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단서를 찾아서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설거지를 하다 문뜩 그림자의 꿈 얘기가 생각나 물었다.
‘근데 무슨 꿈인데 그래요?’
‘어? 꿈?’
‘아까 다 들었어요. 그때 물어볼까 하다가 엄마 얘기가 더 급해서 바로 못 물어봤어요. 수연 언니 말고 또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거예요? 아저씨 아주, 바람둥이셨네요.’
‘뭐? 아니야, 그런 거. 꿈이잖아.’
‘꿈이면 바람둥이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림자는 헛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됐다. 설거지 다했으면 민철한테 전화나 해서 나와 달라고 해.’
‘매번 민철이가 필요한 거예요?’
고무장갑을 벗으며 송이는 투덜댔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네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왜 또? 그때 다 얘기된 거 아니었어?’
‘아니요, 그렇죠. 어디 갈 건데요? 생각해 둔 데라도 있으세요?’
‘회사에 가봐야겠어.’
‘회사요? 누구 회사요?’
‘아, 아니. 내가 근무하던 지능범죄 수사대 말이야. 거기에 가면 뭐라도 기억나지 않을까 싶어서.’
‘회사라고 하는 구나. 제가 거길 들어갈 수 있어요?’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만 둘러봐야지. 일하던 곳이니까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까 집에 가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집안 물건들을 보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그러네요. 할머니 얘기 들어보니까 아저씨 혼자 사는 것 같았어요. 청소하러 가셨는데 엄청 깔끔해서 속상하셨다······.’
말하다 그림자의 눈치를 보고는 얼버무렸다.
‘그랬구나······.’
‘집은 어디인지 기억나세요?’
송이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니. 기억해 내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 자기 전까지 계속 내 집이 어딘지 기억해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모르겠더라고. 그러다 그냥 잠들어버렸어.’
‘그럼 어떻게 알아보죠? 수연 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뭐라고 물어?’
‘그건······ 그러네요. 괜히 이상하게만 생각하겠죠?’
‘그렇지. 일단 경찰서로 가보자. 거기서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단서요? 무슨 단서······.’
‘아니, 단서가 아니라 실마리. 거기서 기억이 날지도 모르잖아.’
‘아하, 그 소리였구나. 잠깐만 뒤돌아 계세요. 옷 금방 갈아입을게요.’
‘아니야, 난 먼저 밖에 나가······ 잠깐, 민철한테 전화했어?’
‘알았어요. 전화 먼저 할게요. 그냥 넘어가는 게 없어, 정말.’
그림자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가 참······.’
민철에게 전화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버스정류장은 괜찮죠?’
그림자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이제 뒤돌아 계세요.’
‘아니야. 나가 있을 게 편하게 갈아입어.’
그렇게 말하고 그림자는 현관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송이는 옷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기정이가 고소했던 그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보강 수사할 때 부른다고 하고는 감감무소식이에요.’
‘아마도 기정이가 사망해 사건이 종결되었을 거야. 기정이 아버지가 고소를 이어가면 되기는 하는데······. 그게 아마도 어려울 거고.’
‘그건 왜요? 기정아빠한테 가서 우리가 보고 들은 거 다 설명하면 되잖아요.’
‘아니. 말해도 소용없어.’
‘그러지 말고요. 왜 소용없다고 단정 지어 말하세요? 기정을 학대한 아빠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설득을 해야죠. 그 나쁜 놈들 벌은 받게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송이야.’
그림자는 송이를 부르고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말을 이었다.
‘기정이 아버지는 그들한테 약점을 잡혔어. 그래서 소용없다고 한 거야.’
‘약점이요? 무슨 약점······ 아, 그때 그 클럽에서 술 마신 것 때문에요? 술값을 뒤집어 쉬운 거예요? 술값이 없어서?’
‘어? 어······ 뭐 그런 거지. 아무튼 기정이 아버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까 그건 나중에. 우리가 수사를 좀 더 해보고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서······.’
‘우리가 무슨 형사도······ 아니, 아저씨는 형사죠. 그래도 제가 무슨 형사도 아니고 무슨 수사를 하고 증거를 찾아요? 박동식 경위님한테 모두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요? 아직도 께름칙한 거예요?’
‘미안해. 그게 좀······ 확신이 안서서 그래. 조금만 더 박 경위에 대해 알아보고 결정하자.’
‘그건 아저씨가 결정할 일이고요. 그러면 수연 언니는 어때요? 수연 언니는 우릴 도와줄 것 같은데 아저씨의 정체를 밝히면 더 좋아할지도 모르고요.’
‘수연은 형사가 아니라 의사잖아. 크게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리고······.’
그림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송이는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와 그림자 옆으로 다가가 크게 불렀다.
‘아저씨!’
‘아이, 깜짝이야. 뭐야? 언제 나왔어?’
‘뭐예요? 그림자도 놀라는 거예요?’
