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그림자의 초능력?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이한의 그림자는 계속 애먼 탁자만 손으로 밀고 있었다. 그림자의 손은 탁자를 뚫고 들어갈 뿐 탁자에 조금의 미동도 주지 못했다. 송이는 그림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어? 어. 얘기는 다 했고?’
‘탁자를 밀려고 하신 거예요? 왜요?’
‘봤어? 혹시나 물체를 만지거나 밀 수 있나 해서 한번 해 본거야.’
‘그렇구나. 그래서 차에 타서부터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셨군요. 저를 구할 때처럼 물건들을 만질 수 있나 싶어서요?’
‘그렇지.’
탁자 앞에서 그림자를 보며 서 있는 송이에게 민철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송이야, 여기서 뭐해? 아저씨가 뭐라고 그러셔? 탁자는 왜? 탁자를 옮겨야 해?”
“아니야. 그게 아니라······. 테스트를 하고 계셨어.”
“테스트? 뭘 말이야?”
“물건을 만질 수 있는지 확인해 보셨대. 계곡에서 날 밀쳤던 것처럼 물건을 만지거나 밀칠 수 있는지 말이야.”
“그래? 그럼, 이제 진짜 아저씨가 물건도 만질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야단법석을 떨며 말하는 민철의 어깨를 툭 치며 송이는 이번에도 눈치를 줬다.
“호들갑스럽게 왜 그래? 아니야. 말을 끝까지 듣고 그런 소리를 해야지.”
“아니라고?”
“그래. 안 된다고 하셔.”
“왜? 널 구한 게 아저씨라며? 그럼 뭐야? 아저씨가 널 밀친 게 아니라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날 밀치는 건 맞아. 하지만 다시 해봤는데 물건을 만질 수 없다고 하시잖아.”
“뭐야? 좋다 말았네.”
“뭐가 좋다 말아?”
“아니, 그렇잖아. 그림자 아저씨가 이제 우리처럼 물건도 만지고 하면 좋은 거잖아. 그래, 투명인간처럼 말이야.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으니까, 몰래 나쁜 놈들도 혼낼 수도 있었는데. 근데 안 된다는 거잖아. 아이, 아쉽네.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능력?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말한다, 너는?”
“왜? 맞지. 초능력. 그림자로 우리처럼 물건들을 만지고 그러면 나쁜 사람들을 혼쭐 낼 수도 있잖아, 완전 히어로처럼. 아이, 아까비.”
“뭐가 아까비야? 정말 웃겨.”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박 경위가 물어왔다.
“저기, 송이학생. 그럼 어떻게 됐다는 거야? 이한이 송이학생을 구한 건 맞는데 그때처럼 송이학생······ 아니, 물건들을 만질 수 없다는 거야, 그래?”
송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요. 그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하시네요.”
“아무 때나가 아니면······. 아! 위급할 때만 나오는 그런 초능력이라는 건가?”
계속해서 민철이 초능력, 초능력하자 송이는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초능력이야? 그런 거 아니라고 하셔. 아저씨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뭘 그렇게 화까지······. 그래서 아저씨가 탁자를 밀어보려고 했던 거지? 근데 그게 안 되는 거고. 혹시 그게 물건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네가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냐고? 송이 너만 만질 수 있거나 밀칠 수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네 그림자이니까.”
민철의 말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는지 송이는 곧바로 그림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라고 하시네. 나도 밀어봤다고.”
“그래? 아이, 뭐야 그럼. 정말 위급할 때만 발휘되는 능력인 거야. 아쉽네. 그러지 말고, 영화에서 나오잖아요. 초능력을 갖은 사람들이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초능력을 갈고 닦아 초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게 되는 거요. 아저씨도 그런 게 아닐까요?”
민철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림자에게 계속 말을 걸자 송이가 말렸다.
“그만해, 민철아. 그건 진짜 초능력 얘기고. 영화는 모두 허구잖아. 아저씨는 그냥 그림자야. 나는 사실 아저씨가 날 밀쳤다는 것도 좀 안 믿겨져. 아저씨가 다급한 마음에 나에게 달려들었던 거고, 그냥 차가 날 진짜로 칠 의도가 없어 옆으로 비켜선 게 아닐까 싶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뭐야? 그때는 누가 널 밀쳤다고 그랬잖아. 나는 정말 아니라고. 그럼 그림자 아저씨 밖에 없잖아. 그건 확실하다고.”
여전히 흥분된 상태로 민철은 그림자를 대변하듯 말했다. 송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민철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 왜 그래? 왜 네가 흥분해서 그러냐고? 그래, 그때는 정말 누가 날 밀쳤던 것 같았어. 그런데 생각을 해봐. 그게 가능한 거야? 그림자 아저씨가 지금도 해보니 안 된다고 하시잖아. 그림자가 어떻게 사람을 밀쳐? 그러니까 내가 너무 놀라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싶은 거지.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논의 하자.”
“아무튼 자기 말만 하고······.”
“그게 아니야. 아저씨도 그만 하자고 하셔서 그런 거야? 괜히 오해 마.”
민철이 투덜대듯 불만을 말해도 송이는 웬일인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 송이에게 민쳘도 더는 뭐라 못하고 그런 거냐며 알았다고 넘어갔다. 송이와 민철이 옥신각신하는 통에 박 경위는 끼어들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제 다 얘기한 거야? 내가 끼어들 새가 없네. 이한한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게 어떨까? 송이학생.”
“네, 그럴 게요.”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박 경위와 민철에게 전했다. 산장에서 있었던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은 박 경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걸 눈치 챈 그림자는 송이에게 말해 박 경위에게 물었다.
