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어디서 어리광?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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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워하는 민철을 보며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물었다.
‘어쩌시려고요? 그러다 운동도 안 하고 도와주지도 않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일단 내가 하는 말부터 전해줘. 어?’
‘네. 말씀하세요.’
송이는 그림자의 말을 민철에게 그대로 전했다.
“무술을 익히는 것은 누구를 해하려 하거나 복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야.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정신을 수양하기 위함이지.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나을 뿐이야.”
“저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복수를 하지 말라니 제가 아저씨한테 무술을 배우려고 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인데요.”
“합기도와 호신술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너한테 도움이 크게 될 거야. 체대에 가고 싶다고 들었어? 근데 체대에 가려는 이유가 있어?”
“잠깐, 이거 아저씨가 물어본 거 맞아?”
마른침을 삼키며 송이가 되물었다.
“그럼 누가 물어봐? 내가 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송이를 실눈으로 쳐다보던 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맞다니까?”
“아는데, 네가 좀 오버하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아니겠지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민철은 바닥의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제가 체대를 가려는 이유는요. 공부로는 대학가는 게 글러 먹었거든요. 그래도 제가 좀 잘 하는 게 운동이라서 그래요.”
“대학을 가려는 이유는?”
이번에도 그림자의 질문인지 송이의 질문인지 의심스러웠던 민철은 입을 삐쭉거리며 송이를 쳐다봤다.
“또 그렇게 쳐다본다. 아저씨가 물어보는 거야.”
“대학······ 다 가는 대학인데 저만 못가면 그렇잖아요. 무슨 다른 이유는 없어요. 부모님도 대학은 가라고 하고. 어디든 상관없다고 대학만 나오라네요.”
“그런 거구나.”
“딱 잡았어. 네가 물어본 거지? 아, 이거 이거. 임송이, 네가 궁금했으면 그냥 네가 물어봤어야지. 왜 애꿎은 아저씨를 이용하는데?”
“얘가 정말,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아니야. 아저씨가 물어본 거야. 근데 나도 처음 듣는 얘기라 그렇게 말이 나온 거고. 그게 뭐 잘못 됐어?”
“아닌데 분명······.”
송이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놓지 않는 민철의 시선을 피하며 그림자에게 투덜대듯 말했다.
“아무튼, 남자들이 이렇다니까요. 지 멋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거 보세요. 내말이 맞잖아요. 보시고도 그러세요?”
억울해하는 송이를 보고 민철은 괜스레 의심한 것이 미안해졌다.
“미안. 그게 아니라 정황상······ 아니다. 내가 오해했어. 그러니까 그냥 좀 넘어가줘라. 어?”
“알았어. 네가 사과하니······.”
마지못해 사과를 받아들이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야, 송이야. 너, 연기 좀 한다. 왜 그렇게 연기를 잘 해?’
‘죄송해요. 쟤가 왜 저렇게 매일 학교에 남아 운동을 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체대는 또 왜 가려고 하는 지도요.’
‘너도 민철이가 궁금하기는 하구나?’
‘아니요. 그냥······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아저씨도 궁금했던 거 아니세요?’
‘궁금하긴 했지. 그래도 내가 물어보지는 않았잖아.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어?’
‘제가 또 언제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저도 말하면서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고요. 근데 입에서 말이 먼저 나와 버린 걸 어떡해요? 이번만 이해해 주세요. 아저씨를 판 건 정말 죄송해요.’
‘그래, 너도 사과를 하니 넘어가 줄게.’
‘치, 아무튼.’
‘넘어가 준다고 해도, 너는······.’
‘아, 죄송해요.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림자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굽실거리는 송이를 보고 민철이 말을 걸었다.
“야, 왜 그래? 너 아저씨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니, 아니야. 이제 운동할까?”
“그래. 난 뛰면 되는 거야?”
“응, 저기 육교 보이지?”
“저기까지 뛰었다 오라고?”
한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육교를 민철이 가리키며 되묻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 번 반복하라고 하셨어.”
“세 번씩이나? 정말이야?”
송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민철을 흘겨봤다.
“너 이런 식으로 계속 내 말을 못 믿어서 어쩌니? 이래서 내가 아저씨 말을 중간에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어?”
“어어, 알았어. 믿을게, 됐지?”
