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어긋난 미행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집에 도착한 송이는 곧바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렸다. 그리고는 엄마를 마중 나갔다. 사실 1층에서 송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림자는 송이엄마의 뒤를 미행하는 자가 누군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송이엄마를 미행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송이와 그림자는 잠시 허탈했지만 미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송이는 집에서 나왔다. 금남천에서 민철과 만나 운동을 시작했고 그림자에게 몇 가지 호신술도 배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민철과 송이는 운동과 관련된 말 외에는 다른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림자는 그들 사이를 예전처럼 되돌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송이가 민철과 관련된 말은 듣지도 민철에게 전달하지도 않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림자는 그대로 운동을 마치고 송이의 집으로 향했다. 민철도 송이와 계속 있는 것이 껄끄러웠는지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헤어졌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학교에서 만난 송이와 민철은 여전히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송이는 애리가 화장실에 갈 때 뒤따라가 조용히 그림자의 말을 전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하굣길 학교 정문에 송이와 민철은 어제와 같이 애리가 엄마의 차에 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헤어졌다.
주중 하굣길에 강석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철과 송이는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어서 그게 더 걱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 아침, 송이와 민철은 그림자와 함께 석진의 집 앞을 찾았다. 맞은편 집 벽기둥 뒤에 숨어 지켜보던 송이가 그림자에게 물었다.
“정말 오늘 만날까요?”
‘석진 뒤엔 그 클럽 깡패가 있는 게 분명해. 석진이 그동안 학교에 안 나타났으니, 오늘 아니면 내일은 칠구라는 그 깡패를 만날 거야.’
송이가 그림자의 말을 민철에게 전하자 민철은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제가 알기론 석진의 집이 맞기 하거든요. 그래도 혹시나 아닐 수도 있어서요. 중학교 때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말이죠.”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민철에게 바로 전했다.
“아저씨가 안에 들어가서 석진이가 사는지 확인하고 오신다고 하셨어. 우리는 잠깐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고.”
“그래? 알겠어요, 아저씨.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림자는 송이 옆에서 떨어져 나와 민철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석진의 집으로 향했다. 민철은 그림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송이에게는 눈 한번 주지 않고 석진의 집만 바라봤다.
송이는 먼저 말을 걸어보려고 민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계속 시선을 피하는 듯한 민철의 행동에 더 그러지 못했다.
그림자가 들어선 대문 안에는 작은 마당이 보였고 그 앞으로 2층 단독주택이 있었다. 1층 현관문으로 들어서려는데 남자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야! 어디가?”
“언제부터 그게 궁금했는데? 상관없잖아.”
“뭐? 저 새끼가······. 너 이리 와봐. 빨리 이리 안 와, 이 새끼야!”
“여보, 그냥 나둬요. 왜 또 그래요?”
“당신이 매번 그렇게 감싸고만 도니까, 저 새끼가 저 모양 저 꼴 아니잖아! 이리 안 와!”
“석진아, 빨리 죄송하다고 해. 어서?”
“씨발, 제발 그런 얼굴로 보지 말라고. 누가 보면 진짜 엄마인줄 알거 아니야! 자꾸 그렇게 엄마 코스프레 할 거야! 지랄하네, 아빠 앞에서만 저러지. 아빠가 그걸 알까?”
“저 새끼가 아주 죽으라고 환장을 했구나. 네가 지금 엄마한테, 뭐!”
“누가 엄마야! 내 엄마는 날 버리고 도망갔잖아. 나한테 엄마는 없어! 없다고!”
그렇게 소리치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석진은 대문으로 달려 나갔다. 그림자는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벽에 붙어 숨었다. 그리고 그 뒤로 밥그릇과 숟가락 등이 현관문 앞으로 마구 날아들었다.
대문으로 석진이 달려 나오는 걸 지켜 본 민철과 송이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민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떡하지? 쫓아가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먼저 따라갈 테니까, 아저씨 나오면 뒤따라와.”
민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석진 뒤를 쫓았다. 송이는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보셨어요?’
‘어, 금방 나가. 조금만 기다려.’
‘민철이 먼저 뒤쫓아 갔어요.’
어느새 그림자가 송이 옆으로 와서는 말했다.
‘그래, 우리도 가자.’
그림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송이는 달렸다. 한참을 골목을 나와 큰 대로변에 도착했을 때 민철이 송이에게 손을 흔들며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송이가 민철 앞에 다다랐을 쯤 민철이 말했다.
“아저씨, 석진이가 차를 타고 갔어요. 바로 뒤쫓아 가려고 했는데 택시가 없어서 말이죠. 어쩌죠?”
“택시를 탄 거야?”
“아니요. 승용차였어요. 누군가 기다렸다가 석진을 태우고 간 것 같아요.”
“혹시, 차번호 봤니?”
“차번호요? 아······ 그건 미처 생각 못했어요. 어떡하면 좋죠?”
마치 자신은 없는 듯 그림자만 보며 말하는 민철이가 송이는 섭섭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색할 순 없었다.
‘송이야, 내 말 민철한테 전해. 송이야, 내 말 들었니?’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어요?’
‘이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잠깐 딴 생각을.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말씀해주세요.’
말없이 그림자만 보고 있는 송이의 어깨를 민철이 흔들며 물었다.
