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그림자의 첫사랑?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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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그림자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 그림자의 모습에 송이가 물었다.
“왜요? 또 누가 미행하고 있는 거예요?”
“혹시 몰라서. 그것도 그건데······.”
또 말을 흐리며 그림자가 머뭇거리자 송이가 바로 핀잔을 놓았다.
“그냥 말하세요. 결국엔 다 말할 거면서 꼭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지 모르겠어. 또 왜요?”
“하도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민철이 얘기에 예민하게 구니까.”
“민철요? 민철이가 또 따라온 거예요?”
뒤를 돌아보며 송이가 주위를 살폈다.
“아니야. 혹시 이번에도 와있나 해서 본 거야. 사실, 민철이가 있었으면 했고.”
“저만으론 안 되는 거예요? 민철이가 필요하면 불러 드릴까요?”
“불러도 돼?”
송이는 코웃음을 쳤다.
“기다렸다는 듯 말하시네요. 왜요? 민철이 그렇게 좋으면 걔 그림자로 들어가시지 그래요? 지금까지 저랑 다니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어요. 아니면 제가 여자라 힘드셨나 보죠?”
콧방귀를 끼며 송이가 고개를 휙 돌리자 그림자에게서 말없이 헛웃음 소리만 들려왔다.
“정말 그런가 보네요. 지금이라도 그만 둬요, 그럼. 저랑······.”
“임송이.”
그림자는 송이의 이름을 부르고는 아무 말도 이어하지 않았다. 송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불렀으면 말씀을 하셔야죠. 솔직히 저도 불편하거든요. 그래도 참아가며······.”
“그만하자.”
그만하자는 낮고 진중한 그림자의 말에 송이는 상심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그래요, 그만해요. 저도······.”
화가 오르는 것을 참아가며 그림자는 답답한 마음을 입 밖으로 떨어냈다.
“아니, 그만해. 알았다고. 민철이 안 불러도 돼. 그러니까 그렇게 무작정 쏟아내지 말아줘. 어? 우리 대화를 하자, 대화를.”
그림자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 듯 뚱하게 지금 이게 대화가 아니면 뭐냐고 되물었다. 송이는 아직 어리다고 그림자는 자기 최면을 걸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건 대화가 아니지. 대화라면 내가 민철이를 불렀으면 하는 이유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거야. 그냥 지레짐작으로 화만 내면 어떻게 내가 말을 하겠어? 그래서 말을 안 했던 거야. 네가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던 거고. 그런데 끝날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만하자고 한 거고.”
“치, 그럼 말할 때 이유도 같이 말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요, 말해 보세요. 뭔데요?”
“네가 걱정 돼 그런 거야. 나는 널 보호해 줄 수가 없잖아.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는 할 수는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저번 그 클럽에서 네가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막상 뛰어나가면서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 다행히 민철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넘어갔지만. 그래서 그런 거야. 다른 이유 없어. 나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너한테 내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 미안해서 그래, 걱정도 되고.”
자신이 뱉어낸 말들이 하나 둘 생각난 송이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민망했고 사과의 말조차 입으로 내뱉지 못한 채 애꿎은 돌만 발로 차며 딴 짓을 했다.
“이제 알겠어? 그런데 왜 그렇게 민철이 얘기만 나오면 쌍심지 켜고 말하는데?”
“누가 그랬다고 그래요? 민철이······ 민철이 때문이 아니고요. 저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격지심이죠. 저는 여자라서······ 그리고 어리고요. 또 뚱뚱하기도 하고······. 뭐하나 도움이 되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지, 민철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요. 죄송해요.”
나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송이에게 그림자는 고마웠고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 자격지심은 가질 필요 없어. 지금까지 잘해왔고. 나한테는 큰 도움이 됐어. 그러니까 운동을 좀 하자고. 자존감이 떨어진 이유 중에는 체력적인 것도 있으니까.”
송이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눈치 챈 그림자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외모적인 것도 있지. 그게 다는 아니지만. 운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단단해진다고 저번에도 말했잖아. 그러니까 체력도 튼튼하게, 정신도 단단하게. 그래서 너의 자존감을 조금 높여보자는 거야.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자. 민철이도 같이. 그건 너도 좋다고 했잖아. 어?”
“결국, 또 운동이네요. 알겠어요. 제가 자존감이 바닥이긴 해요. 정말 운동을 하면 자존감이 나아질까요?”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향상되지 않을까?”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민철에게 전화······.”
“포기를 못하시네요, 정말.”
“포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포기를 모르는 거지, 내가.”
그렇게 말하고는 그림자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송이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제가 포기해야죠. 알았어요. 아저씨가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아니까 제가 한발 물러날게요.”
“그래, 그게 양보라는 거야. 포기가 아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됐어요. 잔소리는 그 정도만 하시죠. 전화해서 부탁해볼게요. 대신 아저씨가 부탁하는 걸로 말할게요.”
“어, 그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영 내키지 않는 듯 송이는 미적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낸 뒤에도 한참을 주소록을 뒤적거리기만 했다. 보다 못한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말하기 싫어?”
“아니······ 네, 싫어요. 걔한테는 아쉬운 소리하기 정말 싫다고요.”
“내 생각은 다른데. 민철은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좋아한다고요? 아니요. 그걸 핑계로 날 놀려 먹고 얼마나 잘난 체를 할지 눈에 선하다고요. 그래서 더 못하겠어요.”