“그래. 잠깐. 뛰기 전에 준비운동 먼저 하라고 하셨어.”
“준비운동?”
“저기.”
송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그림자가 준비운동 동작을 시범보이고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민철은 육교를 향해 전략 질주했다. 송이는 그림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얼마가지 않아 그림자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어깨와 등을 곱게 펴서 걸어야 한다며 발바닥이 발에 닿는 순서까지 하나 하나 지적했다. 송이가 육교까지 갔다 오는 동안 민철은 마지막 세 바퀴째 반환점을 돌고 있었다.
‘근데 저한테는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민철이 뛰는 것보고는 별 말씀 없으시네요?’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뭐? 민철이는 완벽하다는 거예요?’
‘완벽은 아니지만 운동을 했던 몸이라 기초가 잘 잡혀 있어. 달리는 것도 손색없고.’
‘치, 역시 남자라······.’
‘또 그런다? 남자가 아니라 초보와 상급자의 차이라고 해야지.’
‘알았어요. 저는 초보라 그런 것도 잘 모르겠네요.’
‘아이고, 참.’
마지막 바퀴를 돌고 돌아온 민철은 무릎에 손을 집고 허리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내몰았다. 그림자가 그 모습을 보고 송이에게 뭐라고 말했고 그걸 민철에게 전달했다.
“자세가 중요해. 힘들어도 허리 펴고 숨을 고르게 쉬어.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라고.”
“어, 알았어.”
대답만하고 그대로 있는 민철에게 송이가 재차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게 아니라 아저씨가 말한 거야.”
“어? 그래? 알았어요, 아저씨.”
민철은 곧바로 허리를 펴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셨다는 반복했다. 그 모습에 송이는 화가 난 듯 바닥에 있는 그림자에게 투덜댔다.
‘저것 보세요. 쟤가 원래 저래요. 내 말은 아주 개 무시하고 아저씨 말이라니까 쏜살같이 듣잖아요.’
‘그건 그러네. 그게 전문가와 초보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아닐까?’
‘또, 또 쟤 편을 드시는 거예요?’
‘아니, 편이 아니라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 쟤를 위해 변명을 늘어놓으시냐고요? 정말, 못됐어.’
‘송이야, 미안. 아니, 이건 미안할 것도 아니고. 그게······. 너 혹시 질투하니?’
그림자의 말이 어이없었는지 송이의 입에서 헛웃음을 터져 나왔다.
‘아니구나. 뭐 그렇다고 웃기까지······.’
‘질투라는 단어가 나온 자체가 코미디잖아요. 그래서 웃었어요. 왜요?’
‘알았어. 네가 지금 민철한테 질투를 느끼는 것 같아서 한 소리였어. 아니면 됐고.’
‘정말, 웃겨.’
“아, 맞다!”
민철이 갑자기 소리치며 다가오자 송이는 깜짝 놀라 쳐다봤다.
“뛰다가 보니까 너희 엄마랑 닮은 분이 보여서 생각났는데 말한다는 걸 깜빡했어.”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가 뭐?”
“아니, 너를 집에 데려다주고 가는 길에 너희 엄마를 봤거든.”
“그래서? 빨리 말해.”
“어, 너희 엄마 뒤를 누가 뒤따라가더라고. 꼭 미행하듯.”
“뭐라고? 우리 엄마를 누가 미행해?”
“아니, 미행이 아닐 수도 있고. 남자였는데 너희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더라고. 너희 엄마가 멈춰서며 그 남자도 같이 멈춰서고. 그러면 미행 아닌가? 아저씨한테 한번 물어······.”
송이에게 말하다 말고 민철은 바닥의 그림자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저씨. 이거 미행 아니에요?”
민철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그림자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송이가 재차 물었다.
‘아저씨, 이게 미행 맞아요? 왜 대답이 없으세요?’
“송이야, 아저씨가 뭐라고 그래?”
“아직 아무 말 없어.”
“어, 그래? 아저씨······.”
그제야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라고 했지? 처음 본 얼굴이냐고 물어봐줘?’
송이는 민철에게 고대로 물었다.
“네,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제 생각인데 혹시······.”
민철은 송이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송이엄마를 좋아하는 남자가 아닐까요? 중년의 남자였거든. 그래도 좀 젊기는 했는데 뭐 요즘 연하남도 많고······.”
