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내가 모르는 나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수연은 민철과 송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갈까요? 저녁식사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배고프지들 않아요?”
기다렸다는 듯 민철은 배를 쓸어내리며 냉큼 말했다.
“맞아요. 엄청 배고파요. 송이야, 너도 배에서 진동하지? 송이야?”
민철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송이는 박 경위가 간 방향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송이학생,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무 말 없는 송이의 어깨를 수연이 흔들자 그제야 바라보았다.
“민철학생 얘기 못 들었어요?”
“네? 뭐라고······.”
“야, 뭐야? 바로 옆에서 얘기했는데······. 배 안 고프냐고?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셨어.”
“아, 시간이 벌써 그러네요. 잠시 만요. 아저씨한테 말하고요.”
송이는 그렇게 말하고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아저씨, 어디 계세요?”
“송이야, 뭐야? 아저씨가 여기에 없어?”
민철의 물음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말을 걸었다.
‘아저씨, 내 말 안 들리세요? 뭐예요? 어딜 가신 거예요?’
‘어, 송이야. 미안. 나 지금 클럽에 가는 중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늘 우리 일은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아니, 이제 박 형사님에게 모두 맡기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요?’
‘그랬지. 근데 우리는 기정의 일로 온 거잖아. 좀 더 지켜봐야겠어.’
‘근데 왜······. 아저씨, 방 형사님의 말 때문에 그러세요?’
그림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정말 박 형사님이 나쁜 사람······ 아니, 그러면 아저씨도······.’
‘송이야, 나도 모르겠다.’
‘아저씨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내가 널 만나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뜻이야. 방기철 형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도 박동식 경위가 영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거든.’
‘뭐예요? 박 형사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은 좋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던 거고요. 왜 이제 와서······.’
‘미안하지만, 그건 나의 단편적인 기억들뿐이었어. 사고가 난 후 박 경위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건 왠지 모를 경계심이었어. 나도 모르게 박 경위를 경계하는 내 모습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조심스러움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 모르겠어. 그렇다면 나도 박 경위와 같은······. 송이야, 내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저씨도 아저씨 자신을 못 믿는 거군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그림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송이의 말을 곱씹었다. 송이는 그런 그림자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아무 말 없는 그림자를 기다려줬다. 지켜보던 민철이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고 하셔? 뭘 그렇게 오래 얘기하는데. 내가 얘기했잖아. 바로 바로 좀 얘기해 달라고. 기다리는 사람 답답해 죽겠다. 너는 어쩜 그러냐.”
“미안해, 민철아. 그게······ 지금 아저씨가 클럽에 다시 들어가셨대.”
“뭐? 클럽에?”
놀란 민철은 클럽 쪽을 바라봤다. 곧이어 수연이 물었다.
“왜요? 이제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게 아니었어요? 이제 동식 씨한테 맡기고 지켜보면 될 일이잖아요.”
“언니, 기정의 일로 좀 더 살펴보고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처음 이곳에 온 것도 그 일로 온 거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범죄현장을 목격한 거지만요.”
“그건 그러네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그럼 여기서 좀 더 지켜봐야 하는 거예요?”
“네, 언니. 민철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미안.”
“네가 뭐가 미안해. 아저씨 말이 맞지. 우린 기정한테 나쁜 짓을 한 놈들을 알아보려고 온 거잖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얘가 왜 이래? 원래대로 해. 왜 이리 고분고분해져서는······.”
민망해 괜히 더 밉게 말하는 민철을 송이는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 아무튼 너는······.”
“어, 그래. 그렇게. 아이, 이제 송이 너 같다.”
“치! 정말······.”
투덕거리는 송이와 민철이 수연은 그저 좋아 보이는 듯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 참 귀여워요. 티격태격하는 것도 보기 좋고. 역시, 젊음이 좋긴 해요.”
“그런 게 아니에요. 민철이 얘가 하는 말 못 들으셨어요? 아주 얄밉잖아요, 남자가.”
“남자가 뭐? 나는 본 대로 말한 건데.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안 된다고 했어.”
“누가?”
송이의 질문에 민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말했다.
“누구더라? 그건 모르겠는데. 누가 처음으로 그런 얘기를 했을까?”
“됐어, 그 얘기가 아니잖아. 아휴, 얘는 정말······.”
한심하다 듯 민철을 바라보던 송이는 헛웃음을 치고 넘겼다.
“그럼 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어디서 들은 거라고. 아이, 정말.”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티격태격하는 송이와 민철을 수연이 나서서 말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만들 해요. 누가 보면 사랑싸움하는 줄 알겠어요.”
질색하며 송이는 억울하다는 듯 수연을 쳐다보았다.
“그런 소리 마세요. 누가 그렇게 본다고 그러세요. 아니에요.”
“누가 보긴요? 내가 보고 있잖아요. 민철학생은 아무 말 안하는데 송이학생만 너무 민감한 거 아니에요?”
“언니, 그러지 마세요. 정말. 민철, 너는 뭐해? 아니라고 빨리 말씀드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던 민철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네가 이러니까 더 하시는 거야. 무반응. 나처럼 아무 반응을 안 보이면 이렇게 놀리지도 않는다고. 아무튼 너는······.”
“뭐야? 또 내 잘못이라는 거야? 너는 어쩜 그렇게 얄밉게도 말하니? 아주 나빴어, 몰라.”