“아이, 이럴 때가 정말 답답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게 말이야. 내 목소리는 너 밖에 안 들리니 대신 말해줄 수도 없고. 답답하다, 나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송이가 들어오는 버스를 가리켰다.
“저 버스에요. 일단 타죠.”
“그래, 그러자.”
버스에 오른 송이는 내리는 문 가까이에 손잡이를 잡고 섰다. 그림자는 송이에게 붙어 사람들에게 띄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차가 급정거할 때마다 그림자와 송이가 떨어졌다 붙었다 반복했다. 다행히 버스에 탄 승객들은 송이의 그림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관성의 법칙은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되나 보네. 참 힘드네, 그거.’
주변 승객들을 살피며 그림자에게 속으로 말했다.
‘힘들어도 신경 좀 써주세요. 너무 따로 놀잖아요. 여기 사람들이 보면 놀란다고요.’
‘나도 알아. 나도 최대한 노력 중이거든? 갑자기 움직이는데 나보러 어떻게 하라고? 내가 지금 얼마나 신경을 곤두서서 따라붙는지 몰라서 그래.’
‘알겠어요. 그래도 다행히 여기 사람들은 눈치 못 챈 것 같아요.’
‘다음부터는 버스 말고 지하철 타자. 아니면 자리에 좀 앉던가?’
‘그래야겠어요. 가능한 지하철을 타야겠어요.’
‘어, 저기 자리 생겼다. 빨리 가서 앉아.’
‘네.’
빈자리로 가려는 그 순간 차가 급정거를 하며 멈춰 섰다. 송이는 그 반동에 뒷걸음치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림자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 빈자리로 향했다. 빈자리 뒤에 앉아 있던 한 아가씨가 앞자리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며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그림자를 가리켰다.
“어머! 이게 뭐야?”
아가씨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여기요. 여기······.”
그녀가 가리킨 빈 좌석 아래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멀뚱멀뚱 쳐다볼 뿐 놀라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 옆으로 내리려 준비하던 한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송이가 달려와 빈자리에 앉으며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아가씨는 머쓱해하며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민망한 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좀 신경 쓰라니까요. 사람들 눈에 띌 뻔했잖아요.’
‘띌 뻔한 거지, 띄지는 않았잖아. 다행히 옆에 남자가 서 있어서 다행이었지, 뭐야.’
‘뒤에 앉은 언니 얼굴 보셨어요? 얼마나 놀란 얼굴인지······.’
송이는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 웃지 마.’
웃지 말라면서도 그림자는 따라 웃고 있었다.
‘저 언니한테 미안한데······ 그 떨떠름한 멍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그러게. 자기도 많이 놀랐을 거야. 그런데 서 있던 남자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자신이······’
겨우 웃음을 참았던 송이가 또 웃음이 나올까봐 그림자의 말을 막았다.
‘그래, 근데 민철한테 전화 안 할 거야?’
‘여기서요? 병원에 도착하면 할게요.’
‘그래, 좋을 대로.’
그들은 그 뒤로 병원까지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갔다. 병원 앞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그림자는 민철에게 전화해 보라고 재촉하듯 말했다. 송이는 별만 없이 알았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울리자마자 민철이 받았다.
“야, 네가 웬일?”
“할 말이 있으니까 했지.”
“그러니까 네가 먼저······ 어, 그래. 말해. 뭐야?”
“오늘 밤부터······ 어, 그림자 아저씨 말을 전하는 거야.”
“그래, 알아. 네가 나한테 볼일이 있어 전화했겠냐? 나도 알거든. 꼭······ 그래서?”
송이는 휴대전화를 살짝 띄고는 입을 삐죽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오늘 밤부터 운동하자고 하셔서 전화한 거라고.”
“오늘 밤? 몇 시?”
“몇 시? 아, 아저씨······ 아니······.”
말하다 말고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몇 시에 운동할 것인지 물었다.
‘송이야, 운동은 우리 일이 끝나고 해야 하니까, 일단······.’
‘아, 알았어요.’
송이는 민철에게 이어 말했다.
“그게 일이 있어서 그 일이 끝나야 할 것 같아.”
“일? 언제 끝나는데?”
“모르겠어. 그래서 말인데 네가 이쪽으로 올래?”
“지금 오라고?”
“응. 안 돼?”
“어······ 아니. 어, 돼. 알았어. 어디야?”
“여기 금산병원이야.”
“어, 거기. 너희 아빠 장례식······ 아니, 미안. 아니야. 알았어. 가서 전화할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 내가? 그러게 내가 어떻게 그걸 알지? 동진이한테 들었나?”
“애들한테 말한 적 없는데.”
“야, 그게 뭐가 중요해?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끊어.”
“응.”
전화를 끊으며 송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에 그림자가 물었다.
“왜? 민철이가 뭘 아는데? 병원 좀 안다고 그렇게 정색했을 리는 없고. 뭐야, 또?”
“아니에요, 아무것도. 바로 온다내요.”
“그래. 그럼 우린 들어가 볼까?”
정문으로 들어가려다 로비바닥을 도저히 다시 볼 수 없었던 그림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 비상계단을 통해 중환자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예상과 다르게 이한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여자가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아저씨, 할머니가 안 계시는데요?’
그림자는 송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녀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하고 송이는 대기실 의자로 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왔다. 그림자가 그대로 서서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뭐하세요? ······아저씨?’
‘저 여자······. 기억나.’
‘저기 앉아 계신 아줌마······ 아니, 언니······ 아무튼 저 여자분 말이에요?’
‘그래. 내 첫사랑······.’
‘첫사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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