음악 듣고 있었는데.”
민철은 무선이어폰을 꺼내 보였다. 동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말해.”
“아니, 소개팅 한 여자 애랑 어떻게 됐어? 어디까지 갔냐고?”
“뭘 어딜 가? 겨우 한번 만났거든.”
“자식은, 하룻밤에 모든 역사가 이뤄진다는 말 몰라? 하루면 끝나, 자식아.”
“너나 그러겠지. 난 아니야. 그리고 지금 그 얘기할 때가 아니야. 지금 송이가······.”
“됐다. 걔 얘기는 하지 마. 그건 그렇고 민정이랑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 거야?”
“아니라고 했지.”
“그래? 그럼 내가······”
“뭐? 네가 뭐?”
“뭐야? 왜 그렇게 놀라?”
“뭘 놀라긴? 말해봐. 네가 뭐?”
“아무 사이 아니면 내가 작업 좀 해보려고.”
“작업? 무슨 작업? 너 민정이한테 관심 있어?”
“관심? 에이, 난 모든 여자들한테 관심 많지.”
민철이 크게 웃자 동진이 민정을 힐끔 쳐다보고는 민철을 말렸다.
“야, 조용히 좀 웃어.”
“자식, 쫄기는. 우리 얘기 안 들려.”
“장난하지 말고. 정말 관심 있냐고? 아니, 좋아하냐고?”
“이제 좀 좋아해보려고. 사실 땍땍거리는 게 짜증은 나는데······. 요즘 괜히 그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저런 애는 어떤 느낌일까하고 말이야.”
“느낌? 무슨 소리······ 너 설마······.”
“왜? 안 돼? 사실대로 말해, 너 민정이 좋아하지?”
“아니, 아니라고. 근데 그런 식으로 민정이 만나는 거 난 싫어. 민정이 나랑 절친이라고.”
“웃기네. 남녀 사이에 찐 절친이 어디에 있냐? 그냥 좋아한다고 그래, 자식아. 그럼 내가 관심 꺼줄게.”
“있어. 남녀 사이에도, 절친. 아무튼 안 돼. 그래, 좋아해. 그러니까 민정이한테 관심 꺼라. 어?”
“아이, 자식. 이제야······. 알았어. 노터치,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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