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자살이 아닌 타살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교 급식실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애리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려했지만 애리는 어느새 자리에 없었다. 민정의 말로는 제일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나는 민정과 함께 급식실로 가며 애리의 근황을 물었다.
“애리랑은 말 좀 해봤어?”
“나? 아니.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고 있어 무서워 말도 못 붙이겠어. 그러는 너는?”
“나는 누구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잖아. 너처럼 못하잖아, 나는.”
“그건 그렇지. 내가 보니까 그날 이후로 반 친구들하고도 별로 얘기 안하는 것 같더라고. 애리도 충격이 컸나봐. 그래도 이제는 우리처럼 괜찮지 않을까? 한번 말 걸어볼까?”
“그러게. 네가 해봐.”
“내가?”
민정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싫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급식실로 들어섰고 민정은 애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듯 보였다. 나도 애리를 찾고 있는데 민정이 내 팔을 치며 말했다.
“송이야, 저기. 저기 애리 있다. 빠르기도 하다. 벌써 급식을 다 받아서 앉아 있네.”
“그러게. 우리도 얼른 받아서 애리 옆에 앉자.”
“그래.”
우리는 급식을 받으려 줄을 선 친구들 뒤로 자리했다. 그때 급식을 받은 동진이 옆을 지나가며 민정과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동진 뒤에 있던 민철은 그대로 지나쳐 갔다.
“이제야 나왔어?”
“어, 동진아.”
“맛있게 먹어.”
동진은 그렇게 서둘러 말하고는 곧바로 민철 뒤를 따라가며 핀잔을 줬다.
“야, 뭐가 그렇게 급해서 먼저 가냐?”
“배고파. 빨리 자리 잡고 먹자.”
“아이, 자식은. 그래.”
민정과 나는 동진과 민철이 투덕거리며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있다 순서가 되어 급식을 받았다. 우리는 음식을 담은 식판을 들고 애리가 있는 자리로 갔다.
“애리야, 여기 앉아도 되지?”
민정의 말에 애리는 힐끔 우리를 보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식판으로 눈을 돌렸다. 민정은 나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애리 옆에 앉았고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민정에게 애리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눈치를 줬다. 민정은 싫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애리에게 말을 걸었다.
“애리야, 밥 다 먹으면 우리 매점에서 음료수 마시면서 애기 좀 하자. 어때?”
애리는 나를 보더니 입에 있던 음식을 다 삼킨 뒤에야 입을 열었다.
“미안. 나는 바로 들어가서 학원숙제를 해야 해서. 너희끼리 마셔.”
그러고는 다시 식판으로 눈을 돌려 식사에만 집중했다. 나도 더는 뭐라고 말을 걸지 못했다. 그때 뒤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 민철의 목소리도 있었다. 내가 뒤돌아 봤을 때 민철이 한 남학생과 다투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고?”
“내가 뭐? 신경 끄고 가서 밥이나 먹지.”
“너 방금 사진 찍었잖아. 왜 허락 없이 여자애들 사진을 찍는데, 그걸로 뭐하려고?”
“무슨 헛소리야! 무슨 사진을 찍어. 그냥 셀카 찍었거든.”
“셀카? 그럼 보여줘. 보여주면 되잖아, 봐봐.”
남학생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뺏으려 민철은 팔을 잡아 당겼다. 완강히 민철의 손을 뿌리치는 남학생은 휴대폰을 손에 꽉 쥔 채 놓지 않았다.
“이거 봐. 이 새끼 안 보여주는 거 봐. 너 이러면 쌤한테······.”
갑자기 남학생은 민철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민철은 곧바로 그 남학생을 뒤쫓아 나갔고 동진이도 따라나섰다. 그렇게 그들이 나가고 급식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식판에 숟가락 닿는 소리와 함께 학생들끼리 수다 떠는 소리로 채워졌다.
민정과 나는 밥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민철이 남학생과 다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애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먹고만 있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봤을 때는 애리의 식판이 거의 비어 있었다. 식사를 다 했는지 애리는 잔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애리 옆으로 한 남학생이 앉더니 말을 걸어왔다.
“네가 애리니?”
말없이 애리는 힐끔 쳐다보기만 했다. 남학생은 대뜸 휴대폰을 애리 앞으로 내밀었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알려줘.”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코웃음을 짓더니 애리는 식판을 들고 그대로 일어나려했다. 그러나 남학생이 팔을 잡아 억지로 다시 앉혔다. 그러면서 식판에 남아 있던 잔반이 떨어지며 애리의 옷에 묻었다.
“어머! 어떡해? 애리야······.”
민정과 나는 깜짝 놀라 어쩌지 못하는 반면 애리는 침착하게 식판을 내려놓고는 옷에 묻은 잔반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옷을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학생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그러니까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렇게 일어서면 어떡해? 옷은 세탁하면 되잖아, 그 대신에 내가 맛있는 저녁 살게. 그러니까 여기 전화번호 찍······.”
“아니,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남학생의 말을 가로챈 애리는 자신의 식판을 들어 남은 잔반을 남학생의 옷에 뿌렸다. 남학생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잔반들을 털어내며 소리쳤다.
“야! 뭐하는 거야? 미쳤어!”
“아니. 이러면 저녁을 같이 먹을 일은 없을 거잖아. 이걸로 됐지? 그럼 난 간다.”
애리는 식판을 들고 퇴식구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정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봤지? 송이야. 완전 카리스마 짱이다. 애리가 저렇게 멋있었나?”
“그러게, 짱 멋져. 나도 저럴 수 있을까?”
민정과 나는 그렇게 말하며 급식실 밖으로 나서는 애리를 계속 지켜봤다. 그런데 갑자기 애리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던 남학생이 애리의 팔을 잡아채며 붙잡았다.
