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다른 속셈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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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시장 내 공판장 안에서 해산물 상자를 트럭으로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번에 세 상자씩 들어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상자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다그치듯 말했다.
“서 씨, 두 개는 들고 와야지.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리는 시간이 돈이라고! 돈! 아이, 정말 미치겠네. 이럴 거면 다른 일 알아봐. 젊은 친구들 등골이나 빼먹지 말고. 이게 뭐야? 저 친구들은 세 박스씩 들고 오는데. 아이, 정말.”
서 씨라는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달려가 해산물 상자 두 개를 집어 들어 올렸다. 순간 몸이 비틀거리더니 상자를 놓치고 말았다. 위에 있던 스티로폼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이 났고 안에 있던 생선들이 밖으로 쏟아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주머니는 팔짝팔짝 뛰며 소리쳤다.
“아이, 이게 뭐야! 이거 어쩔 거야! 서씨, 이거 어쩔 거냐고!”
생선들을 잡아 박살난 상자 안에 넣으며 서 씨는 곤욕스런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장 사장님. 이건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그게 말이라고? 당연히 변상해야지. 그게 아니잖아. 서 씨 때문에 지금 시간도 늦어지고 납품도 못 맞추고 있잖아. 이게 무슨 꼴 일이냐고! 내가 미쳐. 미쳐, 정말!”
소란스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관리자로 보이는 남자가 황급히 달려와 아주머니에게 굽실거렸다.
“아이고, 장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건 저희가 변상할 테니 노여움 푸십시오. 서 씨가 며칠 전에 허리를 조금 삐끗해서 그렇습니다. 원래는 일 잘하는 친구에요. 잘 아시잖아요. 이번만 좀 봐주십시오. 그렇지? 서 씨.”
“아, 예. 장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노임 안 받고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장 사장은 코를 씰룩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야? 안 받고 해줄 거야?”
“그럼요. 오늘 일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을 드렸는데 그 정도는 제가 해야죠.”
“그럼 알았어. 그걸로 퉁 치자고, 오늘 일은.”
관리자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며 장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장 사장님.”
옆에서 서 씨도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장 사장님. 얼른 나머지 것도 옮기겠습니다.”
“그래요, 또 그러면 안 되니까, 하나씩 옮겨요.”
“예예. 감사합니다.”
서 씨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해산물 상자를 하나씩 들어 트럭에 실었다. 장 사장은 서 씨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관리자에게 속삭였다.
“저 인간,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예요? 매번 보지만 갈수록 젊은 친구들 못 따라가는 것 같은데.”
“나이가 있으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성실하게 일 잘하는 친구입니다. 좋게 봐주세요. 최근에 허리를 좀 다쳐서 그런 거니 좋아지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알았어요. 근데 두 분이 잘 아는 사이신가 봐요? 나 같았으면 벌써 잘랐을 텐데.”
“그래도 오래 같이 일했는데 좀 힘들다고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럼 저는 이만.”
관리자는 장 사장에게 인사하고 서 씨에게 가서는 뭐라고 말하더니 등을 토닥이고 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장 사장은 중얼거리며 트럭에 올라탔다.
“참, 사람이 좋은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르겠네.”
공판장 일이 모두 마무리되고 일당을 받은 서 씨가 수산시장을 나오는데 웬 정장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서기정 학생 아버님 되십니까?”
갑자기 말을 걸어온 남자에게서 위압감을 느껴 서 씨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검정색 정창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요. 서기정 아버님 되시냐고 물었습니다.”
“예. 제가 기정이 아빠데 그건 왜······ 아니, 제 딸을 어떻게······. 여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맞나봅니다. 제가 잘 찾아왔네요.”
“죄송하지만 누구신데 제 딸을 아십니까?”
“아, 기정이가 저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요 며칠 나오지를 않아서 말입니다.”
“아르바이트요?”
“네. 아, 저는 이동수라고 합니다. 가게 사장인데 일 잘하던 기정이가 갑자기 나오지 않아서 말이죠.”
“그런데 왜 저를······ 아니, 지금 시간이면 학교에 있을 텐데······ 아니면, 전화를······.”
“전화도 안 받아서 말입니다. 오늘 가보니까 학교도 안 나왔더라고요.”
“학교를 안 나왔다고요? 아닌데······ 잠깐만.”
서 씨가 휴대전화를 꺼내려하자 그가 말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이 아실까 하고 왔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십니까?”
“학교에······ 근데 학교에 가보신 겁니까? 아니, 저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일을 너무 잘했는데 갑자기 안 나와서 말이죠.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찾아와 봤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고. 제가 보면 말 전하겠습니다.”
“아, 예. 저기, 점심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이제 가서 먹어야죠.”
“그러십니까?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저도 먹어야 해서. 아버님을 뵈니 기정이가 아버님을 많이 닮았네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아이, 그래도 될지······.”
“에이, 당연히 되죠. 기정이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데요. 가시죠. 아버님, 뭐 좋아하십니까? 고기 드실까요?”
“고기요? 아, 좋죠. 그럼.”
못 이기는 척 이동수라는 사람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이동수는 차에 올라타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서 씨는 선글라스 뒤로 멍이 든 그의 눈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아이고, 얼굴은 왜 그러세요?”
“아, 예. 제가 술장사를 하는데 술에 취한 진상 손님한테 좀 맞았습니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썼습니다.”
