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점점 가까워지는 사건의 진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계단으로 내려오던 송이가 그림자의 말을······ 아니, 생각을 민철에게 말해주었다.
“아저씨, 트라우마를 이겨내셨나 봐.”
“정말?”
“응. 그보다 박 형사가 범인인 걸 자기 입으로 실토한 것 같아. 그걸 녹음까지 하셨고.”
“녹음? 뭐야, 그럼 일부러 그러신 거야? 너한테 무슨 말 없었어?”
“아니, 필요할 것 같다며 녹음이 되는 펜을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거든. 그런데 아까 전에 그걸 달라고 하시는 거야. 이렇게 쓰실 줄 몰랐지.”
“이제 모든 기억이 돌아오신 건가?”
“최면치료가 효과가 있었나봐. 과거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고 하셨어.”
“아무튼 잘 됐다. 박동식, 그 형사가 범인이었구나. 듣고 있으면서도 설마 했거든.”
“나도. 그날 사건에 대한 증거가 없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무척 힘들어하셨어. 그러다 최면치료를 받고 기억들 속에서 뭔가 발견을 하신 것 같아.”
“그랬구나. 근데 넌 이제 괜찮은 거야?”
“아저씨가 극복했다고 방금 전에 말했잖아. 그래서 나도 괜찮아.”
“아, 맞다. 그럼 빨리 가자. 둘이 멀어지면 너도 아저씨도 위험하잖아.”
“응.”
제보가 들어온 서소동 개발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을 내사 중이던 이한은 과거 조사했던 개발사업 건과 유사한 점을 발견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도 제보한 내용에 포함되어 있어 과거 자료들을 찾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정인의 사건을 조사했던 동식의 사건기록들을 보게 되었다.
그 기록들에서 수상한 점들을 발견한 이한은 직접 동식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석연치 않은 답변만 돌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직접 정인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를 찾기도 했다. 그러다 서소동 개발사업 비리의혹을 제보한 남자의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송이의 집에서 폭발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고 송이의 그림자가 됐다.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는 박 경위의 멱살을 그림자가 움켜쥔 채 주먹을 치켜들었다. 박 경위는 손을 들어 막을 힘도 없었다. 검은 그림자의 불끈 쥔 주먹이 박 경위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그 충격에 박 경위는 엘리베이터 벽에 쓰러져 기댄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그 앞에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방기철 형사가 있었다. 코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박 경위를 보고 놀란 방 형사는 황급히 뛰어 들어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박동식 형사! 박 형사, 정신 좀 차려 봐요.”
그 사이 그림자가 눈에 띄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려했지만, 방 형사의 눈썰미에 검은 인영과 함께 펜이 공중에 떠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곧바로 뒤돌아보는 방 형사의 눈에 송이와 민철이 보였다. 그림자는 어느새 송이 옆으로 드리워 있었고 펜은 송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형사님, 박동식 형사가 범인이에요.”
박 경위를 가리키며 범인이라고 하는 송이를 방 형사는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뭐? 박 형사가 범인이라고? 무슨······ 이한을 죽이려고 했던 그 범인?”
“아니요. 이한 아저씨의 여자 친구를 죽인 범인이요.”
송이의 말에 방 형사의 눈이 더 커져서는 박 경위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 형사가 누굴 죽였다고? 그걸, 그걸 송이학생이 어떻게 알아? 박 형사는 또 왜 이러고 있는 거고? 뭐라도 알고 있는 거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던 방 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는 박 경위가 자백을 했다며 들고 있던 녹음기 펜을 작동했다. 펜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박동식 경위였다. 듣고 있던 방 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박 경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녹음내용이 모두 흘러나온 뒤에 송이가 녹음기를 끄며 방 형사에게 건넸다.
“여기요. 부탁드릴게요. 형사님이 저기 박동식 형사를 체포해 주세요. 그리고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주시고요.”
“어, 그래. 근데 녹음내용을 들어보니까······ 학생들한테 말한 것 같지 않던데. 그리고 박 형사를 누가 이렇게 한 거야? 설마 남궁 형사가 깨어난 건가? 그래? 지금 어디에 있어?”
“아니요. 그건 사실······.”
송이가 그림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그때 이번엔 그림자가 막았다.
‘왜요? 언제는 밝히자면서요?’
‘근데 좀 이상해. 분명 날 느낀 것 같았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야. 아니, 물어 볼만도 한데······ 그러지도 않고.’
‘그래서요? 그냥 느낀 거지, 정말 그림자가 따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귀신이 아닌지 하겠죠. 그걸 누가 믿겠다고 물어보겠어요. 정말 말 안할 거예요? 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말하려다 말고 멍하니 있는 송이에게 방 형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래도 대답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한 방 형사는 송이 옆에 드리운 그림자로 눈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민철이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형사님. 일단 거기서 나오시는 게 어떠세요? 그 살인자도요. 공공장소잖아요.”
“아, 그렇지.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져서······.”
그렇게 말하며 방 형사는 박 경위를 들쳐 업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리고 박 경위에게 수갑을 채우는데 스르르 박 경위의 눈이 떠졌다. 깜짝 놀라며 손을 빼려는 그의 팔을 방 형사가 움켜잡으며 수갑을 마저 채웠다. 그러면서 박 경위에게 살인죄를 설명하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철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수갑을 채우는 형사의 모습이 그저 멋져보였다. 정신을 차린 박 경위는 수갑 찬 손을 휘저으며 왜 이러느냐고 빨리 풀라고 성화였다.
