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진위여부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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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도 방기철 형사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송이의 말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방 형사는 머쓱했는지 짧게 자란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내가 이래서 그때 말을 못한 거야. 이게 좀······ 그래도 학생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은 썼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다행이잖아. 그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어. 그렇다고······. 아니다. 진정되면 말해, 기다릴게.”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송이에게 민철이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잦아드는 송이의 울음소리에 그림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송이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했던 내 말 잊지 않았지? 네가 알고 있는 나, 그림자 아저씨만 생각해줘. 과거의 남궁이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다는 말이야. 그리고 이게 너한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 사고현장에서 널 구했던 건 나였어. 그건 너도 알지? 정말 구했는지 나도 사실 모······ 아니,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랑 같이 폭발사고로 집 밖에서 발견됐다는 거야.’
송이는 그림자의 말에 눈물을 닦아내며 방 형사를 바라봤다.
“그럼 우리 아빠는 왜 죽은 거죠? 뇌물도 받지 않았는데 왜요? 그리고 엄마한테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보냈을까요? 이건 분명 누군가 우리 아빠를 죽인 게 틀림없어요. 그렇죠? 형사님.”
“학생······. 아이, 거기까지는······ 나도 수사 중이기는 한데.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실은 말이야······. 아니다. 수사 중이라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만 알고 있어. 맞아, 누군가가 누명을 씌우고 자살로 위장해 죽인 것 같아. 그것까지만 말해 줄게. 그러니까 박동식 형사랑은 멀리해. 아무래도 좋은 형사는 아닌 것 같으니까. 남궁이한 형사도 말이야.”
“왜요? 형사님이 모르셔서 그래요. 이한 아저씨는 날 구하려다 크게 다치셔서 기억······ 아니 지금 중환자실에 계신 거라고요.”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근데······ 그건 모를 일이지. 그날 기억이 안 난다면서?”
“그렇지만······ 그 폭발사고에도 저는 멀쩡했다고요. 그 대신 이한 아저씨가 크게 다쳤고요.”
“아저씨, 아저씨 하는 거 보니까, 많이도 미안했나봐? 지난번 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그러지 않았어? 이젠 그렇게 부르지 마. 안 그래도 될 것 같아, 내 생각엔.”
방 형사의 말에 송이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머뭇머뭇 물었다.
“······그럼 형사님은 이한 아저씨······ 아니, 남궁이한 형사가······ 우리 아빠를 죽인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 아직은 나도 뭐라고 말해줄 수가 없어.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공범일 수도 있겠지.”
“공범이요?”
아닐 수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던 송이는 공범이라는 소리에 눈이 동그래져서는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아저씨, 뭐라고 좀 말씀해 보세요?’
그림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송이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방 형사를 보며 물었다.
“이한 아저씨가 왜 절 구해줬을까요? 공범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죽을 뻔했다고요.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고요.”
“그건 나도 좀······ 의문이야. 근데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예상에 없던 학생이 갑자기 나타난 건지. 그래서 얼떨결에 구하게 된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연히······.”
방 형사의 말에 송이는 반색하며 말했다.
“그럼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요? 진범은 따로 있고요. 아니면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이한 아저씨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아니길 송이는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앞서 흥분하다 너무 나갔다 싶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학생 좀 수상하네. 왜 계속 아저씨라고 그래? 병원에서 만났을 때도 물어봤던 것 같은데, 정말 남궁이한 형사랑 모르는 사이였어? 그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아니고?”
뜨끔한 마음에 송이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모르는 사이에요. 그날 폭발사고 때문에 알게 됐고. 저를 구하려다 그렇게 되셔서 미안한 마음에 그런 거예요. 그게 다예요.”
당황한 나머지 송이는 방 형사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거지? 이거 정말······ 남학생도 그러더니, 학생도 아직 날 못 믿는 건가? 내가 얼굴이 좀 이래서 그렇지, 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그래, 뭐 좋은 사람이라고는 말 못해. 그래도 사람 헤치고 그런 사람은 아니야. 명색이 형산데, 너무하네.”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근데 어제 강남엔 왜 오신 거예요? 우리를 미행한 게 아니라고 하셨죠?”
