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그림자의 각성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초코 버블티를 쪽쪽 빨아 마시고 있던 민철이 넌지시 송이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좀 이상하지 않아?”
밖을 보고 있던 송이는 민철을 보며 되물었다.
“뭐가?”
“박동식 형사님 말이야. 의심스럽다고 하면서도 뒤를 쫓지는 않잖아. 내가 생각해도······ 그래, 증거는 없어. 그래도 박 형사님의 뒤를 쫓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말이야.”
“너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 거야?”
“이유? 무슨 이유?”
“이그, 정말. 잠깐만.”
송이가 휴대전화를 꺼내 뭔가를 조작하는가 싶더니 민철의 휴대전화에서 알람소리가 들렸다. 민철은 송이의 문자가 도착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래, 알아. 아저씨가 믿고 의지했던 동료라는 거. 하지만 아저씨도 처음엔 못 미덥다고 했잖아.”
또 민철의 문자알림이 울렸다.
“그냥 말······ 아, 아저씨가 들을까봐 그래?”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떡였고 민철은 문자를 확인하고는 물었다.
“나? 나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만약에 동진이라면······. 그거야 말도 안 되지. 동진이가 왜······ 그래, 알아. 하지만 비교를 어떻게 동진이랑 하냐?”
송이는 문자를 하다 말고 답답한 나머지 바로 입으로 말해버렸다.
“그만큼 믿고 싶으신 거야, 아저씨는. 그걸 왜 몰라? 바보같이.”
“야, 바보까지는······. 알았어, 무슨 말인지. 근데 정말 박 형사······. 아니,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 눈 풀어.”
자신을 흘겨보는 송이의 눈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저기나 잘 지켜봐. 그리고 그만 좀 쪽쪽대고. 그 소리 듣기 싫다고.”
“내가 뭘 또 그렇게 쪽쪽대고 먹었다고 그래? 타피오카를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너도 먹어봤을 거 아니야.”
“그렇다고 그렇게······. 에이, 됐어.”
송이는 민철을 한번 흘겨보고는 포기한 듯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별 것도 아닌 걸로······. 근데 너는 아저씨를 한 번도 의심 안 해봤어?”
째려보며 민철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저씨가 널 구해주기는 했지만 그날 거기에 있었던 것도 그렇고. 최면 했을 때도 청탁을 받았다고 했잖아.”
“거절했다고 하시잖아.”
“그건 아저씨의 기억일 뿐이지. 그게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갑자기 송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민철은 민망해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야, 목소리 낮춰.”
하지만 송이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큰소리로 되물었다.
“뭐냐고? 하고 싶은 말이!”
“얘가 왜 이래? 왜 이렇게 화를 내는데? 그래, 아저씨가 의심스러워서 그래. 아저씨가 너희 아빠를 죽······.”
괜히 자신에게 화를 내는 송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민철도 화가 나 덩달아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다 송이의 아빠 얘기에 괜한 얘기를 꺼낸 것 같아 멈칫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죽인 범인일 수도 있잖아. 5년 전에도 청탁을 받고 증거물을 없앤 사람이 아저씨 일수도 있고. 왜 그런 의심을 못해. 아니, 왜 그런 의심을 하면 안 되냐고?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잖아.”
“너······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그동안은 아니고, 그런 의심을 해볼 수도 있다는 얘기지. 아저씨가 박 형사님을 그냥 믿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범이면 어떡해? 그러면······.”
점점 그림자 아저씨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송이는 민철이 못마땅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마저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게 말이 돼? 근데 왜 아저씨를 죽이려 했겠어? 네 말 대로면 앞뒤가 안 맞잖아. 안 그래?”
“나쁜 놈들이 무슨 짓은 못해? 아저씨가 기억을 잃고 과거의 일을 조사하니까 죽이려했던 거겠지. 그게 아니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아저씨의 입을 막으려고 그런 걸 수도 있고.”
갈수록 민철의 말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이라 여기며 송이는 눈을 흘겼다.
