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결혼을 약속한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칠구는 소희의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다그치듯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해 봐, 어서.”
“오빠, 왜 그래? 알았으니까, 이 손 놔. 어?”
소희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래, 알았어. 말해.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나도 강석진한테 들었어.”
“너 또 그 자식을 만났어?”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전화가 와서 받았을 뿐이라고 겁에 질려 소희가 외치듯 말했다. 칠구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그래서라고 냉랭하게 물었다. 눈치를 살피며 소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석진의 말이 기정이 죽었다고 하는 거야.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지. 근데······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였다고 하지 뭐야.”
칠구의 눈이 번쩍 커져서는 물었다.
“뭐? 죽여? 그놈은 그걸 누구한테 들었데?”
“나도 그걸 물었는데······. 도통 말을 안 해주는 거야. 그래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학교에 와보니 서기정 걔가 정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오빠가 그런 거야? 근데 오빠가 아닌가 보네. 그치?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라서······.”
욕을 뱉어내며 칠구는 석진의 전화번호가 뭐냐고 묻다가 고개를 저으며 소희에게 직접 전화해 보라고 했다.
“어? 어.”
“전화해서 이리 오라고 해. 아니, 전화해서 나 바꿔.”
“알았어.”
휴대전화를 주섬주섬 꺼내 전화를 걸었다. 소희는 석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휴대전화를 칠구에게 건넸다.
“어쩐 일이냐?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하더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다.”
칠구인지도 모르고 소희의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석진은 버럭 소리쳤다.
“누구야?”
“이 새끼가 엉까네. 내 목소리를 몰라? 아니면 알고도 이래?”
“아, 형님. 칠구형님이십니까?”
“그래, 자식아. 너 어디야? 나 좀 보자.”
석진은 잔뜩 쫀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저를요? 아닙니다. 저 소희랑 헤어졌어요. 다시는 전화도 하지 않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형님.”
“사내자식이 징징대기는······.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좀 물어볼 게 있어. 어, 그래. 여기 로망스클럽으로 와. 술이나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자.”
“클럽요?”
“그래, 안 잡아먹어. 술이나 한잔 같이 하자고. 소희 보내고 남자 둘이 질퍽하게 한잔 하자. 어때?”
“저기······ 형님, 그게······.”
왠지 께름칙한 마음에 석진은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아 자식, 겁도 많네. 아니라니까 심심해서 그래. 간만에 술 좀 마시려고 하는데 같이 술 상대할 놈이 없잖아. 알잖아. 아가씨도 부르고 좀······. 어?”
솔깃해서는 그런 거냐고 되물어보는 석진에게 칠구는 피식 웃고는 그런 거니까 빨리 오라고 했다. 석진이 신나서 큰소리로 대답하자 칠구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소희에게 건넸다. 소희는 건네받으며 뾰로통한 얼굴로 칠구를 쳐다보았다.
“뭐야? 나 보내고 어떤 년하고 놀려고? 나한테 한 말이랑 다르잖아.”
“아이고, 이 무식······ 그래, 백치미라고 치자. 이그.”
칠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희의 볼을 꼬집었다.
“뭐하는 거야? 아파, 아프다고. 백치미? 뭐가?”
“모르면 됐다. 내가 널 어딜 보내? 그 자식 불러내려고 거짓말 한 거지. 이리와 봐. 응?”
팔을 벌려 보이는 칠구의 가슴에 소희는 폭 안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야. 아잉, 나는 그것도 모르고······ 미안.”
***
“결혼이요? 그럼 결혼을 앞두고 그런 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놀란 눈으로 물어보는 민철의 말에 송이가 덧붙여 물었다.
“근데 병원에는 왜 안 오는······ 아, 아니다. 매일 못 올 수도 있지.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는 박 경위의 말에 송이는 어림잡아 헤아린 듯 묻지 못했지만 민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 파혼한 거구나. 아저씨가 병원에 저렇게 누워 있어서.”
송이는 민철을 말리며 눈을 흘겼다. 민철은 왜 그러냐고 물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박 경위는 손을 내저으며 민철에게 말했다.
“젊은 친구가 성질이 급하네. 아니에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요. 그게 아니라 이한의 여자 친구는 3년 전에 사고로······ 아니, 괴한에게 살해를 당했어요.”
“살해요?······”
그림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괴로운 듯 머리를 잡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송이는 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고막이 터질 듯 아플 지경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귀를 막으면 주저앉았다.
“송이야, 왜 그래?”
그 사실을 모른 채 민철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송이를 살피기 바빴다. 박 경위도 놀란 얼굴로 허리 숙여 송이를 바라봤다.
“학생, 괜찮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든 송이는 박 경위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모습에 민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급히 송이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박 경위는 당혹스러워 뒤로 물러나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왜 그래? 형사님이 다 민망하시겠다.”
송이는 쪼그려 앉은 채로 민망해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안. 박 형사님, 죄송해요.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너무 소름이 끼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나는 괜찮아요. 근데 그게 뭔지 모르고요?”
“네. 그냥 기분이······ 지금도······.”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런 송이에게 민철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물었다.
“이제 괜찮은 거야?”
“어. 나는······.”
그리고는 송이는 그림자에게 속으로 물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그림자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민철은 송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뒤에 그림자 아저씨가 쪼그려 앉아 있어. 그래서 내가 네 옆에 가까이 붙어있는 거야. 괜히 오해 마라.”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민철은 이한의 그림자가 박 경위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그림자로 가린 것이었다. 송이가 안정돼 보이자 박 경위가 말을 걸었다.
