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그날의 기억 3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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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경위는 이한엄마와 유수연에게 인사하고는 대기실을 나가다 말고 김민철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학생, 송이학생이랑 친구?”
“네? 아, 네.”
“학생도 이한형사 면회 온 거야?”
“아니요. 근데 누구시죠?”
“어, 나는 이한형사와 동료인데 송이학생에 대해 좀 물어봐도 될까?”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온 박 경위에게 민철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네? 뭘요?”
“아니, 별건 아니고. 송이학생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말이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이학생이 얘기한 적이 있나 해서.”
“왜요? 그날 무슨 일이요?”
“어? 아니, 내가 물어봤잖아. 송이학생이 무슨 얘기한 거 없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민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가신 아빠얘기는 도통하지 않아서 물어보지도 못했거든요.”
“그래? 고마워. 그럼 송이학생한테 인사 못하고 간다고 전해주고.”
“저기, 형사님.”
“어.”
“이한형사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어? 이한······. 명석하고 유능한 경찰이었지. 그 사건······ 아니, 아무튼 그래. 나한테는 좋은 동료였고.”
“저기 무술도 잘 했나요?”
“무술? 그럼, 태권도, 합기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격투기 무술들은 다 할 줄 알아. 워낙 배우는 걸 좋아했던 친구라. 뭔가 하나에 꽂이면 끝을 보는 타입이기도 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데도 굳이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한다고 관련 서적을 찾아서 공부까지 했······ 아, 아니다. 내가 별 얘기를 다하네. 여하튼 열정적인 친구야. 근데 그건 왜 물어?”
“아니요. 형사시라니까 무술도 좀 하실 줄 아나 해서요?”
“그렇지. 경찰이라면 어느 정도 무예를 할 줄 알지. 아, 그럼. 나는 이만.”
애 앞에서 쓸데없는 얘기까지 꺼낸 것이 민망했는지 박 경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기실을 나섰다. 그때 민철이 뒤따라와서는 불러세웠다.
“저기 형사님.”
“또 왜? 어!”
뒤돌아서던 박 경위는 민철의 그림자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학생 그림자가······. 어? 뭐야?”
박 경위는 천장을 살피며 전등을 확인했다.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거 같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감은 눈을 손으로 꾹 눌렀다 다시 눈을 떴다. 박 경위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이한의 그림자가 민철의 그림자 옆으로 드리워 있었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근데 박 경위가 본 듯하자 민철의 그림자 속으로 숨은 것이었다.
“근데 왜 불렀어?”
“아, 그게······. 저희 반에 한 여학생 얘긴데요. 이게 좀 얘기가 길어서요.”
“무슨 얘긴데 그래? 내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세요? 죄송해요. 이한형사님이랑 친구시라고 해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근데 학생, 이한을 잘 알아? 원래 아는 사이였나?”
“에? 아, 아니요. 그냥 도움을······.”
순간 당황한 민철은 박 경위의 눈을 피하고는 얼버무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난 또······. 중요한 일이면 나중에 따로 연락 줄래. 여기, 내 명함이야.”
박 경위는 민철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받은 민철은 정중하게 인사하며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대기실 밖으로 박 경위가 나가고 민철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민철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이한의 그림자는 엄마와 수연이 있는 자리로 갔다.
이한의 그림자는 엄마의 그림자 뒤에 자리를 잡아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랬구나. 처음 만나 사이에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나 싶었어.”
“그러게 말이에요. 처음 만난 아이인데 이한 씨를 안다니 저도 모르게 말이 좀 많아졌어요. 예전 생각도 났고요. 아시잖아요, 이한 씨랑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인거요.”
“그럼, 알지. 여자 친구는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던 애가 난생 처음으로 수연을 친구라고 데리고 왔잖아. 그건 몰랐지?”
“정말요? 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 그래서 난 좋아하는 사이인줄 알았지. 그래서 넌지시 이한한테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더라고. 근데 아니라고 하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게······.”
굳은 표정이었던 이한엄마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이 일었다.
“거짓말처럼 들렸거든. 그래서 내가 수연한테도 물어봤을 거야. 우리 이한이 어떠냐고?”
