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어떤 관계?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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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송이에게 민철이 말을 걸었다.
“왜 그래? 그림자 아저씨가 안 된다고 그래?”
난처한 듯 송이는 쳐다보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아이, 정말.”
그런 송이가 귀여운지 그림자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싫어? 왜? 너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는 민철이가 옆에서 같이 있어주면 좋잖아? 저녁에 너 혼자 운동하는 거 신경 쓰였는데, 든든하게 민철이가 옆에 있으면 나도 안심이 될 것 같아서 그러지.’
‘싫다고요. 저도 싫지만 민철이도 분명 싫다고 할 거예요.’
‘그건 물어보면 알겠지. 그러니까 어서 물어봐.’
‘아이, 정말······.’
한참을 바닥만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송이에게 민철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왜 그래? 똥 마려? 급한 거야?”
“아이, 뭐라는 거야? 더럽게······.”
“야, 뭐가 더러워, 생리현상이? 아무튼 여자들이란······.”
“여자들? 아니거든. 나만 그런 거거든. 모든 여자가 그러는 건 아니라고. 일반화 시키지 마.”
“일반화? 야아, 유식한 말도 잘 하네. 그것도 그림자 아저씨가 말해준 거지, 그치?”
“치, 그래. 그러니까 모든 여자를 싸잡아서 말하지 말라고.”
“그러면 그렇지. 알았어, 그건 알았고. 왜 그러는데? 정말 화장실이 급한 거 아니야?”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 아휴, 정말.”
어쩔 줄 몰라 하던 송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애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민철은 답답했던지 덥석 송이의 손목을 움켜쥐더니 경찰서 방향으로 향했다. 송이는 깜짝 놀라 손을 뿌리쳤지만 민철의 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뭐야? 지금. 이 손 안 놔!”
“뭐가 그게 창피하다고 그래? 경찰서에 가서 화장실에 가면 되잖아.”
송이는 그림자가 알려준 호신술로 민철의 손에서 손목을 빼냈다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정말. 잠깐만 있어봐. 말할 게.”
“잠깐, 너 뭐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내 손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남자들도 내가 한번 잡으면 못 빠져나갔는데······.”
송이의 말보다는 너무나 손쉽게 자신의 손을 뿌리친 것이 민철은 더 신기하고 어이가 없었다. 송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튼 남자들은······ 아니, 넌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지금 이 상황에서?”
“당연하지. 내가 손아귀 힘은 누구한테도 안 진다고.”
이마를 짚으며 송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정말 못 말린다, 너. 그림자 아저씨, 이런 애랑 정말 같이 운동을 하라는 거예요?”
“뭐? 운동을 같이? 에이, 싫어. 내가 왜 너랑? 그림자 아저씨, 그러지 말고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요. 네? 안 돼요?”
손사래를 치며 싫다는 민철을 송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흘겨봤다.
“이것 봐요. 얘도 싫다고 할 거라고 했죠. 저도 싫어요. 민철, 잘 들어. 나도 싫거든. 나도 싫다고, 싫다고 아저씨한테 말했는데 아저씨가 그래도 너한테 말은 해보라고 해서 말한 것뿐이야. 고맙다, 예상대로 싫다고 해줘서.”
“그래, 내가 왜 너랑 운동을······ 아저씨, 저도 싫어요. 그저 석진이 그 자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돼요. 네? 그거면 된다고요.”
“아이, 귀찮아. 내가 왜 중간에 껴서 말을 전달해야 하는 거예요?”
좋은 말도 못 듣고 중간에서 말을 전달해야 하니 짜증이 났던 송이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민철이 미안했는지 그림자 아저씨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조금만 더 부탁한다고 사정조로 나왔다. 그렇게 나오니 송이도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아저씨, 정말 싫다니까요. 왜 자꾸 그러세요. 싫어요. 말 못해요.”
“야, 아저씨가 뭐라고 그러는데? 말해봐, 어?”
속으로 해야 할 말까지 입으로 내뱉어냈다는 사실에 송이는 급히 입을 막으며 후회했다.
“아이, 망했네······.”
“말해봐.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데 그래? 어?”
송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내 입이 문제지······. 그래, 말해줄게. 근데 듣고 나서 그냥 싫다 그래. 알았지?”
“뭔데? 일단 들어보고 말할게, 그건.”
둘이 같이 운동을 하면 호신술이랑 합기도를 속성으로 가르쳐 주겠다는 그림자의 말을 전하자 민철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송이를 의심하며 그림자가 그런 조건을 건 게 정말이냐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너랑 같이 운동을 하고 싶어서 아저씨가 말하지도 않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조건은 걸었다는 거야, 내가? 너 웃긴다, 정말.”
“아니면 됐지. 뭘 또 그렇게 성질을 내냐? 너는.”
“지금 화가 안 나겠어, 너 같으면?”
귀찮다는 듯 알았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대충 말하며 손을 내젓는 민철을 흘겨보았다.
“아무튼, 남자들은 정말. 똑같아. 지가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인 거지. 아우, 싫어. 정말!”
점점 송이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끝에는 고함을 지르듯 소리쳤다. 민철은 움찔하며 귀를 틀어막았다.
“야, 이 밤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지금 누가 소리 지르게 했는데? 절대 너랑 운동 안 해. 싫어. 싫다고요, 아저씨.”
그림자는 서둘러 송이를 진정시키며 달랬다.