송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김민철.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지!”
“아우, 그렇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 아니, 그렇잖아. 남자가 너희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게······ 너희 엄마를 좋아하는데 말을 못······.”
이번에도 크게 소리치며 민철의 말을 잘랐다.
“시끄러워! 아빠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소리야!”
“아······ 그렇지. 미안해. 나는······.”
“아무튼 생각하는 게 고작 그런 거지. 넌 조용히 운동이나 해. 아저씨랑 나중에 얘기할 테니.”
“아니, 그렇다고 말도 못하······. 알았어. 운동이나 할게.”
송이의 매서운 눈빛에 민철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송이는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제 뭐하면 되죠?”
***
사람들로 북적이고 어두운 밤이 더욱 화려한 강남 번화가 골목에 차 한 대가 들어서며 밀집된 궁중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경적소리를 내며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비집고 지나 강미남클럽 앞에 멈춰 섰다. 그 차에서 내린 칠구는 클럽 주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정문 앞에 서 있던 가드들이 그를 보고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칠구가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가드 중 한 명이 어딘가로 무전을 보냈다. 칠구는 클럽 안을 서성거리다 자신에게 달려온 한 남자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칠구가 들어선 곳에 한 남자가 뒤돌아 서 있었다. 칠구는 가볍게 목례하며 말했다.
“육팔형님, 저 왔습니다.”
“갑자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나 없었으면 헛걸음 할 뻔 했잖아.”
“제가 그것도 모르고 여길 왔겠습니까? 큰형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제야 되돌아 선 육팔은 욕을 내뱉으며 칠구를 노려봤다.
“뭐냐, 너?”
“왜 그러십니까? 저 칠굽니다.”
“그래서? 지금 미키 형님 만나러 왔다는 거냐?”
“예. 큰형님 좀 뵙고 하소연 좀 해야겠습니다.”
“하소연? 무슨 하소연? 네가 그런 것도 할 게 있냐?”
“형님, 왜 그러십니까? 저, 형님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황 의원 일도 잘 처리가 됐고 기정이 일도 잘 무마됐지 않······.”
미간이 일순 일그러진 육팔은 쌍욕을 내뱉으며 칠구의 말을 잘랐다.
“무마? 그거 누가 했는데?”
“누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년 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혹시······.”
“됐고. 지금 형님 바쁘시니까 나중에 따로 봬.”
“무슨 일인데요? 잠깐이라도 만나고 가겠습니다.”
“야, 그일 때문이라도 너는 조용히 있어야지. 형님이 너 아끼는 마음에 이 정도로 끝내신 거야. 그거 모르냐?”
“뭐가 이 정돕니까? 저한테 너무 한 거 아닙니까? 고작 촌구석에 그거 하나 있는 것까지 형님한테 넘기라니요? 그거 저한테는 전붑니다.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 거죠. 아니, 형님이라도 말리셔야죠. 어떻게 그걸 넙죽 받으십니까?”
투덜대며 땡강 부리는 칠구의 응석을 더는 받아주고 싶지 않았지만 육팔은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자식이 어디서 어리광이야? 좋은 말할 때 돌아가. 오늘 중요한 손님들 와 계신데 소란피지 말고. 형님이 보시고 더 역정 내시기 전에 빨리 가라고.”
“중요한 손님이요? 근데 왜 저는 모릅니까? 이것도 서운합니다. 제가 형님들한테 이런 대접 받아도 되는 겁니까?”
듣자듣자 어이가 없었는지 육팔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야, 너 지금 근신 중이야. 조금만 더 근신하고 있어. 얼마나 됐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지랄이야. 아이 씨, 정말. 때가 되면 형님이 알아서 부르실까. 왜 이렇게 조바심을 부려, 어? 야! 너, 내 자리가 탐나? 그 정도 야심이 있는 거야? 정신 차려라. 이 형님이 있는 한 넌 절대 이 자리에 못 올라온다. 그냥 내 밑에서 열심히 기어. 그러면 뭐라도 주워 먹을 게 생기지 않겠냐? 너 하는 꼴 보며 그것도 감지덕지인 것 같긴 한데. 내가 그건 챙겨준다고, 자식아. 그러니까, 돌아가라고. 새끼야!”
칠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순간 눈빛도 살벌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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