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위촉즉발의 순간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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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송이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에 민철은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차가 급정거하며 멈춰선 소리에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어 천천히 눈을 떴다. 차 옆에 쓰러져있는 송이를 본 민철은 곧바로 일어나 송이에게 달려갔다.
“송이야! 송이야.”
쓰러져 있는 송이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송이야, 죽으면 안 돼! 안 된다고! 일어나, 일어나 봐. 송이야, 내말 들려?”
의식이 없는 송이를 보고 덜컥 겁이 난 민철은 흔들어대며 울먹였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는지 송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 민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가 송이에게 다급히 말을 걸었다.
‘송이야, 다시 눈 감아.’
그림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다시 눈을 감으면서도 송이는 의아해 물었다.
‘왜요?’
‘그냥 조금만 눈 감고 있어.’
송이가 정신 차린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민철은 괴로워하며 울먹였다.
“송이야, 내가 너한테 한 말이 있다고. 송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정말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송이야, 좋아······ 좋아해. 정말 널 좋아했어. 죽으면 안 돼, 송이야!”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토해내며 흘리던 민철의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송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들었지?’
‘몰라요. 고작 이것 때문에 그런 거예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계신 거예요?’
‘괜찮은 거 같아서 그래. 죽이려고 한 게 아니었어. 아, 그것보다······.’
그림자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송이는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조금만 나와 줄래.”
깜짝 놀란 민철은 송이를 내려다봤다.
“어! 깨어난 거야? 송이야, 괜찮아? 정말 다행이다. 정말이야.”
“그것보다 빨리 도망쳐야 해.”
“도망? 아······. 안 돼. 너 이 상태로는 움직이는 건 위험해.”
그때 어디선가 남자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꼴값들 떠내.”
차를 운전한 남자라 생각한 민철은 고개를 돌려 노려봤다.
“뭐라고?”
육팔이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왔다.
“너도 꼴에 사내라고 나한테 눈을 부라리는 거냐?”
“당신이야? 당신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 거냐고?”
“죽여? 에이, 아니지. 그래서 내가 꼴값을 떤다고 하는 거 아니냐, 아가야. 어린 학생들 같은데 왜 우리 뒤를 쫓은 거야? 아니면 동생을 쫓고 있었던 건가?”
몰래 뒤쫓고 있었던 사실을 숨기기 위해 민철은 기세에 눌리지 않게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당신 때문에 우리가 죽을 뻔 했다고요.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죠?”
“아이, 아니라니까. 그저 겁만 줬을 뿐이라고. 죽이려고 했으면 벌써 죽였지, 안 그러냐?”
민철이 그저 가소로운 듯 육팔은 웃으며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 남자는 곧바로 ‘맞습니다, 형님!’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었지? 누워있는 아가씨. 이제 그만 엄살 부리고 일어나지. 차에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죽은 척하는 건 너무 웃기잖아.”
민망한 듯 송이는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송이의 모습에 민철은 양 볼의 눈물 자국을 닦으며 멀뚱히 올려다 볼 뿐이었다.
“민철아, 난 괜찮아. 차에 안 부딪혔어. 그 전에······. 아, 맞다. 누가 날 밀치는 것 같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송이가 말하려는 것을 육팔이 가로챘다.
“어이, 어른이 말하는데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싹퉁머리가 없는 것들이네.”
“아저씨, 계속 말 그렇게 하실 거예요? 꼴값이니 싹퉁머리니······.”
민철이 화를 내며 나서려하자 송이가 붙잡으며 말렸다.
“민철아, 위험해. 뒤로 물러나. 어?”
“아니, 너도 들었잖아. 지금 누가 누구한테 싹퉁머리가 없다는 거야? 정말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내며 째려보는 민철을 비웃듯 바라보며 육팔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질질 울 때는 언제고, 꼴에 여자 앞이라고 사내인척 하는 거냐? 눈물이나 좀 잘 닦고 말하지 그래.”
민철은 송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손등으로 눈을 비벼대며 남은 눈물을 닦아냈다. 송이는 민철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남자도 울 수도 있지. 고마워, 나 때문에······.”
“너 그럼 다 들은 거야?”
“뭘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말똥말똥 바라보며 송이가 되묻자 민철은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못 들었으면 됐어.”
좋아한다고 고백한 자신의 말을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한 민철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쉬운 듯 보였다. 송이와 민철이 속닥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육팔이 뒤에 있는 남자에게 손짓했다.
“안 되겠다. 덕팔아, 이 아가들 차에 태워라.”
“예, 형님.”
뒤에 있던 덕팔이 민철에게 다가가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민철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했지만 그의 손아귀 힘이 엄청나 떼어낼 수가 없었다. 민철이 끌려가려는 것을 송이가 붙잡으며 막아봤지만 덕팔의 힘이 워낙 세 민철과 송이는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그때 멀리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고 곧바로 차 한대가 육팔의 차 뒤에 멈춰 섰다.
