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최면치료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교회 예배당 안에 크게 울리던 웃음소리가 갑자기 고함소리로 바뀌었다.
“뭔 소리하는 거야, 지금! 이 사람, 장난이 지나치잖아!”
“아닙니다. 진짜 그림자가······.”
“시끄러워! 그림자? 그것도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의 그림자라고? 차라리 내 밑에 있는 킬러라고 해. 사람의 그림자라는 게 말이 돼? 박 경위, 어떤 놈인지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무슨 소설 써? 소설 쓰냐고!”
삿대질하며 나오는 오 대표의 모습에 박 경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가 잔뜩 죽어 말했다.
“제가 이렇게 나오실 줄 알고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못했던 겁니다. 저도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저만 본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귀신이 사람에게 빙의한 것처럼 여학생의 그림자로 옆에 붙어 있다, 갑자기 제 앞으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와 이한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그 여학생이 알고 있었고요.”
“나 참,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그러지 말고, 내 앞에 데려다 놓고 말해. 그럼, 들어는 줄 테니. 어디서 사기를······.”
억울하다는 듯 박 경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기가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런 사기를 대표님께 친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 이한이라는 친구하고 원한이 그렇게 깊은 건가? 그때 봤을 때는 둘도 없던 친구같이 행동하더니······.”
“그거야······ 그놈은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자기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더 열이 받는 겁니다.”
박 경위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를 갈듯 악물었다.
“그런 거면 친구끼리 말로 풀면 되는 일이지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대표님은 모르십니다. 사사건건 내 앞을 가로막은 놈입니다. 내 앞길을······.”
뭔가 악에 받치듯 박 경위는 말끝을 흐렸다.
“아이고, 그래요? 그거야 당신 사정이니 모르겠고. 그렇게 원한이 깊으면 직접 하면 된 일이 아닙니까? 왜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대표님이 데리고 있는 그자의 실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 일도 있고, 이번 한번만 더 힘을 써주시면······.”
오 대표는 그의 말을 싹둑 자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그 신고자가 누군지 밝혀서 오라고.”
“그 신고자가 이한의 그림자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이 사람이 또······. 그 그림자 소리 그만 좀 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 하라고!”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한 오진태 대표는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떨고 일어났다. 그리고 예수상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는 밖으로 나가려했다. 박 경위는 그를 뒤따르며 애원하듯 말했다.
“제 말을 좀 더 들어주시고 가십시오, 대표님. 진짜란 말입니다. 그럼 그 그림자를 직접 보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직접 보여준다는 박 경위의 말에 오 대표는 발걸음을 멈췄다.
“내 앞에 데리고 오겠다는 소리예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대표님의 신분이 노출될 수 있으니 멀리서 지켜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머리를 굴려? 내 눈앞에서 직접 봐야겠어.”
“예? 그게······. 그림자······ 아니, 그 여학생에게 뭐라고 하고 대표님한테 데려온단 말씀입니까? 그럼 나오지도 않을 겁니다. 그뿐입니까, 대표님의 신변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냥 멀리서 보시는 게······.”
“아니. 직접 내 앞에 데리고 와요. 그래야 내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그자의 그림자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 나를 알아보지 못할 테고. 그럼 나는 그냥 동료 경찰정도로 해서 소개하면 될 것 아니에요? 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요. 참 사람이······ 쯧쯧.”
참 한심하다는 듯 오 대표는 혀를 찼다.
“아······.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뭘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기다려보죠.”
오 대표는 픽 웃고는 발걸음을 떼 예배당을 나섰다. 박 경위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수연과 민철에게 전했다. 민철은 깜짝 놀라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야? 또 그놈이라고? 왜? 왜 너한테 그런 건데? 그럼, 그 자식이 강남에서 우릴 봤다는 거잖아. 그놈도 그곳에 있었던 건가? 아닌데, 우린 몰래 숨어서······.”
“아니야.”
“어? 뭐가 아니야?”
“아저씨가 아니라고 하셨어. 잘 생각해봐? 아니, 넌 모르겠구나. 그날 내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박 형사님이랑 건물 밖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었거든. 그때 우리를 본 것 같아. 맞아, 그럴 거야. 근데 그렇게 밖에 오래 있지는 않았는데······.”
“그럼, 그 잠깐 나와 있었을 때 너를 봤다는 거야? 아, 그래서 박 형사님하고 어떤 관계인지 물은 거구나?”
“그런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듣고 있던 수연이 송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자가 클럽에서 나왔다는 건 모르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송이가 말하려는데 민철이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
“있을 거예요. 산장에서 칠구라는 그 나쁜 놈이랑 만났으니까요. 뭔지는 몰라도 연관은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저기, 언니. 아저씨가 그러시는데요. 5년 전 사건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데······.”
송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연이 나서서 자신이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 물었다.
“말만 해요.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면 될까요? 어디 경찰서예요?”
수연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송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이한 아저씨가 그날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는데,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정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세요. 그래서 말인데 언니가 아는 의사 선생님 중에 최면을 통한 과거의 기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하셨어요.”
“최면치료를 말하는 거군요. 그러네요, 가능할 수도 있겠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아직 최면의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은 없어요. 대신 최면의학에 관심을 갖고 미국에서 최면의학을 배우고 돌아오신 선배를 알고 있거든요. 그 선배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 분이라도 소개······ 잠깐만. 근데 이한 씨가 지금······ 그림자라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가능할 것처럼 말하다 막상 모르겠다고 하자 송이는 애써 괜찮은 듯 말했다.
