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잠입수사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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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이 깜박이는 허름한 간판이 걸려있는 지하노래방으로 파랑머리 두철과 노랑머리 대진이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휙 던져 버리고는 빠르게 내려갔다. 그 뒤를 서너 명의 남자들이 뒤따랐다.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두컴컴한 실내에 한 룸에만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대진이 그곳으로 들어가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석진이 나왔다. 대진을 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깜짝 놀란 대진은 뒷걸음치며 인사를 받고는 두철을 보았다. 두철은 자신에게 오라며 석진에게 손을 까닥였다. 석진은 쪼르르 두철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두철은 대진에게 안에 들어가 확인해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달려온 석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두철이 물었다.
“고생했다. 애들은 문제없겠지?”
“물론입니다. 직접 들어가서 보시죠.”
“내가 볼 것까지 있나. 난 널 믿는다. 이번 일만 잘 연결되면 앞으로 네가 계속 이 일을 맡을 수 있을 거야. 아, 내 밑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어느새 방안을 확인하고 나온 대진이 두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두철은 지갑에서 지폐를 두툼하게 꺼내 석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야, 이건 수고비다. 애들 데려오느라 고생했으니 그걸로 술이나 한잔해. 이제 됐다, 가봐.”
“그냥 가, 가라고요? 재들은 어떻게 하고요?”
“우리가 알아서 잘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까 네는 걱정할 거 없어. 네가 할 일은 여기까지야. 아참, 재들 집은 있냐? 가출한 애들이면 우리가 보살펴 줄 수도 있고.”
“아니요. 가출한 애들은 아니에요.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니까 잘 보내주시면 돼요.”
“아쉽네. 알았으니 어서 가봐.”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가려는 석진을 대진이 불러 세웠다.
“잠깐만.”
“네? 아, 네. 형님.”
대진이 두철 옆으로 와서는 굳은 표정으로 석진에게 물었다.
“안에 애들 말이야. 다들 처음 보는 애들이던데?”
“그게 왜요? 문제가 될까요?”
뭐라도 들킨 듯싶어 잔뜩 졸아 있던 석진은 마른 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굳은 표정의 대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문제는. 수완이 좋아서 그러지. 어디서 저런 애들을 데리고 온 거야. 다들 순하게 생겼던데. 한 여자애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긴 했지만. 소희 그 계집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다.”
“아아, 네. 맞아요. 소희 걔 때문에 제가 알던 애들한테는 말도 못 꺼냈어요. 괜히 소희 귀에 들어가면 형님들께 피해가 갈까 싶어서. 그래서 좀 힘들긴 했지만 형님들과 약속인데 어떻게든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고생했습니다.”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석진은 애써 크게 웃어보였다. 대진은 그런 석진을 보고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긴장을 하냐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들키면 어쩌나 걱정된 마음에 다리가 다 풀릴 것 같았던 석진은 간신히 별 탈 없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허름한 노래방에서 나온 석진은 주위를 살피며 곧바로 한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곳에는 소진남 경위와 민철 그리고 동진이 모니터로 노래방 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승합차 뒷좌석에 철퍼덕 주저앉은 석진은 등을 기대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옆에서 한 소녀가 수고했다며 말을 걸었다.
“아우, 깜짝이야.”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탓에 갑작스럽게 들린 여자아이 목소리에 석진은 깜짝 놀라 엉덩이를 들썩이며 쳐다보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민정이었다.
“야, 너 뭐야? 들어올 때 안 보였는데······.”
“미안. 갑자기 네가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놀라서 숨었어. 많이 놀랐니? 나도 괜히 무섭고 긴장돼서 그래. 미안해.”
“아니야. 됐어.”
민정과 석진이 투덕거리는 소리에 소 경위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민철도 모니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모니터 속 텅 빈 공간에 소파와 노래방기기만 보일 뿐이었다.
한 시간 전, 송이와 소 경위는 민정을 만나기 위해 승합차를 타고 학원 앞으로 갔다. 곧이어 민정이 학원에서 나와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민정 뒤로 동진이 보였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가 싶을 때 누군가 문을 잡으며 들어왔다. 애리였다.
“애리야······.”
“네가 여길 어떻게······.”
민정과 동진이 돌아보며 깜짝 놀라서는 동시에 말했다. 애리는 승합차 안을 둘러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민정과 동진은 아무 말 못하고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민철이 애리의 손을 잡아 승합차에 태웠다. 송이는 그런 민철이 아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입수사를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송이가 민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철과 대진이 송이의 얼굴을 알고 있을지 모르기에 위험할 수도 있었고, 그러다 작전까지 무산될 수 있었기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림자 아저씨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 승낙했다는 말도 민철은 믿기지 않아 송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이유로 학원 앞에 올 때까지 송이를 추궁했다.
애리는 송이 옆에 앉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것보다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게 뭐가 중요해. 이 차는 또 뭐고? 아, 오늘이었어? 그렇구나. 나한테는 그렇게 안 된다고 하더니······. 너랑 민정은 뭐야? 말해봐.”