갑작스런 차의 등장에 덕팔은 민철의 뒷덜미를 놓으며 그 차 앞으로 다가갔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박동식 경위가 내렸다.
“당신들 뭐하는 겁니까?”
귀찮은 듯 덕팔은 박 경위를 향해 가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신경 쓰지 말고 갈 길이나 가봐.”
“저기 형······.”
박 경위를 형사라고 부르려는 민철의 팔을 송이가 움켜쥐며 말렸다. 민철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송이는 그림자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어서 그저 말없이 고개만 가로 저었다. 민철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송이를 보다 다시 박 경위에게 말하려는데 송이가 먼저 앞서 말했다.
“아저씨, 저희 좀 도와주세요. 이 사람들이 저희를 죽이려고 해요.”
한쪽 눈을 깜빡거리며 말하는 송이의 모습에 박 경위는 바로 눈치를 채고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연기했다.
“정말입니까?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저기 학생 같은데 이쪽으로 빨리 와요.”
박 경위의 손짓에 송이는 민철의 팔을 잡아끌며 가려고 했지만 덕팔이 손을 뻗으며 가로 막았다.
“어딜 가? 너희들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당신 누군데 이래? 얘들하고 아는 사인가?”
“그게 아니라 가던 길에 당신들이 저기 학생들을 억지로 차에 태우려는 것 같아서 급하게 이곳으로 온 겁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학생들이 가겠다는데 왜 막는 겁니까? 어서 학생들을 이쪽으로 보내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박 경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보였다.
“젠장.”
덕팔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육팔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지 지시를 기다리는 듯했다. 육팔은 가만히 박 경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냥 보내줘.”
“예? 그냥요?”
“그래. 괜히 소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육팔은 그렇게 말하고는 민철과 송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학생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 또 띄는 날에는 이렇게 그냥 보내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
육팔의 탁한 눈이 매서웠는지 민철과 송이는 순간 놀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육팔은 알겠냐며 윽박지르듯 되물었다.
그제야 송이와 민철은 말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육팔이 가라고 손짓하자 박 경위에게 달려갔다. 박 경위는 바로 송이와 민철을 차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운전석에 타려는데 육팔이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이 길은 저기 산장으로 가는 길 밖에 없는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정말 저기 아가들하고 모르는 사이인가 싶어서 말이죠.”
“모른다고 했잖아요.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 입니까? 학생들을 납치하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입술을 비틀며 육팔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납치라니? 애들이 길을 잃고 다쳐서 차를 태워주려고 한 거뿐인데.”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내가 봤을 때는 억지로 차에 태우려는 것 같았는데요.”
“그거야 알아서 생각하고. 알았으니 어서 가 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육팔은 차 뒷좌석에 올라타며 덕팔에게 손짓했다. 덕팔은 곧바로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있지 않아 육팔이 입을 열었다.
“덕팔아, 너도 봤니?”
“예? 뭘 말입니까?”
“검은 물체 말이야, 꼭 사람 그림자 같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못 봤구나.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육팔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덕팔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하려다 말고 고개를 내저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반면 박 경위는 그들이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운전석에 올라탔다.
“애들아, 괜찮은 거야?”
“네, 고맙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끌려갈 뻔 했어요.”
송이의 말에 민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차에 정말 안 부딪힌 거야? 난 너무 무서워서 차마 보지 못했거든. 그때 나도 모르게 기정이 죽은 그날 일이 떠오르는 거 있지. 너무 겁이 났어, 네가 기정처럼 죽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 궁금했는지 박 경위도 물었다.
“지금 민철학생이 말하는 게 무슨 소리야? 그들이 정말 죽이려 했던 거야?”
“형사님, 먼저 출발해 주세요. 가면서 말씀 드릴게요.”
“어, 그래. 아, 근데 이한은 차에 탄 건가?”
“네. 제 옆에 계세요.”
송이 옆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 모습을 본 박 경위는 앞으로 고개를 돌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자 송이는 민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민철은 아직까지도 아까 전 일로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송이는 민철의 손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민철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네가 왜 미안해? 아무튼 죽지······ 아니,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고마워. 사실 나도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고 말았거든. 근데 그때 누가 날 밀치는 듯했어. 그래서 차를 피할 수 있었고.”
“누가 널 밀쳤다고?”
“응. 그래서 네가 날 구해준 줄로만 알았는데······.”
“알았는데, 뭐? 누가 널 구해? 난 아니야.”
“알아. 날 밀친 건 그림자 아저씨······. 이한 아저씨였어.”
송이의 말에 민철은 놀란 눈으로 바라봤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운전석에 있던 박 경위가 듣고 놀라서는 큰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송이학생. 이한이······ 아니, 이한의 그림자가 학생을 구했다는 소리야?”
그제야 민철도 입을 열어 되물었다.
“송이야, 그게 정말이야?”
놀라는 그들과 다르게 송이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아저씨가 직접 말해줬어요. 그림자 아저씨가 날 밀쳐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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