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3년 전 사건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3년 전 남궁이한 경위와 박동식 경위는 보이스피싱 국내 조직책을 쫓아 수개월간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사는 막바지로 접어들어 조직책 중 중간보스를 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최종목표인 조직책의 수장을 잡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사가 길어졌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남궁 경위는 결혼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그날도 조직책 수장이 은둔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출동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던 남궁 경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정인아.”
“오빠, 오늘도 늦어?”
“왜? 무슨 일 있어?”
“뭐야, 또 깜빡한 거야? 너무해.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결혼준비는 같이해야지. 나만 결혼하는 거야?”
“미안. 오늘 뭐하기로 했지?”
“신혼집 꾸미기로 했잖아. 새로 가구 들어오기 전에 청소하기로 말이야.”
“아, 맞다. 정인아, 미안한데 다음에 하면 안 될까?”
“다음에 언제? 매번 똑같으면서. 아무튼 신부 잘 만난 지 알아. 내가 나중에 결혼하고 바가지를 박박 긁을 거니까, 각오해. 치! 그럼 혼자하고 있을 테니까, 일 끝나면 바로 와.”
“그러지 말고. 다음에 하자. 너도 잘 알잖아, 우리 집 엄청 더러운 거. 너 혼자하려면 힘들어. 어? 오늘 지나면 시간 좀 생길 거야. 그러니까······.”
“됐어. 일주일 뒤면 결혼식이야. 앞으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냥 나 혼자 하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오세요.”
“그게 아니라······ 미안하네, 매번.”
“미안하긴 해? 너무해. 내가 정말 이걸로 1년은 우려먹을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아.”
“아휴, 정인아 한번만 봐줘라. 1년은 너무했다. 한 달? 어? 한 다알? 응?”
남궁 경위의 아양에 정인은 못 이긴 척 웃어넘겼다.
“고마워, 정인아.”
“이그, 정말. 알았어. 조심하고. 너무 빨리 오려고 하지 마. 그러다 사고나, 어? 알았지?”
“역시, 우리 정인이는 천사라니까. 내가 이래서 너랑 결혼하는 거야, 알지?”
“웃겨 정말. 그런 것 때문에 나랑 결혼하는 거야? 그럼 안 되는데······.”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 우리 정인이가 예쁘고 섹시하니까 내가 결혼하는 거지.”
자신이 말하고는 민망했는지 큰소리로 웃다 주변을 살피며 급 정색했다.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옆에 형사들이 쳐다봐서. 이만 끊어야겠다. 사랑해, 정인아.”
“이그, 알았어. 나도 사랑해.”
전화를 끊은 남궁 경위는 흐뭇해하며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었다. 일선 형사들과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책 수장이 숨어 있다는 장소로 출동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곳을 급습했다. 하지만 조직책 보스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첩보임을 깨닫고 허탈하게 그곳을 나오는데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능범죄 수사대 남궁 경위입니다.”
“날 찾고 있다고.”
“누구시죠?”
“왜? 모르겠어. 너희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인데.”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정체를 밝히시죠?”
“남궁이한 형사. 나야, 너희가 찾는 보스. 날 찾는 게 쉽지 않은가봐.”
“뭐라고? 장난해? 네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너 누구야? 뭐하는 자식인데 이런 장난을 쳐?”
“장난? 장난이라고 생각해. 그럼 직접 와 보면 알겠네. 당신 집에 있으니까.”
“뭐라고······ 이 새끼. 지금 내 집이 있다고 했어?”
“그래. 집 좀 청소해야겠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그런지 보통 더러운 게 아니야.”
남궁 경위는 뛰쳐나와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같이 왔던 형사들이 놀라 뒤따라 나왔지만 이미 차는 출발한 뒤였다.
“오호, 벌써 출발한 건가?”
“너, 거기 딱 기다려. 끊어.”
남궁 경위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중 대기로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남궁 경위는 다급하게 박 경위에게 전화했다.
“어, 이한. 어떻게 됐어?”
“내 말 잘 들어. 우리 집 알지?”
“어? 집? 알지. 근데 그건 왜?”
“지금 바로 우리 집으로 경찰들 보내서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줘.”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그렇게 해줘. 네가 갈수 있으면 네가 가서 확인 좀 해.”
“나는 지금 안 되는데······ 알았어.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어, 집 비밀번호 5564야. 집 안에 들어가서 누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해. 알겠지?”
“그래, 알았어.”
남궁 경위는 전화를 끊자마자 정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통화중으로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우고 정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가지 말고, 이 문자를 보면 전화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서울에 진입한 남궁 경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정인아.”
“야, 아쉽지만 나다.”
박 경위의 웃음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하지만 남궁 경위는 웃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확인해봤어?”
농담에도 웃음기 없는 남궁 경위의 목소리에 박 경위는 머쓱하게 입을 다셨다.
“자식은······. 야, 무슨 일 있는데 그래?”
남궁 경위는 신경이 잔뜩 곤두선 목소리로 물었다.
“확인했냐고?”
“어? 어, 했어. 아무도 없다던데. 왜? 무슨 일이야?”
그제야 남궁 경위는 한숨 돌리며 대답했다.
“그래. 다행이다.”
“다행? 야, 이한. 이제 무슨 일인지 좀 말해봐. 궁금해 죽겠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아니, 어떤 사이코 자식이 장난 전화를 걸어서 말이야.”
“장난 전화?”
“어. 우리 집에 있다고 잡으러 오라고 하는 거 아니야. 아, 자기가 보이스피싱 조직책 보스라고 하면서 말이야.”
