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다른 속셈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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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 시작했다. 모여 있던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에게 가서는 소곤거리며 얘기를 전하는 듯 보였다. 그림자는 아이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 조심스럽게 송이에게 나와 그들 옆으로 다가갔다.
‘어디가요?’
‘잠깐만. 애들이 좀 수상해서 말이야.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봐야겠어.’
‘그러지 말아요.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하는 얘기 뻔하죠. 이성 얘기나 연예인 얘기겠죠.’
‘그런 게 아닌데······.’
그림자의 진지한 목소리에 송이는 그림자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물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아이들 얘기가 심상치 않다.’
‘무슨 얘긴데요?’
‘기정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돌고 있어. 애들이 점점 더 소문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소문이요? 설마 어제 일 말인가요? 그걸 아는 건 우리들뿐인데······. 우리 중에 누가 그걸 얘기했겠어요?’
송이는 말하면서 민철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림자는 송이의 속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아니다, 민철이. 왜 바로 민철이부터 의심하는 거야? 너희들은 아니야. 내가 봤을 땐 반장인 것 같아.’
‘반장이요? 소희가 무슨 소문을······’
그때였다. 애리가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데? 그런 얘기면 하지 마, 너희들.”
애리에게 와서 얘기하던 아이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 너도 진지충이니? 그냥 웃어넘기면 될 일을······. 설마 사실이겠어, 이게? 그냥 하는 소리겠지.”
“그 얘기 누구한테 들은 건데?”
“나도 애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너한테 말해주는 거야. 왜 그래? 너도 참 웃긴다. 네가 언제부터 기정이랑 그리 친했다고 나한테 이래?”
“아니야. 잘못된 이야기가 퍼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내가 알기로는 그게 아니라 기정이가 피해자라고 들었어. 너희가 직접 보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쉽게 말하고 다니는데? 나는 그게 싫어서 말하는 거야. 사실도 아닌 말을 그렇게 쉽게······”
애리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콧방귀를 끼며 팔짱을 꼈다.
“치, 웃겨. 정말. 애들아, 가자. 나는 그래도 너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 말한 것뿐이야. 아니면 말지,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냥 그런 소문이 돈다고 말해준 거뿐이라고. 너도 참 너무한다. 네가 이러면 내가 뭐가 되니?”
친구는 애리를 흘겨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함께 있던 아이들도 하나 같이 애리를 흉보며 자리로 흩어졌다. 이 소문의 근원지가 소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애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희에게 갔다.
“민소희, 너니? 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뭐?”
“네가 아니면 누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를 하고 다니는 애가?”
“누가 그래? 내가 그랬다고. 나도 들은 얘기야. 오해 마.”
“오해? 너도 참 구제불능이다.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나중에 그 벌을 다 어떻게 받으려고 그러니?”
소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애리를 쏘아봤다.
“구제불능? 너 말 다했어? 너야 말로 말 함부로 하지 마. 내가 왜 벌을 받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너 뭐야? 뭐라도 알고 있다는 눈이다. 그 눈빛······.”
민정이 다가와 애리를 말렸다.
“애리야, 왜 그래? 소희도 들은 얘기라고 하잖아.”
민정은 애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참아, 어? 왜 그래? 그림자 아저씨도 모른 척하라고 했잖아.”
“너도 들었잖아. 쟤네들이 하는 말.”
“이러지 말고. 자리로 가자. 웅?”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애리를 민정이 억지로 끌고 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애리를 다독이며 달랬다. 소희는 애리와 민정을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했다.
‘민정이가 그래도 잘 정리했네. 안 되면 너라도 가서 좀 말리라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괜히 네가 가면 더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마음만 졸이고 있었어.’
‘치, 말을 꼭. 그래요, 맞아요. 저는 속이 다 시원하네요. 저도 애리처럼 한바탕하고 싶은데 겨우 참고 있다고요.’
