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위험한 미행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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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에서 헤어 나온 그림자는 송이의 아빠와 관련된 사건자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수연의 방에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자료들만 보고 있는 그림자를 송이와 수연은 신기한 듯 지켜보았다.
검은 형체의 그림자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는가 하면, 노트북의 키보드를 탁탁 쳐가며 자료들을 읽는 모습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눈앞에 귀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여 황 의원이 깜빡 속아 넘어 갈만했다고 생각했다. 귀신이라고 속이자는 그림자의 작전을 비웃었던 그때가 떠오른 송이는 괜스레 미안해 뺨이 뜨거워졌다.
자료들을 살펴보던 그림자는 과거 조사했던 사건과 송이의 아빠가 고발했던 사건에 오진태 대표와 권민희 대표가 모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오 대표라면 박 경위와 도무철 변호사를 통해 몇 번 본 사이기도 했던 그림자는 그의 뒤를 캐보면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 길로 오진태 대표가 있는 자산관리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송이는 민철에게 그림자의 말을 전하며 눈에 띄지 않게 미행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당부했다.
그들이 미라클 자산관리사 앞에 도착해 처음 이곳에 왔었던 그때처럼 카페에서 그림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타고 온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사무실 건물에서 나오는 오 대표가 보였다. 송이와 민철은 내리다말고 다시 좌석에 앉아 오 대표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안 내려요?”
계산까지하고 내릴 줄 알았던 학생들이 갑자기 몸을 숨기며 내리자 않아 택시기사가 의아해 물었다.
“죄송해요, 저기 차보이시죠. 저 차 좀 따라가 주세요.”
“예? 저 차요? 학생 아니었어요? 혹시 경찰······ 아니, 형사?”
“아니······.”
“아, 예. 그러니까 눈에 띄지 않게 따라가 주세요.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택시기사가 형사냐고 묻자 송이는 난처해하며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민철이 끼어들어 목소리까지 낮게 깔며 형사인 척 연기했다. 택시기사는 형사들이 용의자를 쫓는 것으로 믿고 적극 협조했다.
마치 형사라도 된 듯 민철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오 대표의 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다. 그런 민철이 웃기긴 했지만 송이는 괜스레 그 모습이 멋져 보여 잠시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걸 느낀 민철이 살짝 고개를 돌려보자 송이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볼이 발그레 달아오른 송이를 보고 그림자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왜? 멋져? 어제는 그렇게 애를 잡더니.’
‘뭐예요? 제가 언제······. 다 듣고 계셨어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민철한테만 뭐라고 했잖아요.’
‘이제 또 내 잘못이라는 거야? 나한테 물어보지도 안았잖아.’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요? 남자들······ 아니, 민철이니까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지. 저는 말 안 해도 알거든요. 아저씨······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니까, 그래도 의지했던 가장 믿었던 친구였으니까······.’
짓궂게 나오는 그림자가 얄미워 퉁명스럽게 말하던 송이는 괜히 박 경위의 얘기를 꺼냈다 싶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됐어. 그것도 오지랖이야. 내 감정은 내 감정이고, 네 감정은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돼. 그래,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긴 했어. 고마워. 그래도 민철한테 솔직했으면 좋겠다. 지금 느끼는 그 감정 말이야. 아직 어제일 사과 안했지?’
송이는 민철을 힐끔 쳐다보고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사과까지······. 그냥 넘어가서 괜찮아요. 보세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잖아요. 민철이 아저씨처럼 속이 좁은 아이는 아니거든요.’
언제는 눈치 없다고 잡더니 이제는 또 칭찬하는 모습이 어이없어 그림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난 엄청 속이 좁고 뒤끝이 장난 아니니까, 조심해라. 어?’
‘이것 봐, 바로 이렇게 속 좁게 나오는 거. 이러니까 그렇죠. 아무튼 찌질하기는······.’
‘야, 뭐 찌질······?’
그림자와 송이가 티격태격하던 사이 택시가 멈춰 섰다. 오 대표가 탄 차가 골목길에 들어서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세운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민철이 요금을 내려는데 기사는 형사인 줄 알고 끝까지 받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한 민철은 고개를 연신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민철이 민망했는지 송이가 말리며 택시를 보냈다. 그리고 오 대표가 들어간 지하주차장으로 가려는데 그림자가 급히 막았다. 송이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민철을 붙잡았다.
“잠깐만, 민철아.”
“어? 왜?”
“아저씨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곳에 감시카메라가 있어서 가면 안 될 것 같다고 하셔.”
“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말에 민철은 지하주차장 주위를 살폈다. 정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건물 곳곳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주변을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건물 외벽에 아무런 간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 주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피아노 건반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날이 저물고 있어 건물 외등이 켜져 있었지만 밝은 편은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골목 안쪽에 위치한 곳이라 주변보다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송이와 민철은 어느새 가까이 붙어있었다.
“아저씨가 뭐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들어가 보시겠데.”
“우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짧게 묻는 민철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송이는 어두워져가는 골목을 느끼며 바로 알아들었다. 그림자에게 이런 곳에 있다간 눈에 잘 띌 것 같다고, 그것도 있지만 사실 너무 무섭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림자도 들어가 보겠다고 했지만 이곳에 남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다녀올게. 너희는 조금 안전한 곳으로 가 있어. 저쪽 도로가 있는 곳으로 가면 그래도 괜찮을 거야.’
