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제발 믿어줘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현관문 센서등이 꺼지며 현관 앞이 어두워졌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송이는 바로 알아봤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수연이었다. 수연도 송이를 보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인지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수연이 거실로 한발 내디디며 먼저 말을 꺼냈다.
“송이 씨가 왜 여기에······.”
“저기······.”
송이는 뒤돌아 그림자를 보고 다시 수연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입이 굳어버린 것처럼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는 이미 백지 상태여서 더더욱 그림자에게 말하지 못했고 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예요? 송이 씨가 여기에 왜 있는 거죠?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요?”
“저기, 죄송······ 아니, 그게······ 아우, 몰라.”
머리를 감싼 채 송이는 주저앉고 말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수연은 거실을 둘러보고는 송이 앞으로 다가왔다.
“송이 씨, 무슨 일이에요? 송이 씨가 왜······. 이한 씨랑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하는 그런 사이였냐고요?”
얼굴을 가린 채 송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도저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쓸어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다른 사람은 없는지 집안을 살폈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민철이 들어서며 송이를 부르려는데 수연이 눈앞에 보였다.
“송이······ 어!”
“어, 그때 병원에 송이 씨랑 같이 있던······.”
“아, 안녕하세요. 아니, 그게······ 저기 송이는?”
꾸벅 인사하고는 민철은 난감한 듯 송이를 급히 찾았다. 수연이 쪼그려 앉아 있는 송이를 손으로 가리켜보였지만 민철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여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누가 좀 말해 주겠어요? 두 사람이 다인가요? 또 누가 더 오는 거예요? 아니면 집 안에 누가 또 있는 건가요? 있으면 그만 나와 보죠.”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 다다를 쯤 그 앞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갑자기 방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수연은 뒷걸음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 누구죠? 방에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와요. 나오라고요!”
“아니에요, 아줌마. 여기엔 우리 둘 밖에 없어요.”
민철이 손사래 치며 말해보지만 수연은 믿지 못하고 화만 더 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금 내가 봤는데. 저 방에 누군가 있다고. 당신들 뭐야? 안되겠어. 경찰에 신고를······.”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에 민철은 다급히 달려와 수연의 팔을 잡고 말았다.
“아줌마, 다 말씀 드릴게요. 경찰은······.”
민철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낀 수연은 기겁하며 민철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내 몸에 손 대지마. 너희 뭐니? 경찰에 일단 신고부터 하고 그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안절부절 못하는 민철은 고개 숙인 채 앉아 있는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야, 뭐라고 좀 해봐. 어? 아줌마, 정말 아니에요. 모두 설명 드릴게요. 그러니까 경찰은 부르지 말아주세요. 정말 우리 둘······ 아니, 그림자 아저씨도 있어요!”
경찰에 전화를 걸려는 수연을 보고 민철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수연은 전화를 걸려다 말고 되물었다.
“그림자 아저씨······. 아저씨 누구? 이제 그만 나오죠. 애들 뒤에 숨는 건 어른답지 않네요.”
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참 못난 어른이네요. 나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아줌마, 제발요.”
민철이 손바닥을 싹싹 빌고 있는데 송이가 벌떡 일어섰다.
“아저씨, 죄송해요. 수연 언니, 남궁이한 아저씨가 같이 와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수연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화가 나듯 꾸짖었다.
“이한 씨가 여기에 있다고? 송이 씨, 너무 하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장난할 때야? 송이 씨 그렇게 안 봤는데 할 말 못할 말도 구별 못하는 학생이었어? 장난도 칠게 있고, 안칠게 있지. 어떻게 그런 장난을 쳐?”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수연 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거짓말을 한 건지 아니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아저씨, 죄송해요. 빨리 나오세요. 이러다가 우리 경찰서에 잡혀가겠다고요. 알아요. 그래도 어떡해요? 이렇게 된 걸. 언니는 모두 이해해주실 거예요. 아니, 믿어 주실 거예요.”
방을 향해 목청껏 소리치는 송이를 보고 수연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리고 방안에 숨어 있을 아저씨가 나오는지 지켜보기 위해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철이도 나서서 말했다.
“아저씨, 이제 엎질러진 물이에요. 나오세요. 아줌마, 대신 놀라시면 절대 안돼요? 아셨죠?”
“지금도 충분히 놀랐거든, 학생.”
“그 정도가 아닌데······. 아저씨, 나오세요. 빨리.”
송이와 민철이 그림자를 불러보지만 그림자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수연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림자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방밖으로 나왔다.
방문 앞으로 서서히 그림자가 나타나자 수연은 그림자 뒤를 초조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그림자가 끝까지 방 앞까지 나왔는데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수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이라도 하듯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보셨죠? 언니.”
수연은 송이를 힐끔 보고는 다시 그림자를 바라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뒤로 물러나 경찰에 신고를 하려했다. 송이는 전화하려는 수연에게 달려가 팔을 잡으며 말렸다.