“송이야, 그림자 아저씨랑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해?”
“아니야. 아저씨가 어쩔 수 없다고, 로망스클럽으로 가보자고 하셨어. 그곳으로 갔을 것 같다고 말이야.”
“로망스클럽? 그래, 알았어.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고 앞서 걸어가는 민철을 뒤를 따라가며 송이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로망스클럽에 간 다음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건 가봐야 알겠지만 클럽 안에 들어가서 상황을 보려고. 그곳에서 석진이 그 칠구라는 깡패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봐야지.’
‘정말, 애리 말대로 기정의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게 궁금한 걸까요?’
‘그게 아닐까 싶은······.’
그림자가 말하는 도중에 민철이 택시를 잡고 서서 송이를 불렀다.
“송이야, 빨리 타. 아저씨도 어서 타세요.”
“어, 알았어. 아저씨, 타서 더 얘기해요.”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송이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다. 민철이 조수석에 앉자 택시기사가 차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다 탄 거예요? 아저씨가 아직 안 탄 것 같은데. 근데 아저씨는 어디에 있는 거예요?”
“아, 아니에요. 우리 둘이 다예요.”
“타기 전에 아저씨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요? 아닌데요. 잘못 들으셨나 봐요. 어서 출발해 주세요.”
“그래요? 아, 알았어요.”
택시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절레절레 흔들며 출발했다.
***
석진은 집에서 뛰쳐나와 도로변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는 갓길에 정차해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가 탄 차가 도착한 곳은 계곡물이 흐르는 한 산장의 앞마당이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석진에게 산장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어서 들어가 봐.”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석진은 산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흔들의자에 칠구가 앉아 있었다.
“이제 오냐? 이리와 앉아.”
“예, 형님.”
석진은 칠구 앞으로 가 섰다.
“앉으라고.”
“괜찮습니다. 서서 말씀 드릴게요.”
“그래, 어떻게 됐어?”
“죄송합니다. 일주일만 더 시간을······.”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보는 칠구를 보고는 석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했다.
“아니, 3일만 더 시간을 주세요. 형님.”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3일씩이나? 야! 내가 알아보라고 한 게 언제야? 어!”
“4일 전입니다, 형님.”
칠구는 흔들의자를 멈춰 세우고는 석진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또 3일? 너 죽고 싶냐?”
“죄송합니다. 그게 애리라는 얘가 엄마랑 계속 붙어 다니는 바람에 따로 불러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3일 내에 어떻게든 알아낼게요. 그러니 시간을 좀······.”
“야, 그 동안 뭐하고? 연락처 하나 못 알아낸 거야? 걔 친구들 있을 거 아니야. 걔네들한테 알아내면 될 일을······. 아이, 새끼가 꼭 내가 나서게 하네. 그래서 진짜 하나도 알아낸 게 없다?”
석진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세요, 형님.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이번엔 반드시 알아내서 보고 드릴게요.”
흔들의자에서 일어난 칠구는 석진에게 다가가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그렇게 해서는 백날해도 넌 못 알아낼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걸 몰라?”
방법을 알려달라는 듯 석진은 눈을 크게 떠서 칠구를 올라다봤다.
“아이, 새끼. 정말 모르나 보네. 너 이래서 조직에서 일을 하겠냐? 너 졸업하고 뭐할 거냐?”
“형님, 설마······.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형님을 위해 목숨 받치겠습니다, 형님.”
칠구는 석진의 머리통을 손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미친 새끼. 야, 어디서 약을 팔아? 아, 새끼가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새끼야, 네 목숨을 왜 나한테 받쳐? 너나 네 목숨 잘 간수해, 새끼야. 완전 웃긴 놈이네.”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형님 밑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이 몸······ 아으!”
주먹이 또 한 번 석진의 머리통으로 날아들었다.
“됐어, 새끼야. 입에 침이나 발라. 꼭 이런 놈이 뒤통수······ 아니, 등에 칼을 꽂지. 너는 안 되겠다. 그건 됐고. 네가 그동안 아무것도 못 알아낸 걸 보니까, 호락호락 한 애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가 잘 하는 거 해야지.”
칠구는 움켜쥔 주먹을 석진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주먹······ 아, 폭력······ 아니, 협박을······.”
“아이, 새끼. 정말. 주먹 앞에 장사 없다고. 몰라?”
“주먹 앞에 장사 없다? 그런 말이······ 아으!”
한심하다는 듯 흘겨보며 석진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대충 알아들어, 새끼야. 정말 한심한 놈이네. 애리 그년이 안 되면 걔랑 친한 누구든 입을 벌리게 하라고. 친한 친구들 있을 거 아니야, 어?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내가 앞으로 이틀 준다. 월요일 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번에 반드시 알아내서 보고해. 그날도 오늘처럼 그런다? 네가 어떻게 될 것 같아?”
“죽을 것 같습니다.”
칠구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잘 아네. 그러니까 꼭 알아내야겠지? 뭐라도 하나 들고 와야 할 거야. 그렇다고 씨발 거짓말하면 알지? 그땐 그냥 죽는 게 아니야. 어?”
“예, 형님. 꼭 알아내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만 가봐.”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석진은 산장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자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고 석진은 조수석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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