“참, 소설 잘 쓴다. 그래, 재주는 있는 거 같으니까 소설 쓰는 쪽으로 쭉 가. 대신 앞으로 경찰한다는 소리는 말고. 네가 경찰이 됐다가는 엄한 사람만 잡을 테니까.”
“소설? 야, 내가 무슨······. 됐다, 그래.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내가 할 소리거든. 치.”
송이와 민철은 서로 등을 돌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도무철 변호사가 건물에서 나오는 것을 민철이 보고 말했다.
“야, 나왔어. 아저씨가 뭐라고 안 그래?”
“잠깐만.”
송이는 다급히 밖으로 나가며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어디에 계세요? 그 사람이 밖으로 나왔어요.’
그림자의 대답이 없자 송이는 민철에게 말했다.
“어쩌지? 아저씨가 내 말을 못 듣는지 대답이 없어.”
“왜 못 들어? 일부러 못 들은······.”
끝까지 아저씨를 의심하는 민철에게 송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김민철! 너 자꾸 그럴 거야?”
“아니······ 알았어.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아저씨나 그렇게 불러봐. 빨리. 어! 저기 차가 출발하잖아. 우리라도 쫓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안 돼. 나랑 아저씨랑 떨어지면······.”
“맞다. 아이, 아저씨는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송이는 다시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봤다.
‘아저씨, 제 말 안 들리세요? 아저씨. 아저씨, 좀 대답해 봐요. 변호사가 차를 타고 간다고요, 아저씨. 아저씨, 괜찮으신 거예요?’
발을 동동 구르며 송이는 어쩌지 못한 얼굴로 민철에게 물었다.
“어쩌지?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생겨? 아저씨는 그림자야. 괜찮을 거야.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럴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때 그림자의 목소리가 송이의 귓가에 들려왔다.
‘미안해, 송이야.’
“아저씨.”
깜짝 놀라며 송이가 크게 말하자 민철이 아저씨냐고 물었다.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에게 말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난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줘. 여기 오 선배가 있어서 지켜보고 나갈게.’
‘오 선배요?’
‘그래. 박동식 경위가 팀장이라고 속였던 그 남자.’
‘변호사가 그 사람을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거예요?’
‘맞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알겠어요. 근데 왜 바로 대답을 안 한 거예요? 걱정했잖아요.’
‘미안. 그게······.’
떨리는 음성이 처음부터 계속 걸렸던 송이는 그림자가 말을 잇지 못하자 무슨 일이냐고 빠르게 물었다.
‘박동식 경위······ 동식이가 죽었다고······.’
‘뭐라고요? 누가 죽어요? 왜요?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자세한 건 만나서 할게. 일단 좀 기다려줘.’
‘아······ 네. 알겠어요.’
박 경위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송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은 그런 송이를 보고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다.
“민철아, 어떡하면 좋아?”
“뭔데 울고 그래?”
“박동식 형사님이 죽었대. 어쩌면 좋아. 아저씨······.”
말을 잇지 못하는 송이에게 다가와서는 믿기지 않는 듯 재차 물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형사님이 왜? 또 누가 죽인 거야? 송이야, 말해봐. 어?”
놀란 민철이 다그치듯 물어왔지만 송이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야, 왜 울어? 아저씨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 사이에 박 형사님이랑 정이라도 든 거야?”
눈물을 닦아내며 송이가 말했다.
“그게 아니고. 아저씨가 왜 내 말에 대답을 못했는지······. 그리고 아저씨 목소리가······.”
“뭐야? 아저씨 때문에 우는 거야?”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였다.
“그래.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내 말에 대답도 못하셨을까······. 지금 또 얼마나 힘드시겠어. 안 그래? 가장 믿었던 친구가 죽었다는데 아저씨 마음이 어떻겠냐고?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를 잃고 힘들어했던 아저씨야. 근데 또 친구까지······.”
송이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민철은 말없이 송이의 어깨를 또닥여주기만 했다.