미안한 표정으로 송이가 화제를 돌리자 방 형사는 못 이기는 척 넘어가줬다.
“어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학생이 거기서 나를 보고 있는데······ 거기다 그 옆에 박동식 형사까지 있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지. 근데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나도 그게 궁금했거든.”
“제가 먼저 물어봤는데······.”
“아, 그런가? 그러면······.”
방 형사가 말하려는데 괜히 미안했는지 송이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아니에요. 말씀 드릴게요. 사실은 같은 반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은 일이 있었거든요.”
“교통사고? 왜? 뺑소니라도 당한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기정이라는 친구인데요. 그 친구가 나쁜 사람들한테 못된 짓을 당했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다 그곳까지 가게 된 거예요.”
“기정? 못된 짓을 당해······ 아! 생각났다. 저번에 금남경찰서에서? 그때 같이 왔던······. 아, 얼굴 기억난다. 송이학생 옆에 앉아 있던 여자? 그 여자가······ 아니, 학생이 죽었단 말이야?”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서기정이라고. 그 친구를 강제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송이를 방 형사가 나서서 말렸다.
“그래, 알아. 뭔지 아니까, 말 안 해도 돼. 그런 일이 있었구나. 무슨 얘긴지 알겠다. 그래도 학생들이 나서서 그러는 건 아니지. 경찰에 신고······. 죽었으니 그것도 쉽지 않겠네. 그렇다고 나쁜 놈들을 직접 잡겠다고 학생들이 나서는 것 위험하지.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몰라서 그래? 그것도 여학생 혼자······.”
“아니거든요. 저도 있거든요.”
자신의 존재를 보이기라도 하듯 민철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 모습에 방 형사는 헛웃음을 치며 올려다봤다.
“그래, 있지. 그래도 자네도 학생이잖아. 학생 둘이 뭘 어떻게 하겠다고? 그래서 박동식 형사한테 도움을 받는다고 했구나.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자······ 박 형사야? 그리고 박 형사는 어떻게 알고? 박 형사하고는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
“아니요. 그게 이한 아저씨랑······.”
무심결에 말하던 송이는 자신도 놀라 멈칫하며 서둘러 입을 막았다.
“왜? 뭐야? 또 아저씨라고 하네. 뭔가 있는데······. 정말 남궁 형사랑 모르는 사이였어? 이제 솔직히 말해봐. 내가 봤을 때 알고 지내던 사이 같은데, 그게 뭐라고 숨겨? 왜? 박 형사가 비밀로 하라고 그래? 남궁 형사하고 알고 지냈던 게 뭐가 문제된다고, 그런 걸 비밀로 해?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알던 사이였어? 그래, 그러면 좀 말이 되네.”
“네? 뭐가요?”
“아니, 그날 폭발사고가 있던 그날 말이야. 남궁 형사가 학생을 구했다며? 왜 그랬을까 의문이었는데,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니 구해줬겠다 싶어서. 그럼 임승택 씨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까? 학생 아버지랑 말이야?”
“그건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내 말이 맞는 거야? 남궁 형사랑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
“아니······ 아, 예. 그래서 박동식 형사한테 도움을 청한 거고요.”
“그랬구나. 그걸 왜 숨겼어? 별 것도 아닌데. 정말 박동식 형사가 비밀로 하라고 한 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렇구나. 그런데 남궁 형사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송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이내 말했다.
“저기, 그것보다 이제 형사님이 말씀해 보세요. 어제 그곳에 왜 계셨던 건지요?”
“어? 어, 그래. 말해줄게. 근데 이게 수사 중인 사건이라······.”
잠시 망설이던 방 형사는 송이와 민철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하지 뭐. 학생들이니. 처음에 남궁 형사가 그 현장에 있어서 그자를 조사해봤거든. 근데 박동식 그 형사가 날 찾아와서 그날 일에 대해 캐묻는 게 아니겠어. 뭔가 있다 싶어, 박동식 형사도 알아봤지. 그래서 그 뇌물사건 신고 접수도 알게 된 거고. 근데 5년 전에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단 말이지.”