“못 들은 겁니까? 당신 입으로 자백까지 했잖아요. 근데 누구한테······ 아니, 그건 서로 가서 자세하게 들어보기로 하고. 학생들은 어떻게 할 거야? 같이 서로 갈 거야? 아니면 다음에 얘기할까? 무슨 일로 보자고 했는지 궁금하긴 한데, 이자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방 형사가 말하는 중에 민철은 송이의 팔을 툭 치며 눈치를 주었다. 그제야 송이는 방 형사의 얘기를 듣고 대답했다.
“아니요. 이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였어요.”
“뭐? 그럼 계획하고 날 여기로 부른 거였어? 학생들이?”
“아니요. 수연언니의 생각이었어요. 아무튼 이렇게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저희는 수연언니랑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수연 씨? 그 제보자 말이구나. 근데 수연 씨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저씨······ 집예요.”
“집에? 그래. 그럼 나도 이자를 처리하고 병원으로 갈게.”
“네,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말고.”
자포자기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박 경위를 끌고 방 형사는 빌딩 밖으로 나갔다. 송이는 그들이 가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 그림자에게 물었다.
‘이럴 계획이셨어요? 그랬으면 미리 좀 말을 해줬으면 좋았잖아요.’
‘아니야. 나도 사실 이렇게까지는 생각 못했어. 한편으로는 아니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동식이 정말 정인을 죽인 범인이라고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라서······. 미리 말 못한 건 미안해. 너희들이 위험할 수 있었는데, 사실 자신은 있었거든. 봤잖아. 너희는 내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해는 됐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것이 속상한 송이는 괜히 심술부리듯 투덜댔다.
‘그래도 다음엔 무조건 다 말해주세요. 이제 그래도 되잖아요. 그랬으면 우리가 도울 수도 있었고요. 괜히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버려서 위험할 뻔했잖아요.’
‘그래, 알았어. 나도 네가 그렇게 대놓고 말할 줄 몰랐지. 나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뭐라고요?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 고 하는 거잖아요. 죄송해요. 근데 아저씨 잘못도 있다고요.’
‘죄송한 거 맞는 거지? 이거.’
‘치, 못됐어. 죄송해요. 죄송하다고요.’
투정부리듯 틱틱거리는 송이가 그저 귀여운 그림자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송이는 웃는 그림자를 흘겨보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가자던 송이가 한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는 것을 민철은 그림자와 얘기 중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송이가 미소 짓는 모습에 무슨 일인지 물었다.
“어, 아니. 아니야.”
“뭐가 또 아니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아, 근데 아저씨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거 맞아?”
“아, 맞다. 어떻게 된 거예요?”
송이도 마침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 민철의 질문에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래, 말해 줄게.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 같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어. 그리고 동식이 정인을 죽였다는 말에 분노가 일면서 이렇게 있을 수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순간 정신이 또렷해지는 거야. 그전에 느꼈던 공포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잘 됐네요. 이렇게 극복할 수 있는 걸······. 이게 다 최면치료 덕분이 아닐까요?”
“맞아. 그게 큰 도움이 됐지. 기억들이 돌아오면서······. 아마도 정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 트라우마가 사라진 것도 같아. 정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인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거든. 지금도 마찬가지긴 해. 결국 나 때문에······.”
잘 나가다 갑자기 자책하는 그림자에게 송이가 그러지 말라는 듯 크게 소리치며 말을 막았다.
“아저씨!”
“어, 아니야. 알았어. 정인도 이런 내 모습을 바라진 않을 거야.”
“맞아요. 그러실 거예요. 그러니 그런 생각 마세요. 그럼 기억들이 다 돌아온 거예요?”
“궁금하지? 그날의 기억이 돌아왔는지?”
송이의 아빠가 폭발사고로 죽은 그날의 기억이 돌아왔는지가 궁금해 물어본 것이라는 걸 그림자는 단박에 알고 되물었다. 송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는 기억들이 모두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이의 아빠가 폭발사고로 죽게 된 그날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송이는 그림자의 설명을 민철에게 중간 중간 얘기해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송이는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물었다.
“그럼 우리 아빠가 제보자였던 게 맞네요?”
“그래. 임승택 씨가 제보자였어. 난 제보자를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다 동식의 전화를 받고 제보자의 집······ 너의 집으로 갔던 거야.”
“그럼 박동식 형사가 우리 아빠를 죽인 범인이라는 거예요? 그렇죠?”
흥분해 따져 묻는 송이를 진정시키며 그림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그거까지는 몰라. 그런데 곧 알게 될 거야. 분명 그날의 사건은 조작되었어. 증거를 인멸했을 거고. 그래서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반드시 그 범인을 찾아낼게. 그리고 그 범인 뒤에 살인을 사주한 자가 있을 거야. 서소동 개발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들 모두가 공범일 거야.”
“그렇다면 그때 클럽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 공범이라는 말씀이세요?”
“그럴 수 있다는 거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그래도 그 중에 범인은 있을 거야. 사주한 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송이를 보고 놀란 민철이 무슨 일인지 물으려다 말고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드디어 아빠를 살해한 범인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오른 송이는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송이는 그대로 민철의 품에 안겨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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