‘알아, 딱 그런 표정이더라. 근데 네 속마음은 들리지 않던데. 이제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네가 속마음을 숨긴 건지 모르겠네.’
‘아니에요. 그냥 참았을 뿐이에요. 속으로 그런 생각은 안 했고요.’
‘그런 거야? 아무튼 잘 참았어. 너까지 가서 그랬으면 소희가 너희들 의심했을 거야. 수사가 진행되면 언젠가는 너희들 신원이 밝혀질지 몰라. 그전까지는 최대한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알아요. 저희도 그 정도는요.’
‘그래, 알겠지. 생각보다 애리가 의리파네. 한 성격도 하는 것 같고, 그치?’
‘그러게요. 조용히 공부만 하는 모범생인줄만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멋진 친구 같아요.’
‘그래, 저런 친구랑 사이좋게 잘 지내. 나중에 사회 나가서도 좋은 친구로 계속 남을 수 있을 거야.’
‘좋은 친구요? 그게 뭔데요? 친구면 친구지 좋은 친구는 또 뭐예요?’
‘아, 그런가?’
‘그렇죠. 아무튼 참 좋은 아이 같아요. 사이좋게 지내고 싶고요. 애리가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왜? 애리도 널 좋게 보는 것 같던데.’
‘그래요? 그럼 저도 좋고요.’
수업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했다. 송이는 책을 펴고는 기정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민정의 집에 있을 기정이 잘 있을지 궁금했다. 수학 선생이 들어와 수업이 시작되자 뒷자리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숙면에 들었다.
***
중환자 대기실에 매일 이른 아침부터 나와 밤늦게까지 대기하며 기도하는 이한의 어머니는 오늘도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두 손 모아 아들의 회복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면회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기실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기도하는 이한의 어머니 곁으로 한 여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수연이 아니야.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수연아.”
“뭐가요? 매일 이렇게 나와 계시는 건 아니시죠?”
“언제 깰지 모르는데 나와 있어야지. 내가 엄만데.”
“이러다 어머니 몸까지 상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내 걱정은 말고. 우리 이한이 보면 빨리 좀 일어나라고 말 좀 해줘. 내 말은 안 듣네.”
이한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수연의 손을 꼭 잡았다.
“네, 그럴게요. 저도 자주 못 와봐서 죄송해요.”
“아니야, 당연하지. 바쁜 거 아는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정말.”
“아니에요. 앞으로 자주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주말에 제가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는 어머니가 좀 쉬세요. 이러다 정말 병나실까 걱정이에요.”
“아이고, 마음씨도 이리 고아서는. 나는 괜찮아. 수연이야말로 주말엔 쉬어야지? 이런 아가씨를 두고······ 이한이는······.”
“어머니, 이한 씨 꼭 일어날 거예요. 그러니 어머니도 건강 잘 챙기세요. 아, 시간 됐네요. 저 들어갔다 나올게요.”
“그래, 어서 들어가. 들어가서 우리 이한한테 빨리 좀 일어나라고 꼭 말해주고.”
“네, 어머니.”
이한의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수연은 이내 눈물을 흘렸다.
“왜 울어? 울지 마. 응?”
“그럼 들어갔다 올게요.”
수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다시 교실 안은 떠들썩해졌다.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등교할 때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수업 끝나고 바로 가라는 말씀이세요?’
‘어? 왜? 학원 가야 하나?’
‘아니요. 그건 아닌데······ 마음이 안 내켜서요. 정말 괜찮을까요?’
오늘 아침 등굣길에서 그림자가 한 얘기가 있었다.
“다시 말한다. 이번엔 잘 들어, 어?”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놈들이 경찰이 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걸 알아보려고 어제 형사과를 둘러봤거든.”
“그래서 그 형사한테 가본다고 한 거군요.”
“그래, 네 말대로 마실을 간 거지.”
“마실······ 아, 그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계신 거였어요?”