‘거리가 꽤 멀어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심장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말할게. 너도 힘들면 바로 말하고.’
그림자에게 알았다고 말하고는 민철과 함께 골목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건물 외등에 비치던 그림자는 지하주차장 안으로 사라졌다.
피아노 건반소리가 들려왔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아닌 라이브로 직접 치는 듯한 피아노 선율이 그림자의 귀에 감미롭게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져있는 층은 지하2층이었다. 이곳이 지하1층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자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마침 지하2층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이 열리며 피아노 선율이 더 크게 들려왔다.
어두웠던 계단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져 그림자의 모습이 짙게 드러났다. 올라오던 여자가 그림자를 보고 사람이 내려오는 줄 알고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고 그림자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옆에 있던 남자의 품에 안겼다.
비명소리에 그림자도 놀라서는 빠르게 그들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그림자가 있던 곳을 가리키며 말하려고 했지만 떨려서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말하려는데 그때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여자는 머쓱해져서는 아무 말 못하고 빠르게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영문 모를 남자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여자는 잘못 본 것 같다고 얼버무리며 가기 바빴다.
그들이 나가고 다시 어두워진 계단에 그림자만 남았다. 센서 등이 켜졌던 것도 모르고 잠시 방심하고 있던 그림자는 자신을 일깨우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이 나왔던 문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은은한 불빛들이 곳곳에 켜져 있어 어두웠지만 따뜻한 느낌의 고급 바였다. 그랜드피아노가 무대 위의 핀 조명을 받으며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는 남녀들 사이로 오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아닌 것 같아 돌아 나오는데 불빛하나 들이지 않는 곳에 칸막이로 막혀있는 통로가 보였다. 그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들어설 때 한층 더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밖으로 나와 한층 더 내려가려는데 송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빨리요.’
‘무슨 일이야?’
‘술 취한 남자들이 괜히 시비를 걸어서 지금 민철이, 민철이가······ 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송이의 말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림자는 곧바로 계단을 뛰어올라 건물 밖으로 나갔다.
대로에 나와 있던 민철과 송이는 골목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그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며 괜히 얘기를 하는 척 마주보며 웃다가 사람이 지나가며 또 그렇게 말없이 주위를 배회했다.
그러다 술이 취해 걸어가던 남자들 중 한 일행이 송이와 부딪혔다. 누가 봐도 남자가 실수로 부딪힌 것이었지만 민철과 송이는 그들을 보지 않고 얘기를 하고 있어서 자신들 잘못인 줄 알고 먼저 사과했다. 그때부터 남자들이 우습게보고 시비를 걸었다.
사과를 해도 민철과 송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욕까지 하는 그들을 민철이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아무리 그들이 술에 취했다고 해도 여럿을 민철이 당해내지는 못했다. 그뿐 아니라 송이까지 때리려는 것을 민철이 막으며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어떻게든 그림자의 도움 없이 해결해보려 했지만 일방적으로 민철이 맞는 모습에 송이는 어쩔 수 없이 그림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때 시꺼먼 무언가가 송이의 입을 덮치며 뒷목을 움켜쥐어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송이를 부축하듯 안아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끌고 갔다. 뒷문을 열고 송이를 차에 태우려는 괴한의 어깨를 누군가 잡아챘다.
“너 뭐야?”
송이를 납치하려던 괴한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돌아봤다. 그 괴한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바로 덕팔이었다. 그리고 덕팔의 어깨를 잡아챈 사람은 다름 아닌 방기철 형사였다.
덕팔은 움찔 놀라서는 잡고 있던 송이를 놓쳤지만 곧바로 방 형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날아든 주먹을 피하며 방 형사는 덕팔의 옆구리를 빠르게 치고는 그 충격에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올려쳤다.
두 주먹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덕팔을 옆으로 밀치고 쓰러져 있는 송이를 들쳐 안아 인도로 돌아서는데 방 형사 앞으로 민철을 폭행하던 술 취한 남자들이 탁 버티고 서 있었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덕팔의 조직원들이었다.
“너희도 같은 편이었어?”
방 형사는 송이를 가로수에 기대 앉히고 조직원들과 상대했다. 일대 삼의 싸움이라 꽤나 격투가 길어졌다. 그 사이 정신이 든 덕팔이 의식을 잃은 채 앉아 있는 송이를 들쳐 안으려는데 갑자기 벼락 맞은 듯 자지러지며 뒤로 자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벌떡 일어나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친 놈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 형사는 조직원들과 싸우고 있으니 그는 아니었다. 고통이 느껴지는 머리통을 쓱쓱 문지르며 다시 송이를 안으려는데 이번엔 옆구리로 발길질이 느껴졌다.
그 충격에 옆으로 쓰러진 덕팔은 또 주위를 빠르게 살폈지만 아무도······. 그때 눈앞에 검은 무언가가 살짝 비췄다. 그것도 잠깐, 무언가가 날아와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눈을 비비며 다시 둘러보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은 덕팔은 겁에 질려 조직원들에게 돌아가자며 소리치고는 차에 올라탔다. 조직원들이 모두 차에 타자마자 빠르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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