“이제 좀 괜찮으면 저쪽으로 가서 앉을까요? 나한테 할 얘기도 있다고 했잖아요.”
“저기 죄송해요. 잠깐만요. 제가 아직도 진정이 안 돼서요.”
“그래요? 이거 어쩌나? 물 좀 마시면 괜찮을 거예요. 저쪽으로 가서······.”
민철이 일어서서는 박 경위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었다.
“제가 말씀드리면 되니까 저랑 가서 얘기하시죠. 송이는 여기에 잠깐 앉아 있다가 오라고 하고요.”
민철은 의자를 끌어와 송이를 앉혔다. 이한의 그림자는 의자 뒤로 감춰졌다.
“고마워.”
“됐어. 그럼 여기서 잠깐 쉬어. 형사님, 가시죠.”
“어, 그래요.”
박 경위는 앞서 걸어갔고 그 뒤를 민철이 따랐다. 송이는 그들을 보며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저씨, 괜찮은 거예요? 좀 말을 하세요. 걱정 돼 죽겠어요.’
‘미안. 잠깐만 기다려줘. 이제야 떠올랐어. 내가 왜 이러는 건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중에······. 생각을 좀 정리하고. 조각조각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근데 알겠어. 내가 아니······.’
그림자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송이는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그 사이 박 경위에게 민철은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부터 시작해 기정의 죽음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박 경위는 민철의 말을 끝까지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근데 수사가 종결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피해자가 사망해도 진술까지 했으니 수사는 계속······ 아, 잠깐만. 그건 내가 좀 더 알아볼게요.”
“왜 그러세요? 종결된 게 아니라고요? 아니, 아저······ 아, 아니에요.”
“근데 종결 되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직접 경찰서에서 알려온 거예요?”
“네? 아, 아니요. 그냥 기정이가 죽었으니까 그렇게 되는 건 줄 알았죠.”
“그런 거면 내가 좀 알아볼게요. 학생 말대로 수사가 종결되었을 수도 있어요. 사실관계를 다퉈야 하는 거면 쉽지는 않을 거예요. 경찰도 그런 사건을 피해자 없이 끌고 가기는 어려울 거고요.”
“그래서요. 형사님이 좀 도와주실 수 없는 건가요? 아저······ 아니, 이한형사님 동료시잖아요. 그럼······ 아니, 형사시니까······.”
“왜요? 이 사건이 이한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거예요? 내가 듣기로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는데······.”
“그렇죠. 전혀 상관없죠. 그래도 이한형사님 면회 갔다가 형사님을 만날 수 있었잖아요. 이게 보통 인연인가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떻게든 엮어보려니 민철도 어색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학생도 말하고 웃긴가 봐요.”
“티가 났나요? 그게······.”
“괜찮아요. 학생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으면 나한테 이러겠어요. 그래도 멋지네요. 친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 보면. 기정학생하고 아주 친한 친구였나 봐요? 송이학생하고도 친한 친구 사이인 거예요?”
“저요? 아니요. 그냥 반 친구예요?”
“예? 송이학생은 기정학생이랑 친한 게 아닌 거예요?”
“네? 아, 그 말씀이시구나. 친하죠. 친한 친구 맞아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민철이 웃겼는지 박 경위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미안해요. 학생이 너무 웃겨······ 아니, 순수해 보여서.”
그리고는 얼굴을 민철에게 가까이 갖다 대며 나지막이 물었다.
“왜요? 송이학생이 학생을 안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면 짝사랑?”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황한 듯 민철은 목소리가 커져서는 송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웃음 진 얼굴로 바라보며 박 경위가 말했다.
“알았어요. 발끈하기는······. 아니면 아니지.”
“아니에요, 그런 거.”
“알았다고요. 일단 오늘은 그만 가 봐요. 내가 기정학생 일은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 너무 기대는 말고요. 나도 일이 있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사건이 종결했을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럼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네. 그래도 알아봐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민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송이를 살폈다. 그제야 일어나 걸어오는 송이에게 박 경위가 이제 좀 괜찮으냐고 물었다.
“네, 형사님. 고맙습니다.”
“뭘요? 기정학생 일은 이 친구한테 얘기했으니 가면서 들어요. 그리고······ 아니, 아니에요.”
“그날 일 말씀이시죠? 아직도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기억나면 제일 먼저 말씀드릴게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박 경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고맙죠. 그만 가 봐요. 나는 좀 더 일할게 남아서요.”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박 경위에게 인사하고 지능범죄 수사대를 나오던 민철이 송이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왜 그런 거래?”
“나도 모르겠어. 말씀을 안 하셔. 근데 뭔가 기억이 떠오르긴 하셨나봐.”
“정말? 다행이다. 역시, 내가 해냈어.”
민철은 송이 옆으로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저 잘했죠? 박 형사님이 기정이 사건에 대해 알아봐 주신다고 했어요. 뭐, 크게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형사니까, 우리보다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고요.”
민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답을 기다리듯 송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날 봐?”
“그럼 누굴 봐? 아저씨가 뭐라고 안 하셔? 내 칭찬이나 뭐······.”
“아무 말 없으신데. 그리고······ 내가 말 안했는데······.”
송이는 그림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까, 책상 앞에서 우셨어. 아저씨, 미안해요. 말 안하려고 했는데 얘가 눈치 없이 계속 아저씨한테 말을 거니까······.”
그림자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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