“비슷한 사건이요?”
“그래. 그때는 증인이 갑자기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 재벌그룹 회장이 뇌물수수로 재판을 받고 있었거든.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재개발 정보를 받은 죄목으로 말이야. 그것도 엄청 돈을 해 먹은 뒤에 내부고발자······ 아니, 공익신고자가 나와서 들통 난 사건이었거든. 근데 그 신고자가 갑자기 자살을 한 거야.”
“왜요? 아, 살해당한 거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단순 자살로 종결됐고. 뇌물수수 사건도 실형은 받았지만 집행유예로 교도소에는 가지 않게 됐지. 근데 그때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박동식 형사랑 남궁이한 형사였다는 거야. 그때 사건을 알아보니까, 좀 말이 많았더라고. 내가 알아본 바에는 박동식 이 자식이 뒷돈을 받고 공익신고자가 제출한 증거물을 훼손했다는 풍문도 있더라고. 신고자가 처음에는 증인으로 나오는 걸 꺼려했다고 했어. 근데 증거물도 훼손되고 그러다보니 재판 돌아가는 게 영 아닌 거지. 그래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했다지 뭐야. 그런데 그렇게 된 거지. 근데 자살한 이유가 뭔지 알아?”
“설마, 아빠처럼······.”
방 형사는 송이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역으로 돈을 받고 거짓 증언을 했다는 거지.”
“말도 안 돼. 누구한테 돈을 받아요? 공익신고잖아요.”
“그렇지. 근데 재벌그룹의 경쟁사가 그랬다는 거야. 그게 유서로도 나왔고.”
“문자로요? 우리 아빠처럼 말이죠?”
“그래, 그래서 박동식과 남궁이한 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남궁 형사는 중환자실에 있으니 패스하고, 박 형사를 조사하다보니 걸리는 사람이 있더라고. 5년 전 사건. 그때 반대쪽 변호사가 도무철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도무철한테 뒷돈을 받은 것 같다는 거지. 그 풍문 말이야.”
옆에서 소리없이 듣고 있던 민철은 동경의 눈빛으로 방 형사를 보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형사님은 이걸 다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그걸 다 직접 조사하신 거예요? 완전 멋져요. 형사라는 직업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와우.”
그 사이 송이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그때 사건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림자에게서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방 형사는 민철의 말을 무시하듯 힐끔 쳐다보기만 하고 말을 이었다.
“뭐라는 거야? 아무튼 내가 그동안 수사한 바로는 그래. 나의 추리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도무철과 박 형사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뒷조사를 해봤는데······. 그 뒤로 어떤 연결 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가, 도무철 그 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더라고. 그게 뭘까 하고 그자를 쫓는데······. 이걸 말해야 하나······.”
난감한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방 형사에게 송이가 빨리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그냥 내가 본 걸 말해주는 거니까, 괜한 오해 말고.”
“알겠어요. 오해 안 할게요.”
“그러니까 도무철의 뒤를 쫓다가 그자가 학생의 어머니를 만나는 걸 봤거든. 무슨 일로 만나······.”
방 형사는 말하다 힐끔 송이를 보고는 눈 밑에 그늘이 진 송이의 표정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신기한 듯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민철이 궁금했는지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왜요? 무슨 일로 만났는데요? 빨리 좀 말씀해 보세요.”
“어, 그게······ 나도 모른다고. 둘이 만나고 헤어져서 그날 송이학생 어머니 뒤를 쫓았던 거고. 근데 별거 없었어. 집으로 바로 가서 나도 그냥 돌아갔거든. 그냥 아무 것도 아닐 거야. 아, 맞다. 송이학생의 어머니가 보험을 하시잖아. 그래서 보험 때문에 만난 게 아닐까?”
송이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방 형사는 난감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민철에게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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