송이의 말을 듣고 있던 그림자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 다시 고개를 들어 오진태 대표를 지켜봤다. 오 대표는 서류를 훑어보다 시계를 보더니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의자에 걸쳐있던 외투를 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때 캐비닛 위의 서류박스가 갑자기 바닥에 떨어졌다.
“어! 뭐야? 왜 저게 떨어지고 난리야. 아이, 씨.”
오 대표는 떨어진 서류박스를 제자리에 놓으려 캐비닛 앞으로 갔다. 그때 갑자기 캐비닛 위의 서류박스가 또 떨어졌다. 오 대표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순간 오싹했는지 양팔을 잡고 쓸어내렸다.
“아이, 젠장······. 뭐야?”
서류박스를 집으려 허리를 숙이는데 갑자기 오 대표가 앞으로 꼬꾸라지며 나자빠졌다.
“아으! 뭐야······. 어떤 놈이 엉덩이를 찬 거야?”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린 오 대표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분명 누가 내 엉덩이를 찼는데. 귀신이야? 말도 안 돼.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아니, 있을 수 있지. 뭐야? 정말.”
겁에 질린 얼굴로 일어난 오 대표는 도망치듯 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오 대표 발밑으로 서류박스가 밀려와서는 발을 걸었고 그는 바닥에 무릎을 박으며 넘어졌다.
“아이고! 아이, 무릎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건 또 언제 저기에······. 아이, 씨발 정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릎을 감싸며 일어난 오 대표는 절뚝거리면서도 빠르게 집무실을 나섰다. 그 뒤로 그림자가 크게 드리우며 그를 뒤따랐다.
***
캄캄한 산길을 따라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올라오는 차가 산장 앞에 멈춰 섰다. 그 차로 정장차림의 남자가 달려가서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산장 문 앞으로 갔다.
“이제 나와.”
남자의 말에 산장 문이 열리고 교복차림의 여자가 나왔다. 그는 여자에게 봉투를 건넸다. 그녀는 봉투 안을 확인하고는 배시시 웃더니 말했다.
“저기, 오빠. 옷 좀 갈아입고 가면 안 돼?”
“그냥 가. 그리고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알았어. 옷이 작아 불편해서 그래. 갈아입고 가게 해줘.”
“외투 걸치면 되잖아. 그냥 조용히 가라. 좋은 말 할 때 빨리 가라고!”
남자가 버럭 소리치자 여자는 눈을 흘기며 차로 달려가 탔다. 차가 출발하고 산장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던 남자는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갔습니다, 의원님. 나갈 채비는 다 하셨습니까?”
“그래. 조금만 기다려.”
“예, 천천히 피십시오.”
어두운 그늘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황상두 의원은 재떨이에 담배를 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희뿌연 담배연기를 가르며 일어섰다.
“영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몰라서 물어? 여엉 성에 안 차서 그러지.”
“아······ 그러시면 이 실장에게······.”
“이 실장? 그게 누군데?”
“예? 아, 칠구 말입니다.”
“아하, 칠구.”
“칠구에게 부탁을 해볼까요? 그쪽으로······.”
황 의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보였다.
“잠깐. 조 실장 지금 부탁이라고 했어?”
“아, 죄송합니다. 그게······”
조 실장에게 삿대질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야! 내가 어디 누구한테 부탁하고 그럴 사람이야? 말조심해!”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칠구 그자에게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게 좋겠어. 아, 그때 그 아이가 괜찮은 거 같던데.”
“누굴 말씀입니까? 마음에 드신 아이가 있으셨습니까?”
“칠구 옆에 있던 아이 말이야.”
“그건······.”
머뭇거리며 말을 못 잇는 조 실장에게 잔뜩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안 돼?”
“아닙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본다고? 그것도 부탁을 해야 하는 거야?”
눈치를 살피며 조 실장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닙니다. 곧 자리 마련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지 황 의원은 싱긋 웃음 지으며 발걸음을 뗐다.
“그럼, 그만 가볼까?”
조 실장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차 뒷좌석 문을 열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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