“그렇죠? 아저씨가 그림자라······. 그래서 아저씨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라고 하시네요.”
“아니에요. 방법을 찾아보죠.”
방법을 찾아보자는 수연의 말에 송이는 반색하며 물었다.
“어떻게요?”
“내가 해볼게요.”
“언니가요? 언니도 할 줄 아세요?”
“나도 선배의 추천으로 최면의학을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아직 시간 여유가 없어 유학까지는 가진 못했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선배한테 틈틈이 조언도 듣고 조금씩 배우고 있기도 했어요.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한번 해볼게요.”
“잠시 만요.”
송이는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그림자에게 의향을 물었다.
‘들으셨죠? 어떡해요?’
‘그걸 왜 물어? 당연히 해야지.’
‘아니, 그래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혹시나 최면 중에······.’
‘송이야, 왜 그래? 수연 씨가 그것도 염두에 두지 않고 하겠다고 했겠어?’
‘아, 그런가? 혹시나······ 아니에요. 알겠어요.’
송이가 고개를 들어 말하려는데 수연이 앞서 말을 걸었다.
“왜요? 걱정 돼요?”
뜨끔한 나머지 송이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수연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쩜 좋아, 귀여워. 얼굴에 다 보여. 송이학생, 이래봬도 나 정신과 의사에요. 선배한테도 인정받은 사람이고요. 서운하네요, 정말.”
“아니에요, 언니. 제, 제가 뭘요? 그런······ 그런 거 아니니까, 서운해 마세요.”
미안한 마음에 송이는 손을 내저으며 말하다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민철이 웃으며 타박하듯 말했다.
“야, 너무 티 나잖아. 말까지 더듬으면서. 그렇죠? 아줌마.”
“뭐가? 너까지 왜 그래?”
“아니에요. 됐어요, 민철학생. 그럴 수 있죠. 그것보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우리 병원으로 와요. 아, 송이학생 내가 그동안이라도 공부 열심히 해놓을게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아이, 몰라요. 언니까지 왜 그러세요?”
수연의 농담에 송이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내저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수연과 민철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이만 가 봐요. 많이들 피곤할 텐데.”
“맞아요. 특히 송이가 많이 힘들고 지쳤을 거예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민철학생이 옆에 있어주니 든든하니 좋겠어요, 송이학생은.”
“그죠? 아줌마. 송이가 그걸 알아줘야 할 텐데······.”
민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송이를 힐끔 쳐다봤지만 송이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송이야, 그만 가자.”
그제야 송이는 고개를 들고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민철이 갑자기 무섭게 왜 그러냐고 장난스럽게 묻자 송이는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니야, 무섭기는?······ 그게 아니라, 최면 얘기가 나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고개를 갸우뚱하며 최면하고 혼잣말처럼 내뱉은 민철 뒤로 수연이 바로 물었다.
“나한테 할 얘기 같은데, 뭐예요?”
“저기, 언니. 아저씨. 몇 번 말할까도 했는데 잘 떠오르지도 않아서 그동안 말 못했거든요. 그날 폭발사고가 있었던 날 말이에요.”
송이가 말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민철이 끼어들었다.
“뭐야? 그날 기억이 난 거야? 그런 거야?”
“민철학생, 더 들어보죠. 얘기하는 중이었잖아요.”
“아, 죄송해요. 미안해, 송이야. 말해.”
“아니야. 기억 난 건 아니고. 그래도 뭔가 떠올라서. 그때 기억나니, 민철아?”
“어? 언제?”
“로망스클럽 건너편에서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내 입을 막으며 끌고 갔을 때 말이야.”
“그거······ 기억나지. 근데 그걸 왜 여기서 꺼내는데?”
“아니, 그때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떠올라다가 사라졌거든. 근데 그런 적이 또 있었어. 그것도 누군가 내 입을 막고 강제로 끌고 갈 때······. 그림자 아저씨도 아실 거예요. 어젯밤 강남 그 화장실 앞에서 방기철 형사님이 갑자기 내 입을 틀어막고 끌고 들어갈 때도 잔상들이 떠올랐거든요.”
그날의 일들을 떠올리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놀라 물었다.
‘정말이야? 왜 그걸 이제야 말해. 뭐라도 기억나는 게 있었으면 바로 말을 하지 그랬어?’
“그랬죠. 근데 기억나는 게 그저 누군가 내 입을 가리고 끌고 가는 거뿐이었어요. 그렇게 그때만 잠깐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어요. 더는 기억이 안 나요.”
“그날 송이학생을 누군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끌고 갔다는 거예요? 그게 기억난다는 거죠?”
“맞아요, 언니. 그래서······.”
송이가 말하려는 중에 이번에도 민철이 가로채듯 끼어들었다.
“그래서 최면 얘기를 한 거구나. 그치? 너도 최면으로 그날 기억을 떠올려보면 뭔가가 나올 것 같다, 그런 거지?”
송이는 말없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민철은 퀴즈정답이라도 맞춘 것처럼 기뻐하고는 수연에게 가능한지 물었다.
“물론, 가능하죠. 그렇다면 그날 송이학생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 거네요. 그래요. 내일 같이 해보죠.”
“네, 그걸 부탁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잘했어요, 이제 다 말한 거예요?”
수줍은 표정으로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피곤할 테니 어서들 들어가요. 아,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푹 자고 오면 돼요. 알겠죠?”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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