‘어, 그래. 알았어. 네가 그렇게 싫다는데 안 할게. 그러니까 진정해, 송이야. 나는 그저 네가 혼자 운동하는 게······ 아니, 아니다. 송이야, 진정하고. 민철이랑 운동하는 건 없었던 일로 하자. 그럼 됐지?’
머리를 쓸어넘기며 거친 숨을 다독이듯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민철은 그런 송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일단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너랑 운동하라는 아저씨 말에 좀 놀라서. 근데 생각해보면 괜찮을 것도 같아.”
숨을 가다듬다말고 송이는 민철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래도 민철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림자 아저씨가 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 알겠어서. 호텔에 너랑 같이 오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일 것 같아서 말이야. 저녁에 너 혼자 운동하면 위험하니까······.”
“뭐야? 저녁에 내가 운동한다는 말은 안 했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언제 말했니?”
“어? 아니, 운동하는 거 아니었어? 운동하면 보통 저녁에 많이 하니까, 아니야?”
“맞아.”
“그렇지? 그러니까. 나도 수업 끝나고 학교에 혼자 남아서 운동하고 가는 거, 너도 알지?”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림자 아저씨 말대로 상체운동만 열심히 한 것 같아. 이제는 하체단련을 해야겠어. 저녁에 달리기를 해야 하나 생각은 했었거든. 하는 김에 너랑 같이 하는 것도······ 그렇게 하면 합기도랑 호신술도 배울 수 있고, 그것도 속성으로.”
싫다고 했다가 갑자기 하겠다고 한 것이 자기도 왠지 민망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림자도 그런 민철이 귀여웠는지 웃으며 송이에게 말했다.
‘자식, 귀엽네. 내 말이 맞지? 이 녀석, 꽤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몰라요.’
‘어, 알았어. 네가 싫으면 나도 싫어. 그럼 된 거지. 그래도 여지를 좀······ 아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고민하는 듯 송이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택시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민철은 대답을 못 듣고 택시에 타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한숨을 내쉬며 먼저 뒷좌석에 탔다. 송이도 결정을 못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
로망스클럽에 들어선 손님들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홀을 보고 기겁하며 다시 나가버렸다. 종업원들은 홀 중앙에 줄지어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었다.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홀 바닥에는 짧은 머리에서 피가 이마로 흘러내리고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는 칠구가 바닥에 팔을 짚고 앉아있었다.
그 앞으로 손발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 숙이고 있는 정 마담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가서는 그대로 뺨을 갈겼다. 마담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고개가 돌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야! 골빈 년아, 너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렸어야지. 저놈이 하자는 대로 그냥 보고만 있었어?”
“죄송해요. 저도 안 된다고 문제 생기면 큰일 친다고 했는데······.”
그는 또 한 번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것도 똑같은 년이네. 문제가 안 생기게 미리 선제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지.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이게 무슨 꼴이냐고, 이게!”
그제야 좀 정신이 든 칠구는 피가 가득한 침을 뱉어내더니 입가에 묻은 침인지 피인지 모를 것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하시죠. 마담도 할 만큼은 한 겁니다. 지금 영업시간이라 하루 매출을 못 맞추면 큰형님한테 작살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온갖 욕설을 내 뱉으며 칠구 앞으로 걸어왔다.
“네가 아직 덜 맞았구나, 매출 걱정을 다하고. 지금 네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말이야.”
“제가 문제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이쯤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큰형님도 아무 말씀 없는데 왜······.”
칠구의 얼굴로 발이 날아들었다. 그는 쓰러진 칠구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누르며 욕을 쏟아냈다.
“네가 지금 날 무시하는 발언을 한 건 아냐? 야, 내가 여기 와서 왜 이 지랄을 떠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형님이 마지막으로 너한테 한번 기회를 준 거야. 근데 븅신 같은 네가 그걸 발로 뻥 걷어찬 거고. 아직도 그게 상황파악이 안 되는 거야, 너는? 지금 형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면 네가 이런 말을 못하지, 내가 큰 실수를 했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이제 죽었어. 형님이 뒷수습하려고 황 의원의 집으로 간 거 정말 몰라?”
“왜요? 제가 황 의원한테 잘 설명 했······.”
구둣발에 칠구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설명? 너 따위가 의원 나리한테 설명? 이 머저리 같은 놈아,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형님이 나한테 하소연을 다 하시는 거 아니야! 와아, 간만에 열불이 다 나네. 이거.”
일그러진 입으로 칠구가 겨우 소리를 냈다.
“혀님······ 제가 자모했으님다.”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지. 너는 나한테 좀 더 맞아야겠다. 그리고 당분간 여기 문 닫으라는 형님 지시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알고.”
“무은을 닫으라······.”
칠구의 얼굴로 침이 날아들었다.
“너는 주둥이 닫아, 새끼야! 형님이 계집 데리고 온 놈들 당장에 파묻어 버리라고 성화신데, 내가 겨우 말렸다. 일 크게 만들면 안 된다고 겨우 말렸다고, 알아? 일단 어떤 놈들인지 우리 동생들한테 잘 설명하고. 그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빠져. 아, 대신 너는 할 일이 하나 있다.”
“그게 뭡니까?”
“그건 말이야.”
그는 종업원들에게 손짓으로 뒤로 물러나라고 지시하고는 칠구를 일으켜 앉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칠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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