“형사님, 왜 그러세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생기신 거예요?”
“어, 아니야. 이한이 물어보라고 그런 거야?”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시다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그게 아니라 사실은 황 의원이라고 했잖아. 의원이라면 국회의원이 아닐까 싶어서. 그럼 보통 일이 아니니까. 조폭과 국회의원이 연루 된 사건이라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그래.”
“이한 아저씨가 너무 걱정 말라고 하세요. 확실한 물증만 확보하면······.”
송이의 말을 박 경위가 싹둑 잘라 말했다.
“그게 아니야. 단순 조폭들의 성착취 사건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국회의원이 연루되었다면 그 위선에 누군가 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괜히 어쭙잖게 건들었다가 오히려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그래. 더군다나 너희들은 학생이잖아,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가 있어.”
“우리는 괜찮아요. 그렇지?”
“어? 어. 걱정 마, 송이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넌 지킬게.”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여서 잔뜩 굳은 표정이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민철이 고마워 송이는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송이의 미소에 민철도 금세 굳어 있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황 의원이 누구인지 알아봐줘. 국회의원 중에 황 씨들만 추려서 내게 보여주면 내가 얼굴을 아니까 누군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럴게요.’
‘그리고 이틀 후에 강남 클럽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다고 했어. 그 모임을 칠구라는 그 깡패 녀석이 준비한다고 하니, 그자의 뒤를 쫓으면 그들이 모이는 장소도 쉽게 알아 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날 그곳에 잠입해, 어떤 자들이 모이는지 무슨 검은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낼게. 만약 성착취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라면 그들의 상부조직까지 한 번에 뿌리 뽑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
추적추적 내리던 빗소리가 점점 커지고 어둠이 짙어지자 빌딩들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지며 어두침침했던 길목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늘어나며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스산했던 길목을 경쾌한 리듬으로 생기 돋게 했다.
북적해진 골목길 사이로 차 한대가 들어섰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내리는 빗줄기가 한층 굵어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동차는 강미남 클럽 앞에서 멈춰 섰고 전조등 불빛이 꺼지며 운전석 문이 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오상혁 매니저가 우산을 펴서 뒷좌석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칠구가 내렸고 상혁이 받쳐 든 우산을 받으며 클럽 안으로 향했다. 클럽 처마 안으로 들어서자 칠구는 어깨에 묻은 빗물을 떨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상혁은 우산을 접고 리모컨으로 차를 잠금 뒤 서둘러 칠구를 뒤따랐다.
클럽 정문 앞에는 종업원들과 가드들이 서서 칠구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실장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일 뿐 칠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가로질러 안으로 향했다. 곧바로 상혁이 뒤따랐고 그 옆으로 강미남 클럽의 수석 매니저가 따라붙으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몰랐습니다.”
“왜? 준비가 덜 됐나?”
“아닙니다. 리허설을 하신다고 하셔서 세팅은 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래. 중요한 자리인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지. 내일 있을 시간에 맞춰 미리 합을 맞춰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준비해 놓으라고 한 거야. 아가씨들도 대기 중인가?”
“애들은······.”
수석 매니저가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상혁이 나서서 말했다.
“선수들은 2차를 나가는 거라 준비를 미처 못 한 듯합니다. 지금이라도 준비할까요?”
“아이, 됐어. 대신 룸장이나 오라고 해.”
상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룸장은 왜?”
“뭐가 왜야? 부르라면 불러.”
“아, 예. 광식아, 룸장 불러와.”
수석 매니저는 상혁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이고는 홀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칠구와 상혁은 모임 장소인 룸 안으로 들어갔다. 강미남 클럽 안에서 가장 큰 룸을 모임 장소로 꾸며놓았다.
“상혁아, 오늘 제대로 놀아보자.”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 새끼가 한국말 몰라? 놀자고.”
“내일 모임을 대비해서······.”
“그러니까 제대로 놀아보자는 거 아니야. 내일 여기 모여서 뭐하겠어? 술 처마시고 계집질이나 할 게 뻔한데, 안 그래? 우리가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형님······ 아니, 실장님. 내일 이곳에 모이시는 분들은 그냥 손님이 아니라 VIP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미리 체크하신다고 이렇게 준비해 놓으라고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VIP? 그래서? 그 새끼들은 사람 아니야? 그래, 사업 얘기 좀 하겠지. 그다음에 그 새끼들이 뭐하겠냐고? 여기서 모인 거 보면 몰라? 안 그러냐고? 상혁아.”
상혁은 당혹스러워 하며 뒷덜미를 매만졌다.
“아, 새끼가. 내 말이 틀려?”
“그러다 큰······ 아니, 대표님 귀에라도 들어가면 경을 칠 일입니다. 그냥 진행과정만 지켜보시고 돌아가시죠. 정 아쉬우시면 나중에 별도로 저희 클럽에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실장님.”
칠구는 상혁의 어깨를 강하게 휘감았다.
“사내새끼가 뭐가 그리 겁이 많아. 뭐 어때? 리허설하는 거라고, 리허설. 그냥 우리가 저기 앉아서 VIP인 것처럼 하면 되는 거라니까. 큰형님 귀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무서우면 애들 입단속을 잘 시키면 되는 노릇이고. 그거 하라고 널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 아니야, 내가. 재밌게 놀아보자는데 계속 내 기분 잡치게 할래, 어?”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상혁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자 저쪽으로 앉아.”
상혁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실장님, 먼저 마시고 계십시오. 저는 애들 입단속부터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오, 그래. 좋아. 그러는 게 좋겠다. 근데 룸장은 왜 이리 안 와?”
“제가 가서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 그래.”
상혁은 칠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룸 밖으로 나갔다.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