“그때 제가 뭐라고 했는데요?”
“기억 안나? 그때 좋은 친구라고만 하더라고.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말이야. 그래서 정말 친구사이구나 했지.”
“제가 그랬다고요?”
“응. 내 기억엔 그래. 이한이 그 녀석이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날이라 더 기억이 생생해. 그리고 다시 본 게 그날이었잖아.”
모처럼 웃음 진 이한엄마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지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날이지.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나? 그래도 난 너무 고마워. 수연이 아니었으면······.”
“어머니, 우리 딴 얘기해요.”
“그럴까? 아무튼 수연이랑 잘······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주책없다며 이한엄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왜 또 그러세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어머니.”
“수연이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어머니만 그러신 거예요.”
“왜? 이혼녀라서? 요즘엔 이혼은 흠도 아니야. 이렇게 예쁘고 착한데 뭐가 어때서? 그뿐이야, 그 힘들다는 의사선생이잖아. 우리 이한이가······ 아, 아니다. 또 그러네, 내가.”
수줍게 고맙다며 수연은 이한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니야, 정말이야. 수연만한 여자가 어디에 있어? 수연이도 좋은 사람 만나야지. 딸도 전 남편이 키운다며? 그거 하나도 흠 아니야. 어?”
딸 얘기에 수연은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미안.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네. 늙은이가 주책이지. 미안해, 수연아.”
“아니에요. 사실인데요. 저기,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그래.”
수연이 자리를 뜨자 이한엄마는 자신의 입을 톡톡 때렸다.
“이 주둥이가 문제지. 거기서 딸 얘기를 왜 해서는······.”
그림자는 화장실로 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보며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송이야, 왜 그렇게 오래 걸려? 말도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인데, 얼른 나와.’
‘죄송해요. 아저씨.’
‘뭐야? 울어?’
‘아니요. 제가 왜 울어요. 그냥 누워있는 아저씨 보니까, 죄송해서요. 저를 구하려다 그랬잖아요.’
‘됐어. 경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얼른 나와.’
‘알았어요. 나가요.’
심각해 보이는 이한의 상태에 송이는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받았다.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눈물이 났지만 그림자에게 들릴까봐 입을 막은 채 울었다.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추스르는데 그림자의 말이 들려왔다.
‘수연이랑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뭘까?’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
‘어, 아니야. 나오고 있어?’
‘네. 나가요. 근데 마음의 상처가 뭘까요?’
‘그러게, 그게 뭘까? 수연이랑 있었던 일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아저씨의 아빠가 돌아가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여기 올 때마다 할머니 혼자 계시잖아요.’
‘아버지······.’
‘정신과 병원을 찾을 정도의 상처라면 그게 아닐까요? 저도 아빠가 돌아가신 게 제일 큰 충격이었거든요. 뭐, 아저씨처럼 강박증이나 결벽증 증세는 없지만요.’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근데 어머니 연세를 봤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로 정신과 병원까지 찾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뭔지 궁금해 죽겠네, 참.’
‘궁금하시면 제가 물어볼까요?’
‘물어봐도 말 못할 거야.’
‘그냥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하고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럼 누가 알겠어요?’
‘의사들 윤리강령이라는 것이 있어. 법적이 문제도 있겠지만 윤리적인 문제도 있어서 말하지 않을 거야. 일단 전화번호를 알아두는 게 좋겠어.’
‘전화번호요?’
‘아니면 어디 병원인지만이라도······.’
‘그러지 말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올 것 같은데. 이름도 알고 정신과 의사면 대충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네. 그럼 한번 확인해볼래.’
‘네.’
휴대전화로 유수연의 이름을 검색하며 중환자실을 나왔다. 나오는 송이를 본 민철이 달려와 말을 걸었다.
“야! 아저씨, 어때?”
“잠깐만 있어봐.”
또 대답 없이 앞서 나가는 송이에게 민철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뒤따랐다. 그림자도 그 사이 송이의 몸에 붙었다. 송이는 대기실 의자에 앉으며 마저 검색했다. 하지만 유수연이라는 이름이 한 두 개가 아니었고 정신과 의사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송이는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리며 그림자에게 말했다.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요. 별로 유명하지는 않은가 봐요.’
