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너와 나의 연결고리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교실로 송이와 민철이 같이 들어오자 민정과 얘기 나누던 동진이 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정말 몰라?”
“모른다고 했잖아.”
“송이한테 물어보기는 했어?”
“아니. 그걸 내가 왜 물어? 그리고 아니라고 했잖아. 송이는 민철이 안 좋아해, 내가 알아.”
“정말 기정 일 때문에 같이 다니는 거란 말이야.”
깜짝 놀란 민정은 소희가 있는 자리를 힐끔 보고는 동진의 팔을 찰싹 때렸다.
“그 입. 그 얘기 꺼내지 말라니까. 자꾸 그래,”
“아, 미안.”
“그래, 그러니까 모른 척하라고. 너도 참.”
동진은 맞은 팔이 얼얼했는지 어루만졌다.
“그렇다고 그렇게 세게 때리냐?”
민정은 동진의 팔을 살살 쓸어내리며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셌어? 미안. 그러니까, 왜 매를 벌어?”
“됐어. 근데 너 생각보다 손 맵다?”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
민정이 그렇게 말하고는 깔깔 웃음 짓자 동진도 따라 웃다 민철의 자리로 갔다.
“오늘도 같이 왔네?”
“어. 너도 민정이랑 같이 왔나 보다?”
“아니거든, 잠깐 가서 인사만 한 거거든.”
“나한테까지 그럴 필요 없다.”
“시끄러워, 알았다고. 어제도 송이랑 같이 운동한 거야?”
“아니.”
“그래? 그럼 어제는 쉰 거야?”
“뭐가 궁금한데?”
동진은 민철의 어깨를 툭 치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자식, 알면서? 얘기 좀 해봐. 둘이 그림자 아저씨랑 뭐하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그러잖아. 나도 좀 알자, 어?”
“됐다. 그거면 모르는 게 좋아. 알면 아가들은 다친다.”
“아이, 자식. 또 이런다. 뭐? 뭐가 먹고 싶어? 네가 먹고 싶은 거 뭐든 사줄 테니까, 말 해봐. 궁금해 미치겠다고, 어?”
동진은 민철의 팔을 잡으며 떼를 쓰듯 들러붙었다. 곧바로 민철은 진저리를 치며 밀어냈다.
“저리 꺼져, 새끼야. 징그럽게. 너는 몰라도 된다고. 진짜로 알면 다쳐. 널 위해서야.”
그렇게 말하고는 연극하듯 민철은 과장된 말투와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이 친구의 마음을 그래도 모르겠니?”
동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민철의 어깨를 짚고 일어섰다.
“놀고 있네, 됐다. 난 물 빼고 올게. 아이, 자식. 느끼해서 더는 못 들어주겠네.”
“새끼, 더럽게. 빨리 갔다 와.”
동진과 민철은 총을 쏘듯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찌르며 크게 웃었다. 그런 사이 민정도 송이 옆에 붙어서는 그림자에게 인사했다. 그림자도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반겼다.
“너 정말 민철이랑 사귀는 거야?”
“아니라니까. 동진이 그래?”
“아니, 나도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물어봐서. 요즘 너희 둘 같이 등교도 하고······.”
조심스레 떠보는 민정에게 송이는 손을 내저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치? 그래, 민철은 애리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애리도 싫지는 않은 가봐.”
“그래? 뭐, 그런가 보지.”
괜히 신경이 쓰였지만 송이는 애써 아닌 척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보니까, 민철이 애리랑 학교에서 자주 만나서 얘기하는 것 같더라. 저번 일로 더 친해졌나봐. 그때 있잖아, 애리한테 전화번호 달라고 하면서 괴롭혔던 애들······.”
신나게 말하는 민정의 팔을 잡으며 말을 막았다.
“알아.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말했잖아. 기정······. 그 일로 그런 거라고.”
급히 입을 가리며 송이가 더 작게 말하자 민정도 덩달아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알지. 나도 그런 거라고 했어. 근데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나한테도 말 안 해줄 거야?”
“왜 또 그래? 미안하게. 그때도 말했잖아. 넌 모르는 게 낫다고.”
입술을 비죽거리며 민정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알지. 그래도······. 아니다. 근데 왜 애리랑 인사도 안 해? 민철이 때문이야?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왜 그래? 둘이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서먹하게 지내는데? 같이 좀 어울리면 좋잖아. 너희 둘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서, 내가 중간에서 눈치 보려니 죽겠단 말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 송이를 그림자가 말리며 민정이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냥. 애리는 나랑 많이 다르잖아. 딱 봐도 잰 모범생이고. 매일 저렇게 앉아서 공부만 하는데 뭐. 너도 애리 그만 방해해. 공부하는······.”
송이의 말이 서운했는지 민정은 송이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야, 내가 뭐? 얼마나 방해한다고 그래? 너무해.”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됐어. 나도 애리랑 얘기하는 거 별로 재미없어. 너랑 있는 게 더 좋지. 근데 요즘 네가 그 일로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런 것뿐이야.”
서운함을 달래주듯 송이는 민정의 팔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나도 지금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 공부는 공부대로 못하고······. 그래도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아저씨가 내 옆에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니 그전에는 마무리해야 하니까.”
“그건 그러네. 아저씨도 빨리 일어나셔야 할 텐데······.”
“그러니까. 일어나시겠지. 그 전엔 마무리해야지.”
“아니지, 아저씨가 일어나시면 그땐 네가 할 일은 없는 거 아니야? 아저씨가 하면 되니깐.”
“아, 그러네. 생각해보니.”
“그럼 아저씨가 빨리 회복하시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그치······.”