선글라스를 들어 보이며 동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룸미러에 비친 선글라스를 벗은 남자의 얼굴은 칠구였다. 이동수는 칠구의 본명이었다.
***
하굣길에 민정과 애리 그리고 동진은 같이 가겠다고 송이에게 따라붙었다.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고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송이는 혼자 소희 뒤를 밟기 시작했다. 역시나 소희는 기찻길 아래 굴다리 공터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내내 불안한 눈빛으로 소희는 뒤를 보며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살피는 듯 보였다. 학교를 나오면서부터 소희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극도로 불안해 보였다. 굴다리 공터에 도착한 소희는 전화를 걸었다. 그때 굴다리 맞은편에서 강석진의 모습이 보였다. 소희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석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석진의 얼굴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도 뒤를 계속 살피며 오고 있었다. 송이는 멀리서 지켜보기로 하고 그림자만 혼자 아이들에게 접근했다. 굴다리 그늘에 숨어들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자기야, 괜찮아?”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봐봐, 내 몸을······.”
상의를 추켜올리며 석진은 가슴과 등에 난 멍을 보여주었다. 허벅지 바지에 난 담배빵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아주 씨발, 미쳐버리겠다, 나도. 그 미친년이 여러 사람 죽인다, 죽여.”
“자기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정말 그래도 될까?”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애들이 믿는 눈치야, 어때?”
“그걸 누가 믿겠어? 긴가민가하는 눈치였어. 나도 말하면서 좀 그랬거든.”
석진은 소희의 머리를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게 말이라고 하냐? 뭐? 뭐가 그랬는데? 그래, 너는 안 죽는다 그거야? 얘가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거야, 뭐야? 내가 아침에 그렇게 설명했는데 못 알아 처먹은 거야? 어!”
“그게 말이 돼야 말이지? 기정이가 학생인 걸 속이고 매춘을 미끼로 아저씨들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는 게 더 말이 안 되잖아. 그걸 누가 믿겠어?”
“야, 너까지 왜 그래? 그렇게 몰아가야 한다고 하잖아. 내 말 못 알아들어? 그렇게 안 하면 정말 날 죽일 것 같았단 말이야. 넌 모르지? 그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난 오늘 학교도 못 갔다고. 그 놈들이 날 얼마나 다구리쳤는지 넌 모를 거야.”
어금니를 깨물며 석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가래를 목 아래에서부터 끌어 모아 침을 세차게 내뱉었다. 순간 자신 쪽으로 날아온 침을 피해 살짝 그늘 밖으로 나왔다가 그림자는 얼른 다시 그늘 속으로 숨었다. 송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뭐예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해 주셔야죠.’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 다 듣고 그쪽으로 갈게.’
‘알았어요.’
송이의 한숨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소희는 석진에게 다가가서는 등을 쓸어내렸다.
“미안해, 자기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경찰이 찾아올 수 있다고 했어. 그때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돼. 우리는 모르는 일이야. 기정이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것 같아 보였다고만 말하면 된다고. 그러면서 학교에서 친구들 돈 훔친 일도 말하고.”
“그건 알겠는데 돈 훔친 거 얘기하면······ 걔도 우리를 얘기할 게 뻔한데.”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을 해야지. 이······ 아휴, 뭘 들은 거야? 아침에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나도 걱정 돼서 그러지. 근데 왠지 반 애들 중에 기정이 일을 아는 애가 있는 것 같아. 애리라고 반에서 1등하는 애가 있는데 걔가 기정이가 피해자라고 하는 거야. 자신도 들은 게 있다고 하면서······.”
소희의 말에 석진의 눈이 번쩍 커졌다.
“뭐? 들었다고? 누구한테?”
“그건 못 물어봤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들은 얘기라고 하는 상황에서 물어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아이 젠장. 뭐지? 기정이랑 걔랑 친해?”
“아니. 기정이랑 친한 애들은 내가 다 알지.”
“그렇지. 뭘까? 걔는 누구한테 들은 거지. 또 누가 알아?”
“나도 모른다니까?”
“야, 넌 뭐한 거야?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좀 알아보고 왔어야지. 아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석진이 돌아서자 소희는 울먹이며 말했다.
“야, 나도 무섭다고. 기정이가 우리 이름을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정말 괜찮은 거야? 우리 부모님이 아시면 나 정말 죽어, 죽는다고.”
석진은 다가와 때릴 듯 주먹을 치켜들었다.
“씨발, 너는 부모님한테 죽는 게 아니라 나한테 죽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 입 조심하라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겠어?”
소희는 순간 몸을 움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당분간 우리 만나지 말자.”
“왜?”
“왜긴? 그걸 몰라서 물어?”
“알아. 근데 무서워서 그래. 자기라도 만나서 상황을 알아야 나도 대처를 할 거 아니야. 자기야, 나 겁난다 말이야. 같이 있어주면 안 돼.”
“야, 민소희. 정신 차려. 지금 내가 죽게 생겼다고. 각자 살길 찾아야 한다고, 이제. 내 말만 명심하고. 쓸데없이 이상한 소리 지껄였다가는 나한테 죽는다.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석진은 뒤돌아 달려갔다. 소희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발길을 돌렸다. 지켜보던 그림자는 조심스레 그늘에서 나와 송이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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