‘야, 나도 사람이야. 단지 몸이 그림자일 뿐이지.’
송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알았어요. 뭘 또 그렇게 성질은? 말하던 거나 마저 하세요. 그리고 뭐요?’
‘아니야, 그렇다고.’
‘왜요? 짝사랑이라 부끄러워서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송이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큰소리로 웃었다.
‘저게, 정말. 야, 임송이. 천천히 내려가. 그러다 넘어지겠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림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 송이는 연립주택 입구 앞에서 기다리며 또 놀리듯 물었다.
‘뭐예요? 왜 그렇게 늦게 내려오는데요? 정말, 그런 거예요? 난 농담이었는데······. 부끄러운가 보네요.’
그제야 1층에 내려온 그림자는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송이를 향해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송이에게 달려들었다. 송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악!”
그림자는 송이의 몸을 통과해 입구 밖으로 나갔고 송이는 주저앉아 몸을 벌벌 떨었다. 그림자는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재빨리 송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송이야, 괜찮아? 장난이야, 장난. 네가 하도 놀리니깐 나도······. 미안해. 이렇게 놀랄 줄 몰랐어.’
송이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앉아서는 어깨만 들썩일 뿐이었다. 그림자는 난감한 듯 갈팡질팡하며 뭐라고 말도 못 붙이고 있었다. 그때 1층 집 현관문이 열리고 남자가 머리만 내밀고 밖을 살폈다. 그림자는 재빨리 송이에게 붙어 그림자인 척했다. 밖에 한 여자가 움츠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본 남자는 뛰어나와 말을 걸었다.
“저기,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그제야 송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는 송이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걸 지켜보던 남자는 ‘별 미친 여자를 봤나.’라며 혼잣말을 내뱉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림자는 방금 상황이 얼떨떨한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던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쪼그려 앉아 있는 그림자를 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쾅하고 문 닫히는 소리에 그림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송이가 우는 척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그림자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와 송이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1층 현관문이 다시 열리고 이번엔 남자와 여자가 같이 나와 밖을 살폈다. 그림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여자는 화를 내며 남자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
성당 철탑 종이 좌우로 흔들리며 맑고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에 성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 사이에 금남시 도시계획과 오동수 팀장이 있었다. 그를 뒤에서 몰래 지켜보며 따라 나오는 방기철 형사도 보였다.
오동수 팀장은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가족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방기철 형사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동수 사무관님.”
“어, 누구?”
“일전에 전화 드렸던 방기철 형사라고 합니다.”
“아······.”
얼굴이 굳어진 오 팀장은 얼른 아내에게 말했다.
“얘들 데리고 먼저 차에 가 있어. 여기 차키.”
아내에게 차키를 건넨 오 팀장은 등나무 아래를 가리키며 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오 팀장은 귀찮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일에도 쉬지 않고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생은요?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건데요.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그러니까 제가 일요일에도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러는 겁니까? 그때도 말했잖아요. 나는 모른다고. 나한테 물어봤자 아는 게 없어요.”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보세요. 그날 분명 임승택 씨가 누군가를 만나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임 주임이 그날 갑자기 반차를 쓴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고. 개인 사유라고 하는데 내가 더 어떻게 묻습니까?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아요. 일 잘하던 임 주임이 갑자기 자살이라니······. 전혀 그런 낌새를 못 느꼈다니까요.”
“누구를 만난다는 얘기는 없었습니까? 혹시 동료나 부하직원들 중에······.”
“그건 형사 분이 알아보셔야죠. 내가 그걸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이만 하죠. 가족들이 기다립니다. 형사가 찾아와서 가족들이 걱정이 클 겁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지 말아요. 부탁드립니다.”
오 팀장이 일어나 가려하자 방 형사는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전화 좀 받아주세요. 저도 미치겠습니다. 자살로 종결하려는데 자꾸 하나씩 걸리는 게 나오니 말입니다. 남지동 재개발지구 현장에서 임승택 씨가 어떤 남자랑 같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것도 아파트 신축건물 꼭대기에서 말입니다.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뭐가 이상합니까?”
“죽을 사람이 거기서 누굴 만난다는 것도 그렇고, 자살을 할 사람이 그 좋은 곳을 놔두고 집에서 그것도 가스폭발로······. 파면 팔수록 찜찜하단 말이죠.”
“별······ 그게 뭐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무서웠나 보죠. 그래서 집에서 가스······ 에이, 아무튼 난 모르니까 자꾸 찾아오지 말아요. 공무원이 형사랑 자주 만나는 거 보기 좋지 않습니다. 괜히 이상한 소문만 돌고.”
“이상한 소문이요? 뭐요?”
“됐어요. 이제 가도 되겠죠?”
더는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오 팀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는 가족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방기철 형사가 불러 세웠다.
“오동수 사무관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임승택 씨 사망시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뭐요?”
“아니, 사건 당일 오후 4시에서 6시에 어디에 계셨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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