“진정하세요, 언니. 그림자 아저씨······ 아니, 이한 아저씨에요. 남궁이한 아저씨요.”
“뭐라고? 이한 씨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수연은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부정했다. 송이는 그런 수연의 손을 잡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많이 놀라셨죠?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저기 그림자 보이시죠. 저 그림자가 이한 아저씨의 그림자예요. 아, 아저씨의 목소리는 저에게만 들려요. 그게 좀 아쉬워요. 모두에게 들리면 금방 알아볼 텐데 말이죠. 언니, 제 말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수연은 송이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림자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이게 정말 그림자라고? 그것도 이한 씨 그림자? 그게 말이 돼? 아, 아니야. 말도 안 돼.”
고개를 내젖고는 수연은 뒤로 물러나 송이에게 말을 이었다.
“그만 거짓말하고, 어떻게 여길 들어왔는지 말해 봐요. 저 그림자는 또 뭐예요? 어디서 마술을 배운 거예요? 눈속임은 이제 그만 하고 진짜로 말해 보라고요. 더는 못 기다려줘요.”
그렇게 말하고는 수연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정말인데······.”
수연이 끝내 믿지 못하자 송이는 허탈해하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바로 생각나지 않아 애먼 손만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민철이 나서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막 움직여 보세요. 우리한테 한 것처럼 말이에요. 여기 아줌마가 아직도 못 믿잖아요. 그러니까 믿을 수 있게 움직여 보라고요. 뭐라도 좀 해 보세요. 제발.”
송이가 그림자를 말렸다.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 수연 언니가 괜히 더 놀라기만 할 거예요. 민철이 너는 좀 생각을 하고 말해. 아, 그러지 말고 수연 언니랑 있었던 사실을 말해주세요. 그럼 언니도 믿지 않을까요?”
“야, 너도 참. 아저씨가 기억을 잃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려줘? 안 그래요? 아저씨.”
“넌 좀 모르면 가만히 있어. 아저씨가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고 있단 말이야. 아저씨, 수연 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네?”
송이와 민철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어처구니없었는지 수연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더는 듣기가 어려웠는지 수연이 끼어들었다.
“저기, 학생들.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예요? 그림자를 아저씨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저 그림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해요. 이제라도 솔직히 말할 수 없겠어요? 무슨 목적으로 이한 씨에게 접근한 거죠? 언제부터 이한 씨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송이 씨, 이제는 솔직히 좀 말해줄래요?”
답답한 마음에 송이는 가슴을 쳤다.
“정말이에요, 언니. 저기 저 그림자가 이한 아저씨라고요. 아저씨,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세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아저씨, 미안해요. 저기, 언니. 이한 아저씨가 언니를 짝사랑했어요. 지금도 수연 언니를 보며 가슴이 뛴다고 저한테 그러셨어요.”
송이가 아무리 사실을 얘기를 해도 수연은 믿지 못하고 거짓으로만 들렸다.
“송이 씨. 장난 그만 쳐요. 내가 해줬던 말을 가지고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면 내가 믿어 줄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짝사랑했다고 했지, 이한 씨가 날 짝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누구 앞에서 거짓말하는 거예요. 그만해요. 나도 더는 못 참겠어요. 당장, 경찰에······.”
“유수연. 언니, 성이 유 씨시죠?”
“잠깐······ 아, 이한 씨 어머니께 들은 거예요. 이제 그만해요.”
수연은 휴대전화를 들어 112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 그림자가 수연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송이가 입을 열었다.
“해용 고등학교 2학년 3반 32번, 유수연. 남궁이한 12번. 3학년 4반 수연은 25번, 나는 8번. 민들레쉼터 봉사 동아리 같이 했잖아······ 요.”
휴대전화 너머로 경찰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남경찰서 이남이 순경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여보세요. 괜찮습니다. 지금 그곳으로······.”
놀란 눈으로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던 수연은 벌려있던 입을 다물었다.
“잠깐······ 아, 죄송해요. 잘못 눌렀어요.”
“정말이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가 물어보는 말에 ‘예, 아니오.’라고만 말씀해 주시면······.”
“아니요. 정말 잘못 눌렀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 예. 아닙니다. 아무 일 없으면 다행이죠. 네, 그럼.”
전화가 끊기고 수연은 송이를 보며 물었다.
“방금, 민들레쉼터 봉사 동아리라고 했죠?”
“네. 제가 말했지만 이건 이한 아저씨가 제게 말씀해주신 거예요. 정말이에요. 장난치는 거 절대 아니고요. 그렇잖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반 번호까지 다 알고 있네요. 아, 이런. 나 또 속을 뻔했네. 이한 씨 졸업사진을 본 거예요? 그러네. 아, 그러네. 그래. 언제 또 그걸 보고······.”
“수연 언니, 아니에요. 아저씨, 또 다른 건 없어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송이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림자는 수연에 대한 기억들을 끄집어내려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은지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왜? 또 다른 건 없는 거예요? 말해 봐요, 나에 대해서. 이한 씨가 모른다고 하나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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