삐친 듯 송이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수연은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
클럽이 있는 건물에 그림자가 다다랐을 쯤 승합차 한대가 클럽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그림자에게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바로 민소희이었다. 소희 뒤로 여러 명의 여자들이 뒤따라 내려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소희의 옷이 너무 화려한 나머지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뒤따른 여자들도 얼굴은 앳돼 보였지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으로 한껏 치장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모두 차에서 내려 클럽으로 들어서자 승합차가 다시 출발해 클럽에서 멀어졌다. 그림자는 곧바로 클럽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 뒤를 쫓았다. 정문으로 들어선 그들을 한 정장차림의 남자가 앞에서 맞아 홀로 안내했다. 홀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칠구는 소희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격하게 끌어안았다.
“귀여운 거, 이제 왔어?”
“뭐야? 아우, 술 냄새. 벌써 취한 거야?”
“에이, 내가 취할 사람이야? 괜찮아. 그건 그렇고 이 얘들이야?”
“응.”
“그래.”
칠구는 종업원에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얘들 데리고 가서 대기하고 있어.”
“예.”
종업원은 여자들을 데리고 홀 안쪽 휴게실로 들어갔다. 칠구는 소희를 데리고 바에 앉으며 말했다.
“애들한테는 잘 얘기했지? 그때 그년처럼 문제없겠지?”
“응. 처음도 아니야. 문제없을 거야.”
“그래, 이 정도 값 쳐주는데도 없을 거다. 그치?”
“나보다, 쟤네들이 더 잘 알더라고. 좋아 죽어.”
“그냐? 왜 너도 껴줘?”
“미쳤어. 농담이라도 그런 말마. 그럼 자긴 괜찮겠어?”
소희가 칠구의 가슴을 살짝 때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되묻자 칠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근, 안 돼지. 내 여잔데.”
“몰라, 몰라.”
애교를 부리며 소희는 칠구의 가슴에 안겼다. 그것이 마냥 귀여웠는지 칠구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림자는 그들을 지켜보다 더는 역겨워 보지 못하고 VIP들이 있는 룸으로 향했다. 문으로 살며시 머리부터 들이민 그림자는 안의 동태를 살핀 후 나머지 몸까지 들어와 그늘 진 곳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그들은 두세 사람끼리 붙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림자는 황 의원과 미키 정이 떨어져서 소곤거리는 것이 미심쩍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의원님, 우리 사정 좀 봐주십시오. 걸려있는 게 한두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거 누군 사정없나? 정 대표도 모르는 게 아니잖아. 곧, 대선이라고. 돈 쓸 곳이 한두 곳이 아니란 말이야. 당장 당대표 선거가 코앞이라고.”
“그거야 뻔한 거 아닙니까? 어르신이 당대표가 되시겠죠. 그래야 대선후보로 입지가 굳어질 거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당대표 선거는 그냥 하나? 우리 어르신이 당대표가 될 수 있도록 내가 옆에서 힘을 써야 할 거 아닌가?”
“원내대표로 나서시려고요?”
“나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왜요? 아하, 그래서······. 아이고, 알만 하네요. 그럼 저 좀 팍팍 밀어주십시오. 저도 돈 나올 곳이 뻔하지 않습니까? 이참에 강남구를 싹 다 접수할까 하는데 의원님이 힘 좀 보태주시죠.”
황 의원은 빈정 상한 얼굴로 미키 정을 바라봤다.
“이 친구가······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랑 ‘계란이 먼저야 닭이 먼저야‘하고 말씨름할 작정인 셈이야? 내말을 못 알아들었나? 당대표라고, 대선. 우리 어르신이 대통이 되시면 그때, 응!”
황 의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주변 사람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쳐다봤다. 황 의원도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것을 느끼고 얼른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다 보상 받을 거란 말일세. 그래도 내말 못 알아듣겠어?”
“알죠. 그걸 모르겠습니까, 제가? 그러니까 사정 좀 봐달라고 말씀드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참에 강남구를 모두 접수할 수 있도록 의원님이······.”
“이 사람이 또······. 자꾸 같은 말만 할 건가? 이그, 정말.”
“알겠습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시고. 기분 푸십시오. 이젠 즐겁게 즐기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근데 우리끼리 무슨 재미로 노나? 안 그래?”
“당연한 말씀이시죠.”
미키 정은 황 의원에게 가까이 붙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림자는 빠르게 다가가 그의 말을 엿들었다.
“의원님이 그리 좋아하시는 영한 애들로만 준비했습니다.”
헤벌쭉하게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황 의원이 갑자기 정색하며 미키 정을 바라봤다.
“근데 저번 같은 일은 없겠지? 그때 그 쌍년 때문에 맘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이 목에 흉터를 보라고.”
와이셔츠 카라를 들쳐 보이는 황 의원의 목에 손톱으로 할퀸 흉터가 보였다.
“아이고, 이런. 그 계집이 한 짓입니까?”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 미키 정에게 황 의원은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여보였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흉터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겁니까?”
“그건 알거 없고. 또 내가 그런 꼴을 당하면 당신 정말 가만 안 둬, 알겠어?”
미키 정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그럼요.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이지?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고.”
“그러셨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같은 실수는 절대 반복하지 않는 게 접니다, 아시면서.”
“알았으니, 지체 말고 어서 들어오라고 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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