“야, 그게 말이 돼? 그 자식은 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안 거야?”
“그러니까, 나도 처음엔 장난인지 알았는데······. 그놈 하는 말이 장난같이 않아서 말이야.”
“야, 보이스피싱이 원래 장난 같이 않거든. 자식이, 보이스피싱 전담 형사가 그런 거에 속고. 됐다, 난 또 뭐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잖아. 난 뭐냐? 괜히 싱거운 놈만 됐잖아. 경찰관들에게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가 핀잔만 옴팡 들었다고. 너 이 자식, 나중에 술 한턱 쏴라. 알았어?”
“그래, 그럴게. 아무튼 아니라니 다행이다. 지금 올라가니까 일단 끊자.”
“어, 그래. 올라와서 보자.”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쉰 남궁 경위는 흥건하게 젖은 손을 옷에 닦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향하던 남궁 경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무슨 일이야?”
“어, 정인아. 왜 그렇게 전화가 안 돼?”
“미안. 혼수 문제로 엄마랑 전화했어. 엄마가 도통 전화를 끊어야 말이지. 근데 문자는 뭐야? 왜 가지 말라고. 나 집에 다 왔는데.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지금 집이야?”
“아니, 주차장. 이제 올라가려고.”
“그럼 올라가지 말고. 차 안에서 기다려. 나랑 같이 올라가.”
“그래? 얼마나 걸려?”
“20분 정도.”
“그럼······ 알았어.”
전화는 끊은 남궁 경위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음악을 틀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집에 가까워졌을 무렵 또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남궁 경위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
“야,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장난 전화를 하는 거야!”
“남궁이한 형사.”
격앙된 남궁 경위의 목소리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덤덤하고 평온했다.
“너 뭐야? 자꾸 장난 전화할 거야? 너 누구야?”
“언제 오는 겁니까?”
“이 새끼가, 정말. 장난치지 말고, 누구냐고?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너 이 새끼, 이러면 널 못 찾을 줄 아냐? 내가 너 꼭 잡아서 장난친 벌을 꼭 받게 할 테니까, 두고 봐.”
“장난이라······. 아직도 장난이라고 생각합니까? 아, 경찰이 왔더군요. 근데 제대로 집을 둘러보지도 않고 가던데. 아무튼 경찰들이란 그렇죠? 귀찮은 듯 투덜대며 나가는 꼴이.”
“뭐라고······. 너 정말 내 집에 있다는 거야?”
“그거 참 사람 말을 못 믿네. 그럼 직접 와서 보면 되지 않겠어요.”
“네가······ 정말 조직책의 보스라고?”
“그거야 와서 보면 알지 않겠어요. 날 찾느라 전전긍긍하던데. 내가 직접 만나 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미온적이죠? 왜 수사를 끝내기 싫은 거예요? 아니면 일부러 질질 끄는 겁니까?”
“이 새끼······. 뭘 질질 끌어? 좋아, 거기서 딱 기다려. 거의 다 왔어.”
“그래요. 기다리죠. 하지만 나도 더는 기다려줄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에요, 남궁이한 형사.”
전화가 끊기자 남궁 경위는 속도를 높였다. 집 앞에 도착한 그는 지하주차장에 있을 정인에게 전화를 걸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전화 연결이 또 되지 않았다. 이번엔 연결 음이 들리는 것을 봐서는 전화를 못 받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남궁 경위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면서 다시 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정인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어, 미안. 짐이 많아서 전화를 못 받았어.”
“그게 무슨······. 지금 어디냐고?”
“오빠 집 앞이야. 짐 내려놓고 문 열려고 하는데 전화가 와서. 잠깐만 들어가서······.”
“안 돼! 정인아.”
“어? 왜 그래? 놀랬잖아. 잠깐만, 들어가서 전화 다시 할게.”
“정인아, 끊지 마. 끊지 말라고.”
“짐이 무거워서 전화 못 받았어. 냉동해야 할 것도 있고 해서 먼저 올라온 거야. 근데 무슨 일인데? 나 집 앞이라니까. 다 온 거야?”
“빨리 도망쳐. 아니, 빨리 1층으로 내려와.”
남궁 경위가 그렇게 소리칠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17층을 빠르게 누르고 급한 마음에 닫기 버튼을 여러 번 세게 눌러댔다.
“뭐가······ 어! 오빠! 아악!”
정인의 비명 소리와 함께 전화기가 땅에 떨어졌는지 바스락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남궁 경위는 정인에게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 음만 들릴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17층에 도착했다.
“으윽!”
“아저씨, 괜찮으세요?”
“송이야, 왜? 아저씨가 뭐?”
그림자는 몸을 웅크려 앉은 채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지수대에서 봤던 그 모습이었다. 송이는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다보면서도 말은 걸지 못했다. 그림자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민철아, 잠깐만 조용히 있자.”
“어? 어, 그래.”
송이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지 살폈다. 민철은 이한의 그림자 뒤로 가서 자신의 그림자로 가렸다.
“고마워, 민철아.”
“네가 왜? 나중에 아저씨한테 들을래.”
“치, 그래.”
“근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지수대에서 본 그 사진 때문이 아닐까 싶어.”
“아, 여자 친구. 결혼을 앞두고 돌아가신······ 살해를 당했다고 했지? 혹시, 여기서······.”
송이는 손으로 민철의 입을 막았다.
“쉿! 조용. 아저씨가 다 들어.”
“그래, 알았어.”
민철은 입을 꾹 다물고 뒤돌아 그림자를 잠시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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