‘그럼 어쩔 수 없다. 전화번호 좀 알아봐.’
‘뭐라고 물어요?’
‘아니, 나중에 상담을 받는다고······.’
‘뭐라고요? 지금 저보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요? 뭐예요? 제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야.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게 아니라, 핑계가 없으니······. 그리고 요즘에는 여러 가지로 정신과 상담을 많이 받아. 그냥 하나의 질병이야. 다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처럼 말이야. 너 괜히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린애가.’
‘어린애요? 저 고등학교 2학년 열일곱 살이거든요. 어린애 취급 좀 하지 마세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는 송이를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민철이 말을 걸었다.
“왜? 아저씨가 뭐라고 그래?”
“너는 좀 가만히 있어봐. 나중에 얘기해줄게.”
“얘가 정말······. 아휴, 답답해 죽겠네.”
가슴을 치며 뒤돌아 앉는 민철이 안타까운 그림자는 송이에게 괜히 민철한테 화풀이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제가 언제 화풀이를 했다고 그러세요? 자꾸 끼어드니까 그렇죠.’
‘그런데 왜 말을 그렇게 해. 민철한테 그러지마. 그리고 정신과 치료받는 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거랑 똑같은 거야. 정신이나 마음이 다치는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요? 아저씨 정체가 뭐예요?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아니야. 박 경위가 하는 말 들어보니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따로 좀 공부를 했던 것 같아. 내가 좀 학구파였나봐.’
‘학구파요? 치, 잘난 체는. 근데 박 형사님이 언제 그런 말을 했는데요? 기억이 좀 돌아온 거예요?’
‘아니, 민철이랑 박 경위가 대화하는 걸 엿들었어.’
‘뭐라고요? 아저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걸 민철한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래.’
‘그 형사님도 참······ 아니, 어떻게 그런 걸 막 얘기해요? 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니야. 말하다 보니까 민철이 나에 대해 물어봤고. 그래서 박 경위가 좋게 말한다고 한 게 그런 말까지 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민감한 걸······.’
‘뭐가 민감하다고 그래?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창피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잖아. 정신질환은 사회적 질병이야. 사회가 발전하고 고도화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돼 발생하는 거라고.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모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고 있고 그게 심해지면 질병이 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이상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
‘말은 그렇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고요.’
‘그건 편견이라니까 그냥 하나의 질병일 뿐이야. 공황장애 같은 경우도 정신질환 중 하나야. 그건 유명한 연예인들도 걸리는 병이고, 그냥 질병이라고. 치료 받으면 되는 거야. 그럼 나도 이상한 사람인가?’
‘아니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거든요. 그저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뿐이라는 거죠.’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사실 나는 네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너의 엄마 때문에 말이야. 네 안에 뭐가 곪아 있는지 너 자신도 모를 거야.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거고.’
‘정말 모르시는 게 없네요. 척척박사세요.’
‘또 비꼰다. 그러지 말고······.’
‘아니요, 정말요. 아저씨는 모르시는 게 없는 것 같아서요. 어쩌면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머리가 좋아서? 그럼 저는 평생을 해도 안 되겠네요.’
‘또 그런다. 왜 안 된다고만 생각해? 너도 할 수 있어. 네가 왜 머리가 안 좋아? 너 엄청 머리 좋아. 그걸 다른 방향으로 쓰고 있는 것뿐이지. 그걸 공부로 쓰며 되는 거고, 그걸 또 다른 영역에 쓰면 거기서 빛을 바라게 될 거야. 넌 아직 어리잖아. 나보다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이 기다리고 있어. 물론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겠지. 그래도 너는 아직 젊잖아. 그러니까 너 자신을 믿고 뭐든 해봐. 네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를 찾아서 말이야.’
‘이젠 진로상담까지 하시네요. 참······.’
‘아이고, 내 말을 또 잔소리로 듣는 구나. 그건 어쩔 수 없지 너의 선택이니까.’
‘알았어요. 무슨 말씀인지 잘 새겨들었어요. 잔소리라고 생각 안 해요.’
‘그럼, 다행이고. 어떻게 전화번호 물어볼 수 있겠어?’
‘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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