“어, 종 울린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민정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수업준비를 했다. 송이도 교재를 꺼내며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민정의 말이 맞는 건 같아요. 아저씨가 일어나시면 제 할일은 없는 거잖아요.’
‘그렇겠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수연 씨 말로는 의식이 돌아오는데 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언젠가는 의식을 찾겠죠. 그러니 너무 낙담마세요.’
‘그래, 고맙다.’
‘근데 저번에 수연 언니가 말한 게 계속 걸려요. 아저씨 몸이랑 멀리 떨어져 있어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요. 옆에 있어야 하는데 저 때문에······.’
‘아니야. 왜 너 때문이야?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리고 나도 해봤어. 몸 가까이 가면 조금의 반응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고. 그래서 몸 위로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소용없더라고.’
‘정말요? 언제요? 아, 어제 그래서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신 거예요? 전 할머니를 뵙고 오시는 줄 알았어요.’
‘그랬지. 어머니도 보고······.’
‘그러셨구나.’
‘어제 잠에 들기 전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너랑 나······. 왜 하필 너와 나일까? 이었어. 거기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연결고리······. 그걸 알아내 풀 수만 있다면 내가 너의 그림자에서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아닐까하고 말이야.’
‘그게 뭘까요? 그건 모르시겠어요?’
‘너희 아버지 사건과 5년 전 사건, 그 둘 사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래서 5년 전 사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알아낸다면 조금은 그 연결고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면치료가 정말 중요하겠네요.’
‘그럴 수 있지. 최면으로 내 기억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좀 두렵기는 하지만.’
‘뭐가······. 아, 아저씨가 나쁜 사람일까 봐요?’
그때 민정이 송이의 어깨를 흔들며 불렀다.
“송이야, 뭐해?”
“어, 왜?”
민정이 교단을 가리켰다.
“아, 네. 쌤.”
“송이야, 수업에 집중하자.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
“예, 쌤.”
송이는 그 연결고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칠판 앞으로 나가 수학문제를 풀었다.
***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지만 미라클 자산관리사 오진태 대표의 집무실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운 편이었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도무철 변호사가 들어서며 소파에 앉아 서류를 살피고 있던 오 대표에게 인사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어, 이리 와 앉아. 아직 점심 전이지?”
“그렇죠. 시간이······.”
“그래, 그럼 좀 일찍 먹어도 상관없겠지? 내가 아침을 못 먹어서 점심을 좀 일찍 먹어야겠어.”
“그럼, 나가시죠? 뭐 드시겠습니까?”
“아니, 시켜 먹자고. 중식 어때?”
“또 짜장면 드시는 건 아니시죠?”
“왜? 짜장면 싫어? 난 짜장면 먹을 건데. 동생은 먹고 싶은 거 시켜.”
“아······ 그럼, 전 짬뽕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시킬까요?”
“아니, 됐어.”
오 대표는 인터폰으로 비서에게 중식 주문을 시켰다.
“이번에는 유린기십니까?”
“어, 요즘 유린기에 완전히 꽂혔잖아. 꽤나 내 입맛에 맞더라고. 먹어봤어?”
“예, 몇 번.”
“그래. 그럼 알겠네.”
“근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어, 박동식이라고 알지?”
“박동식이면 지능범죄수사대에 있는 그 박동식 경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마 맞을 거야. 그 자식 요즘 뭐하는지 좀 알아봐.”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우리 뒤를 깨고 다니는 것 같아서 그래. 말하는 게 어처구니없어서 내가 말하기도 그래. 아무튼 그 자식이 지금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그리고 강남에서 모였던 그 모임······. 밖으로 새어나간 것 같단 말이지. 그걸 그 박동식이 알고 있더라고.”
“그자가 말입니까? 아, 그래서 알아보라고 하신 거군요. 근데 형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자식이 직접 와서 얘기한 거야?”
“예? 그게 무슨······. 지 입으로 그걸 실토했다는 겁니까? 왜요? 아, 그걸 빌미로 뭘 요구한 겁니까? 아, 그 새끼 개 버릇······.”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듯 오 대표는 손을 휘저으며 도 변호사의 말을 막았다.
“됐고. 그게 아니야. 아이, 이걸 말해야 해?”
“뭔데 그러십니까?”
말하기를 꺼려하던 오 대표는 도 변호사의 재촉에 못 이겨 박 경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얘기를 들은 도 변호사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다 참지 못하고 껄껄 소리 내며 웃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웃으려고 한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됐어. 맘껏 웃어. 나도 웃긴 얘기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동생이 계속 물으니 말한 것뿐이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근데 그놈이 직접 데리고 온다고 한 겁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러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 그런 거짓말을 꾸밀 정도로 그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안 좋았나?”
“이한이라고 하셨죠?”
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이한 경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알아. 병원에 있잖아.”
“알고 계셨군요. 제가 듣기로는 절친한 관계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나도 알지. 예전에 두 사람을 만난 적 있었으니까.”
“아, 그때 말씀이군요. 그러니까요. 제가 그것도 좀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둘만 아는 게 아니야.”
“그 학생 말씀이군요.”
“이한의 그림자랑 같이 다닌다는 그 여학생. 이름이 임송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임송이요? 임송이······.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그 애도 알아봐. 박동식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그러는지 미리 좀 알아보라고. 그 여학생이랑 그림자가 같이 다닌다는 헛소리가 정말인지도 알아보고.”
“에이, 형님. 그게 말이 됩니다. 아무튼 박동식이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알아봐. 박동식이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말이야.”
“예. 그럼······.”
대답하고 곧바로 일어서려는 도 변호사를 오 대표가 붙잡았다.
“야, 어디가? 점심은 먹고 가야지.”
“아, 그러네요. 깜빡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먹고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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