송이는 뭐라고 변명할 것이 없었다. 이틀 전, 애리가 자신이 나서서 하겠다고 했지만 송이는 끝끝내 안 된다고 반대했었다. 그러면서 송이 자신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까지 했다. 애리 앞에서. 그런데 이렇게 몰래 민정과 함께 있는 것을 애리한테 들킨 것이었다.
애리가 어떻게 알고 왔을까 생각해보니 그 범인은 다름 아닌 민철이었다. 그걸 눈치 챈 송이는 민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민철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모르쇠로 나왔다.
“왜 말을 못해? 맞구나. 내가 할게. 아니, 나도 할게.”
“넌 안 해도 돼. 너희 부모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그래? 학원은 어쩌고 왔어? 학원 빠지면 바로 부모님이 아시잖아.”
“그게 지금 중요해? 기정이랑 정희를 위한 일이잖아. 나도 돕고 싶다고 했잖아. 너희는 하는데 내가 왜 안 돼? 내가 할게. 너 대신에 내가 한다고. 넌 위험하다면서.”
흥분하며 말하는 애리의 손을 송이가 힘껏 움켜잡았다.
“알았어. 진정해. 그럼 네가 민정이 대신 해줘.”
어쩔 수 없이 애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번엔 민정이 나서서 자신을 왜 빼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애리 말대로 넌 그 깡패들한테 걸리면 위험하잖아. 그들이 널 알아보면 어떡하려고 그래? 내가 할게. 송이야, 넌 하지 마. 응?”
민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철이 나서서 맞는 말이라고 동조했다. 그런 민철을 송이가 흘겨보며 조용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민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이번 일은 내가 시작한 거야. 그런데 정작 나만 쏙 빠지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너무 걱정 마. 안경 쓰고 화장을 좀 하면 못 알아볼 거야. 그리고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갈 거라고 그들이 생각이나 하겠어? 그러니까 부탁이야. 내가 하게 해줘.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
“그럼 원래대로 너랑 내가 하면 되겠네. 애리야, 들었지. 송이랑 내가 할 테니까 넌 그냥 학원으로 돌아가.”
그럴 수 없다는 듯 애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겁 많은 민정보다 자신이 더 나을 것이라고, 담력 좋고 머리 좋은 자신이 적임자라고 쐐기를 박았다. 팩폭을 날리는 애리가 얄미웠지만 사실은 사실이라 민정은 뭐라고 말도 못했다. 결국 그렇게 애리와 송이가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실, 그림자는 계속해서 송이에게 작전에서 빠지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아 화를 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귓등에도 듣지 않았다. 고집이 황소고집이었다. 그림자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모니터 안의 송이 일행이 노래방을 나서고 있었다. 소 경위는 빠르게 운전석으로 뛰어넘어가 그들을 뒤따라갈 준비를 했다. 민철은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 상황을 소 경위에게 설명했다.
노래방에서 나온 대진과 두철은 소형승합차에 학생들을 태우고 어딘가로 출발했다. 곧바로 소 경위의 승합차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소형승합차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빠졌다. 소 경위는 멀찍이 뒤에서 그들을 따르며 주시했다.
소형승합차는 검정색 대형승합차 옆에 주차하더니 두철이 내렸다. 그리고 대형승합차 운전석으로 달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글라스를 쓴 검은 정장차림의 남자가 차창 밖으로 두철에게 종이가방을 건넸다.
건네받은 가방 안을 쓱 살폈다. 오만 원 권 돈다발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돈을 보며 흐뭇하게 웃은 두철은 또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소형승합차의 학생들을 대형승합차로 옮겨 태웠다.
학생들을 모두 태운 두철은 소형승합차 보조석에 올라타며 운전석에 앉은 대진에게 가자고 손짓했다. 그러면서 대형승합차에 학생들 태우며 얼굴을 가까이 본 두철이 대진에게 물었다.
“야, 학생들 중에 그 송이라는 계집애랑 닮은 애가 있던데?”
“아, 걔 말이구나. 아니야. 나도 처음에 걔랑 닮은 것 같아서 자세히 봤는데 아니더라고. 그리고 걔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겠어. 미치지 않고서는.”
“그건 그러네. 뭐해? 빨리 출발해. 그래야 저 차가 간다고.”
“어, 알았어.”
소형승합차가 출발하자 대형승합차의 차에서 시동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동을 켰지만 차가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모니터 속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돌아보며 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들, 앞에 걸린 눈가리개가 있을 거야. 그걸로 눈 가리고. 괜히 호기심에 밖을 볼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모르는 게 약이다 생각하고 얌전히 가자. 뭐,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처음도 아니고.”
송이와 애리 그리고 여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걸려 있는 눈가리개로 자신들의 눈을 가렸다. 그제야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민철이 혼잣말로 철두철미한 새끼들이라고 말하며 차가 출발한다고 소 경위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저 파랑머리와 노랑머리 놈들은 어떻게 할 거냐며 물었다.
“그건 걱정 마. 이번 작전이 끝나는 대로 바로 체포해서 콩밥 먹일 테니깐. 증거는 충분하니.”
승합차에 있던 여경이 소형카메라로 밖에서 돈이 오가는 현장을 몰래 촬영했다. 대진은 그것도 모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곧 손에 들어올 돈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증거는 노래방에서 석진이 촬영한 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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