“야, 이렇게 해놓고 어딜 가려고? 내가 아무 일 없는 일로 해줄 테니까, 전화번호만 알려줘.”
“내가 분명 싫다고 의사표명을 했는데. 너 바보니?”
“뭐? 바보······ 죽을래?”
남학생이 손을 치켜 올려 애리를 때리려는데 민철이 나타나 그의 팔을 잡아 꺾으며 막아섰다.
“뭐하는 거야? 여자한테.”
“아으······ 너 뭐야? 이 팔 안 놔!”
민철은 팔을 놓으며 밀쳤고 남학생은 앞으로 꼬꾸라질 듯 휘청거리더니 균형을 겨우 잡고 섰다.
“야, 너 뭔데, 끼어들어? 얘 애인이라도 되냐?”
“애인이면? 꺼질래?”
민정과 나는 애리가 걱정 돼 달려 나갔다가 민철이 나서는 것을 보고 멈춰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민정이 민철의 말을 듣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또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뭐야, 뭐야. 민철이가 애리 좋아하나봐. 언제부터일까? 혹시 기정 일로 같이 다닐 때부터 일까? 그렇지, 송이야?”
나는 민정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민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애인이란 말이야? 아이, 씨. 알았어.”
남학생은 투덜거리며 급식실을 빠져나갔다. 민철은 애리가 괜찮은지 물어보려했지만 애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대로 급식실을 나갔다. 민철은 애리를 뒤따라 나갔다.
“어머, 정말인가 봐. 애리를 좋아하나봐, 송이야.”
“알았으니, 그만해. 밥이나 마저 먹자.”
“지금 밥이 넘어가? 따라 나가서 봐야지. 애리한테 고백할지도 모르잖아.”
“갈려면 너나 가! 난 관심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그래? 화났어? 왜에?”
“아니······ 그게 아니고. 미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네. 진짜 관심 없어서 그래. 배도 고프고. 나는 먹고 있을 테니까, 너는 가봐.”
“그래? 알았어. 내가 보고 와서 말해줄게.”
남의 속도 모르고 민정은 해맑게 웃으며 급식실을 나갔다. 나는 내 식판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마저 식사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림자 아저씨와 같이 올 걸 후회했다. 교실에서 급식실까지는 떨어져 있어도 괜찮아, 나에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아저씨는 따라 나서지 않고 교실에 남아 있었다.
***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지능범죄 수사대에 들어선 박동식 경위의 자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그 전화를 당겨 받았다.
“잠깐만요. 아, 막 들어왔네요.”
전화를 대신 받은 남자가 박 경위를 불렀다.
“박 경위, 전화. 금남 경찰서 형사과라고 하는데.”
“아, 예. 감사합니다.”
박 경위는 빠르게 달려와 전화를 건네받았다.
“네, 박동식 경위입니다. 어, 어떻게 알아봤어? 그래? 그럼, 종결 된 사건이란 말이지. 알았어. 고마워. 아, 잠깐만. 서기정이라는 학생은 교통사고를 죽었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타살로 의심되는 건 없었어?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고마워.”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리로 가려는데 전화를 바꿔줬던 남자가 불러 세웠다.
“박 경위.”
“예, 경감님.”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팀장님도 그렇고 걱정이 많으셔. 지금 수사 중인 사건에 집중 못한다고 말이야. 저번에도 그런 것 같은데, 왜 그래? 나도 알아, 남궁 경위랑 각별했던 거. 그래서 그 사건 알아보고 있는 것도. 그래도 맡은 사건은 공백 없이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남궁 경위를 위하는 거고. 나중에라도 남궁 경위가 깨어나서 이러는 자네를 알게 돼 봐.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 자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경감님.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라는 소리가 아니잖아. 동료를 위해 그러는 거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야. 그래도······.”
“예,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서둘러 말하고는 박 경위는 자리로 가서 수첩을 챙기고는 지수대를 나왔다. 경감은 그런 박 경위를 고개 저으며 쳐다보다 남궁 경위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밖으로 나온 박 경위는 민철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차를 타고 어딘가로 출발했다. 박 경위가 도착한 곳은 신축아파트 공사 현장이었다. 차에서 내린 박 경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데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빨리 왔네요.”
“아, 방 형사님. 놀랐지 않습니까?”
“뭘 이런 걸로 놀라요? 많이 바쁘십니까? 요즘은 남궁이한 형사 일로 연락이 뜸하시네.”
“예, 맡은 사건도 있고. 근데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겁니까?”
“이유가 있으니 그렇죠. 저기 보입니까? 저 아파트.”
방기철 형사는 거의 완공이 되어가는 한 아파트 꼭대기를 가리켰다.
“네. 보이네요. 아파트는 왜요? 저게 남궁 경위랑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그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고······. 그것보다 내가 이번 사건을 더 수사할 수 없게 됐어요. 위에서 하도 난리라서 말이죠. 사건 종결하라고 성화네요.”
“아직도 종결된 게 아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남궁 형사 건으로 알아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알아보고 있죠. 근데 임승택 씨 건은 자살로 종결된 거 아니었습니까?”
“나도 처음은 그랬죠. 근데 뭔가 돌아가는 게······. 아무튼 여기서 보자고 한 건, 사건 당일 저기 아파트 꼭대기에서 임승택 씨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요? 그게 남궁 경위라는 말입니까?”
박 경위의 물음에 방 형사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누군지 모릅니다. 요 근처 CCTV는 다 확인해봤는데 누군지 못 찾았어요. 자살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서 가스폭발로 자살을 한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해요? 뭐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박 경위가 묻자 방 형사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 양반도 같은 소리를 하네. 그래서 저기서 뛰어내리기 무서워서 집에서 자살을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아니요. 이 사건 타살로 의심된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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