“됐고, 그건 넘어가고. 방 형사가 의심스러워서 가봤는데 별다른 건 없었어. 다만 계속해서 너를 지켜보는 것 같았단 말이지. 그게 아니면 기정의 사건을 눈여겨보고 있던가.”
“왜요? 아저씨는 그 형사가 깡패들한테 정보를 넘겼다고 보시는 거예요?”
“그걸 알아보려고 지금 그러는 거잖아.”
“어떻게 그걸 알아봐요?”
“왜, 어제 그 형사가 잠깐 널 보자고 했었잖아. 조사 끝나고 갔더니 자리에 없어서 그냥 나왔고.”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그 핑계로 방 형사를 직접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 그러지.”
“아저씨가 어떻게 그 형사를 만나······ 잠깐만, 지금 저 보고 그 형사를 만나라는 거예요?”
그림자는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싫어요. 제가 왜요? 그 형사 무섭게 생겨서 싫다고요. 그때도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시죠? 아저씨까지 걸리면 어쩌나 해서 더 그랬지만 또 그 형사를 만나라는 말은 하지마세요. 저는 싫어요.”
“뭐가 무섭다고 그래?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되겠는데, 왜? 잘 하면서, 어?”
“그거야 아저씨는 그림자니까 그렇죠.”
“아하, 그림자라 실체가 없으니 하나도 무섭지 않다? 한번 그림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줄까?”
“됐거든요. 또 그 귀신 놀이하려고 그러죠? 저한테는 안 통해요.”
그림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이, 그것 외에 내가 할 게 없는데. 그러지 말고 네가 좀 움직여줘라, 어? 방 형사가 많이 의심스러워서 그런다고.”
그림자의 애교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듣기 거북했는지 송이는 진저리를 쳤다.
“아흐, 정말 왜 그러세요? 차라리 귀신처럼 하세요. 그게 낫겠어요.”
“언제는 해도 소용없다면서······. 송이야, 부탁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래.”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만나서 제가 뭐라고 하냐고요?”
“만나 줄 거야? 그래, 고마워.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또요? 근데 생각해보면 제가 찾아가서 만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 형사가 저한테 볼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올 거 아니에요.”
“볼일이 없으면? 안 찾아와도 되는 거면?”
“그랬으면 잠깐 보자고 했겠어요?”
“아니지. 그날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겠지, 온 김에.”
“그런가요? 아이, 참. 알았어요. 그럼 언제요?”
“그게······.”
“송이야!”
민정이 뒤에서 송이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 민정아. 안녕.”
송이가 민정에게 반갑게 인사할 때 그 주변으로 친구들이 하나 둘 붙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며 급히 송이에게 붙었다.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 보이는 송이에게 그림자는 조심스레 부탁했다.
‘네 말대로 기다리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정말 내 생각이 맞는다면 경찰 내에 그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다는 거고, 그렇다면 그렇게 쉽게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들이 이번 사건에 개입할 게 분명하거든. 이 사건을 덮으려 할지도 모르고.’
‘덮어요? 어떻게 그걸 덮어요?’
‘단순 성매매 사건으로 몰아 갈수도 있고. 더 안 좋은 케이스는 기정이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기정이가 어떻게 가해자가 돼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만약을 말하는 거야. 근데 기정이에 대한 아이들의 말들을 들어보니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더 그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데요?’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여서.’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방금 말한 기정이를 가해자로 만드는 거요?’
‘그걸 먼저 알아봐야겠다.’
‘뭐예요? 갑자기 뭘 또 알아봐요?’
‘반장 뒤를 쫓아봐야겠어.’
‘반장이요? 경찰서가 아니고요? 방기철 형사를 만나러 가자고 했잖아요.’
‘그건 내일가자. 오늘은 먼저 반장 뒤를 쫓아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아이들이 말한 그 소문들이 소희 입에서 나왔다면 무슨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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